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49
“키릭. 이 이상 시간을 질질 끌면 다른 클랜 놈들이 여기로 올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붉은 도끼 클랜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군.”
클랜 로드 회의에서 레드 크로스 고블린 클랜 로드인 카를란이 무거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말에 회의에 모인 각각의 로드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붉은 도끼 클랜. 오크 모험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클랜이었다.
특히 붉은 도끼 클랜 로드는 랭커급에 이르렀다는 유명 모험가였다.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미궁에서 제일 깊은 단계라 할 수 있는 심계까지 이른 모험가들은 몇 없다.
랭커는 심계를 드나들 수 있는 이들을 말했다. 랭커는 아니지만 그에 근접한 존재일지라도 여기 있는 고블린 로드들 보다는 우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클랜들이 공략에 참여하는 건 더 이상 곤란하다. 참가하는 클랜이 많을수록 나눌 것이 많아진다. 게다가 실력 좋은 오크들이라면 제일 중요한 몫을 녀석들이 가로챌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좋았다. 던전의 방어 능력은 낮았으니까. 하지만 어디서 나타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뒤통수를 때린 인간들의 병사가 처음의 변수였다. 던전의 규모를 압도하는 병력이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다.
이런 소도시급 던전은 보통 100명 안팎의 병력이 전부일 텐데.
그 때는 혹시 자신들이 함정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어 얼마나 조마조마 했던가.
“키릭.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클랜 로드 중 하나가 묻자 카를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린 빨리 공략을 끝내야 한다는 거지.”
“키릭!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이 싸움은 단순히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꽁꽁 몸을 숨기고 있는 인간들을 찾아내고 토벌하는, 거의 전쟁에 가까운 싸움이었다.
많은 고블린들이 이곳에 있다.
그 덕분에 매일 같이 많은 물자가 소비된다. 게다가 이곳이 미궁의 어딘가에 있는 던전임을 생각하면 보급 문제도 상당히 힘겨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준비를 하며 여기에 왔건만.
바로 코앞에서 공략이 멈추니, 매일 큰 손해를 입고 있는 각각의 클랜들은 울상이었다. 이미 이득을 논할 범주를 훨씬 벗어났다. 그들을 여기까지 밀어 붙이고 있는 건 오로지 명성 때문이었다.
인간들의 던전을 공략하는 건 큰 명성이 된다. 그건 곧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고블린 도시 헤이라에서 벗어나 다른 중도시에서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소리.
이제 남은 건 그 명성뿐이다. 그런데 그 명성 마저도 다른 놈들에게 뺏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치솟았다. 게다가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었다.
다른 종족의 힘을 벌린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아마 지금 쯤이면 헤이라에 있는 모험가 길드장도 같은 생각일 터. 이제 와서 다른 놈들이 숟가락 얹게 할 수는 없었다.
카를란은 나직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슬슬 힘을 합치자고.”
*
마을 안에 병사들의 주둔지가 완성되자 플레이어들도 곧 바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잠을 잘 때는 싸늘한 밤바람 정도는 막을 천막이 필요하지 않은가.
게다가 딱딱한 바닥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깔려 있는 게 좋았다.
“잠시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릴 것이 있습니다. 모두들 와주시겠습니까?”
불편하기 짝이 없는 땅바닥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던 플레이어들은 주둔지 앞으로 모이라는 아란스의 말에 느릿느릿 몸을 이끌며 모여들었다.
아란스는 플레이어들이 모두 모인 걸 확인하고는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지금부터 나누어 드릴 것은 귀환석이라 불리는, 마석을 가공하여 만든 특별한 힘을 지닌 돌입니다. 이 돌은 여러분들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이니 절대로 품속에서 떼어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귀환석. 미궁 안을 떠돌 때 유용하게 사용되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소유하고 있는 사용자가 죽기 직전의 순간 마을로 강제 귀환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사용자가 즉사할 정도의 데미지를 입으면 의미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저걸 가지고 있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등록된 마을에서 일정 거리 떨어지면 귀환석은 힘을 잃는다. 귀환석의 등급이 높을수록 거리가 증가하지만, 가격은 기하학적으로 상승하며 일회용 아이템이었다.
귀환석이 분명 고가의 물품인 건 분명했지만 지금 우리는 처음부터 마을 안에 있으니, 그다지 질 좋은 물건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동 거리가 짧으니 낮은 등급의 귀환석으로도 충분하다는 소리다.
등록된 이동 장소는 아마 로렐라이의 신전으로 예상된다.
처음에는 귀환석이라는 물건이 뭔지 몰라 모두들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지만 아란스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 모두들 자기들의 수량이 부족할까 봐 급히 줄을 섰다.
귀환석이 분배 되고서 아란스는 조금 늦었지만 플레이어들을 부대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원정대 병사들 중 한 명을 소대장으로 하여 여러 개의 소대가 빠르게 만들어졌다.
우리 같은 경우는 ‘류트’ 라 불리는 남자가 소대장이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없기에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 능력 있는 남자이기를 바랬다.
“후우···. 일단 오늘은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는 건가?”
반나절 동안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던 주위의 분위기에 눌려 있던 건지 길유미가 식은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병사들이 어딘가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으니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에 지친 건지 남궁민과 이서연, 이 둘은 아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그대로 두기로 했다. 지금은 상황을 봐야 한다.
가져온 담요를 졸고 있는 그들에게 덮어주고 있을 때 송가연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할까요.”
“왜 싫어?”
“딱히 좋은 분위기는 아니죠. 나름 이곳 주민들이 저희들에게도 신경 쓰고는 있다만.”
그녀는 어느새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주위로 부지런히 무언가 나르고 있는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마을 주민들이 나누어 주고 있는 건 식량이었다.
아마, 감자일 것이다. 지금 이곳이 겪고 있을 식량 사정을 떠올리면 지금 주고 있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귀중한 식량일 것이다. 주민들은 자기들이 먹을 것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그런 주민들의 행동을 송가연은 쓸쓸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발버둥이겠죠.”
병사들이 싸워 이겨야 자신들이 살 수 있다. 주민들은 그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 몇몇 주민들은 엉성한 무장을 한 채 병사로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다.
미궁의 괴물들과 싸워온 모험가들은 한 낱 마을 주민들에게 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 그것이 설령 고블린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우리도 저들과 다를 거 없어.”
“···예?”
내 말에 송가연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린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피식 웃었다. 내 말에 관심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 스스로도 아직 잘 모를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만나온 고블린들과 괴물들이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튜토리얼에서 만났던 고블린들은 형편없을 정도로 약했다. 그나마 비스퀴아르가 위협적으로 보였지. 하지만 미궁 안에서는 비스퀴아르도 별 거 없는 미궁의 몬스터일 뿐이다.
우리가 해봤자 검을 들고 괴물들과 싸운 시간은 1달조차도 안 된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 있는 송가연이나, 길유미, 남궁민, 이서연만 하더라도 수학여행을 즐기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있던 학생들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생긴 변화는 싸울 수 있는 의지가 생겼다는 정도뿐이다. 그런 면에서 결국 우린 이곳의 마을 주민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이 죽기 살기로 검을 들어 싸울 때와 튜토리얼에서 싸우던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분명 우리는 튜토리얼을 겪으면서 많이 달라졌겠지. 하지만 결국 그것뿐이야.”
나는 저 멀리서 하루 종일 병사들을 움직이고 있는 아란스를 바라봤다.
피로한 얼굴이 가득하다. 오늘 하루 그에게서 쉬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영화에서나 보던, 짜인 각본의 배우가 아닌 실제로 병사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모습이다.
“우린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야.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힘들은 여기서는 평범한 것들뿐이지.”
지금 당장 아란스의 말을 따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평범한 병사 A만 해도 플레이어들보다는 강하다. 그들의 창과 검은 플레이어들의 것보다 날카로우며 각오마저도 남다르다.
애초에 쌓아온 경험부터가 플레이어를 한참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형.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우울해지는데요?”
바닥에서 올라오는 남궁민의 목소리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졸고 있던 녀석이 어느새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시끄러웠나.”
“···그건 아니고요. 그냥 잠이 깼어요.”
그러면서도 남궁민은 쩍,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빠. 궁금한 게 있어요..”
길유미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손을 들며 질문했다. 마치 자신이 학생인 것처럼. 아니, 정말로 학생인가. 나는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턱짓했다.
그러자 길유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면 저기 있는 아란스 아저씨는 강한가요?”
“···그걸 질문이라고.”
그의 강함은 아이들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아무래도 원정군의 대장을 맡은 자이니 강하긴 강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얼마나 강할지는 나도 감이 안 잡힌다. 그렇지만 대충이나마 생각해보면.
“···지금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이 전부 달려들어야 겨우 잡을 걸?”
“그, 그 정도로 저 아저씨가 강해요?”
“강하겠지. 강할 수밖에 없어.”
“···왜요?”
“아직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걸 그는 사용할 수 있으니까.”
거기서, 송가연이 이야기에 껴들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거요?”
순간 뭔가 너무 많은 걸 털어 놓았나 싶었지만, 나는 예전에 송가연에게서 빌린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예전에 그녀가 가져온 책에서 나온 이야기이니 문제없을 것이다.
“마력.”
“아···.”
내 대답에 송가연이 그제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나와 송가연의 대화에 길유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하는 힘이니까.
그나마 송가연이 마력이라는 말에 반응할 수 있던 건 이미 그녀가 정령술사로 전직을 함으로서 마력을 다루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그 마력이라는 것 때문에 아란스 아저씨가 강하다는 건가요?”
“단순히 마력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것도 많겠지만, 뭐 그렇지.”
아직 마력도 개방하지 못한 우리들 입장에서 아란스는 괴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어느 정도 숙련된 병사들이라면 모두 마력을 사용할 줄 알고 있을 텐데.
마력을 사용하고 못하고의 유무는 상당히 크다.
그 차이를 나는 더욱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희미해진 그날의 감각을 떠올리며 나는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심장의 박동만이 느껴진다. 조용히 떨리고 있는 그 고동을 느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 역시 직업을 얻어야 하는 건가.
직업을 얻게 되면 직업보유능력에 〈마력개방〉 이라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생긴다고 무작정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때였다.
쿠우우웅···.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다수가 플레이어와 마을 주민들의 것이었다. 옆에 있던 남궁민이 벌떡 일어나 무기를 들었다.
“이, 이건?”
녀석도 보았을 것이다. 순간이지만 밤하늘이 환하게 변하는 걸.
“···이건. 마법이군요.”
남궁민의 물음을 해결해주듯 송가연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이 미궁에 대포 같은 걸 가져올 리가 만무하니 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어느새 자고 있던 이서연도 정신을 차리며 무기를 쥐고 있을 때.
“모두들 전투 준비!”
피로 했던 얼굴은 어디에 갔는지, 뜨거운 열기에 가득 찬 얼굴로 아란스가 소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