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55
순식간에 많은 힘을 사용해서 그럴까. 긴 호흡을 반복하며 온몸의 열기를 식히고 있을 때였다. 아무래도 운 좋게 살아 있던 놈이 하나 있었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이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키, 키릭! 괴물! 네 놈은 여기서 죽어야 한다!”
찌직.
종이가 찢기는 소리. 마법 스크롤을 사용하려는 고블린의 모습에 유현은 검을 들어 올리려다가 텅 빈 손을 발견하며 쓰게 웃었다. 현재 그에게는 검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다거나, 어딘가로 날아간 게 아니다.
정확히는 부서져버렸다고 하는 게 옳았다.
요정들이 튜토리얼 내의 보상을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인 아이템 따위로는 유현의 일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강철이 바스러질 정도의 일격. 그 일격을 눈앞에서 맞이한 고블린들은 전부 죽었다. 지금 마법 스크롤을 찢고 있는 고블린만을 제외하고는.
아쉽게도 검을 두 자루씩이나 들고 다니는 취향은 아니었기에 놀의 곡도는 챙기지 않았다. 설령 가지고 있어도 사용하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난전에서 광폭화의 힘이 있는 무기는 그다지 좋지 않다. 잘못했다가 동료를 베어버리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비스퀴아르 장검을 이렇게 소모품으로 사용한 건 아쉽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아쉬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마력은 텅 빈 상태였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마법을 정면에서 맞으면 아무리 유현이라 하더라도 즉사였기에 마법을 피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줄 때였다.
그런데.
사아악!
마법 스크롤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무언가가 마법 스크롤을 찢어냈다. 그건 유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었다. 방금 본 게 무엇일까, 생각하던 유현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하아···. 하아···. 괜찮아요?”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 송가연이 있었다.
숨이 벅차오르는지 거친 숨소리를 내는 송가연을 보며 유현은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목덜미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까지 그녀는 쉬지 않고 달려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유현을 도왔던 것이다. 시험해 본적도 없는 힘을 처음으로 시도해 멋지게 성공했다.
“그럼···. 하아, 하아, 다행이고요···.”
송가연은 상황이 잘 풀리자 안심하며 괴로운 호흡을 반복했다.
이렇게 그녀 자신이 허둥지둥 거리는 건 무척 드문 일이다. 그걸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유현과 고블린의 싸움은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막혀올 정도로 긴박했다.
‘괴물 같은 사람.’
여유를 잃지 않고 고블린과 싸우던 유현의 모습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대기를 찢어발기듯 그어지던 푸른 섬광은 도대체 무슨 힘이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건 이 남자에게 있어 단편적인 모습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유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인정했다. 그는 숨겨진 게 많은 사람이다.
송가연의 숨소리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고 판단한 유현은 잭의 시체를 뒤졌다. 나름 실력 있는 고블린 모험가였다. 포션 정도는 가지고 있을 터.
그런 유현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품에 잘 숨겨져, 보호의 룬이 새겨진 작은 유리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포션이다. 그것도 나름 질이 좋은 포션. 게다가 유리병을 지키기 위해 룬까지 새겨져 있으니 분명했다.
그걸 챙긴 후 유현은 송가연에게 손짓했다.
“애들이랑 합류하자.”
냉병기들이 사정없이 부딪치는 이곳에서 애들을 따로 내버려두는 건 불안했다. 송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바로 뛰기 시작한 유현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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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애들은 서로 뭉쳐서 고블린들과 싸우고 있었다. 사방으로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밀어내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롭다. 그걸 지켜볼 수 없었던 송가연이 손을 뻗어 정령을 사용하려는 걸 유현은 막았다.
“아?”
그러자 송가연이 조심스레 턱을 당기며 유현을 바라봤다. 아이들을 돕는 건 왜 막는 걸까. 송가연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손이 떨고 있어. 사용하지 마.”
“···그건.”
송가연은 그제야 자신의 팔이 떨리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상했다. 힘을 주며 떨림을 억제해보려 하지만 떨림은 심해지기만 했지 멈추지 않는다.
지쳐서 그런 걸까. 어쩐지 온 몸이 노곤했다. 분명 손을 잡아챈 것에 이유가 있을 텐데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끊겨버린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피 냄새에 잠기운 따위는 날아가야 정상인데 눈이 남길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송가연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안 그래도 인형처럼 새하얗던 피부가 창백하게 변해 핏줄마저도 보일 것만 같다. 유현은 송가연의 얼굴을 살피고는 말했다.
“너무 많은 마력을 사용했어. 지금 몸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아? 눈이 감긴다거나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몸이 많이 피로할 텐데.”
정답이다. 송가연은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아껴둬. 저건 내가 처리할 테니까.
“아, 예.”
유현이 말을 끝내는 동시에 검을 뽑고 땅을 박찬다. 고블린을 죽이는 건 일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시선이 모여 있던 고블린들은 유현에게 자신들의 뒤를 쉽게 허용했다.
그 뒷면을 거침없이 베어내고, 죽은 동료에 놀라 급히 몸을 틀려던 고블린들을 여유 줄 것 없이 곧 바로 사살해 버린다. 화려함 같은 건 없지만 무서울 정도로 기계적이다.
마지막 고블린이 어떻게든 틈을 벌려 품 안으로 파고들려고 하지만 유현은 가볍게 허리를 틀어 공격을 피하고는 고블린의 목 위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기절시켜버린다. 기절 후에는 당연스럽게 검이 움직인다. 움직인 검은 그대로 목에 틀어 박혀, 이번에는 비명도 없이 죽었다.
“허허.. 저건 정말···.뭐라고 해야 하지.”
너무나 쉽게 고블린들을 해치우는 그 모습을 아이들은 어이없다듯이 바라보다가 긴 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위태롭던 싸움이 좋게 해결했으니 만족이었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을 겨를도 없이 이서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새하얀 얼굴에 묻은 피 때문일까. 그 웃음이 어쩐지 무섭다.
그렇지만 이서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오, 오빠, 그것보다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아요!?”
자신 상처부터 걱정하면 좋을 텐데 이서연은 유현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고는 울상 짓고 있었다. 유현은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대충 챙겨온 포션을 한 번에 마시는 걸로 치료를 끝낸다. 한가하게 상처에 붕대를 매고 있을 시간은 지금 없었다. 그 덕에 이서연이 닦달하듯 잔소리했지만 멋쩍은 표정을 짓자 끝내 멈추었다.
유현은 땀방울을 바닥에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궁민에게 경고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니야. 긴장을 풀지 마.”
“···그렇겠죠.”
잠시 휴식을 취하듯 할버드를 바닥에 박은 채 몸을 기대던 남궁민이 자세를 다시 잡는다. 주위로는 전투가 한 창이다.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유현은 고블린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대로 다시 할버드를 쥐고 땅을 질끈 밟을 때였다. 옆에서 길유미가 한탄하듯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싸움은 언제 끝나는 거야···.”
“몰라.”
“우리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킥.”
“왜 웃어?”
왠지 길유미 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이자 남궁민은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유현 형이 오기 전까지 고블린들과 악을 지르며 야차 같이 싸우던 녀석 아닌가.
길유미가 표정을 찡그리며 노려보지만 남궁민은 가볍게 무시하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남궁민이 보고 있는 건 여전히 바리게이트를 넘고 있는 고블린들이었다.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게 보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한숨만 나온다.
“확실히 무척이나 무섭긴 하네.”
튜토리얼과 달리 밀고 들어오는 고블린들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이 싸움이 끝날지 전혀 예측이 안 된다. 튜토리얼에서는 해봤자 열이 겨우 넘는 숫자였는데.
···이건 전쟁인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했던 싸움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지는, 그런 싸움. 게다가 지금은 유현 형도 여유롭지 못한 것 같았다. 튜토리얼과의 차이점은 역시 유현의 분위기였다.
남궁민은 알고 있다. 다른 애들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튜토리얼에서 유현은 언제나 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위험할 것 같으면 곧 바로 싸움을 돕는다.
큰 상처를 입기 전까지는 방치한 채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오히려 아이들을 뒤로 둔 채 남들보다 앞서 싸우고 있다.
단순히 뒤에서 지켜보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도와주고 있을 여유는 없다는 의미였다. 잠시 멍 때리며 유현의 뒤를 보고 있던 남궁민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야, 뭐하고 있어. 빨리 도와줘야지!”
어느새 길유미가 전의를 되찾으며 남궁민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고는 기세 좋게 뛰쳐나가는 그 모습이 어쩐지 길유미 다운 모습으로 여겨져서 남궁민은 피식 웃다가 땅을 박찼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의 끝을 알린 건 마을 너머로 들려온 거대한 폭음 이었다. 아란스가 작전에 성공했다는 걸 알리는 소리였다.
*
아무래도 이제야 싸움이 끝나는 듯하다. 류트는 신체강화마법의 오랜 사용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근육을 애써 달래며 밖에서 들려온 폭음에 귀를 기울였다.
이쪽을 향해 쏘아진 마법은 아닌 듯하니, 역시 아란스 대장 쪽이 분명했다. 별동대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다. 당연스럽지만 그 중에는 마법사들도 있었다.
어중간한 마법을 가진 류트와는 다른 완전한 마법사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격 마법은 류트의 것과 비교하면 파괴력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났다.
“···캬아아악!”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괴음을 느긋이 귀에 담고 있을 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이 류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운 좋게 살아 있던 놈인 듯하다. 류트는 가늘게 뜬 눈으로 뻗어오는 단검을 노려보다가 들고 있던 검으로 쳐내며 고블린의 목을 베어냈다.
마법은 류트에게 있어 보조적인 수단이었다. 바리게이트 위에서 마법을 사용하며 고블린을 막았던 건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플레이어들을 위한 것이었다. 애초에 마법사가 맨 앞에 서며 싸우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그럼에도 류트는 그런 무리를 했다.
마법의 위력이 어떻든 자신들 쪽에도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플레이어들이 작은 자신감이라도 얻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비록 중간에 지쳐 몇 번 사용하지 못하고 마법을 멈춰야 했지만.
고블린을 확인 사살하고서 류트는 아란스 대장이 무사히 발견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란스 대장이 심각한 상처를 입고 시작의 도시로 돌아갔을 때 류트는 특수한 임무를 맡았다. 모험가들이 설치한 게이트웨이의 연결을 막는 무언가를 모두 찾아내는 것이었다.
마을 밖을 몰래 나가 모험가들의 눈을 속이고, 던전을 돌아다녀야 하는 위험한 임무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류트에게는 그런 일이 더 편했다. 애초에 류트는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병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싸움의 목적을 떠올리면.
“···이런 싸움 다시는 하기 싫습니다. 대장.”
지금쯤이면 신나게 도망치고 있을 대장을 떠올리며 척후병 류트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