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81
생각이상으로 이리샤는 빠르게 약속을 지켜주었다. 그녀에게 부탁한지 하루가 지난 다음날 카르나덴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연락이 온 건 아침식사가 막 끝난 직후였다.
“이른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카르나덴님이 빨리 만나고 싶다고 하셔가지고.”
여관에 소식을 전하러 온 건 이리샤였다. 길드 제복 차림새가 아닌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제법 잘 어울렸다. 그 동안 본 건 항상 사제 복장과 길드 제복이었다.
“괜찮아. 빨리 만나고 싶다고 한 건 나였고.”
“…그렇게 말해주시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군요.”
이리샤는 온화한 미소를 흘리고는 신전까지 길을 안내했다.
어느 도시나 그러하듯 신전은 도시의 중심에 있었다.
신전의 입구에서 이리샤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유현을 쳐다봤다.
“전체적인 상황은 제가 카르나덴님에게 미리 전해드렸습니다. 그 분이 무슨 질문을 할지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은 카르나덴의 사제처럼 보이기도 하다. 기품 어린 그녀의 몸짓에 유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한발자국 나아갔다.
이미 신전 입구에는 카르나덴의 사제들이 나와 있었다.
그녀가 여기서 발걸음을 멈춘 건, 카르나덴의 사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아무리 그녀가 카르나덴의 호의를 받더라도 룰은 지켜야 했다.
유현은 마중 나온 사제들을 따라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로베리아의 신전과는 전혀 다른 구조. 카르나덴의 신전은 로베리아 보다는 조금 화려했다. 그렇다고 해서 엉망진창의 느낌은 아니었고, 단지 적당히 꾸민 수준이었다.
“이 안에 카르나덴님이 있습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사제가 유현의 뒤로 물러나더니 말한다.
처음 보는 요정과 대면한다는 건 언제나 그러하듯 조금은 기대되는 일이었다. 녀석은 어떤 요정일까. 문이 열리고 안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유현은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활기찬 목소리가 유현을 맞이해 주었다.
“반가워. 내가 이 던전의 관리자 카르나덴이야.”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해 보니, 어린 소녀가 보였다.
찰랑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 소녀였다.
저 소녀가 카르나덴인가. 지구로 치면 겨우 중학생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동글동글한 눈으로 유현을 관찰하듯 쳐다보던 카르나덴은 흐음,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마치 어린 소녀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마냥 즐거운 미소였다.
“이리샤가 데리고 온 남자는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는 인간이었구나.”
“그게 무슨 뜻이지?”
“지금 내 눈에 무엇이 보이고 있는 거 같아?”
글쎄, 하고 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현으로서는 그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게 뭔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벌써부터 요정의 가호를 받고 있을 줄은 몰랐네. 어쨌든 반가워. 아이리스의 계약자. 지금 너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아이리스가 남긴 표식이 보이고 있거든.”
“흐음. 표식이라.”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지만 요정의 눈에만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보면 아이리스가 말했던 주의사항에 지금 같은 내용이 있기는 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네가 아이리스의 계약자라는 게 아니겠지. 어젯밤 이리샤에게 보고는 받았어. 꽤나 위험한 걸 보았다고 하던데. 네 기억을 통해 자세히 확인해 봐도 좋을까?”
“나랑 링크할 생각인 건가?”
“그렇지. 말로 듣는 것보다는 너의 머릿속을 훑어보는 게 훨씬 좋으니까.”
로렐라이 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 때 유현은 미궁에서 보았던 걸 보고하기 위해 로렐라이와 링크를 했었다.
그녀는 유현이 미궁에서 보았던 걸, 링크를 통해 두 눈으로 직접 보았고 상황을 이해했었다. 유현이 미궁에서 겪은 모든 걸 그녀 또한 보았다.
….하지만 죽음은 피하지 못했다.
그녀가 무능했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늑대의 탈을 뒤집어 쓴 마수가 문제였을 뿐이지.
마수의 행동력은 유현과 로렐라이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었다.
카르나덴과 링크를 하는 건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까지 허용하느냐, 였다.
유현은 로렐라이 때와 똑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내가 공유하는 건 오로지 내가 본 시각적인 정보들뿐이야. 내 생각은 물론이고 다른 감각도 전혀 공유되지 않을 건데, 괜찮겠지?”
“뭐야, 너무 쩨쩨한 거 아니야?”
“사람의 머릿속을 훑는 걸 너무 가볍게 보지 않으면 좋겠는데.”
“……..음.”
차가운 태도에 카르나덴은 입술을 삐죽이고는 팔짱을 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심술 난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어도 유현의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이윽고 유현이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는지 카르나덴이 얼굴에 힘을 풀었다.
“에이. 내심 아이리스의 계약자의 머릿속을 보고 싶었는데.”
“그건 아이리스도 해본 적 없는 일이야. 꿈 깨는 게 좋아.”
“돈을 준다면?”
“이 던전을 통째로 준다면 생각해 보지.”
“하하하, 거참 비싼 몸이구나.”
나름 불쾌할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카르나덴은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좋아. 지금 중요한 건 네가 뭘 보았는지니까. 링크에 대한 감각은 대충 알고 있지? 나중에 네가 실수한 걸 내 탓으로 하면 안 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카르나덴이 손을 뻗는다. 유현도 그녀를 따라 손을 뻗고는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했다.
그러자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링크를 허락하겠습니까?]시스템을 다루는 요정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플레이어의 기억을 읽는 건 불가능했다. 서로 간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었다. 유현은 거부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카르나덴은 눈을 감고 있다.
그녀가 엿보는 건 탐사 동안 이루어진, 유현이 보았던 모든 것들이다. 하지만 감정이나 생각 까지는 알 수 없다. 지금쯤이면 소리 없이 영상을 보듯 기억을 둘러보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메시지 창이 연달아 떠오르더니.
[탐사 로그를 분석합니다.] [확인 완료. 카르나덴 데이터베이스에 내용이 저장됩니다. 갱신된 내용은 다른 원정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카르나덴은 지친 듯 긴 숨을 토해내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러자 저물고 있는 저녁놀을 닮은 듯한 옅은 붉은 눈동자가 유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이리샤의 말대로 정말 흑마법이구나. 이런 게 왜 어째서 내 던전에.”
활기 찬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다. 심각한 얼굴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린 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던전을 관리하는 관록 있는 관리자의 얼굴.
한 동안 뭔가 생각하더니 카르나덴은 입을 열었다.
“쿠와로들이 스스로 이런 마법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해. 해봤자 조잡하게 엮여 만들어진 주술 정도뿐이지. 예전에도 흑마법을 쓰는 주술사가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녀석은 아니었어. 시체를 되살리는 것도 불가능했고.”
카르나덴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자 유현도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겠지. 누군가 쿠와로에게 마법을 가르쳤다는 것.”
시체를 일으키는 마법부터가 주술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거기는 마법의 단계다.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주술사의 힘으로는 시체를 되살리는 건 불가능.
유현의 말에 카르나덴은 고갸를 갸웃했다.
“하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던전을 괴멸시키고 싶다거나. 몬스터에게 힘을 안겨주는 이유는 그 정도 밖에 없는데.”
“뭐야, 그게. 겨우 쿠와로들 따위로? 재미없는 농담이네.”
그렇게 말하는 카르나덴의 얼굴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내 던전을 무시하지 마. 쿠와로가 흑마법을 배워봤자 수십 년간 도시를 지켜온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 하니까. 녀석들이 강해져봤자, 결국 몬스터일 뿐이야.”
“던전을 무시하는 걸로 들렸다면 사과하지.”
지금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던전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했다.
분명 쿠와로가 쓴 흑마법은 강력했지만, 도시를 지키고 있는 성벽을 생각하면 쿠와로들의 힘으로 던전을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성벽은 적의 침입을 완벽히 막아낸다.
게다가 안에는 게이트웨이도 있으니 다른 던전들의 끊임없는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카르나덴의 던전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던전의 지원이 오기 전에 성벽을 뚫고 와야 한다는 건데, 유현의 생각으로도 그런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
……그렇지만 이건 유현의 생각일 뿐이다.
상대가 무슨 생각인 건지 지금의 정보로 예측하는 건 어리석고 멍청한 짓.
거기서 유현의 머릿속을 맴도는 건 제단 아래에 숨겨져 있던 마법진이었다.
“제단 아래에 있는 마법진은 확인 했겠지?”
“아, 확인 했어. 내가 봐도 보통 마법진은 아니던데.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거대한 마법진을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는 이 던전에 없어.”
“…그러면 그냥 가만히 놔둘 생각인가?”
“후흣, 설마. 내가 미쳤어? 그런 걸 가만히 놔두게? 먼저 그 근방의 쿠와로들은 전부 토벌할 생각이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무식하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쿠와로들이 아닌 쿠와로에게 힘을 준 배후였으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카르나덴은 잘 알고 있을 터.
“그쪽에 있는 모든 쿠와로들을 죽이다보면 뭔가 나오는 게 있겠지.”
그렇게 말하는 카르나덴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난다.
그녀의 눈동자에 감도는 기운은 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