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36
밤이 되었지만 언제나 늘 그랬던 것처럼 야영을 꾸리며 하루를 정리하는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이서연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녀는 쉬지 않고 치료 마법을 준비했다.
“으윽···. 아파라···.”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 화살이 깊숙이 박힌 탓에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알았으니까···. 살살···. 으으윽!”
이서연이 긴장한 얼굴로 남궁민의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보인다. 화살에 맞은 남궁민보다도 그녀가 긴장하고 있었다.
“후우···. 치료를 시작할 테니까 아픈 곳 있으면 말해.”
신중한 손길로 조심히 화살을 빼내던 이서연은 크게 숨을 내쉬고는 울컥울컥 피가 쏟아지는 남궁민의 어깨에 손을 내밀었다. 화살에 관통당한 탓에 살이 짓눌러진 구멍이 보인다.
하지만 이서연은 혐오하거나 무서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황금빛이 어깨에 난 구멍에 쏟아진다. 느리지만 남궁민의 안색이 나아지는 게 보인다.
방금 전까지 전투가 있었다.
남궁민이 화살에 맞은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모험가와의 전투였다. 싸움은 격렬했고, 운이 좋지 않았던 건지 중간에 다른 모험가 파티가 싸움에 끼어들었다.
연속된 싸움에 결국 틈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게 지금 같은 광경이었다. 부상을 당한 건 남궁민 뿐만이 아니었다. 드물게도 류트 또한 부상을 입었다.
“···아파 보이네.”
작게 중얼거리며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길유미였다.
아무래도 남궁민이 부상을 당한 원인이 자신한테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모험가들에게 틈을 보인 건 남궁민이 아닌 길유미였다. 그런 그녀를 지키다가 남궁민이 대신 화살에 맞은 것이다.
엄지손톱을 잘근 깨물며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는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언제나 쾌활했던 소녀가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하니 유현도 걱정이 되어 말했다.
“걱정하지마. 서연이가 잘 치료해줄 테니까.”
“그렇겠죠? 하아···.”
하핫, 그녀가 웃어보지만 보는 사람의 눈으로는 어색하기만 하다.
유현은 걱정스러운 눈을 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상 말해봤자 도움이 되는 건 없겠지.
자리에서 일어나니 페르시가 팔짱을 끼며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류트와 랑샤셴 또한 어딘가 진지한 얼굴로 서있었다.
“···유현. 너무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한걸음 다가와 랑샤셴이 말한다. 그녀 또한 근심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다. 그녀가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길게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유현도 내심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너무 모험가들이랑 많이 만나고 있어서 그래?”
“네. 오늘만 4번이 넘어가요. 방금 있었던 전투를 합치면 총 5번이죠. 이 정도가 되면 이건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로렐라이 때도 이렇지 않았으니까요.”
하루 동안 그렇게 많은 모험가를 만났음에도 누군가 죽지 않은 건 모두 성장했다는 증거이겠지. 하지만 그 사실에 지금은 기뻐할 수가 없다. 기분 나쁜 감각이 가슴을 조이고 있다.
“마치 녀석들은 처음부터 우리를 쫓고 있던 것만 같다···. 이거지?”
그 말에 랑샤셴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똑같이 유현도 아까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유현 씨도 이미 눈치채고 있던 것 같지만 그 이유가 뭘까요? 저희가 5계층에 올라온 지 이제 5일 밖에 안 되었습니다. 오늘 밤이 지나면 6일이 되겠군요. 뭐가 되었든 저희에 대한 소문이 돌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간입니다.”
“그건 그렇지.”
류트의 말은 틀리지 않다. 만약 소문이 돈다고 해도 그 때 쯤이면 이미 아스바르다에 무사히 입성 했을 때일 것이다. 현재 거의 다 왔지만 그럴수록 전투 빈도는 늘어났다.
생각이 길어지고 있는데 페르시가 문득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방금에 싸웠던 그 녀석들이 우리 보고 미궁의 악마라고 불렀어. 그게 뭔지 알고 있어?”
“···뭐?”
유현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랑샤셴과 류트 또한 놀란 얼굴을 했다. 그 명칭은 여기서 나올 법한 것이 아니었다. 로렐라이에서나 듣던 것을 어째서 여기에.
“뭐야? 알고 있는 이름이야?”
페르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다. 그녀가 모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페르시가 합류한 건 로렐라이의 일이 끝난 다음이었으니까.
그 때 송가연이 바쁘게 뛰어왔다. 체력이 약한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오빠. 이거 한 번 봐주시겠어요?”
“이건?”
그녀가 내민 건 수배지로 생각되는 느낌의 종이였다. 생각대로 종이를 읽어보니 ‘미궁의 악마’를 토벌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에 유현은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게 또 무슨 소리인 걸까. 어째서 이런 수배지가 돌아다니는 거지.
“이건 어디서 가져온 거야?”
“방금 저희가 죽인 모험가들의 시체에서 나왔어요. 뒤져보니까 이런 종이가 몇 장 나오더군요. 아마 녀석들은 이 수배지 때문에 저희를 쫓던 게 아닐까요.”
죽인 모험가들의 시체에서 항상 마석과 장신구류만 빼내갔기에 전혀 몰랐다. 녀석들은 정말로 처음부터 우리를 쫓아오고 있던 건가. 유현은 작게 혀를 찼다.
모험가와 싸우고서 흔적은 이리저리 남겨져 있다. 하나를 발견하면 쫓아오는 건 쉬웠겠지. 게다가 몬스터들과의 전투도 여러 번 있었으니.
“하지만 이건 이상해. 수배지에 적힌 날짜를 보니 우리가 5계층에 들어서기 전이야. 아니, 이 때면 아직 우리가 카르나덴에 있던 시간이네. 그런데 이런 수배지가 만들어졌다고?”
여기는 로렐라이와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단순히 계층간의 문제가 아니다. 구역 자체로도 완전히 떨어져 있는 곳이다. 고블린들이 미쳤다고 여기까지 수배지를 보냈을까.
게다가 수배지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면 더욱 가관이었다.
-최근 모험가만을 습격하는 집단이 있는 걸로 확인.
-지금까지 습격당한 파티는 10개의 팀 넘는 걸로 확인.
-수인족 생존자의 말에 따르면 인간일 확률이 큼.
“·········”
아무래도 모험가들은 잔뜩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현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류트에게 물었다.
“귀찮게 되었는데. 류트 남은 거리는 어느 정도 될 거 같아?”
“···아마 하루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침반을 따라 쭉 왔으니 이제 곧 도착하겠죠.”
5계층에 올라오고 나서 아스바르다의 좌표가 찍혀 있는 미궁의 나침반이 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유현은 미궁의 나침반을 따라 쭉 움직였다. 벌써 미궁의 나침반을 따라 움직인 지 5일째 되었으니 류트의 말대로 거의 다 오긴 했을 거다.
“부디 내일은 아무런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류트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싸움이 끝난 지 오래라는 걸 말해오고 있었다.
바닥에 수분을 잃고 메말라 있는 핏물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오고 있다.
주변에는 수많은 모험가들의 시체가 널려있다. 처참하다. 썩은 동태마냥 생기 없는 눈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이쪽을 저주하고 있는 것처럼.
주위에 있는 시체들이 당장이라도 살아서 일어나 발목을 붙잡으며 왜 그랬냐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아직 피냄새가 공기 중에 떠도는 가운데 그는 가볍게 웃었다.
만약 정말로 그들이 죽어가면서 저주했다면 그런 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론은 시체 밭을 가로지르며 주위를 확인하고는 작게 감탄했다.
“············”
놀랍다. 내심 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인간들은 강했나 보다.
주위에 남아 있는 흔적들만으로도 아론은 싸움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었다. 그 인간들의 파티에는 뛰어난 검사와 마법사라도 있는 듯하다.
강철마저 갈라내는 검사와 거대한 규모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화염계 마법사.
우람한 체격을 가진 오크의 강철 갑옷이 종이처럼 찢겨져 있다. 그 뒤로는 궁수와 마법사들이 끔찍한 형태로 화상을 입은 채 피부가 녹아내려 있었다.
마법사와 궁수의 시체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걸 보면 방어 마법 안쪽에서 버티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린 듯하다. 그 만큼 상대의 마법이 강력했다는 거겠지.
재미있는 일이다. 얼굴이 검게 타있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 마법사의 차림새를 보니 제법 유명했던 네임드 마법사였다. 그런데도 마법에 밀렸다는 건가.
‘강하군.’
인간들은 강력한 힘으로 끊임없이 몰려드는 모험가들을 뚫고서 끝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 덕분인지 아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소문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어렴풋이 떠돌던 소문이 이제는 확실하게 되었다고 길드 녀석들은 사방으로 떠들어 댔다.
게다가 지금 여기에 죽어 있는 놈들은 나름대로 광산의 도시 이스테리아 안에서 이름을 떨치던 클랜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그들은 패배했다.
근접 클래스의 절반 정도가 익스퍼트였으며 마법사들 또한 고등급의 마법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모두들 무참하게 살육 당했다.
이걸로 그 소문을 믿지 않는 녀석들은 없겠지.
데피니안 클랜이 전멸 당했는데 믿지 않는 놈이 있는 게 이상했다.
고마운 녀석들이다.
아론은 진심으로 그 인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녀석들 덕분에 이쪽도 일을 벌이기 쉬워졌다. 모든 일은 그 인간들이 한 것으로 변하겠지. 굳이 이쪽이 나서지 않아도 모험가들은 그렇게 오해할 것이며 믿을 것이다.
미궁의 악마. 고블린 놈들이 변명 삼아 떠들어대던 걸 이용했을 뿐인데 이렇게 잘 풀릴 줄이야. 아론은 씨익 웃었다. 이걸로 아론을 의심하는 모험가들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기분 좋게 웃는데 때 마침 뒤에서 부하 하나가 달려오더니 보고를 올렸다.
“사냥 번호 10번. 가우란스 부족의 아다트 사냥이 끝났습니다.”
“살아남은 오크는 없겠지?”
“네. 생존자는 없습니다. 이걸로 3분의 2 정도가 끝났군요.”
“너무 좋아하지는 말게나. 아직 갈 길은 멀다네.”
“알고 있습니다. 망할 오크 놈들을 전부 죽여버려야죠.”
콰득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부하는 살기를 흘린다.
그래, 그 분노를 계속 간직해야 한다.
비록 전쟁에서는 굴욕적인 패배를 했어도-.
아론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곧 바로 다음 목표 사냥 준비를 시작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