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76
유현이 이상함을 눈치 챈 건 정글을 헤매기 시작한지 이틀 째 되던 날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늪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불쾌함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벌써 발목까지 빠진 듯한, 이 불쾌한 감각.
유현은 발걸음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부터 계속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역시 이건-.
유현은 눈을 좁히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중얼거렸다.
“결계인가.”
그러자 류트가 호응했다.
“이 정도 수준의 결계를 쿠와로가 만들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인정은 해야겠죠. 아마 유현 씨의 말대로 결계일 확률이 큽니다.”
류트도 느끼고 있던 걸까.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런 둘의 대화에 유현의 일행도 덩달아 불안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저희가 결계 안에 갇혔다는 이야기인가요?”
“아마, 그렇게 되겠지.”
송가연의 물음에 유현은 짤막하게 답하며 작게 혀를 찼다.
결계 안에 들어온 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제법 잘 구축된 결계였다.
결계 안에 들어왔다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 본래 인지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걸 만든 것도 검은 손톱 쿠와로일 것이다.
‘원정대 길드는 이 녀석의 힘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군.’
수배지에 적힌 수준하고는 많이 동 떨어져 있는 녀석이다.
가볍게 흑마법의 힘을 경험해 볼 겸 사냥해 볼만한 수준은 아니다.
한 동안 주위를 훑던 유현의 눈이 포기한 듯 감긴다.
주위로 마력을 넓게 퍼뜨려보지만 별 성과는 없다.
결계에 한 번 갇힌 이상 빠져나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준비가 잘 된 마법사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법이었다.
이런 식으로 결계를 구축한 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내니까.
다행히 그 동안 쿠와로들과 마주치는 일들은 없었다.
그런데 쿠와로가 아닌 다른 몬스터들과의 싸움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이 구역은 몬스터들이 없다. 굳이 몬스터들을 피하고 다닌 것도 아닌데 지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조우하지 않았다는 건 역시 이상했다.
생물이 살지 않는-. 생기 없는 정글.
어쩌면 처음에 느꼈던 기분 나쁜 기운이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글은 무수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법이다. 수많은 몬스터들과 동식물이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생명력이 이 정글 안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느낄 수 있는 건 길을 잃었다는 불안함과 정글 특유의 불쾌한 습기 뿐.
유현은 품속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꺼낸 건 벌레를 쫓는 향수였다.
거의 쓰지 않은 것처럼 향수의 양은 그 동안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실제로도 처음에 진입할 때 빼고는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처음에 썼던 향수가 지금까지 지속될 정도로 효과가 그렇게 오래가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길어봤자 반나절. 적어도 유현이 들은 설명으로는 그렇다.
그런데도 지금 이걸 쓰고 있지 않은 건 쓸 필요를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리병을 꽈악 쥔 채 유현은 등을 돌려 일행을 쳐다봤다.
모두들 불안할 법도 한데 제법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기서 벌레한테 물린 사람 있어?”
“벌레한테요?”
“응. 처음 진입할 때 빼고 전부 향수를 쓰지 않았을 텐데.”
“아… 그리고 보니 그렇네요.”
향수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길유미가 눈을 크게 떴다.
눈에 거슬릴 정도로 벌레들이 주위를 돌아다녔다면 잊고 싶어도 잊지 못했을 거다.
향수의 존재를 잊은 건 그 필요를 모두 느끼지 못했기 때문.
생각할 게 많아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정리하던 유현은 하늘을 쳐다봤다.
벌써, 어두워지고 있다. 이걸로 또 다시 하루가 지나가는 건가.
어느새 해는 저물어, 달이 떠올랐다. 어둑어둑한 땅거미가 주위를 차지하게 되니 유현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늘도 정글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빠져나가기는커녕 정글의 끝도 구경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글의 출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기분.
그것에 조바심도 낼 법하지만 유현의 일행은 흔들림이 없었다.
곤혹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 동안 쌓인 경험이 그들을 흔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로 야영할 준비를 끝낸다. 식사는 간소하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쓸데없는 식량소비는 줄여야 했다. 가져온 식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구덩이를 파놓은 곳에 피어올린 모닥불이 정글의 한기를 조금이나마 물러서게 만든다.
일행은 모닥불 앞에 모여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후아. 피곤해요.”
이서연이 깊은 한숨을 쉬며 바닥에 주저앉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졸음이 쏟아지는 건지 눈이 감길 듯 말 듯 아슬아슬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현은 그녀를 보며 쓴웃음 지었다.
‘힘든 건가.’
더욱이 이런 정글 속을 헤집고 다니는 건 처음이었을 테니 체력 소모가 컸을 거다.
그런데 피곤함을 호소하는 건 이서연 뿐만이 아니었다.
“으응… 왜 이렇게 몸이 뻐근하지.”
길유미가 표정을 찡그리며 몸을 풀 듯 원을 그리며 어깨를 움직이고 있었다. 체력으로 따지면 남궁민에게도 밀리지 않는 그녀가 피곤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더워서 그런가?”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 건지 길유미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길유미와 이서연 뿐만이 아니었다.
유현은 일행의 얼굴을 차례대로 관찰했다.
하루 종일 안유경을 업고 온 남궁민은 그렇다 쳐도, 랑샤셴과 송가연도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이서연과 비슷하게 피로한 얼굴이었다.
‘좋지 않군.’
정글이라는 환경 때문인 걸까. 그런 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직도 안유경 씨는 눈을 뜨지 않고 있군요. 벌써 이틀이 지나가는데 말입니다.”
안유경을 확인하고 있던 류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혈색은 멀쩡해 보이지만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안유경, 그녀는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상태가 이래도 그녀가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안유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졸고 있던 이서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졸음에 잠겨 있는 눈으로 안유경을 쳐다보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 거예요. 제가 방금 전에도 확인해 봤지만 몸은 회복되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안심한 듯 얼굴에 힘을 푼 채 류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더니 이서연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졸기 시작했다.
보다 못해 옆에 있던 랑샤셴이 작은 담요를 펼치며 그녀를 덮어주었다. 담요의 보드라운 감촉이 좋은 건지 이서연은 그대로 잠에 들었다.
이서연이 잠들자 유현은 일행에게 말했다.
“빨리 모두들 자는 게 좋겠어. 내일도 계속 움직일 거니까.”
지금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쿠와로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정글 안에서 운 좋게 싸움이 없을 뿐이지.
굳이 유현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피곤했기에, 빠르게 잠에 들었다.
조용히 울리는 숨소리를 귀에 담고서 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턱을 괸 채 모닥불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류트가 보였다.
“어쩌면 단순히 길을 잃게 하는 결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득 류트는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일부러 일행이 전부 잠든 시간에 꺼낸 그의 진지한 이야기에 유현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결계를 만들었는데 허접한 기능만 넣었을 리는 없겠지.”
결계가 가지는 힘은 다양하다.
지금 당장 류트가 주위에 설치한 것처럼 생명체의 접근만을 감지하는 정도뿐인 그런 간단한 결계 같은 게 있는 반면 지금 같이 대규모로 설치된 결계는 술자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정글이 이렇게 적막에 잠겨 있는 것도 결계 때문일지도 모르지.”
주위에는 벌레들의 소리가 하나도 없다. 이상할 정도로.
정글 안에는 이상한 벌레들이 많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던 원정대 길드의 경고를 생각하면 정말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소리도, 동물소리도, 벌레소리도, 그 어떤 생명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유현은 그 부분에서 떠올렸다. 정글 안에 이렇게 생명력이 없는 건 결계 때문이라고.
유현의 말에 류트는 싸늘한 미소를 짓고는 바닥에서 무언가 찾아낸 듯 손으로 주웠다.
“하하,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류트가 바닥에서 주운 건 풍뎅이를 닮은 벌레의 시체였다.
그런데 시체는 하나 뿐이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주위에 벌레의 시체는 많다.
똑같은 종류가 아닌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종류는 다양하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수의 벌레가 죽어 있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고 밖에 말 할 게 없다.
수풀 아래에 시체가 다닥다닥 떨어져 있어 일행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벌레의 시체를 손에 쥔 채 흥미롭다듯이 관찰하던 류트는 눈을 가늘게 했다.
“그리고 보면 초입 부분에서 만났던 아스파다의 뱀 기억하십니까?”
“설마 그걸 잊었을까.”
그 거대한 뱀을 잊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카르나덴에서 무엇을 겪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대한 몸을 지닌 뱀은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유현에게도 나름 놀라운 녀석이었으니까.
“본래 아스파다의 뱀이 발견되는 곳은 이런 정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만났던 녀석은 본래 사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이 되었죠.”
“녀석의 이상행동이 지금 상황이랑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유현이 묻자 류트는 웃음을 지우고서 차가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