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7
아이들이 도망친 곳은 호수 주위로 잔뜩 펼쳐져 있는 숲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 이루어진 그곳은 아이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였겠지.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나무 뒤에 숨기만하면 정면에서는 나무 뒤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우거진 수풀 또한 몸을 숨기기에 좋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에 있었다.
고블린들 상대로 숲에서 떠돌겠다는 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고블린들은 힘이 약한 대신 민첩한 몸놀림이 특징인 놈들이다. 엘프 만큼은 아니지만 숲 속에서 녀석들은 한 층 더 강해진다.
녀석에게 있어 숲이란 홈그라운드에 불과했다. 비록 그것이 처음 보는 숲이라 할지라도, 그런 면에서는 우리도 결국 이 숲이 어떤 구조인지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숲을 움직이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나무들에서 뻗어 나오는 수십 개의 나뭇가지들이 그물처럼 엮인 탓인지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짙은 그늘이 주변으로 내려앉아 있다.
바닥에는 거대한 형상에 어울리게 흉측하게 생긴 나무뿌리들이 사방에 튀어 나와 있고, 그 탓인지 숲 안을 움직이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었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뿌리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 이런 바닥을 두고 누군가에게 도망치거나 싸움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
이곳은 잔뿌리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곤충들이 좋아할 만한 환경이라 그런지 가끔씩 주위를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벌레들은 쓸데없이 감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코앞으로 빠르게 시쳐지나가는 검은색의 이형이 주변을 맴돌면 아무리 나라도 상당히 귀찮기 짝이 없었다. 이 숲에 사는 벌레들은 인간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빠르게 지치게 되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 것도 없겠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이질적인 숲의 환경에 허덕이고 있을 거다. 급격한 체력의 소비는 사람들 사이로 불만을 토해내게 한다.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감정의 변화가 심해진다. 그것은 곧 분란의 시작. 지치기 시작하면 사람들 사이로 싸움이 일어나기 쉬워진다.
그래, 마치 지금처럼.
“아니, 지금이 몇 번째야! 너 때문에 우리가 몇 번이나 쉬어야 하는 거냐고!”
“지금 서연이한테 화를 내는 거니? 애가 몸이 약한 걸 어떻게 해!”
“유, 유미야 나는 괜찮아···. 그리고 나 때문에 너희들한테 폐를 주는 건 사실이니까···.”
“서연아. 가만히 있어. 안 그래도 난 저 자식이 짜증이 났으니까.”
“뭐? 지금 내가 문제 있다는 소리야!? 아까 있었던 괴물들 못 봤어? 여긴 위험하다고! 좀 더 멀리 도망가야 할 상황에 이서연 때문에 이렇게 쉬고 있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 한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러고 있어야 하냐고!”
얼마나 움직였지. 아마 1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걸었을 것이다. 움직인 시간을 떠올려보면 꽤나 먼 거리를 움직였지만 그 동안 단련된 시체 덕분인지 크게 지친 건 없다.
등줄기로 습기와 땀에 옷이 젖은 것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이는 수준은 아니다.
움직인 시간이 1시간이라고 하지만, 내 속도와 앞서 움직인 아이들들의 속도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평상시로 움직이는 내 발걸음도 일반인과 비교하면 꽤나 차이가 있었고, 더욱이 이번에는 앞서 움직인 이들을 쫓기 위해 반쯤 달리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무 뒤편에서 지켜보는 것도 모른채 말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면 서연이를 버리고 가자는 소리야?”
“하아… 길유미 계속 이럴 거야? 오해 할 소리는 하지 마. 누가 버리자고 했나? 차라리 어딘가에 숨겨 두고 나중에 찾으러 오는게 좋을 거 같다는 소리지.”
그러자 길유미는 입술을 바득 깨물었다.
“그게 버리자는 게 아니면 도대체 뭔데? 겉만 살아있는 겁쟁아!”
“···. 거, 겁쟁이? 학교에서 찐따들 쳐맞고 다니는 것처럼 너도 나한테 처 맞아 볼래? 여자라고 봐주고 있었더니만!”
“미친 새끼. 운동도 좆도 못하는 게 양아치질 하나 할 줄 안다고 지가 쎈줄 아나. 덤벼보던가. 너 같은 자식은 여자인 나도 두드려 팰 수 있어 이 자식아.”
···꽤나 기게 쎈 여자인 듯했다.
남학생의 목소리에지지 않고 꼬박꼬박 반응하는 길유미라는 여학생을 보며 나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이네.’
심각한 싸움처럼 들려오지만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둠에 동화 되듯 조용히 거리를 좁혀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내 접근을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기척을 죽이며 그들의 싸움을 주시해보기로 했다.
한쪽은 머리를 염색한채, 수학여행에서 멋 한번 부려보겠다는 것처럼 머리에 끈적끈적하게 기름칠하고 있는 전형적인 양아치 인상이었다.
게다가 확실히 여학생이 말한 것처럼 겉멋만 부리는 녀석인지 얇은 체형의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몸. 오히려 육체적으로 뛰어나 보이는 건 그와 맞서고 있는 여학생 쪽이었다.
‘운동이라도 하는 녀석인가.’
매끈하게 잘 빠져있는 새하얀 종아리만 봐도 알 수 있다. 단순히 먹지 않아 만들어 지는 게 아닌 운동을 통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건강한 각선미가 여학생에게 존재했다.
검은색 긴 생머리를 수수한 머리끈으로 묶어, 포니테일을 유지하고 있는 여학생은 확실히 운동 쪽에 뭔가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들의 싸움을 주시하고 있다가 싸움의 원인이 된 녀석을 찾았다. 그들의 중간에 안절부절 못한채 기죽은 토끼마냥 덜덜 떨고 있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이서연이라고 하던가. 그녀를 위해 맞서고 있는 길유미와 달리 이서연이라 불리는 소녀는 확실히 연약해 보이는 체형이었다.
지금까지 움직인 것도 꽤나 체력적으로 지치는 일이었는지 잘 관리된 매끄러운 긴 생머리는 땀으로 젖어 등줄기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고, 턱 선을 따라 땀방울도 흐르고 있다.
습하고 더운 느낌의 숲에서 오랫동안 움직이는 건 그녀에게 약간 무리한 일인 듯했다. 하지만 그런 천연적인 문제를 고려해도 다른 쪽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어보였다.
‘발목을 다친 건가.’
그녀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일부러 다친 발목 쪽에 힘을 안주기 위해 그러한 자세를 취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다지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다.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발목 부상이 저걸로 나아질 리가 없다. 악화되면 악화될 뿐이지. 치료가 필요했다.
어쩌면 체력적인 문제도 그렇고 저 부상 때문에 계속 휴식을 취하는 게 분명했다. 지금 싸우고 있는 둘은 저 소녀의 부상을 알고나 있을까.
나는 셋을 번갈아 관찰하다가 나머지 인원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지금 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화를 내고 있는 남학생처럼 이서연이라는 소녀를 민폐로 보고 있을까.
···몇몇의 얼굴은 남학생을 따라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같은 학교의 학생인데도 서로 사이는 좋았던 건 아닌 듯 그들의 관계는 그다지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 대놓고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이서연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냥 우리 따로 가자.”
“뭐···?”
이 이상으로 싸우는 건 지쳤는지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싸우던 길유미는 멈칫하며 딱딱하게 굳었다. 그걸 확인한 남학생은 기분 나쁘게 웃는다.
“우리 그냥 따로 가자고. 솔직히 말해서 한 사람 때문에 모두 위험에 빠지는 건 너무하지 않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양아치 인상의 남학생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다른 애들에게 묻고 있었다. 반절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서연을 보호하던 길유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나마 이서연을 불쌍하듯이 보고 있던 몇몇이 양아치 인상의 남학생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이미 분위기가 이서연을 버리는 쪽으로 흘러가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해 유미야. 그렇지만 우리도 살아야지?”
“시끄러워. 갈거면 빨리 가버려.”
친구의 말에 이서연을 감싸던 길유미는 지친 듯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사과 하던 여학생은 쓴웃음을 짓고는 양아치 인상의 학생을 뒤따라갔다.
그대로 순식간에 15명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짧은 스포츠 컷의 이름 모를 남학생.
그리고 길유미와 이서연, 나무에 등을 기대며 땀을 식히고 있는 여학생뿐이었다.
‘나쁘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좋아 해야 하는 건가.’
서로 사이가 별로라면 내가 끼어들 틈은 넓다. 서로 강한 우정을 자랑하는 이들이었다면 괜히 내가 끼어들 틈은 좁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판단하길 나름인 건가. 나는 서로 갈라지는 두 집단을 보며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했다.
둘 중 하나가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판단을 잘못하면 지도와 나침반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저쪽을 따라가 볼까.”
고민은 빠르게 끝났다. 딱히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저 감에 맞긴 어처구니 없는 선택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운에 맞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나는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해 보고는 단순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다가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