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8
이서연이 우연히 발견한 토굴에서 느낀 것은 놀람보다는 당혹스러움이었다.
“···이건 무슨.”
어째서 여기로 그 괴물이 들어간 거지. 게다가 무엇보다 우리를 부르는 듯한 소리도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토굴의 형태를 보면 분명···.
나는 기억에 남아 있는 지도의 내용을 떠올렸다.
분명 거리가 거의 남지 않기는 했다. 조금만 더 분발하면 우리는 그토록 찾던 도시로 향하는 입구를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만 되새기고 있던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다시 지도를 폈다. 가지각색의 지형들과 구조물들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나는 비교적 발견하기 쉬운 구조물들을 따라 도시로 들어서는 입구를 찾고 있었다.
길은 한 개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건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쉽게 따를 수 있는 길일 뿐. 우리가 찾는 시작의 도시로 도달하는 길은 많다.
다르게 말하면 시작의 도시로 들어설 입구는 여러 개라는 것이다. 분명 내가 모르는 길들은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회귀 전 여러 플레이어가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고.
다른 길을 걸었던 플레이어들은 제각각 서로 다른 입구를 발견했다. 또 다른 말로는 탈출구라고 해도 좋았다. 이 기분 나쁜 숲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이거 꽤나 어이가 없는 일인데.’
그리고 명백히 우리가 발견한 토굴은 탈출구와 비슷하게 생겼다. 튜토리얼의 끝을 알리는 입구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다면 그러한 입구에 거미 인간이 도망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토굴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 동안 바라보고만 있자 조심스러운 얼굴로 남궁민이 질문했다.
“형 무슨 일입니까.”
“이 토굴이 우리가 찾던 목적지인거 같은데.”
“예?”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남궁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한 차례 더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지도를 보게 했다.
지도에는 여러 가지 소용돌이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것들이 바로 도시의 입구를 알리는 표시였다. 입구는 많다. 하지만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알 수가 없어서 문제다.
“···. 이 많은 입구들 중에서 우리가 하나를 발견했다는 소리입니까?”
“아마, 그런 것 같아.”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이곳이 말이에요?”
이번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민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토굴과 지도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그럼 설마.”
“우리가 이 안에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차라리 다른 곳을 찾는 게 어때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던 송가연이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입구는 여러 개지만 결국 이르는 곳은 하나다.
어디로 입장하던 간에 결국 우리는 여기를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스퀴아르의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동료와 힘을 모아 던전의 끝에 도달하십시오.]“···그렇다는데?”
내가 고개를 돌려 토굴을 가리키자 아이들은 어딘가 혈색 좋지 않은 얼굴로 토굴을 바라봤다.
*
“기분 나쁜 곳이네요.”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대표해서 말하듯 송가연이 중얼거렸다.
토굴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 건 기분 나쁠 정도의 습기였다. 실제로 토굴의 천장과 벽은 물방울이 흘러 다니고 있었고,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댈게 필요해 벽에 손을 뻗어보자 손끝에서 미끌미끌하고 차가운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미끼인가.’
평소에도 이런 환경을 유지하는 건지 벽에는 미끼들이 가득했다. 그런 것들을 손으로 만지는 건 꽤나 불쾌한 감각이었기에 나는 혀를 차며 손에 묻은 물기를 옷에 닦고는 횃불로 앞을 밝혔다.
불로 밝혀진 주위의 모습은 거미줄로 가득 찬 전형적인 거미의 둥지였다. 여기에 어떤 놈이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모두들 조심히 걸어.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누군가 넘어지려고 하면 옆에서 누가 빠르게 도와줘.”
“네.”
우리의 움직임은 꽤나 조심스러울 것이다. 아무래도 모두가 메시지 창을 봤을 거다.
언제 공격당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미끄러운 바닥에 실수라도 어이없게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모두가 긴장했다.
“비스퀴아르라는 건 어떤 존재일까요.”
무거운 침묵을 유지하며 움직이던 중 이서연이 궁금하듯이 물었다.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중에 송가연이 이서연의 말에 대답했다.
“아무래도 거미와 관련 된 녀석이겠지.”
“거미?”
“여기까지 우리를 안내한 게 거미 인간이었으니까. 이서연, 너도 봤을 거 아니야. 우리가 쫓던 녀석의 생김새를. 인간의 형태를 가졌지만 그건 분명 거미였어. 그리고 여기도 거미 둥지처럼 생겼고.”
송가연의 말이 맞다. 그리고 이 숲은 거미의 숲.
아무 말 없이 앞에서 움직이던 나는 송가연의 말에 동조하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 송가연 말이 맞을 거야. 녀석의 인기척이 갑자기 사라진 걸 보면 이쪽으로 도망친 거 같으니까. 그럼 아무리 못해도 녀석이랑 비슷한 녀석들이 여기에 우글거릴지도 모르지.”
“그, 그건 조금 무서운데요. 너무 기괴하게 생겼던 존재라 다시 보기 싫은···.”
우리가 쫓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건지 이서연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공포와 혐오가 뒤섞인 듯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는데 이해하지 못할 감정은 아니다.
나도 녀석의 모습은 기괴하다고 여겨졌으니까. 이서연 뿐만이 아닌, 녀석을 본 우리 모두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이서연의 말이 끝나자 남궁민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게다가 녀석은 우리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고. 사실 한 놈뿐만이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우리가 못 봤던 여러 놈들이 아직 숲에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유현 오빠. 차라리 먼 곳으로 도망치는 게 낫지 않아요?”
길유미의 말에 나는 잠시 발을 멈추었다. 그러자 아이들도 나를 따라 발걸음이 멈췄다. 내가 토굴을 발견하고서 느낀 건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당혹스러움이었다.
비스퀴아르.
솔직히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단순히 몬스터의 종족 이름을 뜻하는 걸 수도 있고, 던전의 주인을 뜻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왜 하필 여기에 자리를 잡은 걸까. 기억에 없는 녀석이다.
“오빠···? 제 말 들었어요?”
생각하던 걸 정리하던 나는 1분 정도가 지나서야 길유미의 말에 대답할 수 있었다.
“도망칠 수 있을까?”
“···도망칠 수 있다니요?”
“이런 한 밤중에 우리가 얼마나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해. 횃불을 들고 말이야. 게다가 송가연의 석궁에 맞고서도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봤잖아. 녀석들이 그런 속도로 우리를 따라오면 도망칠 수 없어.”
“그건···.”
게다가 앞서 남궁민 했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즉, 우리를 지켜보던 건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일지도 모른 다는 것이다.
숲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녀석들을 놔두고 얼마나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보초를 세운다 하더라도 힘들어 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느낌이 물신 풍겨왔다.
그 이유는 던전을 울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우리는 토굴 안에 오고 나서야 숲에서 들었던 정체불명의 소리가 어디서 나온 건지 알 수 있었는데, 재미있는 건
이리 오세요. 어서 구해주러 오세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말이 바뀌었다. 그건 우리가 토굴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랬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목소리는 분명 아름다운 미성이었지만 섬뜩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우리 위치가 토굴 안인지라 이리저리 튕겨오는 듯한 소리는 등 뒤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에 무섭다기보다는 미지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등줄기로 차가운 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나는 잠시 멈췄던 다리를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너무 습격이 잦았어.’
예전에도 이렇게 공격 당했던 걸까. 그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문득, 지금 쯤 다른 파티들은 우리와 다르게 비교적 편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앞에서 온갖 어그로와 시선을 끌어 주었으니 후발 주자들은 나름대로 편하게 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급했던 걸까. 어쨌든 빠르게 돌파하면 좋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누군가 앞서 지나간 길을 따라가는 건 매우 편한 일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새벽임에도 아이들은 단 한 번의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따라와 주었다. 모두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텐데.
그래도 바싹 긴장감을 유지하고 광원이라고는 횃불에 겨우 의존한 채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쭉 걸었을 때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토굴의 통로는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꽤나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통로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넓은 공동.
그것이 우리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이곳이 어딘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작의 도시로 들어서는 여러 통로들이 한 곳에 모이는 곳. 그곳이 바로 여기였다.
실제로 공동 구석구석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통로들이 보였다. 결국 우리가 발견한 토굴도 튜토리얼의 끝을 알리는 던전의 여러 입구 중 하나였다는 소리.
비록 그런 곳을 몬스터가 둥지로 삼은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긴 하지만.
“···오빠. 여기 꽤나 위험한 거 같은데요? 위를 보세요.”
길유미가 내 등 뒤로 창을 바싹 든 채 중얼거렸다. 나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 것 같네.”
오싹한 시선이 위쪽에서 느껴진다. 아이들도 살기를 느꼈는지 서서히 고개를 올리고 있었다. 토굴 안 인지라 보이는 건 어둠뿐이지만 그 사이로 붉은 안광이 폭사되고 있었다.
매우 기분 나쁜 짙은 진홍색이다.
고개를 들어 수십쌍의 눈들 중 하나와 마주치자 아름다운 미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소리를 따라 횃불을 더 높이 들어본다. 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횃불로 비쳐진 공동의 천장은 무척이나 새하얗다. 정확히는 거미줄로 인해 새하얗게 변해 있다는 게 옳겠지. 그리고 거미줄에 걸려 있는 저것들은 거미의 먹이라도 되는 걸까.
인간. 고블린. 그리고 뭔지 모를 동물들.
···그런 것들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들 마냥 데롱데롱 달려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맞이한 건 저 거미줄의 주인이겠지. 사방에 뻗어 있는, 한 눈에 보는 것으로는 그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운 거미줄에 못지않게 녀석은 그에 어울리는 몸집을 자랑했다.
“엄청 크잖아…”
“으윽…”
그 수준은 짙은 어둠속에서도 녀석의 꿈틀거림이 보일 정도였다. 어둠으로도 숨길 수 없는 거대한 몸집. 그 크기에 지금껏 여러 일을 겪은 아이들도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크기는 대략 10m 정도인가.”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제일 기분이 나빴던 건 거미 주제에 사람 말을 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몸집은 둘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