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09
209
변호인 강태훈 209화
57장 진실을 찾아서
도혜가 너무나도 매몰차게 쳐내자, 이수애는 자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손이 아리기까지 하였다.
도혜의 눈이 쌍심지를 켜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감히 자신의 남편의 몸에 손을 대냐는 눈이었다.
이수애는 양손을 들어 올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픽 웃었다.
“뭐, 제가 충분히 그럴 만한 짓 했으니까, 이해하죠.”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도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해 못하면 어쩔 거냐는 도발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수애가 관심 있는 건 안도혜가 아니라 강태훈이었다. 물론 안도혜라는 검사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고 취재를 도와주는 여성이라면, 그녀도 태훈 못지않을 만큼 뉴스거리가 되겠지만.
“저도 안에서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일단은 고맙습니다.”
그녀는 손을 뻗어 태훈에게 악수를 청했다.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몸을 먼저 일으켰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태훈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도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괜찮다는 뜻이었다.
태훈이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이수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역시, 강태훈 변호사도 사람이긴 하니까.’
그의 손은 땀이 흠뻑 젖어 있었다. 땀이 여전히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의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는 거겠지. 태연한 척했지만 그도 안에서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안을 하나 하려는데요?”
“제안이요?”
제안이라는 말에 도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개수작을 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적대감이 역력히 드러났다.
이수애는 그 눈빛에 숨이 턱 막혔지만 웃었다.
자신도 기자 바닥에서는 또라이로 상당히 유명했다.
“안에서 들어보니까, 인질범 아저씨의 사연이 상당히 재밌던데요.”
태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을 왜 그녀가 신경을 쓰는 것인가. 이미 안에서 동영상 촬영을 끝내지 않았나?
그녀는 남들이 확보하지 못한 특종을 가져간 셈이었다. 물론 CCTV 영상이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긴 할 터였지만.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다른 방송국에서 CCTV 영상만을 내보낼 때, 그녀는 더욱더 세세한 내용을 담아 어떠어떠한 급박한 상황이었고, 무슨 일이 펼쳐졌는지 다른 방송국보다 더욱 상세한 방송을 내보낼 수가 있었다.
또한, 기사를 써도 다른 이들보단 더 사실적으로 적어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
그렇지만 그녀는 더욱 바라는 게 있었다.
“제가 이번 사건 도와드리겠습니다. 기사 제목 ‘억울한 인질범의 호소’ 어떤가요? 변호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렇긴 하다. 그렇지만 어차피 세상에 밝혀질 사실 아닌가?
그때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세우더니 좌우로 저었다.
“남들이 엉성하게 쓴 기사와 제가 쓴 기사는 질적으로 다를 겁니다. 또한, 전 인질범과 강태훈 변호사님을 토대로 집중적인 기사를 작성하고 싶다고 밝히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욱더 큰 관심을 살 수 있겠죠. ‘이것이 알고 싶다’라는 TV에 방영이 될 수도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이 인질범 사태는 전 국민이 보았습니다. ‘이것이 알고 싶다’에 그와 관련한 내용이 보도되면 어떻게 될까요? 시청률 폭등뿐 아니라, 여론은 그를 옹호하기 위해 움직이겠죠. 사실, 이런 도움 없이 힘든 싸움 아닌가요?”
그녀도 촉이란 게 있었다. 꽤나 힘들법한 사건이 분명해 보였다.
이미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또한, 상대방은 사람을 인질로 잡고 상해까지 입혔다.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저 ‘미친놈’일 뿐이다.
“저한테 따로 원하시는 게 있어 보입니다.”
태훈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었고, 괜찮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론의 힘을 빌린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또한 기자와 친해진다면, 태훈에게도 여러모로 써먹을 부분이 존재할 것이었다.
이것은 비즈니스였다. 그녀는 특종을 거래하고, 태훈은 변호를 위한 수를 거래한다.
“이 사건이 잘 풀린다면 강태훈 변호사님을 단독으로 취재하고 싶은데, 어떤가요?”
그건 많은 기자들이 원하는, 어떠한 방송국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던 이야기였다. 태훈에게 이제껏 인터뷰 요청, 방송 출연 등등의 제의는 많았다.
그렇지만 전에 한 번 방송에 출연했던 것으로 만족했기에 모두 매몰차게 거절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 나가면, 비상 법무법인이 더욱더 날개를 달겠지. 이젠 자신의 이익만 보는 태훈이 아니었다. 비상 법무법인의 이익까지 내다보는 태훈이었다.
“좋습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이수애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건넸다.
KBC방송국 이수애 기자.
태훈도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강태훈 변호사님이야 유명하죠.”
태훈이 먼저 말하기 전에 가로채는 수애였다. 그녀는 작게 목례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도혜가 경찰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데려가서 조사하라는 거였다. 물론 태훈도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는 아리따운 미모의 아내 도혜가 조사해줄 것이었다.
경찰차에 오르는 이수애의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 전율이 가득했다.
강태훈이라는 사람, 멋있어도 너무 멋있었다.
사람은, 인간적인 미에 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돈, 외모, 능력에 반하는 것이 태반이다.
그러나 강태훈은 인간적인 미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이수애의 머릿속에는 인질범과 마주하고 서 있는 태훈의 넓디넓은 등이 보였다.
‘만약 와이프만 없었다면 내가 한 번 대시해봤을 텐데.’
서른세 살 노처녀인 이수애가 품은 음흉한 생각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안도혜가 알게 된다면, 그녀는 엉덩이를 걷어차일지도 모른다.
* * *
방송국으로 돌아온 이수애는 눈에서 불을 뿜으며 당장 터질 것 같은 표정의 국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가 벗겨지고 뚱뚱한 체격의 국장은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
“너 또 어디서 농땡이 치다가 온 거야!? 응?”
“아, 이거 왜 이러실까?”
대체 어떤 방송국에서 국장에게 일반 기자가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그녀는 귀를 후벼 팠다.
‘기사고 뭐고 나도 이젠 한계야.’
그래도 국장은 나름 그녀를 아꼈다. 사람들은 인간적인 기사를 원한다. 물론 그 기사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고, 이수애는 연출되는 인간미를 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녀가 뭐 하나 딱 물어왔을 때, 그 기사는 진국이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농땡이를 피우든 뭘 하든 그냥 이러니 저러니 넘어갔다.
그렇지만, 오늘의 경우는 달랐다.
자그마치 시간이 벌써 여섯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11시 정도부터 보이지 않더니, 이수애는 오늘 하루 완전히 방송국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오늘 얼마나 큰 특종 사건이 터졌는데.”
“인질극 말하시나요?”
“오호라, 아는구나? 일손 부족한 거 몰라서 그래?”
국장은 아마 그녀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나 보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서 사건 현장을 모두 촬영했다는 사실도.
그녀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맺어졌다.
“그게 그렇게 특종인 일인가?”
“야 임마, 당연한 거 아니야? 자그마치 인질극이었다고! 더 대박이었던 게 뭔지 알아? 그 안에 강태훈 변호사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것도 인질범을 설득해서 같이 걸어 나왔다니까?”
“와, 대박인데요? 인질범을 설득해요? 이거 제대로 잡아냈으면 완전!”
“대박이었지. 근데 너는 뭐했어? 어디 카페 가서 또 코나 골면서 잠이나 잤겠지. 나도 이젠 얄짤 없어. 너 사표 내.”
“헐?”
그녀는 장난을 치다가 감정이 상해 버렸다. 그렇다고 사표라니? 아무리 그래도 충성을 다해서 방송국을 위해 뛰어다녔건만?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전 그러면 휴대폰 가지고 SBC방송국에 취직시켜 달라고 하면 되겠네요. 아, 연봉도 이곳보다 높게 제시하려고요.”
“너 또라이인 거 소문났는데, 퍽이나?”
국장은 코웃음을 치며 삿대질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친분이 있기에 가능한 것.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골칫덩이인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기자들이 그녀를 보는 눈빛도 그리 좋지 않았다.
연예 기사 쪽에만 잘 뛰어다녀도 이곳에서는 녹녹치 않게 먹고 살 수 있건만, 인간미 있는 사람 어찌고 저찌고!
물어오는 기사는 가끔이고. 월급만 축내고, 시간만 잡아먹다가 퇴근하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방송국 기자들과 싸우는 일도 자주 있었기에 그녀를 다른 방송국에서 받아줄 턱이 없었다.
있다면, 어디 삼류 잡지 기자로나 써줄까?
“정말 이러실 거예요?”
그녀가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국장은 코를 씰룩이며 말했다.
“야, 내 입장도 생각해봐. 나도 눈치가 보여, 그나마 너 하나가 우리 방송국에서 인간적인 기사다 뭐다 해서 가끔씩 시청률을 올리긴 해도. 요즘 때가 어느 때냐? 불 속에 몸 던져서 어린아이 구하는 그런 기사가 아니라면 A양 B군의 스캔들이 더 이슈가 되는 세상이라고.”
“아아, 그렇군요. 근데요. 국장님.”
그녀도 사실 국장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렇게 감싸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편했던 기분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녀는 국장의 어깨를 두들겼다. 어찌 보면 참 건방지다. 일개 기자가 국장의 어깨를 두들기다니.
그리곤 어깨에 묻은 하얀색 먼지 하나를 집어서 입으로 후 불고는, 그의 어깨에 팔꿈치를 걸치고는 손은 턱에 괴었다.
“이 또라이…….”
“제가 방금 전에 휴대폰 들고 다른 방송국 찾아간다는 말 못 들었어요?”
“그 휴대폰이 왜?”
“다른 기자들 돌아왔죠? 코롱마트 갔던.”
“당연한 거 아니야?”
“확인하셨어요? 무슨 사진이 있던가요?”
“사진은 무슨. 경찰차, 특공대, 코롱마트 주변. 그런 것들뿐이지.”
“CCTV는요? 자료 받았어요?”
“받았지. 물론.”
이미 코롱마트 측으로부터 KBC방송국도 자료를 받았다.
“그 안에서 강태훈 변호사 말고 또 함께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죠?”
국장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렸다. 인질 여성 한 명, 인질범, 강태훈 변호사. 그리고 휴대폰 들고 설쳐대던 웬 미친…….
“헉, 그게…… 너였냐?”
“빙고.”
“찍었어?”
“물론.”
“사랑한다.”
“사랑은 사모님한테나 말씀하시고요.”
국장이 팔을 벌려 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밀어냈다.
어디서 노친네 냄새나게 시리.
“다 찍지는 못했어요. 배터리가 나가서. 그래도 제 이 눈과 귀가 있었지요.”
“그래?”
그는 CCTV로만 확인했다. 현재 범인이 어째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강태훈와 그녀 정도였다.
“아주아주 재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더 대박인 건, CCTV로 강태훈 변호사 봤죠? 인질을 자처했고, 전 그 이야기까지 모두 들었다고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는 무슨 간디가 현신한 줄 알았다니까요.”
“증말?”
“네, 그리고 또 하나!”
그녀는 국장의 귀에 입을 가져다댔다.
“단독 취재하기로 약속 받아왔습니다.”
“진짜!?”
국장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강태훈 변호사를?”
어떤 방송국도 섭렵하지 못한, 이 시대에 손꼽히는 인간적적인 변호사가 강태훈이었다.
“특별 다큐를 준비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강태훈 변호사는, 그 인질범을 위해 변호를 시작할 거예요. 그 과정을 단독으로 계속 저희가 써내려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고충, 고뇌, 노련한 변호까지도!”
“흐억!”
국장은 숨이 막히는 듯했다.
특별 다큐라고 해도, 사실 별로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청률이 나오는 특별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단독이지 않은가.
이수애가 손을 들어올렸다.
국장이 그 손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저 다른 방송국 가요?”
“가긴, 왜 가! 나랑 평생 이 방송국에서 살아야지! 지금 바로 기사 쓸 거지?”
“아, 방금 경찰서 다녀와서 목이 좀 칼칼한데.”
“야 이 시끼야! 너, 할 거 없으면 우리 수애한테 음료수 한 잔 뽑아다 줘!”
“네!? 네…….”
순식간에 해고될 뻔하다가 왕으로 군림한 그녀였다. 괜히 옆을 지나가던 젊은 남성 기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판기로 달려갔다.
그녀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 등을 뒤로 젖히며 어깨를 어루만졌다.
“아, 어깨가 결리네.”
자연스레 국장의 손이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와 주물럭거렸다.
“언제 방송 내보내면 될까?”
“음, 내일 아침.”
“그래도 아홉시 뉴스에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피곤해서.”
“에이, 왜 그래.”
국장의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이 걸쳐졌다. 수애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스쳤다.
단지 특종이라서 강태훈을 노린 건 아니다.
그의 인간미.
기대된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