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67
67. 동물원 (2)
“이야아, 생각보다 잘돼 있네.”
구정석이 동물원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지율이와 현백이를 향해 말했다.
“오늘 여기 있는 동물들 다 보고 가자!”
“네에에!”
“좋아요.”
도라경이 현백이의 수행원으로 구정석을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헌터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게 남달랐다. 보육교사 한 명을 고용한 느낌이었다.
“애들 잘 돌보죠?”
내가 고개를 돌리자 도라경이 말을 이었다.
“구 실장이요.”
“네. 유치원 선생님 해도 되겠어요.”
“기본적으로 애들을 좋아해요. 물론 그 이유만으로 고용한 건 아니지만요.”
“능력도 좋은 건 어제 확인했습니다.”
결계.
사실상 잠시 차원문을 닫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조건만 갖춰진다면 강력한 마수도 격리를 하는 게 가능하겠지. 생각 이상으로 희귀하고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셈.
“어제 얘기 들었어요. 저희 연구소 쪽으로 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네? 뭐가요?”
“직접 처리하실 수도 있는데 저희한테 넘겨주신 거잖아요.”
도라경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떠보는 건가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내게 악력으로 밀렸던 구정석이 보고를 했었겠지. 도라경은 당연히 내가 각성자인 줄 알고 테고.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각성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마력을 감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실제로 마력이 없는 수준이니까.
덕분에 나는 마력을 잘 숨기는 각성자로 비춰지고 있었다.
“개인보다는 팀이 낫죠. 확실히 해야 되니까요. 구 실장님도 도왔고.”
“맞아요, 정말 그래요.”
도라경은 공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저도 예전에는 혼자 다 가능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제 능력만 뛰어나면 된다고 말이죠. 근데 막상 일을 해보니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죠. 그리고 배웠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의지해도 괜찮더라고요.”
그녀는 바닥에 시선을 둔 채 배시시 웃었다.
“아직 버릇이 다 고쳐지지는 않았지만요.”
“뭐가 옳고 그르다기보다는 성향 같은 거잖아요.”
“맞아요, 성향, 성향이죠.”
“억지로 고칠 필요 있나요. 그렇다고 일부러 유지할 필요도 없고요.”
도라경이 피식 웃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렇네요.”
“그럼요. 어제 같은 경우도 그 순간에 가장 편리하고 좋은 방법을 택한 거죠.”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지율이하고 같이 있으셨는데 직접 대응하시지 않은 게 당연하네요.”
“뭐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런 것뿐이죠.”
도라경은 코로 숨을 크게 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동물원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쵸?”
나는 동물원에 오는 게 처음이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오니까 좋네요.”
도라경은 앞서가고 있는 지율이와 현백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현백이가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봐요. 지율이를 만난 뒤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어요. 저하고 관계도 훨씬 좋아졌고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저 아이를 압박했는지, 왜 이렇게 될 수 있는 걸 몰랐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수도 있죠.”
“저는 그래서는 안 됐거든요. 드래곤 연구소장이고, 드래곤 학회장이잖아요?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데…….”
“그건 그냥 드래곤 얘기죠.”
도라경이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현백이는 사람이잖아요.”
“아…….”
“같이 사람으로서 살고 있으시니 모르는 게 당연하죠.”
“……맞아요.”
“현백이도 자식으로 사는 게 처음이고, 소장님도 부모의 역할을 처음 맡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더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떻게 다 완벽하게 합니까. 맞춰나가는 거지.”
잠시 도라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이 귓속에 울렸다.
“빠아!”
지율이의 부름에 나는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응?”
“이것 봐!”
지율이가 검지를 세워 원숭이를 가리켰다.
돼지꼬리원숭이.
‘원숭이’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생김새. 꼬리가 돼지꼬리와 비슷한 것 외에 그리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원숭이야!”
지율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원숭이가 제법 충격적인 듯했다.
“빨라!”
원숭이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자기들끼리 털을 고르는가 싶다가 갑작스레 나무로 올라갔다.
원숭이 한 마리가 지율이 앞으로 왔다.
“앗! 왔다!”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는데, 원숭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바나나 조각 하나를 주워서 먹기 시작했다. 모든 손짓과 입을 오물거리는 것까지 빨리 감기를 한 것 같았다.
“바쁘게 먹네!”
지율이는 원숭이를 가리킨 채 말했다.
“천천히 먹어야 되는데. 그치?”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식사예절이 부족해.”
“하하하, 맞아.”
그때 구정석이 목소리를 냈다.
“지율아, 현백아. 여기 봐!”
아이들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구정석이 원숭이 흉내를 냈다. 혓바닥은 윗입술 안쪽로 넣어 인중을 볼록하게 만들고, 눈을 크게 뜬 채 손끝으로는 얼굴 옆을 긁었다.
세상에, 저게 언제적 제스처인지.
조금 촌스러워 보였다.
도라경도 본인이 창피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현백이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미소만 머금어 보였다.
구정석도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눈치를 살피며 시무룩해지려는 찰나였다.
“아하하하하핫!”
지율이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 웃겨요!”
표정이 확 밝아진 구정석은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우끼끼! 우끼끼! 우끼끼끼!”
구정석은 혼신의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자세를 낮추고, 이리저리 튕기듯 움직였다. 각성자라서 완벽하게 원숭이의 움직임을 따라 할 수 있었다.
“아하하하핫! 똑같아!”
“그, 그래?”
구정석은 더 밝아진 얼굴을 하고는 이리저리 뛰며 원숭이 소리를 냈다.
“우끼끼이익! 끼익끼익끼익!”
찬물을 끼얹은 것은 도라경이었다.
“그만해요.”
“우끼이?”
“그만하라니까요.”
“우끼끼?”
“그만……!”
어느새 사람들이 돼지꼬리원숭이 대신 구정석을 구경하고 있었다.
“끼끼끼끼끼…….”
구정석도 조금 부끄러웠는지 몸을 틀었다. 그리고 원숭이처럼 걷다가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걸음을 옮겼다. 마치 진화과정의 축약을 보는 듯했다.
* * *
동물원 나들이는 재미있었다. 온갖 마수들을 본 나였다. 동물들을 본다고 신기하고 새로울 것은 없었다. 실제로는 처음 봐도 이미 다 알고 있기도 했고, 마수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한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지율이와 함께인 탓이 제일 컸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동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다.
“빠아!”
지율이가 손을 뻗어 원숭이를 가리켰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흰색 바탕에 판다처럼 검은 눈두덩이, 개처럼 시커먼 코와 주둥이를 가졌다. 얼굴도 일반적인 원숭이와는 달랐다. 마치 강아지나 너구리 같은 생김새였다. 여우처럼 빵빵한 꼬리는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눈에 띄었다.
“얘는 원숭인데 원숭이 같지가 않네!”
“그러게.”
“귀엽다!”
지율이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여우원숭이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지율이를 눈에 담고, 사진으로 남겼다.
“원숭이…?”
구정석이 또 원숭이 흉내를 내려는 듯이 시동을 걸었는데, 도라경이 억제기가 되었다.
“그만해요.”
“넵.”
여러 동물을 차례로 보면서 지나갔다. 새로운 동물을 볼 때마다 지율이는 감탄사를 크게 내뱉었다. 현백이는 그런 지율이가 귀엽고 재미있는지 매번 활짝 웃어 보였다.
“앗! 사자!”
지율이는 사자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멋지다아아아…!”
그 바로 옆 우리에는 호랑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늬가 화려해!”
지율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무룩이가 더 멋져.”
조금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무룩이를? 사자랑 호랑이를 보다가?
“무룩이? 무룩이가 누구야?”
현백이가 묻자 지율이는 당당하게 대답했어.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야.”
“가족?”
“응!”
지율이는 무룩이의 생김새를 열심히 묘사했고, 현백이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미있는 눈썹을 가진 고양이네.”
“엄청 예뻐!”
“그런 거 같아.”
아무리 고양이과라고 해도 사자랑 호랑이를 보고 무룩이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데.
또 여러 동물을 보며 지나가는데, 반달가슴곰의 우리가 보였다.
반달가슴곰은 벌러덩 누워서 뒹굴고 있었다.
“아하핫! 게을러!”
지율이는 반달가슴곰을 가리키며 말했다.
“곰곰이는 부지런한데! 그리고 훨씬 커!”
얘기를 들은 현백이는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백이가 들은 바로 곰곰이는 곰인형이었으니까. 하지만 지율이가 엉뚱한 면이 있어서 그런지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또다시 여러 동물들을 살펴보고 돌아서 나오는 길, 가장 큰 우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낮은 울타리만 두른 공간.
코끼리.
“우와아아아……!”
지율이는 코끼리를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엄청 크다! 곰곰이랑 삐삐보다도 커!”
지켜보던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지율이 그 노래 알지 않아?”
“응?”
“코끼리 아저씨는?”
“아!”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코끼리 아저씨한테 과자 줘볼까?”
코끼리 간식을 구입하면 직접 주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울타리 건너편에서 간식을 들고 서 있기만 하면 됐다.
“자, 이거 손에 잡고 들고 있어봐.”
내가 지율이와 현백이에게 코끼리 간식을 건넸다. 둘은 손에 코끼리 간식을 쥐고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둘 다 묘하게 긴장한 얼굴이 너무 귀여웠다.
코끼리는 현백이의 앞으로 먼저 다가왔다. 기다란 코를 뻗어 현백이가 들고 있는 간식을 천천히 휘감았다.
“앗.”
코끼리가 간식을 가져가 입으로 옮기고는 맛있게 먹었다.
“와아…….”
현백이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찰칵. 찰칵찰칵.
구정석과 도라경은 쉬지 않고 촬영을 했다. 벌써 사진은 수백 번 찍었고, 영상까지 촬영했다.
하긴, 어떻게 보면 진풍경이었다. 마블 드래곤이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이라니.
“코끼리 아저씨! 이것도 먹어!”
지율이가 간식을 가볍게 흔들자 코끼리가 천천히 다가와 코를 뻗었다. 기다란 코가 지율이 손에 들린 간식을 감았다.
“헤에…….”
그때였다. 코끼리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율이가 손에 들고 있는 간식뿐만 아니라, 손목에 감고 있는 덩굴팔찌를 노렸다. 코끼리가 코끝으로 덩굴팔찌를 집는 순간이었다.
“안 돼!”
지율이가 다른 손으로 코끼리의 코를 때렸다. 파도가 치듯 철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빠오오오오!”
코끼리가 코를 황급히 거두고는 잠시 쿵쾅쿵쾅 발을 굴렀다.
“하하하하! 코끼리 놀랐나 보다!”
구정석은 그 광경이 재미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타격하는 소리가 꽤 컸는데, 지율이가 괴력을 발휘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듯했다.
지율이는 덩굴팔찌를 어루만지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거 싹이가 준 건데…….”
현백이는 지율이를 먼저 살피다가 코끼리를 보고는 당황했다.
“아…….”
코끼리의 눈 주변이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눈물 자국. 지율이가 코끼리를 울렸다.
“지율아.”
현백이는 지율이의 팔을 가볍게 문지르며 달래면서도 코끼리 쪽으로 시선을 줬다.
“코끼리가 울어.”
“코끼리 아저씨가 울어?”
지율이는 코끼리가 눈물을 흘린 것을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엇…….”
코끼리가 싹이에게 받은 덩굴팔찌를 먹으려고 해서 반사적으로 막은 것이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겠지.
우는 코끼리를 본 지율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앗, 그게……. 이잉…….”
나는 이미 코끼리 간식을 추가로 구입했다. 그리고 지율이에게 건넸다.
“코끼리 아저씨한테 간식 더 주자.”
“하지만…….”
“코끼리 아저씨는 그게 싹이가 준 건지도 모르고, 지율이에게 소중한 건지도 몰라서 그래. 그냥 그것도 간식이라고 착각한 거야.”
나는 지율이의 왼손을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
“여기, 팔찌 안 한 손으로 간식을 주면 코끼리 아저씨도 헷갈리지 않을 거야. 어때?”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식을 들어 올렸다.
“코끼리 아저씨! 간식이야!”
코끼리는 슬금슬금 다가와 코를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만 조금 전에 얻어맞은 기억이 강렬했는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조금 전에 때린 건 미안해! 화해하자! 응?”
지율이는 까치발을 들며 간식을 조금이라도 더 멀리 내밀려고 했다.
이내 코끼리는 천천히 코를 뻗어 간식을 받아먹었다.
“됐다. 화해했네.”
내가 말하자 지율이가 밝게 웃었다.
코끼리가 다시 코를 뻗었고, 지율이는 간식을 또 건넸다. 그러기를 수차례, 코끼리가 또 코를 뻗었다.
“이제 간식 없어!”
지율이가 손을 휘저었는데, 코끼리는 코를 가까이 뻗어왔다. 그리고 지율이의 손에 가만히 코를 가져다 댔다.
“……아까는 진짜 미안했어!”
지율이가 코끼리의 코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코끼리는 천천히 코를 다시 거두고는 울음소리를 냈다. 내게 코끼리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방금은 분명하게 이해했다. 괜찮다고.
“점심 먹으러 갈까요?”
도라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구정석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예! 먹을 때가 됐네요! 애들도 배고프겠어요! 얼른 가죠! 얼른!”
구정석은 돌아다니는 내내 메고 있던 빵빵한 가방을 툭툭 두드렸다. 도시락이었다.
다 같이 걸음을 떼려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뭐지? 착각인가?
다시 시선을 거두려는데 지율이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확신했다.
착각이 아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