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48
“큿.”
스걱!
터억.
잭슨은 악에 받쳐 후들거리는 팔로 칼을 내질렀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손쉽게 페네로체의 팔에 저지되었다.
파악!
어떻게든 정신을 차린 채 뒤로 도약한 잭슨이 무언가 체념한듯한 웃음을 흘렸다.
“여기서 이런 꼴을 당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탈출은 요원할 것 같군요.”
“알면 빨리 고르기나 해.”
허나 잭슨은, 포기하지 않은 채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 스킬을 실전에서 써 보는 건 처음입니다만.”
아직 무언가 수가 남아있었단 말인가? 진중히 상황을 지켜보는 나를 바라보며 잭슨이 최후의 스킬을 발동했다.
“투신의 부름.”
쿠우웅.
황색의 마력이 한순간에 시야를 가득 뒤덮었고, 잭슨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강화 스킬과는 다르다.
마력이 무차별적으로 폭주하듯 사방에 흘러 넘치고 있었다.
‘광폭화 계열의 스킬인가.’
한마디로 잭슨은, 이후의 일을 포기한 채 마지막 특공을 벌여오겠다는 것으로 보였다.
“절대로 쉽게 죽어주진 않겠습니다.”
상당히 강대한 기세다. 그것을 살피던 나는 황급히 페네로체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마무리 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콰아앙!
서거억!
한순간에 돌진한 페네로체가 등 뒤의 다리를 휘둘러 잭슨을 베어 넘겼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이 늦었다.
마지막 일격이 가해지기 전 잭슨의 스킬이 한발앞서 완성되었다.
투콰악!
우드득!
강렬한 힘이 담긴 실드 차지에 휘두른 다리가 꺾여나갔고, 이윽고 쏘아진 검격에 어깻죽지는 완전히 잘려나갔다.
공격을 포기하고 후퇴한 페네로체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해왔다.
“힘이 부족합니다. 출력을 높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 지금은 이게 최댄데.”
“대체 얼마나 약해지신 겁니까?”
역시 A급은 A급이라는 것일까, 마지막 수단을 감행한 잭슨의 저력은 실로 대단했다.
스스로의 힘을 체감한 잭슨이 광소를 흘렸다.
“어디 다시 한번 생쥐처럼 숨어 재롱이라도 떨어보시죠. 지금이라면 그 고치도 어렵지 않게 부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콰아앙!
콰가각!
이어진 잭슨의 돌격에 페네로체가 대응했지만, 이미 힘의 크기부터가 완전히 열세였다.
등에 있는 팔 두개를 추가로 날려 먹은 페네로체가 불만족스러운 기색으로 내게 읊조렸다.
“인간형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본체로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지금 그걸 감당할 여력이…….”
“이대로 제가 행동 불능에 빠진다면, 지금의 군주님은 손쉽게 살해당할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페네로체의 요청에 응했다.
“허, 허가할게.”
“감사합니다.”
후우웅.
촤라락!
뒤로 물러난 페네로체의 몸 전체가 순식간에 검은색의 거미줄로 뒤덮였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내 마력과 사기가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으읏.”
역시 힘이 부족했는지, 그에 더해 생기마저 빼앗겨나가고 있다.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느 정도 고치의 크기가 커지자, 나는 황급히 힘의 연결을 끊어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대체 무슨 짓을…….”
파사악!
[키리릭. 키익.]2미터가 넘는 거대한 고치를 가르고 나온 것은, 검은색의 갑각으로 온몸을 뒤덮은 채 섬뜩한 사기를 가득 내뿜고 있는 거미였다.
단지, 그곳에 더이상 인간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힘이 부족한 탓에 본래 크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야말로 검은 숲의 주인으로 군림했던 포식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위용에 압도된 잭슨이 불안감을 떨쳐내듯 소리치며 돌격했다.
“크기만 늘려봤자 소용없습니다!”
파악!
콰가각!
하지만 크기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페네로체의 몸을 손쉽게 가르던 잭슨의 참격이, 갑각을 반도 갈라내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악하는 잭슨을 상대로, 페네로체는 아까 전 당한 것의 분풀이를 하듯 매서운 공세를 이어나갔다.
콰앙!
쾅!
콰아앙─!
“크아악!”
그게 맞서 잭슨 역시 모든 힘을 불태우며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콰직!
빠가각!
서걱!
주변 지형이 손상될 정도로 규모가 커져 버린 싸움.
방어를 도외시한 잭슨의 공격에 페네로체 역시도 상처를 입어나갔지만, 더욱 손해를 입은 쪽은 잭슨이었다.
“투쟁의 칼날!”
콰아앙!
마지막 힘을 짜낸 회심의 일격도, 큰 의미는 없었다.
애초에 저 상태가 된 페네로체는 적어도 A랭크 상위권 헌터와 비등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잘 쳐줘야 A랭크 평균에 위치한 잭슨에게는 솔직히 버거운 상대였다.
푸화악!
촤라락!
결국, 잭슨은 이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하고 처참한 꼴이 되어 거미줄에 묶인 채 구속 되고 말았다.
“허억. 헉. 크윽.”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 앞으로 가 잭슨에게 최후통첩을 알렸다.
“시간 없어. 10초 안에 골라.”
“…자, 잠깐.”
더 이상 반격의 여지를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 내 단호한 눈빛에 잭슨은 다급함에 휩싸여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를 죽이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뒷배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구질구질하네.”
푸우욱!
“컥! 크헉!”
나는 바닥에 떨어진 잭슨의 칼을 주워 그대로 심장을 찔렀다.
반지의 효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들어줄 시간은 없었으니까.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잭슨은, 흐려지는 눈빛 속에서 저주를 담아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하, 하데스가. 케흑!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추욱.
그렇게 허물어진 잭슨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침묵했다.
‘하데스?’
무언가 말한 것 같기는 했지만, 머리가 어지러워 잘 듣지 못했다.
관심을 접은 나는 품에 손을 넣어 지난번 얻었던 B랭크 보스 몬스터, 도플갱어의 마석을 꺼내 들었다.
“하여간, 빨리 좀 고르라니까.”
푸욱.
심장에 있던 검을 빼낸 나는, 그 사이로 도플갱어의 마석을 집어넣은 뒤 사기를 담아 주문을 외웠다.
“언데드 콜(Undead call).”
후우웅.
A랭크 헌터의 강인한 육체와 영혼, 그리고 사전에 사기를 잔뜩 담아둔 고등급 마석까지.
이 정도의 재료가 모였다면 내 기준에서도 꽤나 괜찮은 언데드를 만들 수 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결정을 내린 채 의식을 속행했다.
‘…기사는 뭔가 안 어울려.’
이런 좀스러운 녀석에게 죽음의 기사라는 이름은 사치다.
분명 세간에서 지치지 않는 투사라 불렸다 했던가?
그렇다면 딱 좋은 개체가 있다.
속칭 지옥의 투사라 불리며, 강력한 근접전 능력과 뛰어난 내구성을 갖춘 스켈레톤 계열의 상급 언데드.
후우웅.
우득!
우드득!
콰지직!
마석에서 흘러나온 사기에 의해 잭슨의 시체가 뒤틀리고, 변형되어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사기에 물든 뼈를 갑옷처럼 두른 채 그 속을 타오르는 영혼으로 가득 채운 전사였다.
“둠 워리어.”
푸화악.
완성된 육체로부터 막대한 사기가 넘쳐흐르듯 뿜어져 나왔고, 머지않아 그는 현생의 허물을 벗어 던진 채 새로이 죽음의 종으로서 재탄생되었다.
나는 그런 잭슨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혼이 상당 부분 열화된 탓이다.
나는 완전히 언데드가 되어버린 잭슨에게 한 번 시선을 던져주곤, 곧바로 사령술을 통해 그를 매개체로 되돌렸다.
약소한 의식만으로 만든 탓에 그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간단히 불러낼 수 있는 만큼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모든 싸움이 끝나자, 한쪽 구석에 있던 송하연이 황급히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보면 몰라?”
“분명 단숨에 처리할 것처럼 말씀하셔놓고서는, 지켜보다 조마조마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 솔직히 지는 줄 알았어요.”
“아, 아직 레벨이 낮아서 그래.”
제아무리 A랭크 헌터라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고전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게 딱 A랭크 평균 정도의 실력.’
나는 잭슨과의 전투를 곰곰이 되새기며 기억 한 구석에 저장해두었다.
‘쉽지 않네.’
이번 싸움으로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S랭크에 가깝다 여겨지는 A랭크 최상위권 헌터들과, 인간의 틀을 벗어났다고 평가되는 S랭크 헌터들.
지금 상태로 그들과 대적하게 된다면 싸워 이기기는커녕 스스로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불쾌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레벨을 더 올려야 해.’
막상 싸워보니 실감이 났다.
지금 이 세상에는 내 목숨을 넘볼 수 있는 존재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까 보니까 저쪽 거래는 끝난 것 같던데. 슬슬 돌아가실 거에요?”
그런 송하연의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갑자기 정신이 흐려지며 몸을 지탱하던 힘이 쭉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흣.”
나는 당황하며 그대로 축 늘어져 바닥에 엎어졌다.
철퍼덕!
“스승님?”
송하연이 의문을 담아 물어왔지만, 나는 도저히 정상적으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모, 못 움직이겠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죽음의 서를 무려 두 번이나 사용한 데다가, 페네로체의 본체를 불러오는 데 힘을 크게 소모했다.
거기에 때마침 반지의 효과조차 사라진 참이다. 나는 밀려오는 탈력감과 고통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어휴. 내 이럴 줄 알았어. 괜찮으세요?”
“읏. 주, 죽을 것 같아…….”
울상을 지은 채 몸을 바르작거리는 나를 보며, 송하연은 스켈레톤 매셔 두 마리를 소환해 환자를 옮기듯 나를 들어 올렸다.
“…나중에 괜히 또 뭐라 하지 마세요?”
그렇게 나는 누운 자세로 매셔의 손에 들려 운반되어갔다.
“우읍. 좀 더 떨어져…….”
“이미 10미터나 비켰는데요? 여기서 더 떨어지면 제대로 컨트롤이 안 돼요. 어떻게든 참으세요. 좀.”
“우으읍.”
그것은, 왠지 모르게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