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82
여관으로 돌아오자 보이는 건 류트와 남궁민 뿐이었다.
여관 주인인 란슬렛도 자리를 비운 건지 보이지가 않는다. 류트와 남궁민 단둘이서 외롭게 모여 있자 유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들은 어디에 간 거지.
“다른 사람들은?”
“음. 여자들끼리 여관 밖으로 나갔어요.”
“여자들끼리만?”
“네. 물어보니까 상점가로 간다고. 뭔가 먹을 걸 사러 가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하하. 쇼핑이라도 하려는 게 아닐까요? 이번 탐사는 조금 고생 했으니까요.”
마지막에 나온 류트의 말에 유현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길 거리가 많이 없는 이세계에서 그녀들이 그런 걸로 즐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것보다, 카르나덴은 어떤 요정이었어요?”
유현이 자리에 앉자 남궁민이 카르나덴에게 관심을 보였다. 유현은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고는 가볍게 대답했다.
“활기 찬 소녀, 대충 그 정도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흐음. 활기 찬 소녀라. 한 번 쯤 보고 싶네요.”
“볼 기회는 많이 없을 거야. 우리가 신전에 갈 일은 많이 없을 테니까.”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이서연에게 치료를 받으면 된다. 물론 이서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신전에 갈 일은 없을 거다.
“그나저나 유현 씨. 카르나덴과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류트가 질문을 해왔다.
“잘 풀렸어. 곧 바로 조사대를 파견한다고 하던데. 안유경도 신전에서 관리하기로 했고. 그쪽도 확신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해보겠다고 하더라고.”
“그렇습니까?”
“링크를 통해 그 광경을 보여주었으니, 그녀도 무시할 수가 없었겠지.”
마법진 근처로 여러 시체가 쌓여 불길한 의식이 치러지고 있는 걸 보고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쿠와로들이 뭘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좋은 일은 절대 아니다.
“카르나덴이 상황을 이해해서 다행… 음?”
문득 류트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여관 입구쪽으로 향해 있다.
누군가 온 건가, 싶어 유현도 슬쩍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여성이 거기에 있었다.
아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기는 했다. 그 때와 달리 조금 어린 거 같지만.
가늘게 뜬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더니, 류트가 작게 웃는다.
“아무래도 손님이 온 거 같군요. 보니까 유현 씨에게 볼 일이 있는 거 같은데.”
“그런 거 같네.”
여전히 눈치가 좋은 녀석이다. 남궁민이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그런데 저 여성분은 누구–.”
“-남궁민 씨. 일단 지금은 자리를 비켜줍시다. 뭔가 이야기 할 게 있어 보이니.”
남궁민이 궁금한 게 많은 얼굴을 했지만 류트가 끌어당기며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현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둘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유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
여자는 대답이 없다. 하지만 말은 이해했는지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저벅저벅 유령처럼 소리 없이 조용히 들어와 방금 전까지 류트와 남궁민이 앉아 있던 곳에 그대로 앉았다. 유현도 그녀를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천설화, 그녀는 유현이 기억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유현이 기억하는 그녀는 조금 무섭다는 쪽에 가까웠다. 인간을 보며 살기를 숨기지 않던 그 매서운 눈빛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인형처럼 생기 없는 눈동자.
사람 같지 않은 새하얀 혈색, 공허한 눈동자, 관리되지 않은 긴 장발. 가느다란 팔과 다리.
현재로서 그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잘 만들어진 예쁜 인형처럼 보였다.
이런 여자가 사람을 죽일 것 같지는 않다. 그녀가 사람을 죽이지 못할 정도로 순해 보인다는 건 아니다. 사람을 죽일 만한 의지나 힘이 그녀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여관에 남긴 쪽지를 보고 온 겁니까?”
“……..”
그녀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있다고 하는 여관에 연락을 남기기는 했지만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쪽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군요.”
이번에도 반응이 없던가 하더니, 활기 없는 눈이 쓰윽 움직이며 자신의 품속에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유현은 그녀의 행동을 차분하게 기다려 지켜보았다.
쓱쓱, 테이블 위에 수첩을 놓고는 무언가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완만한 속도로 문장을 완성하고는 수첩을 유현에게 내밀었다.
자신이 쓴 글을 읽으라는 것처럼. 유현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적힌 내용을 읽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마치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 마냥 깨끗한 글씨체였다.
….이걸 보니 료코의 조사가 사실이기는 한 듯하다.
천설화는 현재 말을 하지 못한다. 실어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현으로서는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회귀 전에 그녀를 죽였을 때 그녀는 분명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는 실어증이 치료가 되었다는 걸까.
-대답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요?
잠시 그녀에 대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수첩에 새로운 글이 적혔다.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제 이름은 이유현이라고 합니다. 잠시 생각할 게 있느라 대답이 늦었군요.”
다시 그녀가 수첩에다가 부지런히 글을 적는다.
-이유현 씨가 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신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펜을 움직였다.
-제안이라면 정확히 무엇을?
“당신의 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를 제안이죠.”
“………..”
펜도 멈추고, 그녀의 호흡도 멈췄다고 유현은 느꼈다.
그나마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펜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거겠지.
유현은 그 자리에서 료코가 조사했던 자료를 꺼내들었다.
그녀가 조사한 자료에는 천설화가 실어증뿐만 아니라 정체불명의 병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본인도, 사제도 정확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병의 증상은 이러하다.
갑자기 체온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내려가고 동시에 간질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병은 훈련소에서 나름 유명했나보다.
….문제는 이런 병을 지구에선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거겠지.
여기로 소환되면서 생겨난 병. 이 병은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동시에 생겨났을 터.
유현은 대충이나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병의 원인을 알고 있다.
-제 병에 대해서 당신은 뭔가 알고 있습니까?
때 마침 멈춰있던 손이 움직이더니 그녀가 묻는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죽은 동태마냥 시체 눈깔을 하고 있는 건 병 때문이었다.
정신과 몸이 나날이 피폐해지고 있는 거겠지.
그녀는 살아가는 게 괴로울 것이다. 지금처럼 엉망진창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그녀의 체질이야 말로 설풍의 대정령이 찾는 것이었다.
설풍의 대정령, 파레디아는 말했었다.
-내 계약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여자뿐이다. 그리고 체질적으로도 특별한 사람이어야 하지. 음기가 무척이나 강한 사람.
파레디아가 말한 음기가 강한 사람. 그게 바로 천설화였다.
다만 너무나도 강해서 그녀는 병을 가지고 있는 거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녀의 몸이 차갑게 변한다는 것에서 유현은 병의 이유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료코의 자료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정말이지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료코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요. 제 병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다는 거죠?
그녀의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지금까지 당신 같은 말을 하며 저를 속이려고 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공허했던 눈이 가늘게 변하며, 휘몰아치는 눈발처럼 날카롭고 차갑게 변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다.
“저는 당신의 의심을 지울 수 있을만한 증거 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병의 원인이 뭔지는 알려 줄 수 있죠.”
-그게 무엇인가요?
“당신의 마력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마력의 재능이 당신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중이죠.
유현은 생각한다.
만약 그런 그녀가 제대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하고.
이미 유현은 강해진 그녀의 모습을 알고 있지 않은가.
살짝 욕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 힘을 유현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그녀가 자신의 힘을 오로지 유현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유현으로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녀가 인간에게 증오를 느끼며 이종족에게 돌아섰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
그러니까 지금부터 바꾸면 된다.
-일단 그 제안부터 들어보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제안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천설화 씨를 정령과 계약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계약을 하게 될 경우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병은 어느 정도 완화가 되겠죠.”
완치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파레디아가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지금 유현이 할 일은 파레디아와 천설화를 연결시켜주는 것이었다.
-정령을 말입니까? 정령이 뭔지 책으로는 읽어봤지만 당신한테는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합니다.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파티의 멤버가 되어주셔야 겠습니다.”
유현의 말에 천설화는 눈동자를 파르르 떨더니,
펜을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뭘, 적는 걸까.
이번에도 조용히 기다리던 유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건 또 뭘까.
갑자기 그녀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는 기절해 버렸다.
간질병 환자 처럼 몸의 떨림을 억누르지 못한 채, 눈이 돌아가 있다.
하필 이럴 때에 병이 나타난 건가.
유현은 그녀가 뭘 적으려고 한 건지 대충 읽어보고는,
“…이것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병인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몸을 만져봤다.
역시나 그녀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