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46
146
변호인 강태훈 146화
41장 지독한 악연
“자수한 사람은?”
그래도 자수를 했다니, 도혜는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물론 아까 전 남자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를 통해 수사망이 좁혀지긴 할 터였지만 일손을 줄였다고 할 수 있었다.
“저기.”
태훈의 가리키는 곳을 향해 도혜는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체격이 외소하고 머리에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올라온 남성이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이라고?”
도혜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과 제보를 준 네티즌이 함께 추정한 범인은 적어도 태훈과 비슷한 신장에 비슷한 나이 또래였다.
그런데 거기에 앉아 있는 남성은 175cm 정도 될 듯한 평균키를 가진 쉰 초반의 나이였다.
도혜도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아, 검사님 오셨어요?”
그때 도혜를 발견한 경찰관이 거수경례를 했다.
“조사는?”
“끝났습니다. 여기.”
그는 프린트 된 진술서를 뽑아 도혜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차분한 눈매로 진술서를 흩어 내려갔다.
가해자의 직업은 비서였다. 인성기업의 김민욱을 모시는 비서.
참으로 대단한 사람을 모시는 비서였다.
그다음은 진술 내용을 살펴보았다.
가해자는 만취된 상태에서 차를 몰았다. 차량은 김민욱을 모실 때 이용하는 벤츠.
순간 도혜의 머릿속으로 스치는 것이 있었다.
뭔가 앞뒤가 너무 맞지 않았다. 자신과 네티즌이 추측한 범인은 뒷좌석에 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김민욱인가? 김민욱이 혹시 뺑소니를 치고 비서가 대신 죄를 뒤집어쓴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가장 우선적으로 들었다.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참, 아까 경찰청장님 왔다 가셨습니다.”
“청장님이?”
경찰청장이 왔다갔다는 말에 도혜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다급하게 경찰서로 왔다는 말이 된다.
“아무래도 언론이 심란하니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게 움직이라고 하더군요. 검사님한테도 아마 그런 지시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
그럴 거다. 부장검사가 지시하든, 지청장이 지시하든 결국 범인 잡았으니 어서 빨리 기소하고 사건 종결시키라고 할 것이다.
도혜는 턱을 어루만졌다.
뭔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데?
도혜는 자수하러 왔다는 임만기를 보았다.
“임만기 씨.”
“네.”
“심문실로 가죠.”
도혜는 그를 이끌었다. 경찰관은 굳이 심문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가해자가 자수를 한 상황이었다. 또 청장도 빨리 끝내라는데, 굳이 물고 넘어지는 이유가 무얼까?
손관식 경찰관조차 경찰총장이 와서 그 말을 하자 아까 전 그 미심쩍었던 것이 싹 잊힌 상태였다.
태훈도 뒤따라 움직였다.
“자기는 왜?”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아. 변호사를 찾아왔다고 했지.’싶었지만, 곧 태훈은 그녀의 귀에 말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태훈도 같은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도혜는 역시나 얼굴로 미소를 머금었다.
이례적으로 경찰총장이 방문했고, 가해자는 인성기업의 첫째를 모시는 수행 비서였다.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했다.
도혜는 심문실로 들어갔다. 태훈은 경찰들과 투명 유리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술김에 ‘나도 한 번 이런 차 내 것처럼 몰아보자’하는 생각으로 차를 모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도혜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취 상태셨고, 신호등은 분명 파란 불이었고. 이거 죗값이 장난 아니겠는데요. 물론 의도적인 살인은 아닌지라 살인의 값을 묻지는 않을 것이고, 자수를 하셨기 때문에 형량은 5년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본다면 4년 정도로 형이 줄 수도 있겠지요.”
“제가 지은 죗값 달게 받아야지요.”
5년이라는 말에 그는 흠칫 놀라는 듯했지만 곧 모든 것을 단념한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군요. 그럼 그 차는 어떻게 몰게 된 겁니까?”
“평소처럼 김민욱 이사님을 모시고 가고 있었습니다. 술에 무척 취해 있으셨고, 인근에 있는 지인 집에서 주무시겠다고 하셔서 이사님을 그곳에 내려드렸습니다. 저도 인근에 볼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주차하고 아는 지인과 술을 몇 잔 마시다 보니 너무 억울하더군요. 누구는 저렇게 젊은 나이에 이사님 소리 들으면서 대접받는데, 저는 뭐하는가 싶었습니다. 그 때문에 홧김에, 정말 저도 모르게 홧김에 차를 몰았죠.”
“진술하셨듯 만취 상태에서요?”
“네.”
“그런데 만취 상태였는데 진술이 무척 매끄럽네요?”
도혜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임만기의 눈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곧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 만취해도 필름이 끊기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피해자를 차로 친 후 그대로 도주하신 건가요?”
“예, 무섭고 가족 생각도 많이 났거든요. 술에도 취했고 말입니다.”
충분히 가능할 법한 이야기였다.
도혜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잠시 주위를 왔다갔다 서성였다. 곧 그녀는 작은 한숨을 쉬며 그를 돌아보더니 창가로 다가갔다.
그렇게 창가 앞에 선 도혜를 임만기는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누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까?”
도혜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 말에 임만기의 얼굴이 빠르게 굳더니 곧 시선을 회피했다.
“무슨 소리신지…….”
“김민욱이 시켰습니까?”
“예?”
그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김민욱이 뺑소니를 친 범인 아닌가요?”
“도대체 무슨 소리신가요? 검사님.”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도혜는 아까 전 받아온 갈색 봉투에 담긴 사진자료들을 차르륵 그의 앞에 펼쳐 보였다.
“여기를 보시면 당신이 김민욱을 태우는 모습이 자세히 찍혀 있습니다.”
도혜는 사진 한 장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그다음 사진을 다시 짚으며 말했다.
“이때 차는 사고 지점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죠. 결정적으로 이 부분. 이게 당신이 맞긴 합니까?”
사진은 정말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흐릿하다. 그렇지만 넥타이. 이 넥타이가 해답이었다.
그때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비서가 아니다.
도혜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예, 이게 저입니다.”
“이 사진에는 넥타이를 차셨는데, 이 사진에는 넥타이를 안 차셨네요?”
도혜의 야릇한 웃음에 남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순간 도혜는 큰 건수를 하나 잡았다고 직감했다.
인성기업 김민욱이 압력을 넣은 건가 싶었다. 비서에게 자신의 죄를 덮어씌우고, 얼마간의 돈을 주겠다고 했겠지. 그가 그 대가로 줄 수 있는 돈은 수십억도 당장 가능할 테니까.
아마 김민욱은 초조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SNS에 이 사건이 퍼져나갔으니까. 그 때문에 네티즌 수사대가 움직이고 경찰들도 수사망을 좁혀오니,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을 수행하는 비서를 돈으로 매수해 일을 종결시킬 심산이라고 도혜는 추측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그들의 얄팍한 수를.
그녀는 싱긋 웃었다.
이제 남은 것은 허위 자백을 한 임만기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이미 도혜는 깊게 파고들어 버렸고, 사건의 진위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으니까.
그렇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쾅!
“아니, 자수를 하러 온 사람을 이렇게 몰아가도 되는 겁니까? 또 김민욱 이사님이 얼마나 점잖고 좋으신 분인데, 뺑소니 범으로 몰아갑니까. 이거 이런 거는 명예훼손 안 됩니까?”
임만기의 너무나도 당당한 그 태도에 도혜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것을 내색하진 않았다.
“이렇게 정황이 분명하게…….”
“정황이요? 검사님. 그럼 확인해 보시면 되겠군요. 전 분명하게 말씀드렸죠. 그때 김민욱 이사님을 지인의 집 앞에 내려다드렸다고. 타워 펠리스 인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김민욱 이사님이 차에서 내려 올라가는 CCTV를 확보해 보세요. 아마 제 말이 모두 맞을걸요?”
그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 그 태도에 도혜는 눈을 찌푸렸다.
그녀는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사관에게 지금 당장 타워 펠리스 인근을 중심으로 김민욱이 그때 당시 정말 그곳에 있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일단, 도혜는 심문을 중단했다.
임만기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를 보자 순간 자신이 잘못 짚은 건가 싶었다.
생각해 보면 넥타이로 범인을 추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술을 마시다가 넥타이를 벗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이 사건, 너무나 미심쩍은데?
그렇게 세 시간이 흘러갔다.
그 세 시간 동안 태훈과 도혜는 식사를 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기다렸던 전화인지라 단숨에 받았다.
“그래, 김민욱. 확인됐어?”
– 예, 검사님. 김민욱 씨 타워 펠리스로 들어가는 것 확인했고요, 엘리베이터 타고 지인 집으로 들어간 후 바로 다음 날에 그곳에서 나온 것 역시 확인했습니다.
“……!”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도혜는 가슴이 철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추측이 모두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순전히 김민욱을 뺑소니 범인으로 몰아갔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경찰들도 맥이 빠진 모양인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하의 안도혜 검사가 잘못 짚다니, 다들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건은 도혜의 감이 맞았어도 큰일이라 할 수 있었다.
상대는 김민욱이었으니까.
만약 김민욱이 지금 당장 명예훼손을 이유로 달려들면 어찌 될지,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질 상황이었다.
그만큼 김민욱은 힘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한 게 사실이었다.
그녀는 다시 심문실로 들어갔다.
“확인하셨습니까?”
임만기는 너무나도 당당한 얼굴로 물었다.
도혜는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자신이 실수를 하다니.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머리는 분명 뭔가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닌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억측을 했군요.”
“아시면 됐습니다. 제가 모셨던 분입니다.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마세요. 제가 존경하는 분이니까.”
그는 코를 씰룩였다.
더 이상 심문을 할 것은 없었다. 더 이상 조사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임만기가 순대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다. 그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심문실을 나온 도혜는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정말 김민욱이 억울한 사람하게 범인으로 몰렸다면, 자신이 분명 잘못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일에 다른 뭔가가 있다면?
머리가 너무나 복잡했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듬직한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왔다.
“피곤하지?”
그는 단지 그 말 한 마디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사실 태훈도 뭔가 수상쩍었다. 그렇지만 김민욱의 알리바이는 너무나도 확실한 상황이었다. 지금 현재로서는 자수한 비서가 범인이라는 것이 기정사실과도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심문실을 나와 1층으로 내려왔다.
그때 다급하게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가 보였다.
그녀는 다름 아닌 피해자의 아내였다.
피해자의 아내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진정하세요!”
도혜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때마침 임만기는 유치장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당신이야!? 당신이 우리 동관 씨 그렇게 만들었어!? 응!? 책임져, 살려내, 살려내라고! 우리 동관 씨…… 그렇게 죽어선 안 될 사람이야. 뱃속의 우리 아가. 그 이름 한 번이라도 불러봤어야 할 사람이야. 커가는 모습 봤어야 할 사람이고. 나하고 함께 늙어가야 할 사람이야. 당신이 모든 걸 빼앗았어. 당신이!!”
그녀는 앞을 막아서는 도혜와 태훈 사이에서 그렇게 울분을 토했고, 손을 저으며 괴성을 질렀다.
임만기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묵례를 취하고는 유치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동관 씨…… 범인 잡았어. 응? 동관 씨이.”
그녀의 울음은 서글프기만 했다.
도혜는 그 옆에서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그때 태훈은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임만기를 보고 있었다.
태훈은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