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53
-끄아아아악!
-한 번에 공격해!
이 정도 되면 단순히 숨어있기만 하는 에리스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쫒고 있다는 것을. 에반은 그걸 잘도 눈치채며 먼저 공격을 나섰다. 추적을 해오는 이들을 되려 기습을 한 것이다.
그 판단은 실로 옳았다. 자신들이 공격을 당할 거라고 생각은 못했던건지 시작부터 수인족들은 많은 동료를 잃고 싸움을 시작했으니까.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온다.
직접 보지 않아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다. 분명 수인족의 비명이었다.
‘또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가···.’
서걱,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는가 싶으면 수인족의 비명들이 동반되었다. 검기에 의해 강철이 찢겨지는 소리는 커다란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대기를 타고 느껴지는 검기가 흘리는 막강한 마력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아무리 단단한 무엇이라도 베어낼 수 있다는 검기라고는 하지만 강철을 종이장 마냥 찢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다.
검을 다루는 에리스이기에 에반의 대단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유자재로 검기를 다루는 그의 능력은 마법에 가까웠다. 천재라 불리던 자신도 저런 건 상상도 못해봤다.
‘대단해···.’
에리스는 어둠속에서도 고고히 빛나고 있는 푸른빛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동시에 잔혹했다.
푸른빛이 어둠을 베는가 싶은 순간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진다.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빛. 그 매혹적인 빛에 에리스는 영혼이 끌리는 걸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심장의 박동.
가슴이 아프다. 에리스는 가슴을 쥐어 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 때문인 걸까. 하지만 그런 신체적인 아픔하고는 종류가 달랐다. 좀 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아련한 고통. 에리스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몸이 뜨겁다. 감기라도 걸린 건지 미열이 얼굴을 뜨겁게 달구는 걸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서 싸움이 끝났다는 걸 직감했다.
‘끝난건가···?’
싸움이 끝났다는 걸 안 것은 푸른빛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둠속에서 현란히 춤추던 빛이 사라지자 비명소리도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남아있는 기척은 하나뿐.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에반이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온 그는 손짓했다.
에리스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어쩐지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멈추지 않는다.
***
“아마 내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데페르라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유현은 대중 그렇게 판단했다. 아스바르다에게 받은 지도가 있다. 그 덕분에 대충이나마 데페르라 에이리어에 대한 지형은 숙지하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빙빙 돌아오게 되었다. 그 수인족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유현이라도 에리스를 지킬 수가 없다. 정말 안 되면 버리는 수밖에 없겠지만 일단 시작한 거 끝은 봐야했다.
‘끈질기군.’
다행히 녀석들도 이렇게 돌아서 올 줄은 몰랐는지 추적은 상당히 산만했다. 숫자를 쪼개서 유현을 따라 온다는 것부터가 미친 행위였다. 덕분에 이렇게 각개격파가 가능했다.
녀석들은 나름대로 조심해서 쫓아온다고 생각한 거 같지만….
“일단 식사부터 하죠. 아직 안심해서는 안 되는 일이 니까요.”
“아···. 예!”
유현이 육포를 내밀자 에리스는 조심스레 두 손으로 받고는 조금씩 물어뜯기 시작했다.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저걸로 배가 채워질 수 있을까 싶은 느릿한 식사였지만.
‘역시 엘프라는 건가.’
엘프가 원래 저렇다는 걸 유현은 알고 있기에 가볍게 무시했다. 기본적으로 엘프는 먹는 양이 적었다. 그렇기에 풀만 뜯고 살수도 있는 거겠지. 그들의 종족적 특징이었다.
유현은 언제라도 수인족들이 따라올 수 있다는 생각에 주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싸움들은 매번 똑같은 패턴이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못한 에리스가 수풀에 몸을 숨기면 그 사이 유현이 수인족들을 요격한다.
“저기···. 한 가지 물어봐도 될 까요?”
유현이 먹는 양의 절반도 안 되는 양으로 식사를 끝낸 에리스는 입을 열었다.
모닥불에 훤히 비쳐진 그녀의 새하얀 얼굴은 궁금한 게 많다는 표정이 지어져있었다. 생각을 읽기 쉬운 아가씨다. 그 만큼 솔직한 엘프이기도 했고.
그녀의 맑은 푸른 눈동자에 모닥불이 비쳐지는 걸 보면서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시 씨랑은 연인 관계인가요?”
“·········?”
순간이지만 유현은 입에 물고 있던 육포가 밖으로 나올 뻔했다. 갑자기 이 엘프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유현으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그게···. 그냥 그렇게 느껴져서요. 둘이 사이가 좋으시길래···.”
자신도 이상한 질문을 한 걸 알고 있는 건지 에리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끌어 모으고 있던 무릎을 더욱 품속으로 집어 넣으며 얼굴을 가린다. 그래봤자 귀가 붉어진 건 뻔히 보인다.
무릎에 얼굴을 숨기 면서도 힐끔힐끔 몰래 쳐다보고 있다. 정작 본인은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여러 가지로 애들만큼이나 순진한 여인이었다.
조금 뜸들이던 유현은 나직이 대답했다.
“그냥 가깝게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
“···가깝게 말이죠?“
“네.“
“그래요···? 헤헤.”
그러자 에리스는 어딘가 안도하더니 얼굴에 힘을 풀었다. 그걸 보며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리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휙휙 고개를 저었다. 얼굴이 붉다.
묘한 침묵이 맴돈다. 유현은 방금 전 질문은 머릿속에서 지우며 입을 열었다.
“데페르라에 도착하면 이번 일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 물음에 에리스의 표정이 학 바뀌었다.
하늘처럼 맑은 그녀의 눈동자가 증오의 감정으로 더럽혀졌다.
살심을 품은 엘프의 눈동자는 날카로웠다. 동그랗던 순한 인상이 순식간에 바뀐다.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붙잡아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죠.”
“그렇습니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녀석들의 수는 많다. 유현은 지난 며칠 동안 그걸 느꼈다.
유현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숫자. 만약 녀석들을 싸그리 죽여 버린다고 할 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유현에게는 그런 여유는 없었다.
요정 데페르라를 죽여야 했고, 마도병에 대한 단서도 쫓아야 했다. 여유롭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도 모험가들 사이에 오랫동안 있는 건 불편했다.
일행들의 경우 심리적인 부담이 더 크겠지.
에리스만 잘 무사히 도착한다면 녀석들을 처치하는 건 모험가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녀의 눈빛을 보니 알아서 잘 공론화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오라는 감정은 그녀의 눈동자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번 일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겠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해 본적이 없을 테니까 충격은 컸을 거다.
“불을 끄겠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빠르게 움직일 생각이니 지금부터 푹 자두는 게 좋을 겁니다.”
유현은 에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면서 모닥불을 껐다.
***
“이번에도 한 방 당했군.”
아론은 도망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엘프를 쫓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지능적인 녀석이다. 게다가 필요할 때는 무모할 정도로 무서운 판단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에이리어 전역에 걸쳐 포위망을 만들며 쫓고 있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다.
녀석은 계속해서 포위망에 구멍을 내고 도망치고 있었으며, 혼란마저 주고 있었다. 보통의 존재라면 생각하지 않을 동선으로 도망치고 있으니 따라잡는 게 영 쉬운 일이 아니다.
데페르라에 똑바로 가는가 싶더니 뒤로 물러나며 추적하던 수인족들을 박살낸다. 덕분에 생겨나는 연락의 공백 덕에 녀석을 쫓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건 녀석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거겠지. 녀석은 자신의 실력에 압도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무모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건 그런 게 아니면 불가능.
아론은 감정을 가라앉히며 보고를 올리러 온 부하를 내려 다봤다.
“제 5조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습니다. 아마···. 당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녀석은 결국 그쪽으로 갔다는 건가. 설마 싶지만 정말로 그렇게 움직일 줄이야”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다. 위험한 도박을 아무렇지 않게 해온다.
그리고 녀석의 도박은 멋지게 성공했고, 이쪽은 이렇게 엉망진창.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고작 하나 때문에 많은 부하를 잃었다.
쯧-. 싸우지 말고 시간만 끌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려 보지만 아론은 그 정체불명의 녀석이 먼저 공격을 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피할 수 없던 싸움이었겠지. 녀석은 지능적이다.
꼬리가 붙은 걸 순식간에 알아채고는 잘라낸다.
부하들도 멍청하지는 않은지라 곧 바로 도망쳐보려고 하지만 녀석은 단 한명도 살려 보내지 않았다. 발견되는 부하의 시체 몇몇은 도망치다가 죽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결국 녀석이 갈 길을 하나 뿐.’
···아론은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천천히 떴다. 강철 같이 단단하면서도 위험한 빛을 담고 있는 맹수의 눈이 먼 곳을 응시했다.
아무리 녀석이 동선을 꼬아서 혼란을 주고 있지만 이르게 되는 지점은 한 곳뿐이다.
거기를 지나지 않으면 녀석은 데페르라에 도착할 수 없다.
문제는 녀석보다 거기에 먼저 도착할 수 있는가 겠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론은 어차피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선 코웃음 쳤다.
더 이상 전역에 포위망을 펼치며 녀석을 쫓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애초에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고.
부하들의 속도로는 거기에 녀석보다 먼저 이를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아론이 직접 나서는 게 정답이었다.
어두운 밤, 아론은 깊은 적막에 잠긴 숲속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