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39
밤은 상당히 싸늘했다. 유현은 아스바르다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서 일행이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유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요정을 암살하는 일로 이어질 줄이야.
내심 쉽게 일이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정을 죽인다는 건 유현으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여러 잡생각들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유현은 문득 등 뒤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처음에는 우연일까 싶었는데 계속해서 뒤를 따라오고 있다. 유현은 한숨을 쉬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돌아본 거기에는 젊은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기다랗게 기른 갈색의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있었는데 이목구비를 보고서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서 더 인상적인 게 있다면 왼쪽 눈에 기다란 상흔이 있다는 거겠지. 자칫 실명으로 이어졌을뻔한 아슬아슬한 상처였다. 조금만 더 깊었어도 눈을 잃었을 그런 상처.
딱히 적의는 없어보였다.
남자는 그냥 말 그대로 따라오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래서 더 헷갈렸다.
다른 곳도 아닌 이런 곳에서 누군가 미행을 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길이 겹쳐서 그런 모양새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의 일.
유현은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저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에덴마이어라고 합니다.”
자기의 이름을 말하고서 남자는 예의 바른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소개와 인사에 유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을 물어본 건 아니다. 인사를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단지 따라오는 이유를 물었을 뿐이다.
하지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남자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보며 유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에덴마이어 씨. 그래서 저를 계속 따라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번 일을 도와주신다고 하는 분이 있었기에 한 번 확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일?”
“마도병 조사에 관한 일입니다.”
“·········”
···과연. 이 남자는 마도병 조사대였는가.
그리고 보면 아이리스가 말해주기는 했다. 가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일에 10명도 안 되는 소수만을 투입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본래 그녀는 유현을 보낼 생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려고 했었지.
유현이 여기에 온 건 페르시가 있어서였다.
페르시가 로베리아의 죽음에 대해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만큼 무언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한 희망 때문에 아이리스는 유현을 여기에 보냈다. 아마 도움은 많이 될 것이다.
페르시 또한 여동생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으니까. 비록 그것이 죽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페르시 또한 여동생을 간절하게 찾고 싶어 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아이리스님이 자신의 계약자를 보냈다는 것과 그 계약자가 플레이어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에덴마이어의 표정은 무미건조해 보였다. 정말로 놀라기는 한 건지 표정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속이 빈 것만 같은 눈동자.
“···하지만 역시 직접 보고나니 고민이 되는 군요.”
유현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지금 같은 대화가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뭐가 말입니까?”
“당신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말입니다. 방금 전 당신의 동료를 시험해 봤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과연 이번 일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
지금 뭔 짓을 했다는 걸까. 유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마검의 손잡이에 손을 댔다. 검을 뽑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에덴마이어는 검을 뽑은 상태였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어딘가 이상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보구인가?’
유현은 이러한 느낌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지겹도록 이런 것들과 마주치지 않았던가. 오랜 만에 마주하는 감각에 유현은 유쾌히 입술을 비틀었다.
찌릿하고 심장을 찌르고 들어오는 경고가 무섭다기보다는 반갑다. 이러한 느낌은 싫지 않다. 오히려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현은 등줄기가 떨리는 걸 느끼며 상대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실력은 있는 놈인 듯하다. 얼핏 보이는 기세도 나쁘지 않다. 단순히 보구 하나만 믿고 시비를 걸어본 건 아닌 것 같았다.
기묘한 분위기의 대치 속에서 먼저 움직인 건 에덴마이어였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싸우겠다는 것처럼 움직임이 매섭다. 강하게 당겨진 스프링처럼 녀석은 땅을 박차나왔다.
공기가 떨린다.
검과 검이 부딪치자 주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듯 주위가 떨렸다. 유현은 에덴마이어의 검을 튕겨내면서 작게 감탄을 흘렸다. 우직하면서도 정직한 검이지만 그 기세는 대단했다.
“———”
그 순간 녀석의 눈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에덴마이어는 이걸로 안 된다고 느낀 건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발놀림이 현란하게 변하나 싶더니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쁘게 시선을 움직이자 어느새 녀석은 바로 옆에 와있었다.
유현마저도 순간이지만 움직임을 놓쳤을 정도로 에덴마이어는 빨랐다.
녀석의 검이 움직인다.
쏴아아아악-!
바람을 찢어내는 기괴한 소리를 흘리며 에덴마이어의 검은 유현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정말로 죽일 생각인가.’
망설임도 용설임도 없는 무자비한 녀석의 검에 유현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녀석은 정말로 상대를 죽이려는 각오로 덤벼들고 있었다. 그러니 유현 또한 봐줄 생각 없이 움직였다. 보통의 상대라면 큰 부상을 입었을 녀석의 공격을 유현은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막아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유현은 반격을 시도했다.
녀석의 검을 튕겨내며 일각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검을 높게 올려든 채 그대로 내려친다. 선풍을 동반한 채 내려떨어지던 유현의 마검은 에덴마이어의 검 중앙을 정확히 찍었다. 철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충격파 마냥 터져나왔다.
파드드득-!
그것은 상대를 검째로 상대를 짓뭉개 버리겠다는 난폭한 일격.
“크윽!
에덴마이어의 입 밖으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막아냈지만 방금 일격으로 온몸을 관통하는 무거운 충격에 녀석이 눈을 부릅뜬 게 보인다. 녀석의 발은 바닥에 반쯤 파묻혀 있다. 이대로 안 된다고 느낀 건지 에덴마이어는 재빨리 뒤로 후퇴했다.
그것을 유현이 놓칠 리가 없다.
쾅! 쾅! 콰아아앙!
추격에 나선 유현은 에덴마이어를 향해 몇 번이나 검을 때려 박았다. 유현 또한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휘두른 검을 에덴마이어는 놀랍게도 몇 번이나 막아내고 있었다.
검기가 부딪쳐 만들어내는 엄청난 양의 섬광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조금의 방심은 죽음. 자신을 향해서 휘어져 들어오는 검기를 녀석은 차례대로 베어내고 있었다.
‘제법이군.’
힘은 몰라도 속도만큼은 전혀 밀리지 않는다. 튕겨나가려는 몸을 겨우 억누르며 에덴마이어는 발끝에 힘을 담아 버텨냈다. 몸통을 찢어발기려는 사나운 검기를 수십차례 막아낸다. 유현은 입술을 비틀며 더욱 더 날카로운 검기를 만들어냈다.
콰드드드득! 콰아아앙!
1분도 안되어 수십 번의 공격이 이루어졌다. 대기를 찢어내는 강철의 소리가 시끄럽게 주위를 울렸고, 검기와 검기가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검기의 파편이 주위를 파괴했다.
흩날리는 검기의 파편은 검이 부딪치는 충격에 저 멀리 튕겨나가 바닥을 휩쓸었다. 폭탄이 투하된 것마냥 구덩이가 파여졌고 바닥에 기다란 검흔이 새겨졌다.
“크으으윽!”
마검을 막아내도 검 째로 밀려나며 에덴마이어는 뒤로 튕겨나갔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 튕겨나가는 그것을 유현은 계속해서 쫓아 검을 휘둘렀다. 용서없는 움직임.
“———!”
엉망진창으로 밀리면서도 에덴마이어는 입술을 바득 깨물면서도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검의 경로를 확인하며 막아낸다. 하지만 방어는 몇 번이나 깨졌다.
몸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고, 검은 처음 이후로 단 한 번도 공격을 위해 휘둘러지지 못했다. 단순히 힘을 담아 내려치는 것만 같아도 유현의 검은 상대의 틈만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럼에도 에덴마이어가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는 건 그 만큼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증거. 그런 에덴마이어를 바라보는 유현은 눈은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어디까지 버티나 했는데 생각 했던 것 이상으로 녀석은 버티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그런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유현은 자신의 검을 누군가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두 손으로 꼬옥 껴안은 채 공격을 방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지금 이 감각은 무엇이지. 검뿐만 아니라 누군가 등 뒤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에 유현의 움직임이 조금이지만 느려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에덴마이어는 후퇴를 시도했다.
유현은 녀석이 거리를 벌리며 자세를 정비하는 걸 뻔히 지켜보았다.
이 감각-. 대충 어떤 건지 알 것만 같다.
유현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에덴마이어가 들고 있는 검이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다.
“정령이 담겨 있는 건가.”
“···정령이 검안에 봉인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정령의 가호가 담겨 있는 검이지요.”
간단히 말해 녀석의 곁에는 파레디아처럼 정령이 보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정작 정령은 없어 보이지만 검에 담긴 정령의 의지 덕에 바람이 녀석을 보호하고 있다. 녀석의 주위를 떠도는 바람이 유현의 공격을 몇 차례나 방해했다.
하지만 방해 한다고 해도 다음에는 먹히지 않는다. 좀 더 강한 힘과 검기로 공격한다면 바람으로 이루어진 정령의 가호쯤이야 어렵지 않게 찢어낼 수 있다.
녀석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기대된다는 생각에 검을 중단까지 당겨 올릴 때였다.
촤르륵.
에덴마이어는 갑자기 검을 집어넣었다. 유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녀석이 하는 말은 더욱 가관이다.
“의심해서 죄송했습니다. 이유현님.”
깍듯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다.
어쩐지 유현은 기분이 나빠졌다.
속이 다 풀리지 못하고 어중간한 곳에서 멈춰버린 이 감각.
이를 바득 갈며 녀석의 면상에 주먹이라도 꽂아 넣을까 생각하던 찰나였다.
“···. 유현 씨. 에덴마이어 씨랑 뭐하고 있는 겁니까?”
격렬한 전투 소리가 근처에 와있던 여관까지 닿았던 건지 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의아한 목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얼굴은 상당히 혼란스러워보였다.
아무래도 류트는 이 남자를 알고 있나보다.
그런데 여기에 온 건 류트뿐만이 아닌 거 같다.
“···형. 왜 그 녀석이랑 싸우고 있어요?”
“어라···. 이건 도대체 뭔 일이래.”
“오빠···?”
류트의 등 뒤로 일행들이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들 주위에 남아 있는 싸움의 흔적을 보고서 멈칫하고는 정신을 차리며 빠르게 달려왔다.
툭-.
그런데 거기서 에덴마이어가 갑자기 쓰러졌다.
움직임이 없다. 숨이라도 쉬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저거 정말로 죽은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서연이 상태를 확인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살아있는 듯했다. 녀석이 죽으면 곤란하기는 했을 거다.
“허.”
유현은 작게 혀를 찾고는 검을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