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78
“으윽! 이건 흑마법입니다! 모두들 정신 똑바로 붙잡고 있으세요!”
류트가 소리쳤다. 이서연이 뒤늦게 방어 마법을 펼쳐보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빛이 일행의 사이사이를 가로질렀고, 순간이지만 눈앞이 전부 검게 변했다.
검은 섬광은 유현의 일행을 전부 휩쓸어버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기에 피할 틈도 없었다.
피하지 못한 건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이미 이쪽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걸까.
유현도 녀석이 마법을 준비하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만큼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증거겠지만.
유현은 작게 혀를 차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마력을 방출했다. 방출된 마력은 유현의 주위로 퍼져나가 형태가 없는 방벽이 되었다.
가슴 속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힘이 빠져나간다.
마력 방출을 통한 방어는 과도할 정도로 마력 소비가 크지만, 아이리스의 가호를 통해 상승한 마력 재능 덕에 이런 낭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무엇일까.
‘———–!“
검은 기운이 유현이 만들어낸 마력의 막을 뚫고 안으로 침입해 왔다. 슬금슬금 비집고 들어오는가 싶더니 홍수처럼 막을 뚫고 검은빛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생각 이상으로 녀석의 마법은 강력했나보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유현은 입술을 바득 깨물며 녀석의 마법을 허용했다. 검은빛이 온몸을 파고든다. 검은 기운들이 몸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은 불쾌함을 넘어 역겨움 그 자체였다.
눈앞으로 메시지창들이 떠올랐다.
[파레디아의 축복이 저주에 저항합니다.] [아이리스의 가호가 저주에 저항합니다.]유현이 가지고 있던 능력들은 저주에 대항하는 힘이 있었다. 특히 대정령의 축복은 등급이 낮았지만 정령이 가진 힘 때문인지 저주의 저항력이 아이리스의 가호만큼이나 강했다.
두 개의 힘이 겹치니 저주는 유현에게 그 어떤 힘을 낼 수 없었다.
“후읍…”
검게 변했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아픔은 없었다.
단지 불쾌한 기운이 주변을 감도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몸을 비집고 들어오던 검은 기운들이 맥없이 흘러나오는 걸 구경할 수 있었는데, 나오는 양이 많아질수록 점점 머릿속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몸에 흡수되지 못한 저주는 연기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아마, 정신계열 흑마법을 쓴 거겠지.
유현은 다른 일행을 확인했다.
“……쯧.”
멀쩡한 사람은 단 두사람뿐이었다.
류트와 이서연.
이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멸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일행은 안유경이 전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실 풀린 인형마냥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동공이 풀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딱 봐도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단순히 마법 한 번에 이렇게 전투불능이 되어버린 건가.
‘아무리 저주에 대한 저항이 없다고 하지만 이건-.’
상당한 수준의 흑마법. 그걸 인정하며 유현은 류트와 이서연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아… 이거 꽤나 독한 마법이군요. 순간이지만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류트 같은 경우는 피를 한 모금 바닥에 토해내며 입가를 쓰윽, 닦고 있었다. 멀쩡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혈색이 조금 새파랗게 변했을 뿐.
마법이 쏘아진 방향을 향해 차갑게 빛나고 있는 벽안을 보아하니 정신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류트의 분위기 날카로웠다.
여기서 의외인 건 역시 이서연이라고 해야 할까.
사제라서 그런 건지 흑마법에 대한 저항이 일행 중에서 높았나보다.
그녀는 류트보다도 멀쩡해보였다.
검은빛이 시야를 뒤덮자 질끈 감아버렸던 눈을 서서히 뜨더니.
“……오빠. 이건.”
떨리는 눈으로 일행을 살피던 이서연이 퍼뜩 고개를 돌려 유현을 쳐다본다.
멀쩡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유현은 안도하며 말했다.
“서연이 너는 애들 치료 좀 해줘. 정신계열 공격이었을테니 나중에 후유증이 남을지도 몰라.”
“네!”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정신계열 마법이 무서운 건 지금 같이 적을 순식간에 무력화 할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빠른 치료가 중요했다.
마음 같아서는 유현이 직접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여기서 끝장 내겠다는 건가.’
-사아아아악!
마법이 주위를 휩쓸고 지나간지 몇 초 지나지 않아 쿠와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쿠와로들은 전부 시체들이었다. 뼈와 내장을 드러낸 채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땅을 달리고 있다. 흑마법으로 되살려낸 시체들이었다.
‘그 놈들인가.’
유현은 시체들의 몸에 남아있는 상처를 보고서 일행이 포위당했을 때 싸웠던 쿠와로들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설마 죽였던 놈들이랑 또 싸우게 될 줄이야.
“이런… 당했군요.”
류트는 정글 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덤벼들어오는 녀석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제가 일행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유현 씨는 녀석들의 대장을 처리해 주시겠습니까?”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펼치며 말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사이즈의 마법진을 보며 유현은 피식 웃었다. 다행히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믿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슨 마법을 사용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복잡한 구조를 가진 마법진을 보니 믿어도 될 듯하다.
“지금 녀석은 방심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 녀석을 죽이면 저희를 가두고 있던 결계도 풀리게 되겠죠. 녀석이 도망치기 전에 먼저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결계를 부수는 방법은 3가지 정도다.
결계의 축을 부수거나,
결계를 구축한 마법사를 죽이거나,
결계의 구조를 해석하고 파괴하거나.
“빠르게 갔다 올 테니 버티고만 있어봐.”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웃으며 능청스러운 얼굴을 하자 유현도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트가 만들어낸 지름 10m 가 넘는 마법진 밖으로 나가자,
바닥에서 불기둥이 치솟더니 일행의 주위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고열로 불타오르고 있는 장벽을 물리적으로 뚫는 건 불가능.
하지만 그런 걸 지능 따윈 없는 쿠와로 좀비들이 알 리가 없다.
떼거지로 몰려들던 좀비들은 시전자의 명령에 따라 유현의 일행을 죽이기 위해 무작정 류트의 불기둥에 몸을 부딪쳤다. 당연스럽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좀비들은 불의 장벽을 조금도 뚫지 못하고 활활 타오르는 몸을 내보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고기가 타는 불쾌한 냄새가 사방에 자욱해지는 가운데, 좀비들이 움직임을 바꾸었다.
시전자도 자신의 실수를 알았는지 명령을 바꾼 것이다.
불의 장벽을 기웃거리기만 하는 좀비를 보며 유현은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다.
마법이 어디서 쏘아졌는지 알고 있는 이상 쫓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좀비들의 홍수를 돌파하며 유현은 정글을 헤집고 다녔다.
흑마법사도 유현의 움직임에 놀랐는지 좀비들로 막아 보려 했지만, 쓸데없는 행위였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자 그어지는 섬광과 함께 다여섯이 넘는 좀비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 광경에 다급해진 흑마법사는 결국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남자를 막기 위해서는 좀비들 따위로는 안 된다는 걸 안 것이다.
‘저쪽인가.’
그러면 몸을 숨기고 있던 위치가 드러나는 건 당연한 일.
녀석이 마법을 사용하는 걸 기다렸다는 것처럼 유현은 흑마법의 기운을 감지해냈고, 주위로 부지런히 움직이던 눈이 흑마법의 빛을 순식간에 발견해냈다.
서늘게 빛나는 유현의 눈동자는 사냥감을 쫓는 야수의 눈동자였다.
검게 빛나는 마법의 빛을 향해 유현은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다.
그것은 다른 이들이 보면 무모한 돌진이었다.
하지만 쏘아지는 검은 빛은 유현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쇄도하던 검은빛 속을 뚫고 나오자 유현은 흑마법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일그러진 얼굴은 당황하는 인간들의 것과 다를 게 없다.
무슨 마법을 쓰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온몸이 흐릿하게 변하고 있다.
검은 연기로 변하고 있는 몸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도망치는 건가. 놓칠 생각은 전혀 없는 유현은 입술을 비틀었다.
거리는 20m. 검이 닿기에는 누가 봐도 부족한 거리. 하지만 충분하다.
그 순간 유현은 바닥에 오른발을 강하게 밞으며 검을 휘둘렀다. 이미 절정에 이르던 검기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잔상을 남기며 대기를 내달렸다.
쏴아아아-!
시끄러운 파공음을 내며 쏘아진 검기는 앞을 가로막고 있던 좀비들을 종이처럼 찢어낸 채 앞으로 나아가 이윽고 흑마법사 쿠와로의 몸을 베었다.
써걱-. 고기가 베이는 듯한 소리가 일시에 주위를 울린다.
연기처럼 흐릿해지던 몸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허물어진다.
잘려나간 상체에서 쏟아지는 핏물과 내장이 바닥을 더럽혔다.
녀석의 눈에 생기가 사라지며, 바닥에 엎어지자 유현은 정글을 지배하고 있던 불쾌한 공기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정글의 공기가 이렇게 상쾌했던 걸까.
결계가 깨졌다.
더 이상 정글 안에서 지겹도록 길을 헤매는 일도 없겠지.
대신에 모습을 감추었던 몬스터들이 다시 정글에 모여들겠지만.
유현은 흑마법사가 죽자 좀비들이 검은 연기를 흩날리며 녹아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좀비들도 주변의 광경처럼 소멸하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