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96
96
변호인 강태훈 096화
“검사 측이 발언한 것처럼 그 죄의 값에 무게를 못 이긴 어린 소년의 두려움이 표출된 것입니다. 죄의 무게는 가볍지 않으니까요. 부디. 피고인과 그의 홀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배심원 여러분들은 평의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본 법정에서 모두 퇴정하셔도 좋습니다.”
판사의 말과 함께 법정의 인원들이 우르르 나갔다.
배심원들의 경우 그들을 안내하는 이들이 평의실로 이끌었다.
평의실에는 길쭉한 탁자가 놓여 있었다.
정중앙의 세 개의 자리에 주심 판사와 좌우배석 판사가 나란히 앉았다.
“배심원 여러분 재판 진행은 잘 확인하셨죠. 이제 의견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주심 판사의 말에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태훈이 눈여겨보았던 4번 배심원이었다.
“네.”
“저희의 의견에 따라 피고인이 받게 되는 죄의 값이 달라지나요?”
“난처하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배심원들의 유무죄와 형량에 관련한 선택이 실제 법관의 판결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수렴을 하기는 하는 편입니다.”
“저희가 선택하지 못하면 이런 국민참여 재판은 왜 하는 거요.”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2번 배심원이었다.
4번 배심원이 날카로운 눈으로 배심원들을 흩어보았다.
그는 삐뚤어진 안경을 맞췄다.
“저도 처음엔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에 참으로 나쁜 녀석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더군요.”
배심원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의 예상처럼 이야기의 주도권은 남성이 잡았다. 그는 현재 한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6번 배심원. 중년의 여성이 반론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일까 합니다. 또 추후에 다시 범행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새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요. 몇 범의 성폭행범이 또다시 성폭행을 저지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전 왠지 모르게 피고인에게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허참, 그 나이에 거짓말을 얼마나 잘 하는 줄 아십니까?”
2번 배심원이 콧방귀를 끼며 테이블을 턱 쳤다.
“그런 녀석들은 애초에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사회에 못 나오게 해야 해요. 이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맘 편하게 못 사는 것 아닙니까.”
“말이 다소 과격합니다.”
4번 배심원이 안경을 고쳐 맞췄다.
“지금 2번 배심원님이 하시는 말씀을 한 번 스스로 돌이켜보세요. 자신의 아이가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남의 물건에 손을 댔는데 다른 이가 도둑질을 했으니 사회에서 근절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격과 뭐가 다릅니까. 지금 저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국민으로서 법과 사람에게 진중한 시선을 맞추고 그를 용서할지 말지에 대해서 선택하는 자리입니다.”
태훈의 예상처럼 남성은 배심원들을 압도하며 노련한 말솜씨로 이끌고 있었다.
“그는 충분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쉽게 참을 수 있었을까요?”
“저…….”
한 여성이 손을 들어 올렸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여성.
태연이 노래를 부를 때 눈물 흘렸던 그녀였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민망한 듯 웃었다.
“전 아직 어려서 이런 건 잘 모르지만 지금 열여덟이란 나이에 10년 이상을 감옥에 있으면 나오면 서른 살이잖아요. 또 저희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셔서 저 고등학교 졸업식 때 아버지가 못 오셨어요. 그런데 그게 많이 섭섭하고 창피했었어요.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 그냥 안 오신 아버지를 둔 피고인은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요.”
“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피고인과 가장 나이 차이가 근접한 여성의 말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제 개인적으로는 형을 감면해주자는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반대하시는 분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감면도 좋긴 하지만 조금 더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배심원들의 의견이 몇 부딪쳤다.
“만약 그 형량이 낮춰지고 나와서 또 범죄를 벌이면 책임지실 거요?”
2번 배심원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책임질 수 없다.
2번 배심원의 경우도 건성으로 이번 재판에 임하는 것 같은 모습이지만 실제로 어떠한 것이 이 재판에 달려 있는 것인 줄 안다.
그도 진심이었다.
혹여 형이 감면되었을 시 그가 다시 사고를 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전 이쪽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회사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피고인보다는 몇 살 많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어요. 피고인은 분명 어린 학생이고 살인자지만 저희 아들보다 나은 부분도 있더군요.”
4번 배심원은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하려 했다. 재판장은 주도 있게 그들에게 말을 이어나가는 그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제 아들 녀석은 꿈도 없이 그렇게 하루 이틀, 삼 일 나흘 사는데. 저 친구는 꿈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전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눈물짓던 그 소년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거라는 건 생각하기 어렵더군요.”
“당장 10년 형을 살게 됐는데 그런 눈물쯤은 충분히…….”
“맞습니다. 맞아요. 변호사가 시켰을 수도 있고, 자신 스스로 일부러 운 걸 수도 있어요. 요즘 애들 2번 배심원님 말처럼 거짓말 잘합니다. 제 아들도 없는 문제집 비, 학원비 만들어서 술 마시러 다닙니다.”
그는 쓰게 웃었다.
“그렇지만 방금 하신 말씀과 같이 ‘범죄의 재발’ 위험성을 두고 다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전 없다고 보입니다.”
“어째서죠?”
주심 판사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라는 남성에게 흥미가 생겼다.
“힘들었던 유년시절을 보내게 만들었던 아버지가 없고 또 아버지 없이 홀로 저 아들을 키워낸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지 않습니까. 가난했던 형편도 복권에 당첨되었다니. 이제 좋아지겠지요.”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2번 배심원은 더 이상 반문하지 않았다.
* * *
“본 법원은 이번 ‘구로구 부친 살해사건’에 관련하여서 징역 5년 8개월을 선고하는 바이다.”
태연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법정에 퍼졌다. 태연도 긴장이 풀린 것인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검사 측은 이번 살인사건에 관련하여서 존속살인에 관련해 강력히 11년 8개월을 주장하였으며 그의 주장처럼 다소 견딜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고는 하나 나가는 피해자를 뒤따라가 흉기로 몸 수십 차례를 찔러 살해한 잔인무도했던 점, 아버지를 법이 아닌 살인이란 이름으로 벌한 점 등을 두고 엄한 형벌을 주장하였다.”
모두의 긴장감 속에서 말이 이어졌다.
“분명 그의 살인은 존속살인으로써 옳지 못한 행동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본 법원은 피고인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없는 삶을 살며 오히려 그 없는 삶이 편안했다고 느꼈다는 것을 이해한다.”
조용한 적막 속 배심원들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한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또한, 피해자는 돈 때문에 수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왔고 피고인의 친모를 무분별하게 폭행하였다. 그로 인해 피고인은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분명 피고인의 죄는 용서 받기 힘든 죄이다.”
“…….”
“하나. 이번 재판은 국민참여 재판으로 치러졌으며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선처할 것을 말했다. 비록. 우리나라의 법은 배심원의 판결이 본 법원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나. 나 재판장 김억수 역시 같은 마음을 품었다. 이에 징역 5년 8개월을 선고한다.”
판결문 낭독을 마친 그는 빙긋 웃으며 배심원들을 보았다.
“이상으로 본 재판을 끝냅니다. 배심원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짝-
배심원들이 박수를 쳤다. 한 사람이 치기 시작한 박수가 다른 사람에게 퍼지듯 넘어갔다.
결국, 4번 배심원의 설득에 넘어간 2번 배심원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이무진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싸움은 어쩌면 태훈에게 조금 유리한 편이었다.
무진은 태훈을 보며 픽 웃었다.
태훈도 빙긋 웃으며 살짝 묵례를 취했다.
하나둘 사람들이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배심원들의 걸음은 빨랐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법정을 떠나고 싶을 것이다.
“5년. 변호사님 말씀처럼 주인이 누나가 결혼하진 않았겠죠?”
“아마도?”
“……결혼했으면 찾아갑니다.”
“하, 하하.”
태훈은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어색하게 웃었다. 곧 법정 경위가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태연은 법정을 나서기 전 태훈을 돌아봤다.
“변호사님.”
“응?”
“고맙습니다.”
“그래.”
태훈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태연도 머쓱한 모습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빙긋 웃었다.
사람은 분명히 유년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범죄자는 이유 없는 자들보다 이유 있는 자들이 많다.
어쩌면 모든 범죄자는 억울한 수감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변호사는 존재한다.
그 억울한 수감자들을 위해서.
* * *
퇴근 시간. 누구 하나라도 먼저 몸을 일으키는 변호사는 없었다. 자신들의 업무에 열중하느라 퇴근 시간도 모르는 변호사들에게 한기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퇴근들 하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요.”
변호사들이 머쓱하게 몸을 일으켰다. 예전에만 해도 퇴근 시간만 되면 한기의 눈치를 보기 바빴는데 요즘엔 그런 게 없었다.
태훈의 경우 오늘 마무리한 태연이 사건에 관련해서 자신이 부족한 점이 없었나, 검토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태훈은 집으로 향한 후 차를 주차하고 곧바로 택시에 올랐다.
술 약속이 있었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태훈은 피식하고 웃었다.
“뭐 좋은 일 있으세요?”
택시기사가 물었다.
물론 오늘 승소한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네, 아주 좋은 일이 생겼네요.”
빙긋 웃기만 하고 정확한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택시기사도 빙긋 웃고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차가 멈추고 도착한 술집 앞에는 도혜가 서 있었다.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서 있던 도혜는 반갑게 그를 맞이해주었다.
“축하해. 승소.”
“고마워.”
“아주 멋있었다던데? 역시 안도혜의 남자친구답군.”
도혜가 싱긋 웃으며 어깨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두 사람이 술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익숙한 두 얼굴이 술집으로 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한마음 법무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민후 변호사였다.
“여어- 강태훈 변호사.”
“오셨어요?”
“태훈아, 오늘도 일 잘 해결했다며, 축하해.”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성.
김지혜.
태훈과 도혜의 얼굴로 활짝 웃음꽃이 맺혔다.
그 당시 민사소송을 진행하였던 강민후 변호사와 김지혜는 연인 사이가 되었다.
강민후 변호사는 실수도 잦은 편이었고 엉뚱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지혜의 얼굴로도 그때 보았던 얼굴과는 다른 행복이 묻어났다.
술집으로 함께 들어갔다.
안주를 시키고 술을 시켰다.
두 사람이 연인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들은 건 1주일 전이었다.
태훈과 도혜는 말없이 보면서 웃었다.
강민후가 뒷머리만 머쓱하게 긁적였다.
“왜들 그런 표정으로 보시나.”
“그냥요, 축하해요.”
“축하합니다.”
“아, 아하하. 고, 고맙다.”
축하한다고 말은 하지만 도혜와 태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음흉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그는 부담감을 감출 수 없었다.
술이 한 잔 두잔 석잔 넉 잔 들어가기 시작했다.
태훈과 민후가 눈짓하더니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또?”
“아니야. 그런 거 하하하.”
“내 코는 해리 코 못지않거든.”
민후가 어색하게 웃자 지혜가 코를 씰룩였다.
“한 번만…….”
“지혜도 깍쟁이구나. 호호, 한 대쯤이야. 뭐 어때.”
“어휴, 몸에 나쁜 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겨우 승낙을 받고 밖으로 나섰다.
태훈은 밖으로 나와 유리 벽 너머의 두 사람을 보았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은 자신들 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민후는 빙긋 웃었다.
“수술할 수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