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74
여자는 모든 질문에 대답하고서 빠르게 잠에 들었다. 긴장감이 풀리니 그 동안 누적되었던 피로들이 한 번에 쏟아진 듯하다. 그런 여자와 달리 유현의 일행은 아직 잘 수가 없었다.
여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 할 게 있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안유경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검은 손톱 쿠와로가 분명합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류트였다.
그의 말에는 유현도 동의하고 있었다. 여자가 설명한 쿠와로들 중에는 검은 손톱 쿠와로라고 생각되는 녀석이 있었다. 게다가 제일 명확한 증거가 있다.
쿠와로들 중에 흑마법을 사용한 개체가 있다는 것.
아마, 안유경의 파티를 상대로 쓴 마법은 저주겠지.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안유경의 파티는 순식간에 무력감에 빠졌다고 한다.
사기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며, 전투 의지를 꺾는 정신계 마법.
저주에 대한 저항이 없었을 테니 마법의 힘에 저항하기 힘들었을 터.
“…일단 확인은 해봐야지 않을까요? 아직 누군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안유경 씨의 파티 말고도 잡혀온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거 같던데요.”
조심스레 의견을 꺼낸 이서연이었다.
탈출을 하면서 안유경은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본 건 아니지만 구해달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이서연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이 있을 확률이 컸다.
쿠와로들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낼 수 있는 건 파충류 특유의 스산한 소리.
살려달라고 말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인간 뿐.
“그러면 안유경 씨는 어떻게 할 건데? 저런 몸 상태로 과연 우리를 따라올 수 있을까?”
이서연의 말에 부정적인 듯 송가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서연도 안유경의 몸 상태를 아는지 작게 신음하며 표정을 흐렸다.
유현도 송가연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앞에서는 하기 힘든 말이지만 안유경이란 존재는 어떤 식으로 생각해 봐도 짐 덩어리였다. 몸 상태도 최악일뿐더러 전투 능력도 기대할 수가 없다.
저런 몸으로는 짐을 들게 하는 것도 힘들겠지.
유현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보이는 정글을 노려봤다.
바로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나야 하는 걸까.
“아직 사람이 살아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유현은 자신의 고민을 입 밖으로 흘려보았다.
모두들 대답을 하지 못한다. 주어진 단서들이 너무 적다.
누군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침묵이 일행을 맴돌고 있을 때였다.
일행의 침묵 속을 가로지르며 안유경의 결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괜찮아요. 최대한 노력해 볼 테니까, 다른 사람들을 구해주실 수 있을까요?”
언제 잠을 깼는지 모르지만 대충 상황은 알고 있는 듯했다.
유현은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눈에 힘을 주고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잘 기억하고 있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대충 위치는 알아요.”
“…저 정글 속에서 길을 외웠다는 겁니까?”
그녀의 말에 유현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을 했다.
저 정글 안에서는 방향감각이 제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사방이 수풀이고, 나무이며, 하늘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가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저 안은 유현도 제대로 방향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 유현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네. 믿어주세요.”
여자는 다시 한 번 힘을 담아 말한다.
유현은 복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고민했다.
여자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단순히 결연한 각오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 속에서도 이대로 돌아가는 것 또한 아쉽다.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한 번 믿어 봐도 괜찮겠지.
정말로 그녀가 길을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그녀가 따라올 수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검은 손톱 쿠와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온 것도 아니니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탐색을 진행하면 될 뿐.
*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오자 유현의 일행은 정글 안으로 진입할 준비를 했다.
진입하기에 앞서 유현은 일행에게 향수 한 병씩 지급했다. 모두들 자신이 받은 유리병을 보며 의아한 얼굴을 하는 가운데 랑샤셴이 질문했다.
“이건 뭐하는 물건인가요?”
“정글 안에서 벌레들에게 물리지 않도록 하는 향수야.”
“아..”
원정대 길드에서는 카르나덴 에이리어에 대한 여러 주의사항이 있었다. 그걸 보고서 유현이 구입해 온 것이다. 가격은 제법 저렴했다. 요구가 많은 만큼 생산량도 많아서 그런 듯하다.
유현은 안유경한테도 향수 하나를 지급하고는 단검도 한 자루 지급했다.
탈출하면서 자기의 장비까지 챙기는 건 무리였는지 그녀는 맨몸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잘 다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무기는 필요할 터.
“가, 감사합니다.”
단검을 빌려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그녀는 꾸벅 고개를 조아렸다.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한 유현은 정글 안으로 진입했다.
안으로 진입하자 냄새부터가 조금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진한 물냄새가 느껴졌는데 도시 주변에 있는 강물 냄새하고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불쾌했다.
늪지의 냄새인가.
정글인만큼 주변에 늪지가 있어도 이상할 것 없다.
밤에 말했던 대로 안유경이 앞에 선 채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유현과 류트가 그녀의 옆을 지키며 주위를 경계했다. 그녀의 말을 한 번 믿어보는 것이다.
이 정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일행도 알기에 모두 무거운 긴장감을 유지했다. 쿠와로들이 사람을 납치해 이상한 짓을 계획하고 있다.
대충 그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다.
사방으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수림들이 가득한 가운데 안유경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현은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기분이 묘했다.
정말로 길을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 걸까.
그런 의심이 가슴 속에서 불현듯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정글 안에서 그런 게 가능한가.
아무리 길을 기억하고 있다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 한다.
마치 그녀에게만은 특별한 길이 보이는 것처럼 그녀는 단 한 번도 발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곳의 지형에 대해 빠삭한 인간도 저런 행동은 불가능하겠지.
“이상하군요.”
그걸 류트도 신경 쓰고 있는지 옆에서 작게 중얼거린다.
눈을 가늘게 한 채 차가운 시선으로 안유경의 등을 쳐다보고 있다.
“어제 그녀에게서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는 거겠지?”
“네. 유현도 저랑 비슷한가 보군요.”
류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주위의 환경에 압도당해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오로지 유현과 류트 뿐.
특히 류트로서는 더욱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정안을 가진 그로서는 어제 안유경에게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정말로 길을 안내하고 있는 건가.
“으음. 거의 다 왔어요.”
문득 안유경이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주위에 보이는 건 여전히 정글 뿐.
어딘가 도착했다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거의 다 왔다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네? 그러니까..?”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자신도 무슨 소리를 한 건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유현과 류트는 멍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이상하다. 가슴 안에 맴돌고 있던 불안감이 절정에 이를 때쯤이었다.
사사삭-. 주위로 들려오는 소리에 유현은 눈을 가늘게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바람소리로 수풀이 흔들린 게 아니다. 무언가 여기로 다가오고 있다.
“전투 준비.”
입 밖으로는 이미 그런 말이 나오고 있었다.
무기를 뽑은 채 소리의 진원을 쫓는다.
수풀과 나무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정글은 환경 그 자체만으로도 기습 효과를 가진다.
지금 이건 설마 함정이라는 걸까.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추는 걸 확인하면서.
“지금 당신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
손을 뻗어 안유경의 어깨를 붙잡아 당기자, 유현은 볼 수 있었다.
“——–!”
실 풀린 인형마냥 힘이 풀린 그녀의 눈을.
눈에 생기가 없다. 이성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의 눈하고도 비슷했다.
그녀는 유현의 일행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걸로 모든 임무를 다한 건지 바닥에 턱, 하고 힘 없이 쓰러졌다. 경련하듯 몸을 떨며 입에 거품을 흘리고 있다.
기절한 건가. 묻고 싶은 게 많은데.
“……하.”
유현은 쓰러진 그녀를 보고서 입술을 비틀었다.
주먹을 꽈득 쥐며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데 송가연의 차분한 음성이 유현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유현 오빠. 지금 그녀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닌 거 같아요. 주위로 엄청난 숫자의 쿠와로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어서 결정을…!”
“포위가 제일 얕은 쪽이 어디야?”
“현재 유현 오빠 기준으로 오른쪽이요. 그나마 제일 숫자가 적어요.”
“알았어. 남궁민, 너는 안유경을 등에 업어. 내가 길을 뚫을 테니까 무조건 달리기만 해.”
남궁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며 유현은 몸에 힘을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버리고 가고 싶지만, 그녀는 결국 피해자였다.
조종이라도 당하고 있던 걸까.
녀석이 정신계열 흑마법을 쓴다고 할 때부터 생각을 해봤어야 했는데.
유현은 혀를 차고는 앞장 선 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