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15
그녀는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걸까. 적어도 유현이 이리샤에게 말한 기억은 없다. 어쩌면 말하는 걸 꺼리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니까.
어디서 들었는지 묻지는 않는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 지금 카르나덴 상태로는 미궁 탐사를 하는 건 무리니까. 소식을 들어보니 이제 곧 동원령까지 떨어진다고 하던데.”
본래 카르나덴에 만들어져 있는 클랜들 같은 경우에만 요정의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에 작은 단위의 자유 원정대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원령을 내리면 말이 달라진다. 동원령을 내리면 군대처럼 카르나덴 안의 모든 자유 원정대가 요정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일시적으로 모든 자유 원정대가 카르나덴 원정군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 따른 보수가 제법 좋다는 걸 생각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그다지 싫은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여러가지로 물품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유현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궁 탐사를 나갈 생각이었기에 크나큰 방해물이나 다름없다.
동원령이 발동이 되면 카르나덴에 있는 이상 요정의 말을 따라야 한다.
“···동원령. 네. 유현님이 알고 있는 데로 빠른 시일 안에 동원령이 내려질 예정입니다.”
“그런가.”
이리샤가 이렇게 말하니 확실한 정보인 거겠지. 그걸로 유현은 결심을 굳혔다. 더욱이 이번 의뢰를 수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쿠와로들과의 싸움은 몇 달로 안 끝난다.
녀석들이 조직력은 현재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만 해도 사실상 몬스터가 아닌 군대를 상대하는 느낌이 강했다.
판단이 선 듯한 유현의 표정에 이리샤는 괴로운 얼굴을 하고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만큼 많은 지원이 있을 겁니다. 유현님도 만족할 정도로요.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딱히 그런 지원을 바라는 게 아니야. 이리샤도 잘 알잖아. 나한테 그런 건 의미가 없다는 걸.”
“·········”
이리샤의 시선이 힘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꺼낸 건 그 만큼 절박하다는 거겠지.
그녀가 슬퍼하는 얼굴을 보는 건 그다지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바라는 대답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단순했다. 유현이 카르나덴을 떠나지 않는 것.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카르나덴은 그러기 위한 중간 단계일 뿐.
애처로울 정도로 옷자락을 꽈악 쥔 채 이리샤는 말했다.
“사실 유현님이 언젠가 카르나덴을 떠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
“제가 한걸음 힘들게 다가가도 뒤로 물러나시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만약 저를 받아들인다면 언젠가 상처를 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유현님의 배려는 분명 상냥한 것이지만 어쩐지 저는 별로 좋지가 않군요.”
이리샤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울것처럼 잠겨 있었다. 역시 그녀는 알고 있었나. 유현은 그녀의 눈을 보는 게 괴롭다고 느꼈다.
어쩌면 모르길 바랬던 게 이기적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유현은 카르나덴을 떠날 거라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조금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동안 몇 번이나 길드에 갔음에도. 비겁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단지 말하기 어려웠을 뿐.
*
심란한 기분이 들어 유현은 잠시 주위를 산보하기로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두운 하늘 위로 창백하게 빛나는 달이 보인다. 달을 보니 괜히 더 감정이 깊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후회는 없다. 그녀에게 목걸이를 받았을 때도 유현은 이미 결정하고 있던 일이었다. 말하는 게 늦었을 뿐.
단지 그녀를 울린 게 유현은 마음에 걸렸다.
‘신기한 일이네.’
역시나 남녀 관계는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미궁에서 모험가들과 투닥거리는 게 더 마음이 편한 일이었다. 적어도 그건 모든 게 뚜렷하니까.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대로 조금만 더 돌아다니자고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남자네. 유현은.”
언제부터 있던 걸까. 우연은 아닌 거 같고. 설마 기다리고 있던 걸까.
고개를 돌리니 페르시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쳐다보는 게 보였다.
“보고 있었어?”
“보고 있었지.”
“그런가.”
무미건조하게 반응하고서 유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페르시가 한 동안 진득하게 따라다니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
“···몰래 보고 있었는데 화 안 내는 거야?”
화를 내기라도 원했던 걸까. 유현은 피식 웃었다.
“너 말고 다른 녀석들도 몰래 보고 있었으니까.”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다른 일행이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갑자기 이리샤가 파티에 추가되니 일행도 이상하게 느꼈을 터. 그 때문에서라도 관심이 갔을 거다.
그 후로 이리샤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죄송합니다, 이 한 마디만 하고서 잠에 들었다. 정말로 자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사실은 깨어있지 않을까.
페르시는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물었다.
“차라리 파티에 합류하라는 게 어때? 사제야 두 명 정도 있어도 상관없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녀는 합류하지 않을 거야.”
“···어째서? 그렇게 너를 좋아하는데도?”
확신 어린 유현의 말에 페르시는 표정을 흐렸다. 여러 조사를 위해 이리샤의 기억을 훑었을 때 페르시는 이리샤가 가진 유현에 대한 감정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녀가 카르나덴이 부탁하지만 사제를 거부하는 것도 유현 때문이었다. 신전의 사제가 되면 남자든 여자든 연애가 불가능하다. 오로지 요정을 위해 일해야 했다. 그러니까 거절했다.
몇 번이나 카르나덴의 부탁을 거절하고, 주위에서 시기 어린 시선을 받음에도 묵묵히 접수원의 일을 하던 건 순순히 유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페르시로서는 유현의 태도에 오히려 자신의 가슴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이래서 문제다. 남의 기억을 훑어보는 건. 마법진을 조사하던 게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페르시는 심장이 조여 오는 걸 느끼며 유현의 옆에 붙어 다녔다. 슬라임처럼 페르시가 끈질길 게 달라붙자 유현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대답을 안 하면 떨어지지 않을 거 같다.
“이리샤가 로렐라이의 사제였다는 건 알고 있어?”
“···응.”
유현의 말에 페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렐라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다. 훑어본 이리샤의 기억 중에는 로렐라이 때의 일도 있었으니까. 거기서 이리샤가 어떤 눈으로 유현을 봤는지도 페르시는 알고 있다.
이리샤의 눈에 비쳐진 유현은 정의의 용사처럼 찬란했다. 요정을 죽인 괴물을 쓰러뜨리고, 마지막에는 고블린들에게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는 그 모습은 한 편의 영웅담과도 같다. 구원에 감사하던 사제의 감정은 어느새 애틋한 사랑이 되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은, 정작 유현은 모르지만, 그녀에게 구원이 되었다.
유현은 말을 계속했다.
“카르나덴에는 로렐라이에서 온 난민들이 많이 있어. 그 중에는 어린 애들도 있지. 이리샤가 카르나덴을 떠날 수 없는 건 고아원의 아이들 때문이야. 바보 같게도 그녀는 그런 쪽으로 융통성이 없으니까. 한 번 책임을 진 일은 포기하지 않겠지.”
“···고아원.”
페르시가 뭔가 깨달은 것처럼 입을 살짝 벌리며 상념에 잠겼다.
유현은 떠올린다.
예전에 그녀가 원정대 길드에서 말했던 적이 있다. 고아원을 만들었다고. 그녀가 카르나덴을 열심히 돕는 건 그런 고아원 때문이기도 했다. 고아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요정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유현은 이리샤의 초대로 그녀가 만든 고아원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거기서 봤던 광경을 떠올리면 이리샤가 없는 고아원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녀가 갑자기 없어지면 고아원은 유지될 수 없을 거다.
그녀도 그걸 잘 알고 있겠지. 그런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를 더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유현은 생각한다.
거기서 상념에 잠겨 있던 페르시는 허탈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아가씨네···. 이길 수 없을 거 같아.’
누군가를 비웃기 위한 웃음이 아닌 어쩐지 슬퍼 보이는 웃음이었다. 이리샤가 가진 유현을 향한 감정은 정말로 대단했으니까. 페르시는 이리샤를 불쌍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고결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속 또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걸 알기에 유현도 여러 가지로 복잡한 거겠지. 유현마저도 흔들릴 만큼 빛나는 여인이었다.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오는 성녀처럼.
설명은 충분히 했다고 느낀 유현은 페르시에게 물었다.
“그래서 의문은 끝난 건가?”
“···응.”
페르시가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페르시가 수줍게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입가를 가린 탓에 유현은 그녀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다행이네.”
“뭐가?”
고개를 들어 유현을 쳐다보는 페르시의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일까. 자신이 이상한 말을 했나 싶어 유현이 의아한 표정을 할 때였다.
페르시는 꽃이 만개한 것처럼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선택한 게 이리샤 같은 여자가 빠져들 정도로 좋은 남자라는 거니까. 그건 즉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겠지?”
조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라고 유현은 생각했다.
“···. 선택이라는 건 계약을 말하는 건가. 애초에 그건 선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선택지가 없던 상황이 아니었나?”
그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그 상태에서는 유현과 계약을 하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선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상황. 유현의 말에 페르시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지. 후훗.”
여전히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린 채 페르시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
페르시는 누가 봐도 기분이 좋다는 걸 알 수 있는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유현에게서 멀어졌다.
지금 자신의 얼굴은 바보 같이 웃고 있을 것이다. 이런 얼굴을 그에게 보여주는 건 싫은 일이다. 그러니 이대로 잠에 들 생각이었다. 어쩐지 오늘은 기분 좋은 잠을 잘 거 같다.
사실 그에게 비밀로 하는 게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던 게 아닌 선택이었다.
본래 죽음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래 시기보다 좀 더 앞당겼을 뿐이지.
문득 기분 좋게 걷던 페르시는 달빛이 비쳐와 고개를 들었다.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구름에 가려져 있는 달이 보인다.
그걸 보니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얼굴.
‘페르네.’
…여동생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그 때도 페르시는 탑 안에서 여동생과 같이 저런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뿌옇게 구름이 낀 푸른 달을.
그 때는 저주스럽다고 느껴진 것이 어쩐지 이제는 별로 싫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로베리아 편 진행하네요.
드래곤 크라운 소서리스 한 번 봤는데 엄청 이쁘네요.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