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80
결계가 사라지자 정글은 하루 만에 나올 수 있었다.
그 동안 왜 그렇게 길을 헤맨 건지 신기할 정도로 싱겁게 정글을 나올 수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길유미가 크게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정글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혈색이 살아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굳이 길유미가 아니더라도 다른 일행들 또한 얼굴에 힘이 풀리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일행과 달리 유현은 지겹도록 돌아다닌 정글 안에서 겨우 나왔다는 사실에 작게 안도할 뿐,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제단 아래의 공간에 만들어져 있던 마법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마법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유현도 마법진의 구조를 보면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 건지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의 마법진을 설치한 건 쿠와로가 아닐 터.
‘그럼 누가 한 거지.’
도시로 돌아오면서 유현은 계속 그것만을 생각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몇날 며칠을 쉬지 않고 행군한 유현의 일행은 드디어 도시의 성벽을 발견했다. 눈에 들어오는 성벽에 일행은 한 번 탄성을 내질렀고,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을 보며 두 번째 탄성을 흘렸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일행을 보며 유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유현이 할 일은 길드에 이 일을 알릴뿐이다.
“….이유현님?”
원정대 길드에 가자 이리샤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토끼 같은 눈을 했다. 도시에 들어오자 일행은 여관에 보냈지만 유현은 곧 바로 길드로 향했다.
그래서 현재 유현의 상태는 별로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있었던 전투에 갑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피와 땀이 엮여 만들어진 불쾌한 냄새가 길드를 어지럽히며 돌아다닌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유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유현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이리샤를 향해 걸어갔다.
“탐사 보고는 누구한테 하면 되지?”
“네? 그, 그게 저한테 하시면 됩니다. 그것보다 왜 그런 상태이십니까…?”
그녀는 유현의 상태에도 눈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따스한 시선에 유현은 얼굴에 힘을 풀고는 대답했다.
“급한 일을 보고할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태네. 소란스럽게 한 일은 사과하지.”
“….중요한 일인가 보군요.”
“아,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카르나덴에게 내 탐사보고를 전해주면 좋겠는데.”
“일단 저부터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하자 유현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저번에 찻잔을 집었던 그 방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도 유현은 여기에서 있었던 그 일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먼 눈을 한 채 유현은 방 안을 둘러봤다.
저번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는, 여전히 소박한 방이었다.
필요한 가구들만 배치되어 있지만 나름대로 온기는 있다.
그런데 그런 방 안에 이리샤와 유현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나 더 들어왔다.
안유경이었다. 유현이 일부러 데리고 온 것이다.
길드 안에는 이리샤가 있으니 안유경을 이리샤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비록 백치가 된 안유경이지만 사람의 말은 알아들었다.
정확히는 의지가 없는 인형처럼 무언가 명령하면 행동한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데리고 오는 건 편했지만 계속해서 같이 움직이는 유현의 일행으로서는 어딘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모든지 명령을 받아야 했다.
밥을 먹는 것도, 소변을 보는 것도, 심지어 잠을 자는 것도.
그녀는 사람의 탈을 쓴 로봇과도 같았다.
이리샤가 유현의 옆에 있는 안유경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고는 물었다.
“그 분은?”
“안유경. 일단 이름은 그런 거 같아.”
이 이름이 진정 그녀의 이름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녀가 말한 이야기 중 어디부터가 사실인지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한 동안 안유경을 말 없이 쳐다보던 이리샤는 표정을 흐렸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분이군요. 제가 확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래주면 고맙지.”
그녀가 말하지 않았으면 유현이 부탁을 하려고 했었다.
이리샤는 로렐라이의 사제였다. 실력은 믿어도 괜찮겠지.
지금 여기에 없는 이서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보다도 이리샤의 실력이 월등히 좋을 터.
어쩌면 안유경의 상태에 대해 뭔가 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안유경님.”
꽤나 오랜만에 사제의 힘을 사용하는 걸 텐데도 이리샤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안유경의 상태가 어떤지 대략이나마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허락을 구했다.
역시나 대답이 없는 안유경이지만, 이리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안유경의 이마에 손을 얹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안유경은 아무런 명령이 없었는데 이리샤와 똑같이 눈을 감았다. 저건 단순히 우연인 걸까, 아니면 괜찮다고 의사를 표현한 걸까.
이서연이 마법을 사용할 때 흘러나오는 따스한 광채가 이리샤에게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채가 몸에 닿자 유현은 당장이라도 잠에 들것만 같았다. 일행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피로를 호소하며 여관에 간 것처럼 유현도 체력적으로는 꽤나 많이 지쳐있었다.
그녀가 감고 있던 눈을 뜬 것은 10분 정도가 지난 후.
“….후.”
길다고 할 수는 없는 시간이지만 그녀는 지친 듯 무거운 숨을 토해냈다.
안유경의 이마에서 손을 떼고서 그녀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표정을 흐린 채 그녀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독한 흑마법에 당했군요.”
“치료는 불가능한 건가?”
“시도는 해보겠지만 확신은 불가능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흑마법에 물들었어요. 그나마 지금은 흑마법의 잔재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 여파가 상당해요.”
“그런가.”
역시나 긍정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정신계열 흑마법은 이래서 무섭다.
치료가 늦을수록 후유증은 길어지며, 완치가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지금부터 유현님이 이야기 할 건 안유경님의 상태하고도 관련이 있는 겁니까?”
주먹을 꽈득 쥔 채 화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무섭다.
차분함을 잃은 채 안유경의 상태에 슬퍼하면서도, 이렇게 만든 흑마법사에게 분노하고 있는 그녀의 눈을 유현은 피하지 않고 응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에 흐트러진 그 모습은 로렐라이에서도 몇 번 밖에 보지 못했었다.
“앞에서 내가 이미 말했을 거야. 이 이야기는 신속하게 카르나덴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빠른 시일 안에 제가 유현님이 카르나덴님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이리샤는 더 이상 던전의 사제가 아니었다.
단지 길드 안에서 원정대 관리를 맡고 있는 길드 접수원일 뿐.
유현은 내심 길드 안에서 이리샤보다 더 높은 직위의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가 직접 나설 수 있는 듯하다.
“예전에 카르나덴님에게 제안이 있었거든요. 자신의 사제로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지만 지금 그녀는 길드의 접수원을 하고 있다.
“거절한 건가?”
“네. 정확히는 미룬 거지만요. 아직까지는 로렐라이님에 대한 감정이 정리 되지 않았기에, 지금 상태로 제안을 받아들이면 카르나덴님에게 실례가 될 거 같아서…”
그런 사정이 있는 건가. 오랜 시간 로렐라이를 보좌했으니 이해는 된다.
“….그럼 부탁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갈 테니 카르나덴에게 잘 설명해줘.”
“알겠습니다.”
이리샤에게 탐사 내용을 보고하는 건 꽤나 오래 걸렸다.
유현이 이야기할 것도 많았던 탓이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그녀는 질문을 해왔다.
덕분에 유현으로서도 놓치고 있던 걸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점점 알게 되었는지 안색이 나빠졌다.
로렐라이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보고 있던 유현이 걱정될 정도였다.
보고가 끝나고 유현은 안유경을 그대로 길드에 맡겨두었다. 이리샤, 그녀가 안유경을 데리고 알아서 신전에 갈 것이다. 게다가 좀 더 안유경의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어 했고.
길드에서 나오자 주위는 어둑한 땅거미가 내려앉아, 밤이 찾아와 있었다. 길거리는 한산하다. 유현이 길드에 찾아올 때는 나름 사람들이 보였는데.
잘 느껴보면 사람들 소리가 들리지만, 대체로 썰렁하다는 느낌이 강한 길거리를 혼자서 걷는다. 본래 도시에 도착했을 때도 초저녁 부근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꽤나 힘든 일을 겪었나 보네. 도대체 뭔 일이 있던 거야? 류트도 피곤하다고 말하면서 방 안에 들어가버렸고.”
여관에 도착하자 란슬렛이 맞이해주었다.
돌아온 일행의 상태를 보고서 평범한 탐사는 전혀 아니라는 걸 안 거겠지.
“이야기 하면 길어. 혹시 지금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따듯한 밥이 먹고 싶은데.”
“훗. 그런 거야, 당연히 되지. 기다려봐. 빨리 준비해줄 테니까.”
란슬렛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주방 안에 들어갔다.
그대로 요리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주방 안에서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전에 좀 씻고 와. 장비도 벗고. 그렇게 더러운 상태로 먹을 거야?”
“…뭐, 그런가.”
아무 생각 없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유현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가려는데, 다시 란슬렛이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고는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너희가 에이리어에 나가 있는 동안 너를 찾는 손님이 하나 있었어.”
“손님?”
“응. 이름이… 그, 뭐더라? 천설화라고 하던가. 뭔가 귀신같은 여자가 널 찾더라고.”
….천설화 그녀가 찾아왔다고?
유현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