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313
313. 부드럽고 달콤한
지율이가 노는 동안 나는 채소희와 대화를 나눴다.
어느새 우리는 동네 아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채소희가 시계를 슬쩍 쳐다봤다.
슬슬 일어날 때인 모양이다.
부담 없도록 내가 먼저 입을 떼려는데, 채소희가 조금 멋쩍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뭐를 그렇게 경계했던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눈에 살짝 힘을 주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이렇게 좋으신 분인데, 애초에 아까 따님과 같이 계셨는데, 저는 뭐를…….”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요.”
“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모든 게 거짓말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전부 위장이고, 사실은 이 세상을 지배하려는 계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죠.”
“핫.”
채소희가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웃었다.
“생각보다 짓궂으시네요.”
“악당 나오는 만화를 많이 보다 보니까요.”
나는 지율이를 눈짓으로 가리키고는 말했다.
“덕분에 말이죠.”
“……그러게요.”
채소희는 잠시 자신의 손 쪽에 시선을 뒀다가 말했다.
“사실 저는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당연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아이들이라서 갖는 감정 있잖아요? 그냥 애라서 귀엽구나, 그 정도. 그래서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아이는 가질 생각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럴 수 있죠. 전부 자신의 선택이죠. 그 선택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요.”
“그러니까요. 지율이를 보니까 한 번에 마음이 바뀌려는 거 있죠?”
“제 딸이라 그러는 건 아니고, 지율이가 많이 특별하기는 하죠.”
“그러니까요.”
채소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토일 님께서 진짜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요?”
“네. 지금 가지신 힘 자체가 그렇잖아요.”
“뭐… 남들 마력처럼 감지가 안 된다는 거 말고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요.”
짧지 않은 시간 수다를 떠는 동안 풀어놓을 이야기는 전부 풀어놓았다.
물론, 휴도에 관한 이야기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에 대한 것은 다 털어놨다.
다른 말로는 별로 얘기한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소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기는 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하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휴도에 대해 아는 이는 적다.
“그렇게 얘기하면 또 그렇기는 하지만요. 아무튼 제가 드리려던 말씀은…….”
채소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떤 것들은 굳이 속에 뭐가 들었나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가끔은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나 할까요?”
“보통은 그 반대인데 말이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세상에 알 수 없는 게 많죠.”
잠시 웃음이 흐르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어느새 우리의 옆으로 다가와 있는 지율이.
“어우 깜짝이야.”
“깜짝 놀랐네.”
나와 채소희가 놀라자 지율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 때문에 놀랐어? 아하하핫!”
나는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놀랐네.”
“무서웠어?”
“무섭지는 않았고. 지율이 보고 왜 무서워.”
“그건 그래.”
눈치를 보던 채소희가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는데 이미 계산이 돼 있었다.
“네? 어떻게…….”
내가 당황하자 채소희가 웃으며 말했다.
“아까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할 때요.”
“아니, 제가 사야 하는데…….”
“저 때문에 이렇게 자리가 마련됐는데 제가 사는 게 맞죠.”
“아니, 그래도요. 저희는 입이 두 개잖아요.”
얘기를 듣던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요. 내가 많이 먹었는데.”
채소희가 웃으며 지율이와 눈을 마주쳤다.
“지율이 먹는 거면 얼마든지 사줄 수 있어.”
“진짜요? 왜요?”
“너무 귀여워서.”
“저도 나중에 돈 벌면 언니 맛있는 거 사줄게요. 언니 착하고 예쁘니까.”
“고마워. 기대할게.”
그렇게 나가려는데 채소희가 카페 사장에게서 쇼핑백을 건네받아 내밀었다.
“이건 뭐죠?”
나의 물음에 채소희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여기 카페가 빙수 말고 카스테라도 꽤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샀어요.”
“아니… 카스테라인데 왜 쇼핑백이 네 개나…….”
“어떤 맛을 좋아할지 몰라서 종류별로 샀어요.”
채소희는 손이 굉장히 큰 듯하다.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내가 먼저 고개를 꾸벅이자 지율이도 힘찬 목소리를 냈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지율이 다음에 또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니한테 말해.”
채소희는 이미 지율이의 사촌언니라도 된 것 같았다.
“아니에요, 다음에는 제가 언니한테 맛있는 거 줄 거예요.”
지율이가 말하자 채소희가 또 활짝 웃었다.
처음에는 꽤 딱딱한 인상이었는데, 어느새 채소희의 눈은 가늘어진 채 굳어버린 것 같았다.
“알았어, 나중에 맛있는 거 또 같이 먹자.”
“네, 언니!”
“또 보자.”
그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생겼다.
* * *
채소희와 인사를 나누고 강척 마리나항으로 향했다.
“이제 집에 가야지?”
나의 물음에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얼른 카스테라가 먹고 싶어.”
“하하하, 또 먹고 싶어?”
“또 먹고 싶으면 안 돼?”
“아니, 안 되는 건 아니지. 근데 금방 배고파졌나 해서.”
“빙수는 원래 배 안 부른 거야.”
먹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철학이 있는 것 같다.
“근데 빠아.”
“응?”
“카스테라는 어떤 맛이야?”
그러고 보니 지율이는 카스테라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음… 부드럽고 달콤해.”
“그럼 맛있는 거네?”
“그렇지. 부드럽고 달콤하면 맛있다고 할 수 있지.”
“애들도 엄청 좋아하겠다.”
“그럴 거야.”
“언니가 많이 챙겨줘서 애들도 다 먹을 수 있겠어.”
언제나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지율이가 기특하다.
“그러게. 고맙네.”
“우리도 다음에 허니포켓 줄까? 제일 달콤하고 맛있잖아.”
“그래, 그러자.”
휴도에서 나는 허니포켓이 전 세계를 통틀어서 최상등품이니 아마 채소희도 먹어본 적이 없겠지.
강척 마리나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지율이가 먼저 고개를 홱 돌렸다.
왜 그러나 싶은 찰나, 나도 강력한 마력을 느꼈다.
마력의 흐름으로 보아 마수가 확실했다.
웬만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보통 마수가 나오는 차원문이라면 이미 헌터들이 포진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뿜어내는 마력이 너무 강력했다.
이 정도면 예전의 핫도그와 비슷한 수준.
웬만한 헌터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잠깐 들렀다 갈까?”
나의 물음에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지율이를 안은 뒤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곧바로 날아올라 마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마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한 나는 인상을 팍 구겼다.
“저건 또 뭐야…?”
보라색 차원문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빨간색 차원문과 파란색 차원문의 특성이 뒤섞인 것이었는데, 공격적인 마수나 종족이 나왔다.
보라색 차원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큰 몸집을 가진 마수였다.
“우와, 소다 소.”
지율이가 웃으면서 아래를 가리켰다.
차원문에서 나온 마수는 소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황갈색 털이 덮인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장류와 같은 형태였다.
마수는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미노타우로스.
신화에 나와야 할 괴물 아닌가.
“지율아, 위험하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지율이를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에 뒀다.
아무리 멀어도 나는 지율이의 위치를 찾을 수 있고, 충분히 안전한 곳이었다.
“걱정 말거라.”
지율이의 손목을 휘감은 싹이뱀이 쭉 늘어났고, 곧바로 싹이꽃이 피어나 그 가운데서 싹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고마워.”
내가 말하자 싹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스테라라는 게 궁금하구나.”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금방 끝내고 돌아갈게.”
그렇게 지율이와 싹이를 남겨두고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치지지지지지징!
푸른빛의 전기가 허공에서 내려와 둥글게 벽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는 미노타우로스가 자리했다.
전기를 다룬 것은 채소희.
“역시나 오셨군요.”
채소희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예, 뭐…….”
주위에 다른 헌터가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채소희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래도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말이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이곳에 배정을 받았네요.”
“뭐… 웬만한 헌터들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긴 하죠.”
채소희가 양손에 스파크를 일으키며 미노타우로스를 노려봤다.
어느새 차원문과 완전히 분리된 미노타우로스는 곧장 스스로를 과시하듯 괴성을 질렀다.
“무오오오오오오오오오!”
채소희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는 대상은 아닌 것 같아요.”
그녀는 양손에 스파크를 더욱 강하게 일으키며 미노타우로스를 노려봤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요.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네?”
“마수지만 진심은 통하지 않을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말을 알아듣고 그냥 돌아갈지도 모르는 거니까요.”
“저 마수는 엘프가 아닙니다.”
“그냥 말이나 걸어보는 거죠.”
그때 미노타우로스가 두 눈을 노란빛으로 빛내며 금방이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무오오오오오오오오!”
뒤쪽의 보랏빛 차원문은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야, 그냥 돌아가 주면 안 될까?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는 원래 세상에서 그냥 평화롭게 살면 좋잖아.”
“무?”
미노타우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지켜보던 채소희가 당황했고,
“음…?”
말을 한 나도 당황했다.
그냥 반장난으로 말이나 한 번 해본 거였는데.
“내 말을 알아들어? 그럼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 싸워서 좋을 거 없잖아?”
내가 말하자 미노타우로스는 조금 전의 공격성이 완전히 사그라졌다.
“무우우?”
이상하게도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냐고? 그냥 여기는 아예 다른 세상이야. 너도 지금 당황스럽지?”
나는 보랏빛 차원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그냥 다시 돌아가면 네 가족들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어.”
“무우우?”
미노타우로스는 진짜냐고 묻듯이 보랏빛 차원문을 가리켰다.
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진짜로.”
“무우우!”
미노타우로스는 조심스레 보랏빛 차원문에 다가섰다. 몸의 일부가 보랏빛 차원 안쪽에 들어섰다.
“무우? 무우우!”
익숙한 감각이었는지 미노타우로스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그래, 맞아. 거기로 들어가면 돼.”
“무우우!”
미노타우로스는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보랏빛 차원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랏빛 차원문도 소멸했다.
자리에는 나와 채소희 그리고 채소희가 만들어낸 전기벽만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러게요…? 진짜 말이 통하네요?”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아까 주신 카스테라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말했더니 되네요.”
“아니, 무슨 마수를 설득해요.”
그냥 내 말이 통한 게 아니었다.
칠석에 만난 견우가 선물로 준 능력 덕분이었다.
그림자에 숨어들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소를 치는 능력.
소를 치는 능력을 어디에 쓰나 싶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유용하게 됐다.
“말도 안 돼…….”
채소희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나는 그냥 씩 웃어 보였다.
“아까 얘기했었잖아요? 그냥 받아들이면 돼요. 잘 됐으니 됐죠 뭐.”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3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