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1
자리를 뜨기 전 사령술을 활용해 불완전하게나마 요한의 기억을 뽑아낸 나는, 여러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요한의 말에는 의외로 거짓이 없었다는 것.
“진짜 스틱스(Styx)의 길드원이에요?”
“그, 그런가 보던데.”
심지어 기억을 살펴보니 꽤나 기대받던 유망주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던전 안에 그대로 묻어버린 것이었다.
“어떡하지?”
“따지고 보면 정당방위 아닐까요?”
“그렇긴 한데…….”
문제는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알아낼 사실 그 두 번째, 스틱스의 상층부는 딱히 우리를 해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즉, 이렇게까지 대놓고 일을 벌인 것은 모두 요한이라는 놈의 개인플레이다.
“에이 씨. 일 꼬였네요. 그럼 저쪽 입장에서도 완전히 날벼락 맞은 건데.”
섭외, 그리고 단순한 압박 목적으로 보냈던 길드의 유망주가 행방불명됐다?
이건 스틱스 쪽에서도 비상이 걸릴만한 사항이었다.
‘솔직히 전부 요한이란 놈의 자업자득이지만…….’
영국의 초대형 길드인 스틱스에서 과연 그런 것을 신경이나 써줄까?
내 생각에는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되어 있던 우리를 의심하고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할 것이다.
작게는 개인이나 단체 간의 분쟁, 크게는 국가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항이었다.
‘…아직은 좀 그런데.’
본래의 나였다면 그러한 날파리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도 내 수준은 전성기와 비교하면 한숨이 나오는 선에서 멈춰있었으니까.
그 순간, 송하연이 어물쩍 말을 이어왔다.
“그, 그냥 입 싹 닫죠?”
“…….”
“어차피 저흰 각각 B랭크에 C랭크 하위권인데, 막상 모르는 척하면 의심하려 해도 별수 있을까요?”
확실히 그렇기는 했다.
상식적으로 A랭크 승급을 눈앞에 뒀던 요한이 우리에게 변을 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스틱스 입장에서도 의심할지언정 확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저흰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거로 하죠. 스틱스에서 움직이긴 하겠지만, 당장 그런 불확실한 의심으로 손을 댈 수는 없을 거예요.”
“언젠가는 마찰이 생길 텐데?”
“적어도 스승님이 좀 더 세질 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나는 설득되었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진 것도 던전 내부, 이렇다 할 증거는 없다.
“…그, 막 이쪽 오다가 CCTV 같은 데 찍혔으면?”
힘이 부족한 탓에 기억 추출은 완벽하지 못했다. 따라서 요한의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에이, 설마요.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그렇게 대놓고 찍혔겠어요? 적어도 근처에 오고 나서는 신경 썼겠죠.”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사실 달리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요한과 관련된 문제가 생긴다면 무조건 모르는 척 잡아떼기로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30분 전쯤 잡은 보스의 잔해를 뒤로하고 던전 밖으로 나간 순간, 우리를 반겨준 것은 처음 보는 얼굴의 직원이었다.
“아, 클리어하셨나요?”
“그, 원래 계시던 분은……?”
요한에게 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심각한 분위기는 없었다.
“선배님은 과로 탓인지 현기증을 좀 호소하셔서, 제가 교대로 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송하연은 슬쩍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래도 요한이 그렇게 생각 없이 일을 처리하진 않은 듯했다.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곤, 출입 절차를 마무리한 채 귀환길에 올랐다.
“아셨죠? 저흰 오늘 아무 일도 없었던 거에요?”
“…….”
서로 간에 중대한 비밀이 하나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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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놀랍게도 한동안 별일은 없었다.
【영국 대형 길드 스틱스(Styx)의 B랭크 헌터, 한국 입국 이후 행방불명 돼.】
【공항 인근에서 행적 끊겼다, 수사 최선을 다해 협조.】
세간에서는 잠깐이나마 이러한 기사들이 나돌 정도로 떠들썩했지만, 의외로 나와 송하연에게 각종 기관의 연락이 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단순히 엮을 건덕지가 없었던 것인지, 혹은 모종의 뒷사정이 있는 것인지.’
다른 곳은 몰라도, 요한을 한국으로 보낸 스틱스만큼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
따라서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는 지금 상황이 호재인지 악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허나, 딱히 상관은 없다. 만약의 경우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헬레나와 적대 관계에 있는 모양이던데.’
요한의 기억을 추출했을 때, 스틱스와 헬레나의 관계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가능한 내 선에서 해결하겠지만, 정 일이 수틀리면 헬레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으니까.
달칵.
달칵 달칵.
퍼어엉!
【패배하였습니다!】
“에휴.”
C5랭크 던전의 공략 이후, 나는 한동안 던전 공략에 나서지 않은 채 집에만 박혀 있었다.
처음에는 몸의 회복 때문이었다.
아직 부족한 능력으로 죽음의 서를 사용한 탓인지, 며칠 동안이나 근육통을 비롯한 몸살 증세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일종의 번아웃이 왔다.
‘레벨 너무 안 올라…….’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은 역시 더했다. 고작 20레벨에 가까워진 것만으로도 성장 속도가 현저히 느려질 정도였다.
‘이제야 19레벨.’
C5랭크 던전을 둘이서 클리어했음에도 결국 레벨은 19에서 멈췄다.
솔직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대체 어느 세월에 힘을 모두 되찾을 정도까지 레벨을 올린단 말인가?
‘슬슬 소형 던전을 벗어나야 하나?’
허나, 중형 이상의 크기를 가진 던전부터는 2인 파티로 허가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제대로 된 공략대에 참가하거나 길드에 가입해야만 손을 댈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내게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다.
‘…귀찮아. 나가기 싫어.’
최근 들어 사람과 대화를 너무 많이 했다. 예전에 비해 부작용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무언가 정신적으로 소모가 심하다.
일단은, 여러모로 휴식이 필요했다.
퍼어엉!
【승리!】
퍼엉!
【패배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나 게임에 빠져 있었을까, 나는 어느 순간 예상치도 못한 충격적인 사실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그랜드마스터 : 642P】
‘점수가, 그대로야…….’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전보다 레벨이 꽤나 올랐고, 그에 따라 내 신체적 피지컬도 올라갔으니까.
점수가 오르면 올랐지 내려갈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수는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
그저 현상 유지가 계속될 뿐이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내 뇌지컬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듯 계속해서 게임을 돌렸다.
펑!
【승리!】
퍼엉!
【패배하였습니다!】
퍼어엉!
【패배하였습니다!】
【그랜드마스터 : 632P】
“그, 그럴 리가…….”
나는, 이윽고 절망에 빠졌다.
#
백서하는, 최근 상당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오빠가 했던 말들이, 전부 진짜일지 모른다고?’
얼마 전 협회의 고위 인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신기록이요?”
[예, 그렇습니다. 현 S랭크들의 신인 시절과 비교해도 명백히 우위를 점했습니다.]협회장의 심복으로 통하는 서인재는, 그 뒤로도 조심스레 협회 측 의견을 전달해왔다.
[그러한 부분들을 생각해 볼 때, 아무래도 정황상…….]확실히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허나 여전히 가장 큰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만일 정말로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나요?”
훤칠한 남아였던 백은하는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대인 기피증을 비롯한 각종 정신 질환으로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정말 백은하가 이계의 강대한 네크로맨서였다면, 대체 그런 꼴로 변하게 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그 부분은 솔직히 저희로서도 의문점이 남습니다. 그래서 확인을 부탁드리고자…….]“…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거기까지가 약 이틀 전, 백서하가 현재까지도 깊은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
‘만일 진짜라면, 너무 미안한데…….’
자신의 속사정을 필사적으로 고백한 백은하를, 그동안 환자 취급한 채 의도적으로 무시한 꼴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줄곧 고민하던 백서하는 결심했다. 역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는 수밖에 없다고.
가만히 있어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으니까.
터벅.
터벅.
달칵!
“오빠. 그, 할 얘기가…….”
“읏.”
무심코 노크도 없이 방에 들어가 버린 백서하가 본 것은, 제 오빠가 바닥에 앉아 양손을 들고 지긋이 스케치북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방에는 이미 사용한 듯 뜯어진 페이지가 이리저리 흩어져있었고, 그 여기저기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그릴법한 여러 모양의 도형들이 울퉁불퉁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
“이, 이건. 저기, 뇌지컬 훈련 때문에…….”
“…아, 그. 방해해서 미안해.”
달칵.
그 광경이 왠지 모르게 어울려, 자칫 무심코 웃음소리를 흘려버릴 뻔했다. 백서하는 서둘러 문을 닫고 나오며 곰곰이 생각했다.
‘저게, 죽음의 군주……?’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