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48
148. 가족을 이루는 것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을 즐겨 쓰지 않는다. 아니, 즐겨 쓰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관용어로써 알고 있을 뿐, 쓸 일은 없었다.
때로는 과장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빠아아아아…….”
지율이의 뺨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보니 문자 그대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심장이 제 위치에 머물지 못하고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분.
세상이 무너져 내 위를 덮은 뒤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느낌.
나는 휘청일 뻔했지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지율이의 곁으로 다가섰다.
“왜 그래? 왜 그…….”
그때,
“우헤헤헤헤헤헤헤헥!”
고성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
내가 고성우를 힐끗 쳐다보는데,
“빠아아아아.”
지율이가 작은 도마를 들어 보였다. 도마 위에는 아이들용으로 나온 노란색 주방칼과 모양이 제각각인 양파가 늘어져 있었다.
“양파 매워.”
“어…?”
“양파가 너무 맵다.”
“응…?”
도마를 내려놓은 지율이가 손을 눈으로 가져가려 했다.
“어어어어, 비비면 안 돼. 그럼 더 매워.”
왜 우나 했더니 양파를 썰다가 운 것이었다.
“크하하하하학! 당황하는 것 좀 봐! 세상 무너진 줄 알았다! 으히히히힉!”
고성우는 아직까지도 웃고 있었다.
“너 이…….”
마음 같아서는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망할 놈.”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무룩이가 고성우의 어깨로 올라탔다.
“응?”
고성우가 당황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팡팡팡팡팡.
무룩이가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머리를 때렸다.
“시, 끄, 럽, 다, 냥!”
“엇, 어어? 너 이 녀석이…!”
고성우가 손을 뻗었을 때 무룩이는 이미 바닥으로 착지한 뒤였다.
“잘했어 무룩아!”
그때 지율이가 나를 건드렸다.
“빠아, 매워어어어.”
“아직도?”
“매워… 어?”
지율이가 당황스럽다는 듯이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안 맵네?”
“눈물을 많이 흘려서 다 씻겨내려간 거야.”
“아?”
“이제 안 맵지?”
“응! 행복해졌어! 우는 게 나쁘지만은 않네?”
“아니, 그래도 우는 게 좋은 건 아니지.”
“지금은 울어서 괜찮아졌잖아?”
“그냥 눈물을 흘린 거랑 운 거랑은 좀 다르니까.”
“어떻게?”
“어, 그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는데 고성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율아, 하품해도 눈물 나지?”
“응!”
“지금 양파 썰 때도 눈물 났고.”
“응!”
“근데 슬프지는 않았지?”
“응!”
“그런 거야.”
뭔가 대충이다 싶었는데 지율이는 그럭저럭 납득한 것 같았다.
“손 씻어. 그러다 눈 비비면 매우니까.”
“응!”
나의 말에 힘차게 대답한 지율이는 손도 기운 넘치게 씻었다. 물이 사방팔방 다 튀었고, 물을 맞는 쪽으로 얼굴을 당기듯 인상을 찡그리던 무룩이가 짜증을 냈다.
“물 튄다냥!”
그러자 지율이는 신이 났는지 아예 손에 물을 담아서 뿌렸다.
“으냐앙!”
무룩이는 짜증을 내며 휘리릭 도망갔고, 지율이는 까르르 웃었다.
“넌 인마, 지율이 수경이라도 씌웠어야지.”
내가 뭐라고 하자 고성우가 하하 웃었다.
“뭔 양파 써는데 수경까지. 지율이가 도와준다고 해서 시켰지.”
고성우는 피식 웃으며 양파를 썰기 시작했는데,
“어우…….”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끔벅거렸다.
“이거 엄청 맵네…?”
“거봐, 인마. 너한테도 매운데 지율이한테는 얼마나 매웠겠어.”
그때 손을 씻던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빠아! 이것 봐!”
비누로 손을 뽀득뽀득 씻던 지율이는 거품이 잔뜩 일어난 걸 자랑하듯 보였다.
“예쁘지?”
나한테 비눗방울이 감흥이 있을 리 없었지만, 이럴 때 리액션이 중요한 법.
“우와아아아아아아! 비눗방울이네? 막 무지개 색깔도 보여! 대단하다아아아아!”
손을 비비던 지율이가 눈을 끔벅거리다가 입을 뗐다.
“……빠아.”
“응?”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
“어? 어어, 그래…….”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나는 일부러 리액션을 크게 한 건데. 은근히 조금 서운하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비눗방울로 지율이가 리액션을 크게 하게 만들겠다는 오기.
나는 쇠젓가락 하나를 집어 들어 동그랗게 말았다.
“지율아.”
“응! 빠아!”
비눗물을 묻힌 다음 입을 모아 천천히 바람을 불었다.
동그란 비눗방울이 똑 떨어져 허공을 떠다녔다.
“오오? 우와! 우와아아!”
지율이는 검지를 세워 비눗방울을 가리키며 파닥거리듯이 팔을 흔들었다.
비눗방울은 조용히 터지며 사라졌다.
“빠아! 빠아아아아!”
“알았어, 알았어.”
나는 웃음을 겨우 가라앉히고는 다시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우와아아아아.”
지율이는 비눗방울을 받아먹을 듯이 입을 크게 벌린 채 고개를 들었다.
“먹으면 안 돼?”
나의 말에 지율이는 심통이 났다는 듯이 양쪽 손등을 옆구리에 댄 채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아이 참! 아빠는 내가 바보인 줄 아나.”
“하하하하하! 아니지, 그렇지. 우리 지율이 엄청 똑똑하지.”
다시 비눗방울들을 만들었는데, 어느새 아이들도 전부 모여들었다.
“냥! 냥! 냥! 냥!”
무룩이는 비눗방울이 떨어지는 족족 앞발로 쳐서 터트렸다.
“봐라냥! 내가 이렇게! 강력하다냥! 냥냥냥냥냥냥!”
곰곰이와 삐삐도 떨어지는 비눗방울들을 톡톡 터트리며 놀았다.
“흐으으음.”
어느새인가 싹이도 와서는 꽤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싹아! 예쁘지?”
지율이가 묻자 싹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법… 흥미롭군.”
그때 지켜보던 고성우가 손짓을 했다.
“토일아, 비눗방울 더 많이 만들어봐.”
내가 연속해서 비눗방울을 만들자 고성우가 냉기를 뿜어내 전부 얼렸다.
고성우의 손끝부터 이어져 허공에 얼어 있는 비눗방울들은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렸다.
“우와아아아아, 예쁘다아아아아…….”
지율이는 얼어 있는 비눗방울보다 더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지율이의 작은 등에 손을 얹었고, 아이들 모두 모여서 비눗방울을 바라봤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감상에 젖었고, 고성우는 언제쯤 손을 내릴 수 있을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 * *
고성우가 한 음식은 카레였다.
인도식도, 일본식도 아닌, 한국식이라고 할 수 있는 카레.
건더기가 듬뿍 들어가 있고, 버터가 들어가지 않아서 맛이 깔끔하며, 노란빛이 진했다.
고슬고슬 잘 지은 쌀밥에 카레를 얹기만 하면 완성.
“엇! 내가 썬 양파야!”
지율이가 숟가락으로 세모 모양의 양파를 들어 보였다.
“그러게. 지율이가 썬 거네.”
“히히히.”
“많이 먹어.”
“응!”
지율이는 일일이 인사를 했다.
“삼촌, 잘 먹겠습니다. 아빠! 맛있게 많이 드세요오오. 다들 많이 먹어.”
모두들 처음 접하는 카레에 조금도 거부감이 없었다. 고성우가 의외로 꽤 잘 만들기도 했고.
“빠아! 이거 되게 맛있다!”
지율이가 말하자 고성우가 으스댔다.
“그치? 삼촌이 만든 카레는 최강이야.”
“오오오오…! 최강인 거야?”
“그럼!”
“이게 최강의 맛인 거구나?”
“그렇지!”
지율이는 기운찬 눈을 반짝이며 카레를 크게 한 술 더 떠서 먹고는 말했다.
“카레는 최강이네! 최강으로 맛있어!”
한바탕 웃으며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지율이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듯 허공에 시선을 뒀다.
“지율아? 무슨 생각해?”
내가 묻자 지율이는 묘하게 한숨이 섞인 듯한 목소리를 냈다.
“나도 결혼하고 싶다.”
지율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푸훕!”
물을 마시던 고성우도 고개를 돌려 내뿜고 말았다.
“아까운 물을 낭비하지 마라.”
싹이는 고성우를 나무라듯 말했다.
“결혼이 하고 싶다고?”
“응!”
“가, 갑자기 왜?”
지율이는 양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걸친 채 양손으로 꽃받침을 했다.
“결혼식에 다녀왔잖아? 언니 드레스도 너무 예쁘고, 결혼식장도 너무 예쁘고, 꽃들도 예쁘고, 막 위에 전등도 예쁘게 달려 있고, 다 너무 예뻤어.”
“아, 그래서어어.”
순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생겼나 하고 긴장했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나도 벌써부터 이러는구나. 지율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
“빠아! 나 결혼하고 싶어!”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는데, 고성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떽!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니야.”
지율이는 순수하게 물었다.
“왜?”
“결혼은 어른이 돼서 하는 거야.”
“그래? 하지만 하고 싶은데.”
“결혼식처럼 예쁜 거는 따로 하면 되지.”
“진짜?”
“응. 삼촌이 도와줄게.”
“그래도 결혼도 하고 싶은데. 아빠랑 하면 안 되는 거지?”
나는 방금 소원을 이뤘다. 아마도 딸을 가진 세상 모든 아빠들이 가지는 꿈.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래요’라는 말을 듣는 것. 더 이상 소원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고성우는 큭큭거리며 웃다가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하지.”
“아쉽네에에에.”
잠시 고민하던 지율이가 고성우를 바라봤다.
“삼촌.”
고성우는 왠지 모르게 기대하는 눈빛인 듯했다. 그래도 ‘아빠 다음은 삼촌이지?’하고 묻는 것 같았다.
“삼촌은 왜 결혼 안 했어?”
“……어?”
“삼촌은 어른이잖아. 근데 왜 안 했어?”
“삼촌이야 뭐, 딱히 인연이 없었지.”
“인연?”
“응. 뭐, 그, 있어. 엮이는 거.”
지율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고, 당황한 고성우는 아무 말이나 늘어놓고 있었다.
“아무튼 간에, 삼촌이 눈이 높아서 그래.”
“신부가 없다는 얘기지?”
“어, 어? 뭐, 그렇긴 한데…….”
“그럼 못한 거네?”
“뭐? 못하긴 누가 못해. 안 한 거지.”
“하지만 결혼은 혼자 못하는 거 아니야?”
“그건…….”
당황하던 고성우가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다.
“요즘은 혼자서도 해.”
“혼자서도?”
“어. 싱글웨딩 같은 것도 있어.”
“그렇구나아.”
나는 대화에 끼어들기를 포기한 채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는데 손에 무언가 부드러운 게 닿았다.
“응?”
인형처럼 변한 헬하운드였다. 녀석은 그새 내게도 정이 들었는지 얼굴을 들이밀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래,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헬하운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살면서 결혼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다. 딱히 원하지도 않았고.
결혼은 결국 가족을 이루는 것이고, 나는 평생 혼자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지율이, 무룩이, 곰곰이, 삐삐, 싹이, 고성우 그리고 지금 옆에 와서 애교를 부리는 헬하운드까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가족은 이뤘다.
“너 왜 그렇게 웃냐?”
고성우의 물음에 내가 되물었다.
“어? 뭐가?”
“뭐긴 뭐야, 방금 되게 응큼하게 웃고 있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 갑자기 싹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나도 봤다.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듯한 얼굴이었다.”
“싹이 너까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곰곰이와 삐삐는 내가 수상하다는 듯이 둘이 속닥거렸다.
“곰곰곰곰.”
“삐삐삐.”
“고옴, 고옴.”
“삐삐삐삐.”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둘이 뭐라고 하는 거야? 너희들, 이상한 소리하지 마.”
무룩이는 양 앞다리를 ‘X’자로 교차한 채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왜 그렇게 쳐다봐?”
내가 묻자 무룩이는 꼬리를 좌우로 살랑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다들 편안해하는 것 같구냥.”
“응?”
무룩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의자 위에서 그대로 드러누웠다. 통통하고 새하얀 배가 드러났고, 머리도 완전히 의자에 대고 있어서 턱도 보였다.
편안하게 늘어져 있는 무룩이를 보고 새삼 깨달았다.
가족들과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하구나.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4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