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49
49
변호인 강태훈 049화
17장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누나 혜지의 집으로 온 태훈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시아의 별이 이런 모습인 걸 안다면 팬들은 경악하겠지?”
“머고 주근 귀시는 때까도 곱댔더.(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댔어.)”
태훈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물을 따라 그녀의 앞으로 내려놨다. 벌컥벌컥 들이켠 그녀는 ‘캬-’하는 소리를 내면서 이제야 살겠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우리 엄마 음식 솜씨가 최고라니까.”
그녀는 작은 감탄을 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일정 때문에 한 달간 그곳에서 생활하였던 그녀다. 그녀가 어머니한테 ‘이곳 음식 못 먹겠어’라고 투정을 부리자 그녀가 오는 날에 맞춰서 어머니가 음식을 택배로 태훈에게 붙여줬고 그것을 전달하러 그녀의 집에 온 것이다.
“너 요즘 잘 나가더라.”
식탁 위에 올려진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혜지는 말했다.
“여배우가 무슨 이쑤시개를…… 뭘 잘 나가. 그냥저냥 사는 거지.”
“너 신문에도 나고 그러던데.”
확실히 11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지성의 누명을 풀어주었던 것이 매스컴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얼마 전에는 ‘화산 법무법인’에서 직접 연락을 가해 스카웃하려고 했지만, 일단은 다음을 기약하겠다고 말했다.
“아무튼, 열심히 한 번 해봐. 나가자. 누님이 커피 한잔 쏜다.”
“그냥 막 돌아다녀도 돼?”
“이 동네 사람들은 나 신경도 안 써. 또 아파트 단지 내에 카페 있어.”
그녀의 말에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고위층의 대단한 부자들이 사는 동네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파트의 가격은 30억이었고 평수는 52평 정도였다.
대한민국 부자들의 중심. 강남에 위치한 아파트다.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 그 여배우 하는 처자이구만.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쉰다섯 정도로 보이는 헐렁한 경비 복을 입은 남성에게 누나는 꾸벅 인사를 했다.
이 아파트는 신기하게도 동마다 경비원이 한 사람씩 배치되어 있었다.
“동생분인가요?”
“네-”
“신수가 훤하네요.”
“신수가 훤하긴요. 이 나이 먹도록 나잇값도 잘 못 하는 놈인데, 호호!”
그녀는 통쾌하게 웃었다. ‘누나고 뭐고. 확!’ 하는 생각을 했지만,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인다.
“안녕하세요.”
“아, 그래요. 가족 두 분이 무척 싹싹하구만.”
경비원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인사를 끝내고는 소포들을 한 움큼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또 배달하는 거예요?”
혜지가 기겁했다.
“네.”
“사람들도 참 지들이 시킨 소포. 자기들이 와서 찾아갈 것이지.”
그녀의 말에 경비원은 쓰게 웃었다. 태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도 이곳 아파트의 사람들이 콧대가 워낙 높다 보니 경비원들을 부려먹고는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동마다 한 사람씩의 경비원이 있지.
“태훈아, 도와드려.”
“응? 그래.”
그녀가 아직 밑에 깔린 소포를 눈짓했다.
태훈도 아버지뻘 되시는 분이 힘들게 아파트를 올라갔다 할 것을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괜찮아요. 뭐 어려운 일인가요.”
“그럼 감사합니다.”
나이를 지긋이 먹었음에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를 도와 엘리베이터 앞까지만 옮겨주었다.
“고마워요, 젊은 친구. 나도 사실 자네만 한 아들이 있거든. 매번 보지만 누나분도 참 심성이 곱고 예뻐요.”
“아니에요. 저희 누나 안 착해요. 저거 다 연기 하는 거예요. 누나가 배우잖아요. 배우.”
“하하, 사람의 심성은 연기로도 속일 수 없는 거잖아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경비병은 그의 장난스러운 말에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태훈은 되레 무안해져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
그가 엘리베이터에 소포를 들고 타는 모습을 보고 누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 *
택배를 들고 올라간 경비원은 여러 집을 방문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땀은 비 오듯 했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가져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이제 하나만 배달해주면 오늘 전달해줄 소포도 없었다.
띵동-
“누구세요?”
인터폰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소포 왔어요.”
그는 소포를 들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문이 열리고 예순둘 정도 되어 보이는 귀품이 흐르는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주 목걸이에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금가락지는 굵었고, 웨이브진 머리카락은 머리 한 번 만지는데 300~400만 원을 웃도는 강남 헤어숍에서 한 것이다.
“여기…….”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반말을 던졌다.
“이제 막 소포가 도착했어요. 사모님.”
“이제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성을 냈던 그녀는 마치 벌레를 보듯 그를 위아래로 흩어보았다.
“아무튼, 수고했네. 그동안 고생도 했으니.”
그녀는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그러고는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받아.”
“아니, 그래도 돈은…….”
“돈을 줘도 그러네. 받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해. 땀 흘리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인심 좀 쓰려 했더니.”
그녀는 문밖으로 5만 원짜리를 던졌다.
문이 쾅! 하는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5만 원짜리를 물끄러미 내려 보다가 한숨을 턱 쉬었다.
“돈을 바닥에 던지고 그러시면 안 되는데.”
돈을 주머니에 넣고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는 서른 중순의 여성이 대여섯 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타고 있었다.
“아저씨! 이따 타세요! 어휴! 엘리베이터에서 왜 이렇게 썩은 내가 나나 했더니.”
막 타려고 하니 여성은 불같은 성질을 냈다.
“아, 예예. 알겠습니다. 먼저 내려가세요.”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이 누구던가. 사람을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은가.
“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아요. 그러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씁쓸하게 웃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잠시 보았다.
이런 일이 이곳에서는 일상인 것 같았다.
“나이 먹고 운동도 하고 좋지 뭐.”
긍정적으로 웃으며 계단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오랜 시간을 견딘 다리는 관절염에 지끈 거리고 있었다.
* * *
[서울시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이 모 씨가 분신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평소 이 모 씨는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아 듣는 등 하였던 것으로 이 모 씨의 동료 경비원들은 주장했습니다. 지금 취재 영상을 함께 보시죠.]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켜 함께 먹고 있었던 한마음 법무법인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위쪽에 걸려 있는 TV에 고정되었다.
아파트 이름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지만 비치는 아파트 모습에 태훈은 젓가락을 잠시 놓았다.
“어…… 저기 누나 사는 아파트인데…….”
누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분명하였다.
그러나 다른 변호사들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TV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 아, 글쎄. 우리를 벌레 보는 것처럼 했다니까.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욕을 하지를 않나, 씻고 다니라면서 더럽다는 듯이 쳐다보지를 않나.
분신을 시도했다는 이 씨의 동료 경비원의 목소리는 변조되었지만 흥분한 투는 가득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 한편 분신을 시도한 이 모 씨는 황급히 소화기로 불길을 진압한 동료 경비원들에 의해 근처의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며 현재 3도의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씨는 가족에게 ‘미안해. 모두 사랑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띡-
TV가 꺼졌다.
“대표님.”
한소원 변호사가 박문수 대표를 보았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우리가 개입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엄연히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 역시도 한마음 법무법인 관할이었다.
때마침 태훈의 전화가 울렸다.
누나였다.
– 너 뉴스 봤어?
“응, 누나 아파트에서 일 났던데. 어쩌다가 대체 그런 일이…….”
– 저번에 뵈었던 아저씨 있지. 그분이셔.
태훈은 다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하게 웃어 보이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런 분이 이런 분신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박문수 대표와 통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가요?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강태훈 변호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문수는 그녀와 통화를 할수록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자네가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아.”
“예, 알겠습니다.”
태훈은 입가에 묻은 짜장을 닦았다.
“그래도 마저 먹고 가지.”
“괜찮습니다. 공교롭게도 분신자살 시도한 분이 뵌 적이 있으신 분이어서요. 어서 가보겠습니다.”
사람 하나가 스스로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그 선한 눈빛을 가졌던 자신을 대하면서도 계속 어른 대하듯 깍듯했던 경비원이 말이다.
그 어두운 내막을 확실하게 서둘러 파헤쳐야 했다.
* * *
아파트 입구에서 매니저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황급히 그를 반겨주었다.
“피해자 가족분들 현장 쪽에 계실 거야. 네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혜지야. 빨리 타. 너 스케줄 늦었다니까.”
그녀는 스케줄이 있음에도 태훈을 기다린 것 같았다. 매니저의 재촉에 다급히 차량에 올랐다.
“미안해, 그래도 그 아저씨 되게 좋은 분이셨어.”
그녀가 사라지고 태훈은 다급히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경찰이 쳐놓은 노란색의 접근 방지 띠가 처져 있었고 그곳에는 그을린 자국이 역력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태훈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성과 늙은 노부인이 사람들의 틈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게 방화가 아니면 뭐예요! 그 사람이 이 아파트 전부 불 지르려고 한 거 아니야! 고의적으로.”
“이보세요. 아주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네? 더불어 불은 초기에 진압이 되었다고요.”
그 중앙에 있는 남성에게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부인은 얼굴을 감싼 채 이 냉혹한 현실에 울음을 터뜨렸다.
태훈도 그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이 분신자살을 시도했고 오늘 내일을 하는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삿대질을 하면서 질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가해자일지도 모르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이는 피해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니, 그깟 경비원 아저씨 하나 때문에 우리 아파트 가격 떨어지면 책임질 거야!?”
“맞아, 맞아!”
마치 파리 보듯 한목소리에 태훈의 주먹이 절로 움켜쥐어졌다.
피해자의 아들로 추정되는 남성도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개 같은 연놈들. 우리 아버지가 당신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었다. 남들은 하찮은 경비원으로 여길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근래 통 힘든 기색을 자주 보이셨고 힘없이 웃으실 때가 많았다.
그래도 가족들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아니야. 아무 일도.’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막상 일이 터지고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동료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일을 하셨다.
이들 모두가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가해자들이었다.
“당신들 내가…….”
“지금 뭣들 하는 겁니까!”
그가 불같은 성질을 내려 할 때 사람들 틈을 파고들어 막아서는 남성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태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