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97
평행하게 내달리던 싸움에서 변화가 생긴 건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지켜본 시간이 적지가 않음에도 일행들은 두 우두머리의 싸움을 눈에서 떼지 못했다.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GRRRRRRR!
엘더 라비락의 어깻죽지에서 거센 핏줄기가 뿜어졌다. 우두머리 늑대의 발톱이 엘더 라비락의 어깨를 가른 것이다. 강철 검보다 날카로운 늑대의 발톱은 라비락의 가죽은 손쉽게 찢어발겼다. 드러난 틈새로 새하얀 것이 엿보였다. 엘더 라비락의 어깨 뼈였다.
유현은 그걸 보며 이번 싸움의 승패가 정해졌음을 알았다.
‘힘줄까지 완전히 잘려나갔네.’
뿜어지는 핏줄기를 보아하니 그렇게 밖에 판단이 안 된다. 실제로 그 이후 엘더 라비락은 오른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쿵!
엘더 라비락의 오른팔에서 흑빛의 도끼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던 탓인지 도끼가 바닥에 떨어지자 쿵, 하는 소리가 일었다. 생겨난 틈을 놓치지 않고 늑대가 타오르는 듯한 눈빛과 함께 달려든다.
-GRRRRRR!
그대로 빈틈을 허용한 결과 늑대의 송곳니가 엘더 라비락을 물었다. 거센 비명소리가 미궁을 울린다. 싸우던 라비락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왕을 쳐다봤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허둥거리던 라비락들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며 자신들의 왕을 돕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우두머리끼리의 싸움에서 늑대가 이겼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 똑같았다.
유현은 그 광경을 차분한 얼굴로 내려다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우리는 라비락을 친다.”
“···확실히 늑대가 이긴 거 같네요. 엘더 라비락이 무너지기 시작하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이서연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저 싸움에 자신들도 참가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무기를 꽈악 쥐는 걸로 떨림을 억눌렀다.
“라비락들이 엘더 라비락을 살리기 위해 길을 만들기 시작했군요.”
전황을 살펴보는 류트의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도망치고 있는 엘더 라비락을 응시한다.
도망치는 엘더 라비락을 잡기 위해 우두머리 늑대가 발광하기 시작했지만, 라비락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우두머리 늑대를 막아서고 있었다. 엘더 라비락은 그대로 등을 보이며 뒤 돌아 볼 것도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싸움은 공격하는 자와 방어하는 자로 바뀌었다.
라비락들은 어떻게든 엘더 라비락을 살리기 위해 통로를 막아서기 시작했고, 늑대들은 통로를 뚫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렇지만 지형의 특징상 라비락들은 쉽게 뚫려주지 않았다.
라비락들에게는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그들이 선점하고 있던 곳은 방어하기에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늑대들은 엘더 라비락을 놓칠 것처럼만 보였다.
늑대들도 그걸 알고 있는지 라비락들이 막고 있지 않은 다른 통로를 통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미궁을 빙 돌아서 가더라도 엘더 라비락을 쫓으려는 집념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유현이 조심스레 한 소녀를 불렀다.
“가연아.”
“이미 엘더 라비락을 쫓고 있어요. 일단 움직이죠.”
유현이 부탁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행동에 나서고 있었다. 그녀가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곧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일행도 곧 바로 그녀의 뒤를 쫓았다.
지금부터 문제는 라비락을 쫓고 있는 늑대들을 피해 엘더 라비락을 쫓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주변의 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걸 잠시 고민하던 유현이지만, 송가연이 통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걸 보며 걱정을 지웠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에 대한 조사는 모두 끝낸 상태에요. 그러니 엘더 라비락이 어디로 도망칠지는 이미 예측은 하고 있죠.”
“그거, 상당히 든든한데.”
유현은 달리면서 무심코 송가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뻔했다. 하지만 엘더 라비락을 쫓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미궁의 통로를 뛴다. 들려오는 건 일행의 뜀박질 소리 뿐.
희미하게 늑대와 라비락들이 뒤엉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무언가를 쫓기 위해 미궁을 뛰어다니는 것도 드문 경험이다.
은은하게 달빛 같은 고운 빛을 내고 있는 미정령들의 밑을 20분 정도 움직였을까.
그 동안 말없이 뛰기만 했던 송가연이 헉헉, 거리는 숨을 토해내며 다리를 멈추었다.
“여기는?”
유현이 의아한 듯 묻는다. 그러자 송가연은 허리를 구부린 채 무릎에 두 손을 대며 숨을 토해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땀에 뒤엉켜 살결에 달라붙어 있다.
여기까지 일행은 멈추지 않고 달린 것이다. 그 중에서 체력이 좋지 않은 송가연으로서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해냈다. 그런 성취감에 그녀는 작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엘더 라비락이 여기로 올 거예요. 다행히 생각했던 길대로 움직여주네요.”
가라앉은 목소리지만 자신감에 가득찬 그녀의 미소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일행은 곧 바로 전투를 준비했다. 그렇게 싫어하는 활력 포션을 한꺼번에 입 안으로 털어 놓고는 모습을 숨긴다.
당당히 통로에 서며 엘더 라비락을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다.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당연히 실행하는 게 좋았다. 그 중에서 기습은 제일 효과적인 수였다.
“후아···.”
유현의 옆에서 길유미가 길게 숨을 토해낸다. 긴장이 되는 건지,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지쳐 땀이 흐른 건지 그녀의 목덜미를 따라 땀방울이 굴러 떨어진다.
유현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긴장 되는 거야?”
그러자 길유미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눈에 힘을 주었다.
“당연하죠. 게임으로 치면 보스 녀석을 치는 건데 긴장이 안 될 리가 없잖아요.”
“누군가 죽을 수도 있어.”
갑자기 유현이 그런 말을 꺼내자 길유미는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씨익 웃었다.
“저는 오빠와 함께라면 그 어떤 괴물도 무섭지 않을 거 같아요. 그게 설령 드래곤 같은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게다가 믿을만한 동료들도 있고요.”
“그런가.”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유현은 마른 미소를 지었다. 미정령의 얕은 빛 속에서도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길유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감정이 깊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앞으로 자신은 저 믿음에 반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녀는 도대체 어떤 눈을 할까.
그 때였다.
“이제 곧 엘더 라비락이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다행히 따르고 있는 라비락들은 없는 거 같아요. 아마 늑대를 막기 위해 모두 떨어진 듯 해요..”
송가연이 몸을 숨기고 있는 바위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차분하면서도 약간 긴장을 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트가 신체 강화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궁민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인지 자기 머리 위로 물통을 쏟아 부었다. 차가움에 식혀져 정신을 가다듬는다.
송가연은 나직이 숫자를 세며 타이밍을 잰다.
9··· 8··· 7··· 6···.
천천히 이어지는 카운트다운.
이윽고 그녀가 ‘0’을 세었을 때 소리는 들려왔다.
미궁을 울리는 무거운 발소리. 급하게 달리고 있는 듯한 소리에 일행은 눈을 빛내며 무기를 고쳐 잡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녀석이 보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라비락들은 보이지 않는다. 송가연 말대로 도망쳐 나온 건 엘더 라비락이 끝인 듯 싶다. 그 정도로 긴박했던 걸까. 엘더 라비락을 노리고 있는 이쪽의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이다.
4m 정도의 거체를 빠르게 움직이며 통로를 달리고 있는 엘더 라비락. 그 우람한 몸집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전히 오른팔을 쓸 수가 없는 건지 흑색의 도끼를 왼손으로 들고 있다. 미궁의 바닥에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우두머리 늑대에게 당한 상처는 상당히 심각해 보인다. 여기저기 엿 볼 수 있는 수많은 상처에서 핏물이 질질 흐르고 있다. 달리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통해 핏물이 토해진다.
그렇지만 엘더 라비락은 늑대와 싸우던 사나운 표정 그대로 이를 바득 물며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진 것이 그렇게도 분한 걸까.
-GRRRRRRRRRR!
자신을 쫓아올 늑대는 신경도 쓰지 않는 건지 거대한 고함을 지른다. 터져 나오는 소리가 대기를 타고 여기까지 흘러들어온다. 공기가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흔든다.
“저런 몸으로 무슨.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이야···.”
길유미가 귀를 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멀리서 듣던 고함소리를 바로 근처에서 들으니 위압감이 상당히 달랐다.
이윽고 엘더 라비락이 일행이 숨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성난 발걸음으로 통로를 지나가는 엘더 라비락을 보며 모두가 숨을 삼킨다. 그 거대한 몸집을 바로 코앞에서 보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유현이 손을 올렸다. 손가락 3개를 들어올린다.
숫자가 모두 접히는 순간 동시에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흡을 가다듬고 타이밍을 기다렸다. 끝내 유현의 모든 손가락이 접힌다.
“지금이야!”
“으아아앗!”
예리한 기합성과 함께 무기를 내지른다. 갑작스러운 고함에 놀란 듯 엘더 라비락이 급히 몸을 틀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일행을 발견한다.
하지만 늦었다. 엘더 라비락이 일행을 눈치 챘을 때 이미 온힘을 다한 일격은 모두 엘더 라비락의 몸에 파고들었다.
적막이 미궁을 맴돈다. 비명 소리는 없었다.
“죽은 건가?”
누군가 그런 말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릴 때였다.
분노로 화산처럼 이글거리는 엘더 라비락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강렬한 살기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자신들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엘더 라비락에게는 얕은 일격이었던 것이다.
도망쳐···
그런 말이 꺼내지기도 전.
몇 초간의 적막은 엘더 라비락으로 인해 엉망진창 찢겨졌다.
-GRRRRRRRRRRRR!
일순 머릿속을 꿰뚫는 듯한 거대한 고함이 미궁을 뒤흔들었다.
엘더 라비락에게 달라붙었던 인원 모두가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그대로 튕겨나가 벽에 처박혔다.
========== 작품 후기 ==========
어제 글에 댓글 엄청 달려서 뭔가 싶었는데 ㄷㄷ
잭팟 감사합니다. 너무 댓글이 많이 달려서 뭔가 실수했나하고 무서워서 못 보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