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62
류트의 계획은 송가연에게 있어 상당히 거슬렸던 걸까. 그날 밤 둘은 서로 싸늘한 시선을 교환하며 말다툼을 했다. 차갑게 내려 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온도에 그 자리에 있던 유현은 머리가 아팠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류트도 양보할 수 없던 건지 그는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하자, 상대가 이종족인 이상 그런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그는 말했다.
며칠 정도 깊게 생각해보니.
송가연에게 미안하지만 유현으로서는 류트의 의견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만약에 정말 지상에 페르네가 있다면 에리스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물론 페르네가 언젠가 다시 미궁으로 내려올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 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바에 움직이는 게 낫다. 그것이 설령一.
“저기···. 에반님? 지금 제 이야기 듣고 있나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레 올려다보는 그녀의 시선에 유현은 정신을 차렸다. 어젯밤 일 때문에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잠시 딴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유현을 응시하는 맑은 물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깨끗한 호수를 바라보는 듯한 커다란 눈동자는 오로지 유현만을 담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쳐다보고 있던 걸까.
유현은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인정하며 쓰게 웃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으으. 제 이야기가 그렇게 지루하셨나요?”
그렇게 말하는 에리스에게 유현은 어떻게 대답해야하는 걸까. 유현은 할 말을 생각하면서도 뒤에 있는 일행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상황은 모두 알고 있을 거다. 류트와 송가연 사이의 무거운 공기도.
그러나 지금 여기를 유심 깊게 쳐다보고 있는 거겠지.
에리스는 아침부터 유현을 찾아왔다. 식사를 가볍게 끝낸 참이었던 일행에게는 조금 갑작스러운 방문. 안 그래도 그녀에 대해 말하고 있던 참이었으니 더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전날에도 몇 번 찾아왔었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오는 건 처음이었다. 최근 며칠간 에리스는 계속해서 유현이 있는 여관으로 이야기를 나누러 오고는 했다.
오죽하면 그녀의 동생 이리스가 에리스를 잡으러 여기에 오고는 할까. 그 때마다 에리스는 여동생에게 힘없이 끌려갔다.
잠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던 에리스였지만 힘내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평상시처럼 활기찬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다.
“제가 방금 전까지 말하던 건 투귀 아론에 관한 이야기에요.”
“현재 그는 모험가들에게 쫒기고 있는 중 아닙니까?”
“네. 하지만 며칠 전에 잡힌 것 같아요.”
그가 벌써 잡혔다고? 유현으로서는 조금 중격적인 이야기였다.
비록 유현이 그의 팔을 잘라놓았다고 하지만 그는 마스터급의 전사였다.
팔 한짝 없어도 모험가 파티 한두개쯤은 아무렇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보구만 개방해도 어지간한 파티는 순식간에 전멸할 터. 유현은 그날 있었던 싸움을 떠올려 보았다.
아론, 그가 다루던 보구는 여러 명을 상대할 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보구였다. 폭염을 동반하며 대검이 휘들러질 때마다 다여섯은 죽어나갈 게 분명했다.
그런 강력한 힘을 지닌 아론을 잡아낸 파티가 있다는 건가…?
“아론은 잡은 모험가 파티는 어디입니까? 상당한 실력자겠군요.”
이건 단순히 호기심 대문에 물어본 것이었다. 아론을 잡아낼 정도의 파티라면 유현이라도 조심해야 했다. 혹시라도 싸우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그런데 에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틀렸다는 것처럼. 저건 무슨 의미인 걸까.
“음···. 그건 아니에요. 에반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험가가 아론을 잡은 게 아니에요”
“그럼 누가 아론을 잡은 겁니까?”
“그게···.”
에리스는 어 딘가 곤란하다듯이 말끝을 흐렸다.
”수인족의 군부 쪽에서 직접 아론을 잡은 거 같아요. 언제 미궁에 병사를 진입시킨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며칠 전에 수인족 군인들이 아론을 붙잡았다고 소식을 전해왔어요.”
···수인족들이 직접?
유현은 어쩐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그런 유현의 표정을 읽은 걸까.
“역시···. 조금 신경 쓰이죠? 그래서 현재 말이 많아요. 과연 그들이 제대로 아론을 처벌할 것인지. 모험가 길드 쪽에서는 자기들 쪽으로 아론을 넘기라고 말하고 있죠. 이건 미궁에서 일어난 일이니 모험가 길드에서 해결해야 한다고요.”
복잡한 문제였다. 하지만 수인족들이 아론을 제대로 처벌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모험가 길드는 결국 단체였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봤자 국가를 상대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수인족들이 편히 이번 일을 넘길 수는 없을 터.
“···오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네. 이미 오크 분들은 많이 화가 나신 거 같아요. 안 그래도 두 종족 사이가 안 좋은데 이번 일로 더 악화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네요.“
하지만 어쨌든 그 아론과 다시 부딪칠 일은 없으니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복수를 하겠다고 덤벼들었다면 꽤나 곤란했을 거다. 최고의 결말은 아니지만 나쁘진 않았다.
아론이 다시 미궁에 들어올 일은 없을 터. 그가 하고 싶어도 길드에서 허락하지 않을 거다.
어딘가 가슴 한쪽으로는 찝찝함이 남으면서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판단할 때였다.
“저기 제가 에반님에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에리스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어째서일까, 생각하는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번에 도와주신 일도 제대로 보답을 못했고···. 게, 게다가···. 에반님의 갑옷이 저번 싸움으로 많이 손상이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새로운 갑옷을 맞추어 드릴 수 없을까 싶어서···.”
말소리가 점점 작아져만 간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는 대략 알았다.
흐음···. 과연 그런거였나.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아론과의 싸움 덕에 갑옷은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 갑옷을 만들어준 웨블에게 수리를 맡겨도 그 또한 고개를 살래살래 젓겠지.
단순히 검에 찢겨진 상처가 아니다. 업화도 같은 일에 녹아내린 상처-. 그건 일반적인 방법으로 수리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망치질로는 고칠 수 없는 상처들이었다.
“···혹시 에반님이 언제 지상으로 올라갈 예정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분에게 제작 의뢰를 부탁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에반님이 옆에 있어야 신체를 제대로 잴 수 있으니···.”
현재 데페르라 시설로는 쓸만한 갑옷을 만드는 건 조금 어려웠다. 대장간이 있기는 하지만 수리 정도만 겨우 기대할 수 있는 수준. 제작 기술은 한참 부족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미궁 도시에 있는 대장간을 이용할 생각인 듯했다. 좋은 갑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한 신체정보가 필요했다. 주문 제작을 위해서는 그 대장장이에게 직접 수치를 재게 하는 게 좋다.
···이건 어떻게 보면 기회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안 그래도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지상에 올라 갈 생각을 묻고 있으니 이쪽으로서도 일이 편해졌다.
“에리스 씨도 알고 있겠지만 저희는 현재 신분을 숨기고 있는 입장입니다. 함부로 지상에 올라갔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죠.”
차분한 유현의 목소리에 에리스는 꿈에서 깬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그제야 아차 하며 그녀는 무언가 잘못했다는 얼굴을 했다.
“죄, 죄송해요···. 저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네요. 전에 분명 에반님의 상황을 들었는데도···.”
“네. 그러니까 아쉽게도 에리스 씨의 제안은 거절해야 할 듯 합니다.”
“············”
에리스는 입술을 달싹였다. 무언가 고민하듯 입술을 떨던 그녀가 힘을 내서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
에리스가 평상시처럼 이리스에게 이곳에 있는 게 발각되어 질질 끌려간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일행은 한 자리에 모여 제각각 여러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음. 에리스를 이용하는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한데.”
길유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하듯 옆에서 송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얼굴로 그녀는 류트를 쳐다보고 있다. 류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역시 보통 녀석은 아닌지라 차가운 송가연의 시선에도 태연했다.
저러다가 괜히 나중에 더 싸우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에리스에게 나쁜 일이 없으면 해요. 괜찮을까요···?”
이서연이 어딘가 걱정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물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심 일행의 대부분이 그러기를 바란 듯하다.
랑샤셴은 말이 없지만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친분을 쌓는 것을 조심하게 해야 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그 동안 에리스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와서 그런 건가. 엘프임에도 내심 마음에 걸리는 듯하다. 페르시나 천설화 같은 경우에는 그다지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페르시 같은 경우에는 에리스가 오히려 불편해 보였고, 천설화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제나 변함없이 입에 무언가 물며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리스가 이상한 짓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유현도 이 이상으로 그녀를 건들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그녀는 좋은 조력자였다.
최근 며칠 간은 계속될 것 같은 묘한 공기가 일행 사이로 정체되어 있을 때였다.
”무언가 일이라도 있는 건가? 분위기가 이상하군.”
익숙한 목소리가 여관 입구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폰테르나가 의아한 얼굴로 서있었다.
최근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가 여기에 올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