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57
57
변호인 강태훈 057화
법정에 서기 전 가장 손 써봐야 할 곳은 합의였다. 단순 폭행으로 무조건 징역을 살게 되는 세상은 아니었지만, 대호의 경우는 폭행으로 약식기소 벌금만 나와도 ‘유죄’가 인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당한 금액과 명예훼손. 2년의 선수자격 정지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억울하기는 한 것이지만 합의를 주도해보자고 대호에게 연락을 했다.
굳이 대호에게 동행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어차피 법정대리인은 자신이었고 그는 없어도 괜찮았다. 괜히 그 자리에 꼈다가 더 큰 불화(不和)가 생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태훈이 직접 그쪽 변호사와 연락이 닿아 이 고발을 주도한 남성을 찾아가기로 했다.
변호사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변호사였다. 꽤나 실력이 있는 분이었고 올해 마흔셋이었다. 대호에게 몇 대 맞고 픽픽 쓰러진 이들은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그들을 찾아왔다.
삼인 병실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 퍽 웃겼다. 방금까지만 해도 TV를 보던 그들이 ‘아이고오-’ 하는 곡소리를 낸다.
누굴 바보로 아나. 정말 요즘 조폭들도 먹고살기 어렵긴 한가 보다.
태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과 이야기 할 필요는 없었다. 변호사와 이야기 하는 게 빠르다.
중앙에는 말끔한 신사복을 입은 안경을 낀 신사가 그를 반겨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태훈 변호사입니다.”
“네. 이거 생각하고는 다른 변호사분이 연락을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태훈은 인권 변호사였고 원대호 정도면 상당한 가격의 사선 변호사, 혹은 기업 변호사를 통해 연락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분하고는 인연이 되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네, 앉으시죠.”
“아이고오. 변호사 양반. 나 이빨도 흔들리는 거 같은데, 어쩌지? 당장 원대호 그 새끼 좀 오라고 해봐.”
덩치가 산만 하게 크고 키가 훌쩍 큰 남성은 첫 번째로 강타당한 이 같았다. 태훈도 운동을 했기에 안다.
그는 정확하게 전두부를 가격당했고 그와 더불어 후두부까지 타격이 전달되어 기절한 것이다.
태훈이 어이없어 웃자. 상대측 변호사가 헛기침을 했다.
“흐흠!”
상대를 봐가면서 꾀병을 부리라는 모습이다.
괜히 법으로 문제 삼지 말고.
“일단은 원대호 씨를 대신해 물의를 빚은 적 죄송합니다. 현재 폭행죄로 고소장을 넣으신 것으로 압니다.”
“네,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세 분 모두. 무기력하게 원대호 씨에게 맞아서 쓰러졌습니다. 또한, 운동을 그만큼 했던 선수가 일반인을 그렇게 때렸다는 건. 자칫 더 큰 문제로 불거질 수 있었다는 걸 주장하는 바입니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일반인’ 부분에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 사람들이 어딜 봐서 일반인이란 말인가.
조직 폭력배들이지.
그의 말에는 모순이 존재했다.
“‘무기력’하다고 언급하셨지만, 등 뒤에서 발로 차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 쌍방의 경우도 사료됩니다. 물론 원대호 씨의 경우 큰 통증을 호소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대호 씨에게는 어린아이가 찬 발길질 정도 아닐까요?”
“흐음.”
태훈은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꼬투리 잡으려면 잡고 공격할 게 많았지만, 이 자리는 서로의 의견을 두고 싸우자는 게 아니라, 합의를 하는 자리였다.
“이 이야기는 그쯤 하도록 하죠. 알기로는 전치 3주가 대게 나오신 걸로 아는데. 합의를 보심이 어떻습니까.”
태훈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큰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도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직 폭력배들도 그 금액에 대해 귀를 쫑긋 세웠다.
“한 사람에 2천씩. 6천으로 합의했으면 합니다.”
“6천이라…… 곤란하군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호로서는 크게 부른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에겐 아니었다. 돈 많은 잘나가는 UFC 선수가 고작 6천? 콧방귀가 나온다.
그들은 적어도 억대를 바란다.
“뭐가 곤란하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민사소송으로 갈시, 세 분이 받아낼 수 있는 돈은 많아야 천만 원이 될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의뢰인들이 거부하십니다.”
그는 쓰게 웃었다. 태훈은 한숨을 쉬었다. 형사사건으로 넘어가 재판받기 싫으면 억을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억울한 원대호가 미쳤다고 그들에게 억을 준다는 말인가.
‘합의는 역시 물 건너간 건가. 개새끼들. 돈도 한 푼 못 받고. 무죄 판정받게 해주마.’
태훈은 뒤쪽의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합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던 그들은 모른 척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렇다면 그대로 진행하시죠.”
만약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형사소송도 날아가고 민사소송도 날아가는 것이다.
태훈은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원대호도 자존심이 있고 자신도 자존심이 있었다.
진다면 6천만 원의 10배가 넘는 돈과 이미지 손실을 입을 수 있지만,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아니, 조직 폭력배다.
변호사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를 배웅했다.
문이 닫혔다.
“저 새끼 6천만 원? 천하의 원대호가 통이 작아!”
“한 3억 주면 합의해 주려고 했더니.”
문 뒤로 들리는 목소리에 태훈은 쓰게 웃었다.
“니들은 진짜 조폭이 아니라 양아치구나.”
그는 쓰게 웃으며 품속의 휴대폰을 꺼냈다. 녹음 버튼을 종료했다.
녹음자료도 건진 게 없었다.
그만큼 상대측에서 조심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착잡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 * *
일을 갔다가 바로 문수가 퇴근하라고 했기 때문에 태훈은 집으로 돌아왔다.
대호에게는 애석하게도 그들이 ‘3억’ 정도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럴 수 없다고 완강히 밝혔다.
전치 3주면 뺨 몇 대만 맞아도 나오는 진단이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명인들도 꽤 피곤하겠구나 싶다.
아파트로 들어가려던 그는 자신의 눈을 감싸는 가냘프고 작은 손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게.”
“음, 혜영이? 아니다. 애진이? 음…… 아니야. 소영이구나!”
“핏! 거짓말…… 변호사님 여자 없는 거 다 아는데.”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토라진 표정의 재희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머리가 그새 자랐다.
웨이브 진 머리카락에 꽃무늬가 들어가 있는 원피스. 5㎝ 정도로 솟아오른 굽. 핑크빛으로 물들어져 있는 볼.
태훈은 쓰게 웃었다.
“날씨도 추운데. 왜 이렇게 춥게 입고 다녀.”
확실히 예쁘긴 예뻤다. 그녀는 연예인 못지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짠!’ 하면서 도시락 가방을 들어 올려 보였다.
“식사 안 하셨죠?”
“먹었는데? 그것도 엄청 많이. 고급 뷔페에서.”
“히이이잉!”
태훈의 말에 그녀가 몸을 휙 돌리면서 새끼강아지 울음소리처럼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말려.
“장난이야. 아무것도 안 먹었어. 배고파 죽겠네.”
“그럼 이거 먹죠! 누가 싼 건지는 모르지만 맛이 기가 막히던데!”
그녀는 공원 쪽으로 이끌려 했다. 태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쌀쌀한데, 그 차림으로?”
그녀의 차림새가 무척 추워 보인다. 아직 냉기 낀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밤인지라 꽤 쌀쌀하다. 그녀의 몸도 그 추위에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올라가자.”
“네에? 나 아직 준비가…….”
“응? 뭐라고?”
그녀의 확 놀란 목소리와 함께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말소리는 너무 작아 듣지 못한 태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정말 들어가도 돼요? 그럼 들어가야징.”
민망한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녀는 아파트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바로 입구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그녀는 자동문인 줄 알았는지 계속 열리지 않자 입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왔다.
“에휴. 칠칠찮기는.“
태훈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문이 열렸다.
그녀는 더 부끄러워진 것인지 볼이 화끈거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녀는 말이 없어졌다.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태훈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오늘 무슨 일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 * *
보일러를 틀어놓지 않아 방에 냉기가 어느 정도 있었다. 태훈은 보일러를 켜고 히터를 틀었다. 리모컨 하나면 집안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런 집은 얼마에요?”
혼자 살기에는 넓은 크기의 집이었다. 베란다로 나가면 꽤 좋은 풍경의 전망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시세가 11억 정도?”
“변호사님. 돈 많이 버시나 봐요…….”
그녀는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아니, 내가 한 거 아니야. 우리 누나가 해줬어. 나도 문제지. 한심하게 이 나이 먹고 누나 도움이나 받으니까.”
태훈은 쓰게 웃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후회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미안했다.
이 심정을 누나가 안다면 분명히 ‘미친놈!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베란다로 나간 그녀는 난간에 기대어 바깥을 보고 있었다. 태훈이 따뜻한 쟈스민 차를 건넸다.
“둘러보고 있어. 나 발 좀 씻고 올게.”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이 화장실로 들어가고 집 안을 둘러보는 그녀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침실의 문을 열었다.
한편에는 책장이 있었다. 어제저녁에도 자기 전 책을 읽었는지 침대 바로 옆 서랍장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주방으로 갔다. 양문형 냉장고가 돋보였고 아기자기한 의자 두 개와 나무로 만들어진 식탁이 있었다. 그녀는 식탁을 손으로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많은 것이 떠오른다.
출근할 시간이 지난 그를 자신은 침실에서 깨운다.
‘여보, 일어나요. 늦었다니까요.’
‘으음…… 5분만 더. 헉! 지금 시간이……!’
벌떡 일어나 서둘러 씻고 나와 넥타이를 엉성하게 매는 그의 넥타이를 자신이 매준다.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것도 하나 못하고.’
‘에헤이, 또 잔소리하는 것 봐라.’
태훈은 미간을 씰룩인다. 나서기 전 한 살배기 갓난아기를 껴안는다.
‘우리 공주님. 아빠 일 다녀올게요. 우쭈쭈. 뽀뽀.’
어린 딸아이와 입을 맞춘 그는 구두를 신는다.
‘이거 가져가요!’
서둘러 늦잠 잔 그를 위해 만들어놓은 잼을 바른 식빵을 건넨다. 식빵을 건네받으며 볼에 뽀뽀를 한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선다.
곤히 자는 아이를 보며 자신은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노트북을 들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눈을 뜬 그녀는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행복했던 상상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뭐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너무 행복한 상상에 취해 나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던 그녀는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흠칫했다.
발을 씻고 나온 태훈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짜자잔.”
그녀가 자신이 만든 3단 도시락 통을 펼쳤다.
1층에는 누드 김밥이, 2층에는 샌드위치가, 3층에는 과일이 있었다.
“이야. 이걸 날 위해.”
태훈은 싱긋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집었다.
재희도 꽤 오랫동안 끼니를 챙기지 못했기에 누드 김밥 하나를 집어 그것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되게 차다…….”
“식었죠…… 차하고 같이 먹어요.”
눈치 없는 태훈은 알 리가 없었다. 이 도시락이 차가운 이유. 태훈은 평소보다 2시간가량을 늦게 집에 왔다.
때문에 2시간을 넘게 재희는 집 앞에서 얇은 옷차림으로 그를 기다린 것이다.
태훈이 재희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재희는 양 허벅지에 올라간 손이 절로 치마를 움켜쥐었다. 역시 강태훈 변호사님도 남자였어.
남자의 집에 여자 혼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그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태훈도 건실한 남자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재희는 그라는 남자라면 좋았다.
그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재희는 자신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첫 키스를.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