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75
-사아아아악!
뱀의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유현은 쿠와로들의 핏물로 끈적끈적해진 검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휘둘렀다. 벌써 몇이나 베는 걸까.
서걱-!
쿠와로들이 유현을 막기 위해 나무 방패 따위를 들이 내밀지만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유현을 막아서던 쿠와로들은 나무 방패 째 몸이 절단되어 절명했다.
앞을 달리면서 유현은 뒤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낙오된 일행이 없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모두들 잘 따라오고 있다. 오히려 여유마저 보이고 있었다.
“젠장! 고블린 같은 놈들!”
저게 그녀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욕인 걸까.
바득, 이를 갈며 길유미가 창을 휘두른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리자, 달려들던 쿠와로 하나가 목이 절단되어 쓰러지는 걸 볼 수 있었다. 훌륭한 솜씨.
간간히 쿠와로들이 화살을 쏘기도 했지만 이서연의 방어 마법 앞에 가로막혔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들이 황금빛 막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모두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착실하게 해내고 있는 가운데 유현의 눈에 제일 많이 들어오는 건 랑샤셴이었다. 활을 다루는 그녀의 입장상 이런 싸움은 그녀에게 그다지 좋지 않다.
숨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현재 일행은 정글 안을 질주하고 있다.
유현이 길을 뚫으면, 일행이 그 뒤를 따라오는 형식.
지금 같은 상황에서 상대를 향해 활을 조준할 여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랑샤셴은 묘기에 가까운 활솜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유현의 일행에 합류하기 전, 랑샤오의 파티에 있을 때 미궁에서 구했던 룬이 각인된 활이 끊임없이 빛을 흘린다. 그녀가 가진 활은 화살의 힘을 강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카아아악!
빛이 절정에 이르기 무섭게 랑샤셴의 화살은 쿠와로의 머리를 꿰뚫었다.
저기서 중요한 건 그녀가 남궁민과 길유미의 속도에 전혀 밀리지 않은 채 달리면서 화살을 연달아 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신기에 유현은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좋은 궁수가 파티에 있다는 건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다.
끈질길 게 따라붙는 녀석들의 추적 속에서 얼마나 도망쳤을까.
유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살기가 사라졌다. 뱀 특유의 스산한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조여 오던 숨통이 풀리는 느낌이다.
“….쿠와로들의 기척이 멀어지고 있어요. 이제는 안전해요.”
“후아. 겨우 살았네.”
송가연의 말에 일행은 안심한 듯 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송가연이 안전하다고 말하니 더 이상 무서울 건 없었다.
안유경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등에 업고 왔던 남궁민이 그녀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둔 채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안유경을 바라보는 남궁민의 눈빛은 어두웠다.
“그나저나 이 사람 우리한테 왜 이런 짓을 한 걸까요. 나쁜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알게 뭐야. 정말… 최악이네.”
길유미가 눈매를 사납게 흐트러뜨린 채 안유경을 노려본다. 이 모든 일은 저 여자 때문이었다. 여자의 말에 속아 일행 전체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어쩌면 동료가 잡혔다는 이야기부터가 전부 거짓일 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디부터가 거짓인 걸까.
어젯밤 보여준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어지럽기만 한다.
지금 상황이 그녀 때문에 생긴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왠지 모르지만 그녀는 유현의 일행을 함정에 빠뜨렸다.
그럼 의문이다. 그것이 자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인가?
그 순간은 길유미 뿐만 아니라 유현의 일행 모두가 안유경을 복잡한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유현 씨는 안유경의 얼굴 보셨죠?”
류트의 물음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제 정신인 얼굴은 아니었지.”
거기에 도착했을 때 안유경의 눈은 힘이 풀려 있었고,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실이 끊긴 인형처럼. 역시 그건-.
“아마, 정신계열의 흑마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뭔가 아는 게 있어?”
마법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을 테니, 뭔가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류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쉽게도 흑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그쪽에 관해서는 연구를 할 수가 없거든요. 알다시피 흑마법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절대 금기로 통하는 분야이니까요.”
“…그런가.”
류트의 이야기대로 흑마법은 인간들 사이에서 금지였다. 흑마법을 쓰는 마법사들의 최후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정신 쪽으로 뭔가 문제가 많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부작용이 있는 만큼 강력한 마법들이 많았다.
“안유경 씨의 몸을 확인해 봐도 좋겠습니까?”
“그래 줄 수 있겠어?”
류트가 허락을 구하듯이 묻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유현은 이서연에게도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서연이 네가 류트를 좀 도와줘.”
“네? 제가요?”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서연은 사제였다.
사제인 이상 흑마법에 대한 감지는 그 누구보다도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흑마법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저런 얼굴을 하는 거겠지.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보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지도 모른다.
“과연. 확실히 이서연 씨라면 뭔가 발견할지도 모르겠군요.”
“네? 류트까지.. 왜?”
고개를 갸웃하는 이서연을 보며 류트는 후후, 웃었다.
이서연은 그대로 영문을 모르는 얼굴을 한 채 류트에게 끌려갔다.
뭔가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유현을 일단 둘에게 기대해 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죠?”
이서연과 류트가 안유경을 확인하고 있을 때 송가연이 말을 꺼냈다. 방금 까지도 정령을 소환해 주변을 탐지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마력을 갈무리 하는 모습이 보였다.
“글쎄. 나도 지금 위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네.”
그녀의 물음에 유현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유현도 일단 포위망을 뚫고 보자는 생각이었기에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건 불가능 했다. 애초에 길을 안내했던 것도 안유경이었고.
유현은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고는 바닥에 둔 채 펼쳤다.
정글에 진입했을 때의 위치를 통해 대충 지금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어렵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설프게 예상했다가는 괜히 더 일이 어렵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일단 움직여야겠지.
쿠와로들이 지금은 포기한 거 같아도 언제든지 추적을 계속할 수가 있다.
여기는 녀석들의 구역.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이 유현을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았어.’
쿠와로들은 라비락들처럼 부족을 이룬다.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손톱 쿠와로가 그렇게 큰 부족을 이루고 있다고는 못 들었다.
유현이 봤던 수배지에서 검은 손톱 쿠와로는 작은 부족 출신이라고 했다.
수십마리 정도로 이루어진, 그저 그런-.
‘검은 손톱 쿠와로가 아닌가?’
순간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유현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유경이 일행을 함정에 빠뜨렸을 때 보여준 얼굴은 흑마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밖에 설명할 게 없었다. 정신 조작이라도 당한 거겠지. 유현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차분히 이서연과 류트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본다.
둘이 무언가 소식을 가져오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약하지만 안유경 씨의 몸에서 흑마법의 잔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이서연 씨도 안유경 씨에게서 미약하지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류트의 이야기에 유현은 이서연을 쳐다봤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라고 말하자 그녀는 더듬거리며 이야기 했다.
“그..그게. 뭔가 불쾌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제 치료했을 때는 눈치 채지 못 했지만 이번에 확인해 보니 정수리 부근 쪽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정수리?”
“네.”
그건 역시 정신조작의 흔적이라는 걸까.
그걸 지우면 안유경은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치료할 수 있겠어?”
“아니요… 이미 해봤는데 저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어요. 오히려 안유경 씨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피를…”
이서연이 울 것같은 표정을 하며 몸을 떨자 유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꽤나 보기 싫은 광경을 본 거겠지. 유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의 떨림이 사라질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서 유현은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간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지만 위험해.”
인간이, 인간을 함정에 빠트린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더 무서운 건 함정에 빠트리는 인간이 자신의 상태를 전혀 모른다는 것.
유현은 안유경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으음. 거의 다 왔어요.
태연한 얼굴로 안유경은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녀 스스로도 뭐라고 했는지 전혀 모른 채.
만약 그녀가 협박에 의해 그랬던 거라면 이미 오래 전에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거짓이 없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올바르다고 느낀 거니까.
“이번에도 제가 안유경 누나를 등에 업을까요?”
바닥에 누워있는 안유경을 가리킨 채 남궁민이 나서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그래줄 수 있겠어?”
“뭐, 이런 건 남자가 해야죠.”
으쌰 하고 남궁민이 안유경을 등에 업자 유현은 곧 바로 움직였다.
정글이 가지고 있는 기분 나쁜 습기 때문인지 등줄기로 흐르는 땀이 유난히 차갑다.
무언가 기분 나쁜 기운이 정글을 지배하고 있는 느낌.
가슴을 간질이는 불쾌함을 유현은 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