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363
제 363화
363. 76층, 신혈의 아이 (3)
“어? 어?”
아이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주변이 어색하다는 듯,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숲이…….”
자신이 특정 장소에서 하루 이상 머무는 순간, 저주가 찾아온다. 샘이 메마르고 땅이 죽어간다. 멀쩡한 것은 오직 아이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 하루가 지났음에도 레크레젠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호, 혹시 태산 님이 무언가를 하셨어요?”
“아니.”
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밤새도록 아이를 지켜봤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아이의 신혈이 폭주하지도 않았으며, 대지가 붕괴되지도 않았다.
“어어. 뭐지?”
아이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시련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어…… 시련은 이곳에서 하루를 머무는 게 전부니까…… 통과했을 거예요.”
아이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아이는 당황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어찌 됐든 시련 자체는 클리어 되었기에 태산이 아이를 데리고 다시 움직였다. 길을 걸으면서 아이는 연신 중얼거렸다.
“대체 왜지?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지?”
“네 저주란 것이 풀린 거 아니야?”
“아닐…… 거예요.”
아이는 말꼬리를 흐리며 태산의 말을 부정했다.
그가 자신의 팔을 봤다. 어제 잎사귀에 베인 상처에는 붉은색이 아닌 푸른 딱지가 잡혀 있었다.
“제 안에는 아직도 푸른 피가 흐르고 있어요.”
아이의 저주가 풀린 것이 아니다.
태산도 알지 못한다. 어제 감각을 확장하여 변화를 살펴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다음 시련으로 이동하자고.”
“아. 네. 네.”
아이가 더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걸으며 아이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상한데. 당장 태산 님을 만나기 며칠 전에도, 저주가 발동되었거든요.”
아이는 말했다. 기나긴 여정에 너무나도 피로하여, 동굴 하나를 잡고 꼬박 하루를 잠들어버렸다고. 일어나 동굴을 나와 보니 주변의 식생이 전부 짓이겨 죽어 있었다고.
“그런데 어째서…….”
아이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길을 걸었고, 밤이 되었다. 아이가 나무에 등을 기대며 계속 중얼거렸다.
“왜일까요? 왜 레크레젠에서 저주가 발동하지 않은 걸까요?”
“글쎄.”
태산이 토끼 고기를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의아해하면서도 아이는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으음…….”
아이는 피곤한 듯 오래지 않아 잠들었다.
태산은 잠든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품속에서 잎사귀를 꺼냈다.
아이의 팔에 상처를 낸 잎사귀. 아직 푸른 피가 묻어 있었다.
신혈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우선 그걸 알아내야 했다.
[당신은 집중 탐지를 발동했다.]탐지의 힘이 잎사귀에 묻은 푸른 피를 향해 몰아친다. 정보가 태산에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태산이 얼굴을 찡그린다.
신혈에 대한 정보가 그에게 들어오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걸 분석할 수 없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무작위로 뒤섞인 텍스트 파일처럼 해석이 불가능했다.
태산은 마법 집중을 이용해 다시 한 번 탐지를 시도했다. 정찰과 본질 파악마저 전부 사용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뒤섞여 해석할 수 없는 정보만이 태산에게 들어왔다.
“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하나의 정보였다.
지금의 태산이 분석할 수 없는 힘.
그의 격보다 위에 있는 힘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바람의 정령왕. 미네르바를 소환했다.]“웃차.”
바람이 조용히 뭉치며 여인의 모습이 이루어졌다. 대지에 착지한 미네르바가 놀란 얼굴로 저편을 바라봤다.
“여긴 뭐하는 세계야? 아주 강렬한 힘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네.”
눈매를 좁힌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보다 센데?”
“그게 느껴져?”
“나는 자연의 존재니까. 여기에는 정령왕도 없네. 이런 세계라면 내 탐지 범위는 무척이나 넓어.”
눈을 감고 감각을 확장한 미네르바가 알아차렸다.
“아하. 초월자의 사도가 지배하는 세계인가? 괴물같이 강할 만하네.”
“사도란 건 어느 수준의 존재인 거야.”
사도를 몇 번 마주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본신의 상태가 아니었다. 신들의 전장에서 만난 사도는 강제로 부여받은 쪽이었고, 잊혀진 여신의 사도는 스스로를 망각한 상태였다. 파브샤의 사도. 말레스텐은 태산의 몸을 빌려서 강림했었다.
유일하게 전생에 싸운 고신의 사도만큼은 본신이었지만, 고신 자체가 일그러진 존재인 만큼 비교하기가 애매했다.
“가지각색이야. 약한 존재는 필멸의 끝자락에 간신히 걸쳐 있고, 그중에서도 손가락이라 불리는 강한 존재는 어지간한 불멸자보다 강할 수도 있지. 평균적인 수준으로 보자면…….”
미네르바가 태산을 바라봤다.
“지금의 주인 정도 수준이려나.”
“그 정도인가.”
“신이 직접 자신의 힘을 소모하여 사도로 만든 거라고? 약할 리가 없잖아?”
생각해보면 필멸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는 길잡이 수뇌부조차 사도의 계약을 맺지 못했다.
그들의 가치관과 행적이 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 것도 있지만, 그 정도 힘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태산처럼 신들의 마음에 완벽하게 드는 것이 아닌 이상 무척 높은 기준점을 통과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주인이 신기한 거지. 사도의 계약도 맺지 않고서, 이렇게 단기간에 그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거든.”
주위를 둘러보던 미네르바가 태산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전투할 일은 없는 거 같은데.”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태산이 푸른 피가 묻은 잎사귀를 흔들었다.
“신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냐?”
미네르바는 정령왕. 탄생 때 정령왕으로서의 지식을 얻어낸다.
그 안에 신혈에 대한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하. 저 아이가 신혈을 가진 인간이구나.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신기하다는 듯 아이를 바라보며 미네르바는 말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쪽에 대한 정보는 나한테도 대략적으로밖에 들어오지 않았거든.”
정령왕의 지식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보.
“아주 드물게 발현이 돼. 신혈을 가졌다고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거나 하지는 않아.”
미네르바가 아는 정보는 유령의 설명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신혈을 가진 자가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어? 하루 이상 머문 장소를 황폐화한다든지 말이야.”
태산이 아이가 말하는 저주에 대해서 설명했다. 미네르바는 태산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일은 없어. 애초에 신혈이란 건 평범한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힘이야, 힘의 폭주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거라면 시전자가 멀쩡할 리가 없어. 애초에 정말 폭주했다면 장소가 아니라 나라 하나가 날아갔을 거야.”
아이가 말하는 저주와 같은 건, 신혈로는 불가능하다.
태산은 정보를 정리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다시 돌아가 있어.”
“알았어.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불러.”
미네르바는 사라졌다.
아이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 * *
“여기가 다음 시련의 장소에요.”
무척이나 아름다운 평원이었다. 가지각색의 꽃이 무지개처럼 피어나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시선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그런 장소인 만큼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원에 자리 잡아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는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 죄송합니다.”
“어, 어!”
느긋이 풍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아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기겁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신탁의 시련으로 인해…….”
“망할!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 우리의 세계를 망치고 있어!”
사람들이 이를 갈며 재빠르게 도망쳤다.
평원에는 아이와 태산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가 무척이나 슬픈 얼굴로 평원에 앉았다.
“당연한 반응이에요. 이곳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땅이거든요. 제가 이곳에 자리 잡으면 이 땅 자체가 시들어버리니, 당연히 싫어하죠.”
“시련은 총 몇 개지?”
“총 일곱 개예요.”
아이는 멍하니 평원을 바라봤다. 마치 마지막으로 그 광경을 눈에 담겠다는 듯이.
그러다가 아이는 문득 생각이 났는지 계속 태산을 힐끔거렸다.
“왜 그래?”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손을 잡아도 돼요?”
“마음대로 해.”
태산이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설마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질지 몰랐는지, 아이는 순간 당황했다.
“가, 감사합니다…….”
아이가 조심스레 태산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온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단단히 쥐었다.
아이는 태산의 손을 꼭 잡은 채 잠이 들었다. 색색거리는 조용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이윽고 하루가 되었다.
아이가 말했던 저주가 찾아올 시간이었다.
그 순간 태산은 느낄 수 있었다.
공간 저편에서 무언가 발동되었다.
아이를 중심으로 발현된 힘은 강대한 파장과 함께 이 세상에 구현되려 하고 있었다.
그 힘은 신성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쩌적.
대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구현되는 힘이 아이를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한다.
태산이 격을 끌어올렸다.
강대한 격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발현되는 힘을 강제로 짓밟고 억눌렀다.
신성력이 태산의 격에 짓눌려 사라졌다.
아이는 여전히 잠든 상태였다.
태산이 공간 너머를 바라봤다.
아이를 중심으로 발현된 힘의 주체는 아이가 아니었다. 저 멀리 있는, 강대한 누군가가 이곳에 영향을 행사한 것이었다.
“이런 건가.”
슬슬 감이 잡히고 있었다.
다음 날. 아이는 깨어났다.
평원은 여전히 아름다운 상태였다.
“…….”
아이는 멍하니 평원을 바라봤다.
그다음 시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하루 동안 한 장소에 머물렀다. 공간 너머에서 신성력이 발현되었고, 태산은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짓밟아 뭉개버렸다. 그렇기에 아이의 주변은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다.
“뭐죠?”
그날 밤. 아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죠?”
아이는 태산이 힘으로 발동되는 저주를 물리쳤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저주가 뚝 끊겨버린 것이었다.
한 번이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벌써 세 번째였다. 이렇게 되니 정말로 의심이 들었다.
자신의 저주가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아이는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상반된 감정이 아이의 감정을 헤집었다.
“으으윽…….”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왜, 왜. 왜. 대체 뭐야…… 나를 놀리는 거야…… 이렇게 사라질 거면, 좀 더 일찍…….”
아이는 통곡했다. 계속하여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든 아이는 여전히 태산의 손을 붙잡은 상태였다.
태산은 다른 손으로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이 아이가 타인의 손을 잡은 것은 몇 년 만일까.
아이는 태산과 함께 움직이며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중 부모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의식적으로 부모에 관한 것을 떠올리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흐음.”
미네르바는 신혈을 가졌다고 해도 아이가 말한 저주와 같은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태산은 아이를 중심으로 발현되는 힘을 파악했다.
아이가 하루 이상 머물 경우 공간 너머에서 신성력이 발현하여 주변의 환경을 황폐화한다.
거기에 아이를 지켜보던 시선.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주를 발현하고 있었다.
태산이 아이가 붙잡은 손을 놓았다.
[당신은 늑대의 권속을 발동했다.]“지키고 있어.”
두 마리의 늑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 자신의 영격으로 이루어진 늑대인 만큼 무슨 일이 생기면 태산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태산은 발을 박찼다.
[당신은 도약을 발동했다.]육체가 밤하늘을 날았다.
[당신은 정찰을 발동했다.] [어디로 가보게?]“아이가 말했던 장소.”
자신의 저주로 인해 황폐해졌다고 말한 동굴.
그곳이 목적지였다.
태산은 오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줬기에 천천히 이동한 것이지, 태산의 입장에서는 수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탓.
태산이 망가진 땅에 착지했다.
작은 동굴 주위로 모든 식생이 메말라 죽어 있었다.
호수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으며, 대지 자체가 죽어 더 이상 생명은 살아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당신은 레라지에의 영역 탐지를 발동했다.]마기가 망가진 대지를 뒤덮는다. 그 안에 담긴 정보를 태산에게 알려준다.
그 결과 태산은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죽어버린 땅.”
이 땅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황폐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신성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걸로 거의 확실해졌다. 태산이 입을 열었다.
“나와.”
철컹.
쇳소리와 함께, 황금의 기사가 폐허 속에서 모습을 보였다.
“……경고하마. 비천한 불신자여.”
쇠 긁는 소리가 울렸다.
“저주받은 아이에게서 당장 떨어져라. 그렇지 않으면 신벌이 너를 덮칠 것이다.”
“넌 누구야?”
“나는 황제 폐하의 첫 번째 기사다.”
기사는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태산은 물끄러미 기사를 쳐다봤다.
기사는 상당히 강했다.
빈말이 아니라 저 정도면 50층 너머로까지 내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그러져 있군.’
그 힘은 기사 본인의 힘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힘이었다.
“당장 이 세계에서 꺼져라. 비천한 불신자.”
“싫다면?”
태산은 답했다.
기사는 철컥. 황금의 검을 들었다.
“그러면 내 손에 죽어라.”
순간 기사의 몸이 사라졌다.
단련한 기사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이라도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 바깥의 존재라면 대응하기도 전에 죽임을 맞이할 힘을 가진 자.
기사는 태산이 자신의 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그렇기에 기사는 경악했다. 태산의 목을 노린 자신의 검이, 태산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기사가 기겁하며 검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빠지지 않았다.
마치 바위 깊숙이 박힌 검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이!”
콰직.
검이 부서졌다.
기사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태산이 검의 파편을 내던지며, 기사에게 물었다.
“황제는 왜 신혈의 아이를 노리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