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88
188
변호인 강태훈 188화
시간이 되자 변호사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한성호는 기태를 보고는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들겨주며 작은 웃음을 지었다.
“잘 왔네.”
“네.”
아직 그가 정식으로 비상 법무법인에 소속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기태가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이제 비상으로 오려한다는 사실을 한성호는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속속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들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스쳤다.
이대건은 묘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범현과 태훈은 출근하자마자 기태에게 다가가 믹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성호는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멋있어……!’
세상에나, 국내 최고라 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비상 법무법인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이끌어가는 이들이었다.
자신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라고 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근데 내 자리는 언제 준비해주나?”
기태가 능청을 떨면서 물었다.
범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네 자리? 무슨 네 자리?”
“나 여기서 신세 좀 지려고.”
“누구 마음대로?”
태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웃었다. 기태가 ‘아이~ 한 번만 받아줘. 먹고 살기 힘들다.’하면서 웃었다.
범현이 턱을 어루만졌다.
“그렇다면 조건을 하나 걸지.”
“조건?”
기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범현은 검지손가락을 펼치며 싱긋 웃었다.
“이번 사건. 남부럽지 않은 성적 얻어내기.”
“물론.”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꼭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어 보려고 한다.
기태는 남은 커피 한 모금을 입안으로 흘려보냈다.
이제 시작한다.
* * *
처음은 처량했다. 자신이 키웠던 이가 자신을 떠나간다는 것에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차츰 분노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내가 저한테 어떻게 하였는데. 제 놈을 그 정도까지 끌어올려주었던 것이 누구였는데.
속된 말로 단물만 쪽 빨아먹고 한기태는 대한 법무법인을 나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 팍팍한 것은 지금 당장 대한 법무법인에 한기태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간판 변호사를 걸려면 앞으로 1년 정도는 지켜본 후에 선출해야만 했다.
그때까지 대한 법무법인은 휘청거릴 것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더해, 자신이 평생을 일구어낸 대한 법무법인 역시도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최고의 법무법인이라는 타이틀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이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담배를 연거푸 태워대던 강태산은 안으로 들어오는 김유환 변호사를 볼 수 있었다.
“내 아들 녀석하고 자네가 그렇게 각별했었나?”
“……몇 번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얼마 전 소란이 있었다지.”
“예.”
그 소란은 한기태가 김유환을 폭행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김유환의 우측 입술이 터져서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강태산은 소파에 등을 깊이 묻으며 말했다.
“앉지.”
김유환이 강태산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유환에게 이 자리는 가시방석 같았다. 오십여 명이 넘는 대한 법무법인의 인원 중에서 김유환이라는 변호사는 말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강태산 대표의 눈에 띄었던 적도 없었다. 또한 뛰어난 성적을 거둬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강태산 대표와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일도 거의 없었으니 괜히 긴장이 되는 것이다.
“난 지금 무척 참을 수가 없네.”
그 말을 김유환도 이해한다. 자신이었다고 하더라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유환은 그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믿었던 친구가 날 배신하고 나갔어. 그것도 내 아들을 죽인 녀석을 돕겠다고. 나를 엿 먹이고, 이 대한 법무법인을 적으로 돌리겠다며.”
강태산의 말아 쥔 주먹. 그의 주먹이 테이블을 작게 때렸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는 말이야.”
어디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었을까.
그 균열의 시발점은 강태훈이라는 변호사였고, 그다음은 이범현의 비상 법무법인 창립이었다.
강태훈이 걸리적거릴 때 한기태가 들어왔고, 비상 법무법인의 창립은 위협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비상 법무법인은 단순한 위협적인 요소가 아니라, 맞서 싸운다면 자신들이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빌어먹을 녀석들 때문이야. 비상 법무법인…….”
비상 법무법인 때문에 근래 다른 법무법인들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한지는 김유환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꼭 그런 식으로 표현할 필요는 있을까 싶었다.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말 치고는 다소 경솔해 보였던 것이다.
강태산의 얼굴에 웃음이 짙게 맺어졌다.
그는 얕은 웃음을 음침하게 흘렸다.
김유환은 그것을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아아. 내가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할게.”
제안이라는 말에 김유환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섰다. 심상치 않았다. 강태산의 분위기가.
“비상 법무법인, 거기 영 거슬려. 정말. 아니, 그냥 난 그들을 아예 짓밟겠다는 게 아니야. 잠깐, 그 녀석들 좌절하는 게 보고 싶거든. 아주아주 화려한 불씨가 보고 싶네. 비상 법무법인이 그러했지. 작은 불씨가 이젠 너무 크게 타오르고 있지. 그것처럼 작은 불씨가…….”
“……그게 대체.”
김유환은 여전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태산은 반쯤 미쳐 있었다.
“불을 지르게. 뒷감당은 전부 내가 해주지. 인명피해만 없다면야 큰 죄도 아니고. 자네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줄 수도 있지.”
그의 말을 들은 김유환의 눈이 일그러졌다. 그건 그야말로 초등학생 같은 발언이었다. 절대 평소의 강태산 대표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들이 싫다고 해도, 방화를 하라니? 이게 뭔 개뼈따구 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가 뒷감당을 해주고 돈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김유환은 그런 일을 저지르고 돈을 받는 건 싫었다. 그래도 자신은 명색이 변호사가 아니던가.
아니, 그냥 하기 싫었다.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그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 아들 녀석하고 친했다고 하니까. 이런 부탁 하나쯤은…….”
“저…… 대표님.”
“그래, 하겠나? 해야지. 그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태산의 얼굴에 짙고 음침한 웃음이 맺어졌다.
“죄송하지만…… 그건 못하겠습니다.”
“뭐?”
감히 내 말을 거역해?
강태산은 그런 표정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항상 왕이었고 군림하는 자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명백한 범죄잖아요.”
“그럼 우환이 그놈하고 자네가 저지른 일은 옳았던 일인가?”
김유환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자신이 옳지 못한 일을 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이번 일도 스스럼없이 하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그는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다.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아드님을 잃은 충격에 한기태 변호사까지 나감으로써 그 충격에 의해 지금 현재 정신적으로 꽤나 힘들어 보이…….”
“내가 미쳤다, 이 소린가?”
강태산은 주먹 쥔 손으로 테이블을 또 한 번 내리쳤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미쳤다는 소리가 아니라, 한 번 마음을 추스르실 필요가…….”
“내가 미쳤다고 말하는 거야!? 응!?”
강태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강태산은 유환의 멱살을 움켜쥐면서 그와 눈을 맞췄다.
“내가 미쳤다고 하는 게지?”
“그게 아니라…….”
“감히 벌레 같은 녀석이…….”
강태산의 손이 뒤로 젖혀지며 그의 뺨을 때렸다.
유환의 한쪽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대표님, 이러시면 곤란…….”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던 유환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강태산은 연신 그의 뺨을 때렸다.
짜악! 짝! 짝!
“감히 네놈 따위가 내 말을 거역해!? 응? 내 아들을 빼앗아간 버러지 같은 종자 새끼! 날 배신해? 응?”
확실히, 지금의 강태산은 온전하지 못했다. 시간을 두고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뺨을 수차례 맞아 붉게 얼굴이 달아오른 김유환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태산은 다시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이러신다고 아드님이 살아오진 않아요!”
“뭐……?”
김유환은 서러움과 화가 복받쳐 올랐다. 뺨을 맞는데,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팔꿈치로 뒤로 기어가며 강태산과 거리를 벌렸다.
“살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표님! 방화라뇨, 말이 안 되잖아요. 평소와 같은 대표님의 모습을 보여주십쇼. 대표님이 이러시면 저희 대한은…….”
마지막 말이 목구멍에 걸려 간당거렸다.
처음 이곳 대한 법무법인에 합격하였을 때, 김유환은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다. 당연했다. 이곳은 국내 최고라고 손꼽이는 곳.
아무리 자신이 모진 일을 해도, 뛰어난 변호사로 인정받진 못해도,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대한은 무너진다.
강태산이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미쳐 날뛴다면, 혹여 그가 불미스러운 문제로 교도소라도 가게 된다면.
대한은 무너진다.
“저희 대한은 무너지면 안 되는 곳 아니겠습니까? 저희 대한은! 국내 최고의 법무법인입니다! 대표님께서 일구어내신 이곳을 지키십시오!”
김유환은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더 이상 대한이 휘청거리는 것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마 대한의 다른 변호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들은 요즘 불안해하고 있었으며, 다른 법무법인에 눈을 돌리면서 갈등하고 있기도 했다.
이럴 때 강태산이 정신을 더욱 차려야 했다.
더욱더 굳건하고 경건하게.
그는 그래야만 했다. 최고의 법무법인을 이끄는 대표로서.
강태산이 힘없이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처음, 이 대한 법무법인을 설립했을 때가 생각났다.
아주 작은 법률상담소로 시작했고, 자신은 실력을 인정받아 하나둘 변호사들을 영입하고, 법무법인이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렇게 수십 년이 흘러 어느덧 정상에 섰다.
그런 대한이 허물어진다?
그럴 순 없었다.
태산의 입에서 가느다란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갔다.
* * *
공판이 시작되기 15분 전.
경태는 무척이나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기태는 그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뭐가 무섭니?”
경태의 숙였던 고개를 들고 기태를 보았다. 앉아 있는 경태에게 기태는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추더니, 경태와 눈을 마주했다.
한기태.
그는 비록 한쪽 무릎을 꿇었을 뿐이지만, 가볍지 않은 무릎을 가진 남자였다.
대한에서는 그는 누구보다 곧고 자존심 강했던 변호사였지만, 이젠 비상 법무법인의 변호사가 되었다.
태훈이나 범현이처럼.
그것이 진짜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었다.
“전부 다요. 저번 공판 때도 방청석 사람들 시선이 무서웠고요, 교도소에 가게 되면 다른 수감자들하고 생활할 것도 무섭고요. 이제…….”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못할 것도 두렵고, 동생 경희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도 두렵겠지.”
기태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어린 친구였지만 손이 거칠었다. 결코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엘리트 대학생의 손이 아니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이 아이의 손.
기태는 오늘 자신이 힘껏 잡아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