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87
187
변호인 강태훈 187화
강태산의 눈이 심하게 떨렸다. 그는 아들을 잃었다. 아무리 개망나니 같았던 녀석이라고 할지라도, 개차반인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한기태는 결국 쓰다 버릴 패였지만, 자신의 법무법인에서 자신이 키워낸 인재였다. 유능한 변호사였다. 그를 미워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한기태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정(情). 강태산도 한기태에게 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건 기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심지어 자신을 이용했다고 할지라도 그에게 정이 있었다.
그러나 기태는 이젠 대한 법무법인과 적이 되려고 한다.
“자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강태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믿을 수 없었기에, 그의 말이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손을 뻗어 그의 양어깨 위를 잡으려 했다.
한기태는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표님.”
기태는 작게 묵례했다.
그동안 자신을 보살펴 준 이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자네, 어떻게 나한테 이러나. 응?”
강태산의 목소리 끝에 울음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아들 잃은 애비 앞에서, 어찌 그렇게 냉담한가.
밖으로 미련 없이 나서려던 기태가 문득 몸을 돌렸다.
“경태는 분명히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도 억울한 것이 많습니다. 강우환. 대표님의 아드님이 이제까지 했던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아들을 대표님은 감싸주려 했고, 이제 또 그런 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시겠죠. 전 그런 꼴 더 이상 못 보겠습니다.”
“그 아이가 자네한테 도대체 무엇인데!”
도대체 왜, 피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위해서 그러는가.
설령 도와준다고 해도 수임료도 변변히 못 받을 가난한 아이를 위해서, 왜 그동안 몸담았던 대한 법무법인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것인가.
기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아이는 도대체 자신에게 무엇일까?
어머니의 얼굴이 일순간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기태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렴.’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주마등처럼 어머니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또 한편으로는 경태와 그의 어머니, 경희. 그 세 사람이 함께 웃고 떠들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경태와 경희는 모든 것을 잃었다.
어머니도.
인생도.
마음도.
너무나 비슷한 삶을 살아왔던 아이들이었기에, 살인자라는 이름 앞에 더 이상 펼쳐질 날개가 없었기에, 그 아이를 위해 싸워보려 한다.
“사실 이게 제가 하고 싶었던 변호사라는 일입니다.”
기태는 싱긋 웃었다.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변호.
그것이 이번 사건이었다.
몸을 돌린 기태는 박으로 걸어 나갔다.
대한 법무법인을 한 번 훑어보았다.
이젠 이곳의 이 풍경도 보지 못하겠지.
너무나 바쁜 이들의 풍경도, ‘한기태 변호사님.’하면서 자신에게 말을 걸던 이들의 모습도, 이젠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그의 눈에 김유환 변호사가 들어왔다. 그는 기태의 눈을 슬슬 피하며 다른 곳으로 쏘옥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애초에 김유환 변호사는 강우환의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그의 밑을 살살 핥았고,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에게 개처럼 충성했다.
그라는 사람도 이번 사건과 분명 연관이 되어 있었다. 법적으로 후려칠 무언가만 없을 뿐.
“김유환.”
기태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터벅터벅 그에게 걸어갔다.
김유환은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꼈다.
“네, 한기태 변호사님.”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기태의 부름에 대답했다. 그가 자신의 앞에 마주 섰다.
기태는 싱긋 웃고 있었다.
한기태는 그의 안경을 자신의 양손으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입김을 불어 바지의 천으로 곱게 닦아냈다.
기태는 싱긋 웃으며 그것을 건네려 했다. 그것을 받으려던 김유환은 기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후우웅.
빠악!
기태의 오른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뒤로 밀려난 김유환은 책상에 한 번 엎어지고, 그 힘을 못 이겨 이내 의자를 밀어내며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크으윽…….”
기태는 자신의 지갑을 꺼냈다.
불쌍한 아이들에게 허황된 말을 해주고, 강우환에게 넘겨준 파렴치한 놈.
기태는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그의 머리 위로 떨어트렸다. 그렇게 그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것이다. 경희가 느꼈을 수치심을, 경태가 느꼈을 분노를 생각한다면 이건 새발의 피였다.
대한 법무법인의 안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모두 놀란 기색이었다.
“이걸로 약이나 사서 처발라. 그리고 내 눈에 띄지 마.”
기태는 몸을 낮춰 그에게 으르렁거렸다.
유환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경찰에 신고? 할 테면 하라지.
그렇지만 못할 것이다. 제 놈도 찔리는 것이 있을 테니까.
기태는 굽혔던 무릎을 펴며 다시 걸어갔다.
대한 법무법인의 입구 앞에 섰을 때, 그는 그들을 모두 돌아보았다.
작게 묵례를 했다.
잘들 지내라.
난 간다. 비상 법무법인.
그곳으로.
* * *
일기예보에서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오며 천둥번개가 동반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처럼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들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며 천둥번개가 쳤다.
태훈의 집안도 번쩍번쩍 하면서 진동하였다.
태훈과 도혜도 너무도 큰 천둥번개 소리에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태훈과 도혜는 함께 밖으로 나왔다.
경희였다.
베개를 꼭 껴안고 있는 그녀는 겁에 질린 듯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천둥번개가 치던 날 오빠와 어머니 사이에서 잠을 자고는 했었다. 오빠의 토닥임을 받으며, 어머니는 항상 머리를 쓸어내려 주시고는 했다.
그렇지만 지금 그녀에겐 아무도 없었다.
“자기, 오늘 소파에서 자.”
“응.”
태훈은 도혜의 말에 순순히 자신의 베개를 들고는 몸을 일으켜 거실의 소파로 갔다. 도혜는 아직 어린 경희에게 손짓했다.
경희는 조심스럽게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녀는 잠자리가 많이 불편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집에서 잠을 자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혜는 침대 위에 누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오똑한 콧날, 사슴 같은 눈망울, 도드라지는 입술, 부드러운 턱선. 봉긋 솟아오른 가슴.
어느 것 하나 미운 게 없는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그런 험난한 일들을 겪었다.
도혜의 손이 그녀의 뺨 위로 올라갔다.
“천둥번개가 많이 무섭지?”
그녀의 물음은 어쩌면 지금 세상이 많이 무섭지 않니 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도혜는 경희를 껴안고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경희의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 자신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오빠도.
모두가 떠나갔다.
“흐, 흐흐흑, 흐흑.”
“왜 우니. 이렇게 예쁜 얼굴을 하고.”
“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요? 오빠는 교도소에 가고, 엄마는 하늘나라 갔는데. 전 어떻게 살아야 해요?”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다시 천둥번개가 번쩍였다. 격하게 눈물을 흘리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요, 더러운 애이기도 해요. 엄마 살리고 싶어서 술집 나갔어요.”
도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들이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했다는 것은 들었다. 그중 정상적인 일로는 단기간에 그런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도혜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술집에서요, 아저씨들이 가슴에 오만 원을 넣어주곤 했어요. 근데요. 아직도 그게 악몽 같아요. 자려고만 하면 생각나요. 모텔에서는요…….”
“그만, 거기까지.”
도혜는 그녀의 입을 손가락 하나로 막았다.
도혜는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안았다.
“네가 그러고 싶어서 했던 일이니?”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하소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을 판다는 것.
그것을 원해서 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버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네가 그랬어. 옳은 일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너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하지 마. 그리고 넌 아직 혼자가 아니야.”
혼자가 아니다?
아니, 자신은 혼자였다. 오빠도, 엄마도 더 이상 자신의 곁에 있어줄 수 없었다.
그녀의 흐느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 앞으로 네 곁에 있어줄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나도 네 편이 되어줄게.”
“으흐흑, 끄흐흐흑!”
도혜는 다시금 격하게 흐느끼는 경희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슴으로 경희의 눈물이 흘러 들어왔다.
가슴이 아팠다.
이 어린아이가, 이토록 착한 아이가 너무나도 험난한 세상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당장 진정되어도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릴 것이다.
지금 바로 오빠를 만나면, 오빠가 사람을 찔러 죽이는 상상을 할 것이고,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어린 경희가 견디기에는 힘든 것들.
도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녀의 곁에서 위로하는 것뿐이었다.
* * *
이른 아침.
어제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르게 비상 법무법인으로 출근하는 김옥주 인턴이었다. 인턴이었지만,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일하는 이유는 한결 같았다.
이곳 사람들이 좋았고, 그들의 미소가 좋았다.
이제 자신도 그들에게 배웠던 것을 토대로 사법연수원 혹은 로스쿨에 가서 무엇이든 할 것이다.
처음 그녀의 꿈은 판사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다른 생각이 든다.
비상 법무법인의 변호사들처럼,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다. 그런 욕망이 그녀에게서 한없이 들끓고 있었다.
비상 법무법인 앞에 도착한 그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았다.
키는 이범현, 강태훈과 비슷했다. 넓은 등 역시도 비슷했지만 왠지 느낌이 달랐다. 고개를 돌린 그는 단정한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고, 포머드 헤어스타일이 무척 잘 어울렸다.
그는 한기태 변호사였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제저녁, 이범현이 살짝 귀띔해주었다. 식구가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고. 그것이 언제라고는 말을 해주진 않았다. 그저 늘어날 것 같다고만 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빠른 것 같았다.
김옥주의 가슴은 흥분으로 벅차왔다.
비상 법무법인이란 곳에 너무나 유능한 변호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인턴일 뿐이었지만 가끔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신이 대견해 어깨에 힘이 으쓱 들어갈 정도였다.
한기태.
한성호의 뒤를 잇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변호사.
그 실력은 비상 법무법인의 다른 이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여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옥주 인턴은 잠긴 문을 열었고, 기태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기태는 부드러운 미소로 비상 법무법인을 둘러보았고, 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췄다.
“이곳에 서랍장을 놔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비워놨나요?”
한 공간이 너무 텅텅 비어 있었다. 마치 일부러 그 자리를 비워놓은 것처럼. 서랍장을 놓거나 책을 꽂을 수 있게 책장을 놓아도 충분할 공간이었다.
김옥주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제가 전에 저기에 컴퓨터를 놓자고 했었는데, 저곳은 비워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김옥주 인턴은 그때를 기억했다.
자신의 말에 범현은 고개를 저었다. 태훈도, 한성호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빈 공간을 왜 그냥 방치해 두는가 싶었다.
사실 자신의 말이 맞았기에 다른 것을 놓자고 하면 태훈이나 한성호도 동조해 줘야 맞는데, 그들은 범현의 말을 이해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 자리는 한기태 변호사님이 오길 기다리며 비워둔 자리가 아닐까요? 한기태 변호사님을 위한 자리!”
그녀의 하얀 이가 드러났다. 아침 햇살을 받은 그녀의 미소는 눈부시었다.
그 말을 듣자 기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자신의 자리.
항상 자신의 친구들은 자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문득 그의 눈앞에 책상이 그려졌다. 거기에‘한기태 변호사’라고 써진 명패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기태야, 오늘 쐬주나 한 잔?’
‘좋지.’
기태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범현도 딱 좋다는 듯 웃었다.
‘매일 삼겹살은 지겹지도 않나?’
‘한성호 변호사님도 함께 가실 거지요?’
‘그렇긴 하지.’
‘하하, 가고 싶다는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해요.’
행복하다. 상상만 해도 앞으로 이들과 함께하게 될 날들이.
기태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