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1
-인상이 흐릿하면서도, 정확하게 동작이 일치하는 게 정말로 ‘그림자’같네요. 아주 좋아요!
칭찬이라기엔 애매한 말인데도, 워낙 받아본 적 없던 긍정적인 반응에 유명은 신이 났었다.
더욱 완벽한 그림자가 되기 위해서 주인공의 동작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맞추도록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리고 지금, 그림자가 본체를 뒤쫓는 존재라는 설정에, 루팡을 뒤쫓는 홈즈의 연기를 연결시킨 것이었다.
유명의 기발한 발상은 원생의 ‘수많은 경험’에 연극적인 상상력이 합쳐진 결과물.
물론 그것을 모르는 류신의 입장에선, 오로지 그의 천재성 때문이라고 오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에 의기소침할 류신은 아니다.
그가 정한 길은, ‘천재를 뛰어넘는 노력’.
“그런데, 이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하려면, 홈즈의 연기가 중요할 것 같아요. 루팡의 말투나 제스처와 묘하게 ‘일치’하는 느낌을 주면 보는 사람들이 섬찟섬찟할 것 같은데···”
“그렇겠네요.”
“2주밖에 없는데, 선배가 너무 힘드실까요?”
유명의 질문에, 류신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설마요.”
*
세미는 두고 보자는 표정으로 그들의 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첫 번째 장의 홈즈는 놀라웠다.
경쟁 상대이면서도, 자칫 박수를 칠 뻔 했을 정도로 탐정의 향기가 물씬나는 홈즈.
하지만,
‘연극적 장치나 연출적 측면에서는 우리 게 나아.’
‘극적’으론 자신들의 극이 더 낫다고 위안했다. 준비한 기간이 다르다는 것은 애써 외면한 채.
줄라이 공연 경합의 가장 주요한 평가 항목은 ‘좋은 연기’가 아니다.
얼마나 극적으로 매력적인, 얼마나 재미있는, 얼마나 ‘팔릴만한’ 극인지가 가장 중요한 채점 포인트.
그런 부분을 간과하고 무조건 객원 팀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녀도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잉-
조명이 들어오고, 두 번째 장의 무대가 밝았다.
무대에 등장한 사람은 한 명, 아르센 루팡 역의 신유명.
앞선 홈즈와 인상이 극명하게 갈리는 쾌활하고 장난스러운 인상의 남자는 신문 한 부를 손에 들고 읽고 있다.
“A.L. 여자.보호.요청.540. 540 여성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어 나에게 보호를 요청하고 있군.”
그는 신문에 등장한 암호문을 능숙하게 해석하며 생각에 잠긴다.
생각하며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버릇, 한 발의 끝으로 바닥을 톡톡 치는 자세.
짧은 대사에도 말투와 습관을 맵시있게 배열하여 아르센 루팡이라는 캐릭터를 단숨에 설득해 낸다.
‘역시 잘해…하지만, 예상대로 홈즈 1장, 루팡 2장, 둘의 결착 3장으로 밋밋하게 구성한 모양이군.’
세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포켓에서 홈즈가 등장했다.
‘응?’
“A.L.은 아르센 루팡의 약자죠. 540이라는 코드의 여성은 지의 알림란을 통해 그에게 보호를 요청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대의 반대편에 서서 그는 앵무새처럼 루팡의 말을 따라한다.
그의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하듯이.
무대라는 공간을 반으로 나누어, 과거 루팡의 행동과 현재 홈즈의 추리를 에코식으로 배열한 연출.
세미는 깜짝 놀라 눈을 흡떴다.
그들의 대사가 교차식으로 배열된다. 아니 루팡의 대사를 홈즈가 뒤쫒아가는 듯 하다.
“540 여성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겠어. 다시 확인해야겠군.”
“540.설명. 이 다음 날의 알림란은 540여성에게 정확한 상황을 알려달라는 의미입니다.”
“A.L.협박.적.파멸. 그녀는 적에게 협박당하는 중이군. 파멸을 두려워하고 있어.”
“A.L.협박.적.파멸. 540여성은 루팡에게 적에게 협박당하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지요.”
관객들이 흠칫 놀랐다.
전 장에서 홈즈라는 캐릭터를 이미 보았던 그들은, 지금 홈즈의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져감을 깨닫는다.
추리가 진행될수록, 루팡과 닮아가는 말투와 동작.
그 때 홈즈가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린다. 루팡을 복사한 듯, 빼다박은 동작.
마치 홈즈가 루팡을 그대로 읽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느낌이 너무나 흡사하여, 보는 관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루팡과 홈즈를 번갈아 확인하였다.
탁-
신문을 접은 루팡이 몸을 뱅글 돌린다.
옆 모습. 그는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부인. 램프가 외부에서 도난당한 걸로 보이려면 몇 가지 처치가 필요합니다. 창문을 자르고, 땅바닥에는 사다리 자국을, 발코니 난간에는 긁힌 자국을 남기세요.”
여성을 안심시키는 정중하고 신사다운 말투.
“그는 저택의 ‘내부공범’에게 램프가 도난된 것을 외부인의 소행으로 가장하기 위해, 창문을 자르고, 땅바닥에 사다리 자국을 만들고, 난간에 긁힌 자국을 남길 것을 주문했죠.”
홈즈가 조롱하듯 그 말투를 흉내내어 말한다. 동조하는 억양.
화려하고 재기발랄한 남자의 대사를, 그는 치밀하고 집요하게 쫓아간다.
“부인을 협박하는 그 남자를 감시하도록 하게.”
“루팡은 부하를 시켜 그 남자를 감시시켰죠.”
“부인, 혹시 집 안에서 부인의 편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540 여성을 성심으로 따르는 드묑양을 공범으로 끌어들였구요.”
“부인,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루팡이 지키려고 한 540 여성의 이름은,”
“앵블방 남작부인.” “앵블방 남작부인.”
다다다-
빠르게 겹쳐지면서 점점 닮아가는 목소리는,
마지막에는 하나로 완전히 겹쳤다. 마치 하나의 목소리인 것처럼.
쫘악-
그 순간 추세미는 소름이 돋았다.
두 개의 스포트라이트가 무대에 떨어진 가운데, 극한의 연기력을 가진 두 배우가 첨예하게 치고받는 대사들이 점점 겹쳐지다 마지막엔 합쳐지는,
‘본 무대’의 광경이 눈에 보인 것 같았다.
*
마지막 장, 루팡이 놀리듯 홈즈의 앞에 나타나 대화를 나누고 사라지는 장면이 끝났을 때, 줄라이의 배우들은 모두 실의에 빠져 있었다.
‘불과 3장만에 전체 공연을 본 듯한 밀도···’
‘카메라 연기에만 익숙한 줄 알았더니, 어떻게 무대에서 이 정도의 연기를···’
‘20대 배우들의 저 노련함. 그리고 무대라는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연출적인 아름다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지만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연기야. 서로 말꼬리를 잡아채는 타이밍과, 섞여 들어가면서도 두 목소리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선명한 발성.’
그것은 분명, ‘무대연기’를 뼛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배우들의 무대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
드문드문 시작된 박수 소리는 곧, 커다란 갈채로 이어졌다.
비록 부럽지만, 자극되지만, 샘이 나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는 연기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고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객석에 불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치던 단장이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훌륭해요, 오늘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는군요.”
객원팀이 A,B팀보다 못할 경우를 운운하던 경합 직전의 단장이 떠올라, 백이신의 얼굴엔 ‘그것보라’는 미소가 떠올랐지만, 시선이 무대에 박힌 단장은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각자의 캐릭터도 선명했지만, 그 ‘닮아가는 과정’이 무척 정교하던데 오래 연습해온 레파토리겠지요? 전체 극이 어서 보고 싶네요.”
그 말에 유명과 류신이 난처해했다.
“어…단장님, 전체 대본은 없는데요. 경합때문에 3장을 급조한 거라···”
“뭐?! 지금 한 연기의 대본,연출,연습이 모두 줄라이 입소 후에 이루어진 거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말에 단원들은 한 번 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어, 대단하군요…그럼 공연은 뭘로···?”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 말고 다른 작품으로 올려도 괜찮을까요?”
“아…뭐, 원래는 경합에 공연작을 출품하는 것이긴 하지만, 준비기간도 짧았고 이 정도의 연기를 보여줬으니 다들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루팡 대 홈즈가 좀 아깝긴 하지만요.”
아직 발표가 안 났지만 객원팀의 공연은 확정된 듯한 어투.
단장이 배우들을 죽 둘러보았고, 모두가 이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정군과 추세미도 조금 분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얼굴로 긍정했다.
그렇게 그 날의 경합이 끝났다.
줄라이의 봄 공연은 A팀과 객원팀으로 결정되었다. 윤정군은 분한지 주먹을 불끈 쥐었고, 추세미는 뒤로 머리를 젖히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 날 이후로, 줄라이의 젊은 배우들은 두 부류로 극명하게 갈렸다.
천재적인 신인배우들의 연기에 자괴감을 느끼고 도피하는 사람들과, 더욱 이를 갈고 매진하는 사람들.
후자가, 줄라이의 새로운 주역으로 자라날 배우들이었다.
*
경합 후, 그들은 백이신을 찾아갔다.
“어서 와요! 연기 정말 최고였어요. 우리 배우들의 억지를 초반에 못 막아줘서 미안하고, 한편으로 단원들에게 공부가 된 것 같아서 고맙고 그러네요.”
“아니에요. 저희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정말 좋았어요. 특히 재미있었던 게···”
이신이 예리한 눈을 빛냈다.
“홈즈가 루팡을 카피하는 부분, 그거, 2년 전 오디우스 공연에서 유명이가 서류신씨 연기를 카피했던 느낌이 그대로 나더라구요.”
그 지적에 류신이 움찔했다.
이 사람 예리하다.
유명이 자신의 연기를 카피한 것이 못내 분해, 1년간 본인도 그걸 해내려 발버둥쳤던 것은 유명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모른 척했다.
“그런가요.”
“아무튼 좋습니다. 공연작도 무척 기대되네요. 구상하고 있는 작품 살짝 알려줄 순 없나···?”
“음…그걸 얘기하기 전에···”
만족한 얼굴로 빙긋빙긋 웃는 그에게, 유명이 폭탄을 던졌다.
“선배님. 저희 팀 조연출 어떠세요?”
“…어어??”
“선배님이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니 왜…필요하다면 줄라이 연출부에서 지원해줄텐데, 난 연출부도 아니고…아니 그리고 왜 연출이 아니라 조연출?”
“따로 연출없이, 참여하는 배우들끼리 만들어갈 생각인데, 그래도 모두가 무대에 올라가있을 때 그림을 봐 줄만한 ‘눈이 좋은’ 사람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유명은 이신의 눈과 감각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편하게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상대이며, 연출적인 고집이 없는 상대라는 것도 이점이었다.
“어어…영광이긴 한데…단장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 때, 사무실 밖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단장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난 찬성! 어차피 내년 배우캐스팅은 추가티오 없을거라, 경영지원 업무 보고있잖아.”
“단장님은 왜 갑자기 거기서···!”
그렇게 이신이 조연출로 투입되는 것이 결정되었고,
“그런데 진짜…구상하고 있는 작품은 뭐에요?”
이신의 질문에 류신의 답이 떨어졌다.
“피터팬입니다.”
“피터팬? 동화잖아요?”
그리고 유명이 보탠 설명에 이신과 단장은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