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68
68. 동물원 (3)
지율이와 만나고 발달한 육감과 직감.
마력 감지를 넘어서는 무언가.
없던 감각이 생긴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옛날부터 그런 경험은 많았다.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면, 진짜로 누군가 쳐다보고 있곤 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려고 봤든, 불만이 있어서 눈을 흘겼든, 그냥 별 이유 없이 흘깃 봤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직 멀리서, 아는 사람을 발견한 내가 인사를 건넬 준비를 할 때, 갑자기 상대편이 내게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인사를 건네고는 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감각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예민하다. 그리고 그 감각이 극대화된 나의 느낌은 보통은 맞다.
내가 이런 감각을 가질 수 있게 한 지율이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나는 다시 지율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짭짭짭찹짭, 오독, 찹짭, 오도독.
앞머리를 길러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알파카가 무언가를 열심히 씹고 있었다. 하관은 작고 비뚤어진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턱만 따로 붙인 것 같았다.
“웃기게 먹어! 아하하핫!”
지율이는 알파카가 씹는 모양새를 따라 했다.
“어때? 똑같애?”
어설펐다.
“글쎄.”
구정석이 끼어들어서 화려한 턱관절을 자랑했다.
딱딱딱딱딱딱딱딱.
지율이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차고 넘쳤다.
“우와! 삼촌 엄청나다! 알파카 같아!”
항상 차분한 현백이조차 동공이 바삐 움직였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느낀 것은 기분 탓이었다. 아니, 내 감이 틀리지는 않았다. 알파카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점심 먹으러 가자아아아!”
구정석이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턱을 좌우로 흔들었다.
* * *
동물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면 공원 지역이 있었다.
“자, 다 준비됐습니다.”
구정석이 돗자리를 깔고, 배낭에서 도시락들을 꺼내서 쫙 깔았다. 사진으로나 봤던 예쁜 도시락이었다.
작은 경단처럼 만든 주먹밥 위에는 김을 오려서 각양각색의 표정이 생겼고, 데친 당근은 꽃이 된 상태였다.
소시지는 자그마한 문어가 되었고, 메추리알은 김과 당근을 작게 붙여 닭처럼 만들었다. 팽이버섯은 베이컨으로 이불을 덮었고, 소풍하면 빠질 수 없는 김밥들이 옆에 자리했다.
모양보다는 실속을 챙긴 불고기와 나물 반찬에 잡곡밥도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손잡이에 여러 동물 얼굴들이 자리한 이쑤시개들은 아기자기하게 썬 과일들 옆에 누워서 손길을 기다렸다.
“우와아아아! 너무 예쁘다!”
지율이는 도시락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다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구정석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전부 먹을 수 있어.”
“우와아아아……. 지금까지 살면서 먹는 것 중에 이렇게 예쁜 건 처음 봐요!”
엄밀히 말해서 지율이는 첫 돌도 한참 남았다. 도시락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치 아빠?”
지율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나네. 아빠도 이렇게 예쁜 도시락은 처음 봐.”
구정석은 검지로 코밑을 슥슥 문지르며 웃었다.
“힘 좀 썼습니다.”
설마 했는데.
“이거 전부 삼촌이 한 거예요!?”
지율이의 물음에 구정석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훗.”
“삼촌이 한 거예요!?”
“후훗.”
“삼촌이 했어요!?”
“후후후훗.”
“삼촌이 한 거예요!?”
“……훗.”
“삼촌이 한 거죠? 맞죠? 제 말 맞죠?”
지율이는 구정석이 명확하게 대답할 때까지 물어볼 기세였다.
“구 실장님이 하신 거 맞아.”
현백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지율이가 해맑게 웃는데, 구정석은 조금 서운한 듯이 말했다.
“현백이도 삼촌이라고 해도 되는데.”
현백이는 그런 구정석을 타이르듯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아직 어색해서 그래요. 조금 더, 더 지나면 그렇게 할게요.”
“그래, 꼭이다?”
“네.”
구정석은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말했다.
“아직 끝이 아니야! 하나 더 남았어!”
귀엽고 예쁜데 실용성까지 챙긴 도시락의 화룡점정은 큼지막한 보온통이었다.
“자, 개봉박두…!”
구정석이 보온통 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왼쪽은 전복 미역국, 오른쪽은 소고기 미역국.
도라경도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손바닥 크기의 예쁜 상자들이었다. 각양각색의 조각 케이크들을 늘어놨다.
“현백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도라경이 목소리를 높였고, 어느새 구정석이 초를 하나씩 꺼내들었다.
“지율이 생일 축하 노래 알아?”
도라경의 물음에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러본 적은 없는데요, 들어본 적은 있어요.”
“아직 불러본 적 없었어?”
“네!”
“그래? 맨날 조용히 보냈나 보네.”
“친구 생일은 처음이에요!”
“아, 그래? 하긴, 현백이도 친구를 초대하는 건 처음이니까.”
지율이가 아직 생일이라는 걸 맞이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 뻔했다. 내가 조치를 취할 필요도 없이 부드럽게 넘어갔지만.
“자, 그럼 현백이 생일 축하 노래를 하죠!”
구정석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후우우웁, 푸후우우우우우…!”
그의 호흡이 마력과 뒤섞여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내 우리 주변으로 장막을 만들었다.
결계였다. 구정석은 우리 주변으로 결계를 친 뒤 어둡게 만들었다.
엄청난 실력에 놀랐고, 생일파티를 위해 이런 능력을 쓰는 것에 또 놀랐다.
“우와! 깜깜해!”
지율이가 웃음 섞인 목소리를 내는 찰나였다.
우리 가운데서 불빛이 올라왔다.
초에 불을 붙인 도라경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는데, 나도 손뼉을 치며 노래했다. 나도 이제 애아빠가 돼서 그런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현백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지율이의 힘찬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와아아아아아!”
“야아아아아!”
다들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현백이도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현백이는 지율이를 꼭 끌어안았다.
“고마워 지율아.”
도라경이 촛불들을 가리켰다.
“불 꺼야지 현백아.”
그때 지율이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눈치 빠른 현백이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같이 하자 지율아.”
“정말? 그래도 돼?”
“그럼.”
“고마워!”
지율이와 현백이가 함께 촛불을 껐고, 그에 맞춰 구정석은 결계를 거뒀다.
“자, 이제 먹자아! 먹어요! 많이 드세요!”
구정석이 싼 도시락은 예쁜 만큼 맛있었다. 지율이가 잘 먹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위기감을 느꼈다. 나도 요리 솜씨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분하게도 구정석 정도는 아니었다. 요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 * *
“아하하하핫!”
지율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계속 웃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현백이도 계속 지율이와 함께 움직였다.
“역시 애들은 체력이 좋네요.”
구정석이 말하자 도라경이 피식 웃었다.
“그냥 애가 아니니까요.”
“앗. 어… 현백이야 당연하지만, 지율이를 보세요. 밥도 엄청 많이 먹고, 저렇게 바로 뛰어다니고…….”
구정석은 말을 하다가 아차 싶은 듯이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지율이 밥 먹자마자 저렇게 뛰어도 괜찮아요? 탈 안 나려나 모르겠네.”
“괜찮아요. 워낙 튼튼해서.”
“그런 거 같기는 해요.”
“그나저나 커피는 어떠세요?”
구정석은 주부로서 완벽한 사람 같았다. 마무리로 시원한 커피까지. 커피 맛도 상당히 좋았다. 휴도에서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 좋을 것 같은데.
“너무 좋네요. 그나저나 저는 따로 뭐 준비한 게 없는 거 같아서…….”
도라경이 웃으며 손을 가볍게 저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여러 가지로 항상 감사드리고 있어요.”
“지율이한테도 좋은 친구가 생겨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
“왜 그러세요?”
“아시다시피 저는 강척 드래곤 연구소장이고, 드래곤 학회장이에요. 저는 현백이의 엄마로서 살고 싶지만, 맡은 직책이 있다 보니 성과도 필요하거든요. 두 아이의 우정을 단순히 성과로 치부하려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요.”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인간과 교류를 하고, 가까이 지내는 드래곤들은 꽤 있어요. 전 세계를 뒤지면 이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대부분 계약관계에 가깝죠. 하지만 지율이와 현백이는 달라요. 순수하게 서로를 아끼고 보듬잖아요.”
도라경은 감동적이라는 듯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건 마블 드래곤의 사회화를 넘어선 이야깁니다. 인간과 드래곤이 이토록 순수한 관계를 맺은 적이 있을까요? 앞으로 모든 인간들과 드래곤들이 더 화합하여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역시 도라경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일에 임했으니까.
“지율이랑 현백이의 우정이 계속됐으면 좋겠네요.”
내가 나지막이 말하는데 뒤에서 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구정석이 황급히 몸을 틀었다. 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 주변을 닦았다.
도라경이 고갯짓을 했다. 입 모양으로는 그냥 모른 척하라고. 나는 알겠다면서 구정석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조용히 웃던 나는 지율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지?
한창 열심히 뛰놀던 지율이가 한 곳을 응시했다. 그 시선을 따라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괜히 저러는 건 아닐 텐데.
뒤늦게 현백이가 지율이의 시선이 머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찰나, 나 역시 무언가를 느꼈다.
이번에는 알파카가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 우리를 지켜봤다.
* * *
오늘의 마지막 코스.
“소화도 시킬 겸 식물원 한 바퀴 돌죠.”
이번에는 도라경이 앞장섰다.
나의 신경은 아까 느껴졌던 시선에 쏠려 있었다. 찰나였지만 분명히 느꼈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은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지율이도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지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일이 없었다.
구정석은 수행원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했다. 하루 종일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만 보였지만, 한시도 지율이와 현백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근력은 조금 부족해도, 결계를 생각하면 누군가를 보호하는 데 최고였다. 결계 자체가 희귀한 능력인데, 솜씨를 보면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일 수도 있었다.
지율이와 현백이의 안전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찝찝함을 남길 수는 없었다.
누구든 간에, 뭐든 간에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이 무엇인지 밝혀낼 생각이다.
“생각보다 더 잘돼 있네요. 식물원은 진짜 오랜만에 오는데.”
도라경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마치 열대우림이 펼쳐진 듯한 식물원 내부.
후텁지근했지만, 은근하게 바람이 불어서 괜찮았다.
“우와아! 이것 봐!”
지율이가 커다란 나뭇잎을 가리켰다.
“이불로 써도 되겠다!”
“그러게.”
현백이는 말아 쥔 주먹을 입 앞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웃었다.
다 같이 천천히 식물원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뒤쪽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식물원의 입구는 단 한 곳.
분명히 틈이 생길 거라 확신했다.
* * *
어떻게 된 거지?
시선을 느낄 수 없었다.
식물원 내부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따라오지 않은 걸까?
“현백아, 여기서 사진 찍자. 지율이도.”
도라경과 구정석은 이미 사진을 수백 장은 찍은 듯했다. 동영상 촬영도 몇 시간은 한 것 같았고.
“빠아.”
“응.”
“뭐 찾아?”
“어?”
“뭐 찾고 있잖아.”
“그게 사실은…….”
현백이는 나무 앞에 서 있었고, 도라경과 구정석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지율아, 혹시 아까 생각나?”
“뭐어?”
“누가 쳐다보는 느낌 들지 않았어? 지율이도 그쪽 쳐다봤었는데.”
“아까 도시락 먹은 다음에?”
“어어, 맞아. 그때.”
“저 사람?”
지율이가 출구 쪽으로 손을 뻗었다. 등을 돌리고 있는 한 남자. 청색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저 사람이야?”
“응!”
“확실해?”
“응!”
“그렇구나.”
“왜? 아는 사람이야?”
“확인해보려고. 아빠 혼자 잠깐 다녀올게.”
“응!”
“만약에 소장님이나 구 씨 삼촌이 물어보면 화장실 갔다고 해.”
“응!”
도라경과 구정석은 여전히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출구 쪽으로 향하며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남자의 시선이 지율이와 현백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리번거렸다. 아마도 나를 찾고 있는 거겠지.
나는 이미 약 50미터 이내로 거리를 좁혔다.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게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남자에게서 마력이 느껴졌다. 현재 식물원 내에서 구정석과 도라경을 제외하면 유일한 각성자.
약 10미터.
5미터.
2미터.
“저기요.”
내가 말을 건네는 순간이었다.
주변시야로 나를 인지한 남자가 출구 쪽으로 걸음을 뗐다.
탁.
내가 손을 뻗어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남자는 팔을 당겨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남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남자의 손목을 더 꽉 움켜쥐었다.
“잠깐 얘기 좀 하죠?”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6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