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0
경합에 참가하는 팀들은 3개의 장을 골라서 연기하게 되어 있었다.
소요시간은 팀마다 10~15분 정도.
불과 2주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루팡 대 홈즈에서 3개의 장면만 각색했다. 그리고 대본보다는 캐릭터의 이해와 공유에 초점을 맞췄다.
-배역은 어떻게 정하죠?
-선배가 고르실래요?
-그냥 운에 맡기죠.
동전을 던져 배역이 정해졌다. 류신이 홈즈, 유명이 루팡이었다.
수연은 그들의 연극에 옵저버이자 관객으로 보낸 놀라웠던 지난 2주를 회상하며, 극장 내를 한 번 휘이- 둘러보았다.
처음 경합소식에 불안해하던 그녀의 눈빛이, 이제는 지극히 안정되어 있다.
저 의심의 눈초리들이 곧 경악으로 바뀔 것을,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단장과 몇몇 원로배우들이 착석하고, 경합이 시작되었다.
A팀의 는 매우 진중하고도 안정적이었다.
임시성이 연기하는 파우스트는, 악마가 주는 갖가지 혜택을 누리면서도 계속 무언가에 목말라하는 파우스트의 고뇌하는 모습이 잘 드러났다.
반면 B팀의 는 톡톡 튀는 로맨스 코메디였다.
연애 상대를 만날 때 철저히 조건을 재단하며 만나고, 자신이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똑같은 두 남녀가 벌이는 계략의 향연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B팀이…꽤 괜찮은데요?”
“그렇지? 줄라이에 저런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최근 1, 2년간 부족했었는데 말야.”
“네. 의외로 생각하게 되는 주제기도 하구요. 세미씨가 은근히 속물적인 캐릭터가 잘 받네요.”
“정군이도…연기가 많이 늘었네. 세미와 합도 좋고. 역시 악이 받쳐야 결과물이 잘 나온다니까.”
단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음…그런데 백 팀장, 어어···A팀이나 B팀이 객원 팀보다 잘해도…객원 팀을 뽑는 게 맞겠지? 약속하고 데려온 거니까···”
단장이 슬며시 눈치를 보는 것을 보고 이신이 물었다.
“B팀이 의외로 선전하는 걸 보니 아까우십니까, 단장님?”
“아니…뭐 정군이네는 가을에 써도 되니까…그런 건 아닌데, 단원들 보는 눈이 있잖아. 영 아닌 걸 맞다고 우기면 뒷말이 많을까봐 그러지. 그리고 객원 팀은 준비한지 2주밖에 안됐잖아, 재능이 있다고는 해도 배우들도 다 어리고.”
이신은 단장의 말에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다만 실소를 머금었을 뿐.
“단장님.”
“으…응? 역시 좀 그렇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저 친구들 여간내기가 아니거든요.”
“그…래?”
“네. 만약에 A,B팀이 더 마음에 드시면 그렇게 뽑으셔도 됩니다. 저 쪽이 더 잘했는데 자기네가 이겼다고 우길 정도로 자존심 없는 친구들도 아니고요. 그런데,”
“…?”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줄라이가 정말 땡 잡은 거에요.”
이신이 상대를 예리하게 가늠하는 승부사의 눈빛으로 웃었다.
“그리고 저 친구들, 제가 물어 왔습니다. 잊지 마세요, 단장님.”
C,D팀의 공연도 끝나고, 드디어 객원 팀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줄라이에 잠시 몸을 담게 된, 배우 신유명입니다.”
“서류신입니다.”
“설수연입니다.”
줄라이와의 관계상 팀장을 맡고 있는 유명은 한 발짝 나와, 작품명을 알렸다.
“오늘 저희가 보여드릴 작품은, 모리스 르블랑의 를 각색하여 만든 세 장면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객원 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
Light on.
무대가 밝았다.
무대 위, 오른쪽 구석의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은 설수연.
그녀는 간단한 리액션만 취하는 단역을 받고서도, 조금 창백해진 채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다행이었다. 지금 그녀의 배역과 그 창백한 표정은 잘 어울렸으니까.
그리고 반대쪽 포켓에서, 홈즈가 걸어들어온다. 서류신이다.
따로 분장은 하지 않았지만 홈즈를 표상하는 베레모 하나를 쓴 그는,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무대로 들어온다.
테라스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사다리의 구멍 자국을 조사한다.
줄자를 멋들어지게 탁- 튕겨 치수를 잰다.
훌륭한 마임이다. 줄자로 재는 형태, 통통 두드려보는 움직임만으로도 설명없이도 그것이 사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중한,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하나 하나의 정물들을 관찰하는 그의 표정에 관객도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수연, 아니 남작에게로 다가왔다.
“조작이오.”
“네?”
“남작이 설명한 증거들은 모두 조작된 거란 말이오.”
“난간의 자국이요?”
수십 명의 시선 아래서, 수연의 시선이 덜덜 떨린다.
다행히 그 떨림은 ‘남작의 흥분과 당황’으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범주. 사람들의 시선은 주로 홈즈에게 붙박혀 있다.
“그렇소. 사포로 문질러 만든 거요.”
“사포요?”
“근처에 이런 게 떨어져 있었소.”
그가 조심스럽고도 정확한 동작으로 집게로 집은 사포를 보여주었다.
“그러면 아래쪽 자국도 가짜입니까?”
남작의 물음에, 홈즈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집요하게 좁혀 들어가는 듯이 빠른 말이 이어진다.
“그렇소. 둘이 같은 자국이 아니오. 테라스 아래에 있는 자국은 길이가 23cm인데 철책을 따라 나 있는 자국은 28cm요. 모양이 완전히 평행하지도 않은 걸 봐서, 그냥 나무토막 하나로 비슷하게 찍어서 만든 거요.”
“맙소사···”
“진흙 묻은 나무토막 하나가 월계수 상자 아래에 있더군. 맞춰보니 크기도 딱 맞았고 말이요.”
“그럼 결국 외부침입이 아니라···”
“내부인의 소행이오.”
홈즈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 웃음에, 줄라이의 단원들은 서늘한 긴장을 느꼈다.
아주 똑똑하고 정확하고 냉정한 남자. 기계같이 반듯하게 움직이던 사람이 처음으로 드러낸 감정은,
드디어 호적수를 만났을 때의 희열에 찬 미소. 상대를 눌러 주겠다는 오만한 미소가 조용히 흘러나온다.
“이 저택 안에 루팡의 하수인이 있는 거요.”
“루팡이요?”
“틀림없소. 남작의 편지가 도착한 날, 루팡의 편지도 함께 왔소. 이 사건을 맡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럴 수가!”
그 때, 포켓에서 ‘전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남작이 포켓 안으로 손을 내밀어 전보를 받아든 후, 홈즈에게 건네주었다.
홈즈가 전보를 펼치자 포켓 안에서 유명의, 아니 ‘아르센 루팡’의 나레이션이 들려왔다.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어딘가 진지함이 묻어있는 루팡의 말투.
[친애하는 홈즈 씨. 진도가 무척 빠르네요. 하지만 이 사건은 맡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거라고요! 당신의 친구 아르센 루팡.]홈즈는 혀를 차더니 남작에게 편지를 건네 주었고, 남작은 신음을 토했다.
“정말로 루팡이군요.”
“네. 그 자는 참 눈과 귀가 많지요.”
홈즈의 오묘한 표정과 함께 조명이 꺼졌다.
‘호오···’
첫 번째 장이 끝났다.
줄라이의 단원들은, 별 장치 없어도 긴장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탐정’이란 느낌의 홈즈에 감탄했다.
아니 그것보다, 다음 장을 이어보고 싶은 궁금함에 이것이 경합이라 장을 건너뛸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역시…서류신은 아역 때도 연기로 날렸는데, 아주 잘 성장했네.’
‘그렇다면 또 한 명의 배우는···?’
그리고 암전 속, 2번째 장의 시작을 기다리며 류신은,
이 공연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유명의 안목에 전율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메아리 형식은 어떨까요?
-메아리요?
끝
ⓒ 글술술
“메아리요?”
“네. 홈즈가 루팡을 뒤쫒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해 봤는데, 루팡의 트릭을 홈즈가 한발 뒤에서 쫓아가는 형식이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요?”
“음…이거 한 번 읽어주실래요?”
유명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루팡의 대사.
류신은 잠시 읽어보더니 첫 번째 대사를 입에 올렸다.
“A.L.여자.보호.요청.540.
540 여성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어 내게 보호를 요청하고 있군.”
그 대사가 끝날 무렵, 휘어잡듯이 유명이 말꼬리를 챈다.
단숨에 예리하기 그지 없는 홈즈의 음성이 되어.
“A.L.은 아르센 루팡의 약자죠.
540이라는 코드의 여성은 지의 알림란을 통해 그에게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류신이 흠칫 놀라며 다음 대사를 입에 담는다.
“부인.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램프가 외부에서 도난당한 걸로 보이려면 몇 가지 처치가 필요합니다. 창문을 자르고, 땅바닥에는 사다리 자국을, 발코니 난간에는 긁힌 자국을 남기세요.”
“그는 램프가 도난된 것을 외부인의 소행으로 가장하기 위해, 저택의 ‘내부공범’에게 창문을 자르고, 땅바닥에 사다리 자국을 만들고, 난간에 긁힌 자국을 남길 것을 주문합니다.”
같은 대사가 조금만 문장을 달리하여 반복된다.
메아리(echo).
루팡의 대사의 끝을 먹고 들어와서 훨씬 빠른 속도로 읊어지는 추리가 홈즈의 목소리를 입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된다.
과연, 이런 식이라면 루팡의 대범한 범죄구성능력과 홈즈의 명석한 추리력을 함께 보여줄 수 있다.
“어떠세요?”
“…좋네요. 좋은 발상입니다.”
류신은 분한 듯이 말을 뱉었다.
루팡 대 홈즈의 장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친숙함과 강렬한 캐릭터성.
하지만 문제라면, 클라이막스가 되는 ‘홈즈의 추리’ 부분에서 루팡과의 대비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연극적 장치’를 통해, 두 인물을 한 장면에서 보여줄 수 있다.
‘배우로서만 뛰어난 게 아니야···’
그와 처음 함께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극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배우로서 천재적일 뿐 아니라 연출가의 시야도 가지고 있다. 도대체 그의 약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유명은 류신의 기분은 모른 채,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원생에 그런 역할을 한 적이 있었지.’
그림자 연기.
원생의 어떤 공연에서, ‘그림자’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선명하게 기억난다. 당시 연출가에게, 유명은 평생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칭찬을 받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