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54
탁-
영화가 끝났다.
불이 들어오고, 숨을 쉬는 것을 잊을 뻔 했던 관객들이 허겁지겁 숨을 몰아쉰다.
짝짝짝짝-
꽤나 감격하여 견디지 못하고 부딪혀버린 소심한 손뼉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흘러나온다.
유석은 멍하니 엔딩 크레딧을 한참 바라보다, 풀린 다리로 겨우 일어섰다.
‘아, 콜라···’
라지사이즈 콜라는 입에 몇 번 들이키지도 못한 채, 얼음이 죄다 녹아 찰랑이고 있었다.
녹는다. 찰랑인다. 제 마음처럼.
‘그가 내 취미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자신이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
그 날, 인터넷이 뒤집어졌다.
[려말선초, 개봉 1일만에 폭발적 반응. 무비피아 평점 9.5!] [신인 딱지를 떼다. 2년차 배우의 검증된 연기력에 관객들 술렁.] [역사에 대한 대담한 해석. 명품 배우들이 살렸다.] [손치욱 감독의 인생 역작. 이 영화, 감히 평론할 수 없다.]이미 편집 시사에 여러 번 참여했던 유명은, 개봉과 무관하게 줄라이의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열심히 체력 훈련을 한 후, 쉬는 시간에 집어든 휴대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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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 전화 138통.
문자메세지 185개 .
*음성사서함에 74개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연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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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문을 모르고 문자메세지를 꾸욱 눌러보았다. 그 와중에도 메세지가 계속 수신되었다.
가장 위에, 그리고 반복적으로 수신되어 있는 메세지는 호철의 것이었다.
[형. 연습실이죠? 절대 혼자 나오시면 안 돼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갸웃하고 다음 메세지로 넘겨보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배우님~ 전에 인터뷰했던 무비타워 노기자인데요, 잠시 통화 안될까요.] [유명아. 혹시 나 기억나니? 창천 99학번 김응수인데 영화 진짜 최고더라.] [신유명씨! 저 틱택톡 선우형입니다. 다음에 저희 특집 단독으로 한 번 나와주시면···]류신도 핸드폰을 보더니, 유명에게 말했다.
“오디우스 사람들이랑, 유명씨와 연습하는 거 아는 회사 관계자들한테 죄다 연락이 와 있네요. 축하해요, 영화 대박났나 보네.”
“아니에요. 앞으로 봐야죠.”
“오늘 연습 일찍 마치죠. 축하해주려는 사람들 많을텐데. 나도 영화보러 가야겠어요.”
“그 때 같이 가시지···”
유명은 시사회 때 류신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했었고, 그는 그냥 개봉하면 표를 사서 보겠다며 거절했었다.
작품이 거의 동시에 개봉하는 입장상 좀 그렇기도 하겠다 싶어서 강권하지 않았었는데.
“어? 선배님. 표 매진됐을 걸요?”
수연이 으쓱한 얼굴로 티켓 한 장을 꺼내 흔들었고,
류신의 얼굴에 예기가 서렸다.
“나한테 팔아요.”
“네? 안 돼요.”
“10배.”
“헉···”
“플러스 연습 하루 빼줄게요.”
“헉······”
“팔고 내일 조조 보면 되잖아요. 난 내일 일정 있어서 연습 전에 볼 시간이 없어요.”
“……”
결국 수연이 울상으로 표를 류신에게 넘겼고,
그가 만족한 표정을 짓는 것을 유명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
“신유명씨···”
그 날, 회사로 들어간 유명은 유석을 만났다.
그는 어쩐지 복잡한 표정이었다.
“네, 실장님.”
“영화, 잘 봤어요.”
“아…보셨어요? 괜찮았나요?”
“…네. 당분간 좀 바빠지겠어요.”
유석이 미래를 가늠하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영화, 아무래도 천만 들 것 같은데.”
“천만요? 에이…그렇게까지는···”
유명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 영화산업의 관객범위가 넓어진 것은 2000년대 초반 멀티플렉스가 등장한 이후. 05년 현재까지 천만 영화는 고작 2편이었고, 그것은 시나리오, 배우, 흥행운이 동시에 적용된, 기적에 가까운 결과였다.
“될 거에요. 러브콜도 엄청 떨어질거고, 이래저래 인터뷰며 행사들이 쇄도하겠군요. 내가 적당히 커트해 주겠지만, 신인이 너무 거절만 해도 좋은 평가 못 들으니까…조금 바빠지긴 할 겁니다.”
“전 안 될 것 같은데···”
“내기할래요?”
“…무슨 내기요?”
“천만 되나 안 되나로. 유명씨가 이기면 원하는 거 아무거나 들어주죠. 제가 이기면···”
“실장님이 이기시면요?”
“연극 끝나고 다음 작품은 제가 정해주는 걸로, 어때요?”
유명이 웃었다.
그러고보니 매니지먼트를 얻고서 한 번도 작품을 상의한 적이 없다.
딱히 유석에게 요구할 것도 없었지만, 유석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천만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크루드 광고, 오늘 런칭이죠?”
“넵. 그렇다더라구요.”
“영화 개봉이랑 맞춰서 홍보 효과를 더 올리려는 거지. 나쁠 건 없어요, 광고가 꽤 하이퀄로 빠져서, 영화쪽에도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되진 않을 테니까.”
“네. 15초 버전은 저도 못 봤는데, 궁금하네요.”
유명과 유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그날 밤 9시.
한창 핫한 드라마의 직전, 프라임 타임에
의 광고가 처음 런칭되었다.
끝
ⓒ 글술술
33세 장호영 대리.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해 샤워를 마친 후, 한결 개운해진 몸으로 쇼파에 주저앉았다.
“어디 보자···”
혼자 사는 그는 거실에 있는 커다란 티비를 켠 후, 머리의 물기를 털며 협탁의 노트북도 켰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를 보면서, 자동차 동호회를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는 최근 2개월간, 차를 사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간지나는 차는 구입유지비가 비싸고…합리적인 차는 눈에 안 차고···’
2,30대 남자들에게 흔한 고민이었다.
자고로 애마란 남자의 프라이드와 같은 것. 그렇기에 부족한 월급을 탈탈 털고 빚까지 내어 슈퍼카를 마련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버하지 말자, 오버는 인생을 over하게 만든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잠시의 겉치레로 수년간 할부금에 시달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
[B사 e클 06년 신형 구매했습니다. 이번 페이스리프트 nuclear간지네요.]그는 홀린듯이 자동차동호회의 베스트게시물을 클릭했다.
아름답다.
저 차만 있으면, 얼마 전에 만나서 아직 서로 간보는 중인 소개팅녀도 홀딱 넘어오지 않을까. 친구 놈들이 한 번 타 보자고 생난리를 치겠지…
‘그냥 지를까···청약통장까지 해지하면···’
그 때 그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노트북 너머 가물하게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광경에 흠칫했다.
사무실. 광고인데도 다큐멘터리처럼 현실감 있게 찍혔다. 자신의 회사 구조와도 비슷하다.
그는 퇴근 후 회사생각을 않기 위해, 침대 머리도 회사 방향으로는 두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조차 사무실이라니.
짜증이 나면서도,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침 화면 속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도 대리였다. 거, 옆 팀 한대리처럼 생겼네.
“네 안 돼요. 아시잖아요. 네, 해결하고 연락주세요.”
“인원따라 적절히 업무 분장해서 가져오겠습니다.”
저 미소를 안다.
친절한, 하지만 적정선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프로의 미소.
그도 매일같이 짓는 미소.
‘도대체 무슨 광고야?’
흥미가 생긴 그의 시선이 조금 더 티비에 붙잡혀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시계가 6시 정각을 가리켰을 때,
삑-
차가 소환된다.
‘헐…자동차 광고?’
장대리의 눈빛이 순식간에 집중력을 높인다. 흑백으로 처리된 사무실 풍경 안에 떡하니 자리잡은 붉은 세단은, 다소 장난스럽지만 가슴을 설레게 한다.
평범해 보이던 배우는 능숙하게 차림새를 변화시키고 안경을 벗더니 마법처럼 분위기가 바뀐다. 마치…다른 사람 같다.
그리고, 차에 올라탄 그는,
‘설마···’
쾅—
시원한 소리가 나면서 사무실 벽이 터져나간다. 그 때 그는 오늘 낮에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일부가 훅- 꺼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오오오–’
그가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밟는다. 차가 돌진한다. 동시에 겹쳐진 화면에선 화살이 날아가 과녁의 정중앙에 콰악 꽂힌다. 끼이익-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를 시원하게 질주한다. 쿵쿵 드럼 비트가 울리며 눈부시게 깜박이는 조명 속에 리듬을 타며 그의 그루브가
살아난다. 그리고 도착한 차가 서킷장을 질주한다. 모래바람. 거칠게 찢어지는 공기소리. 헬멧을 벗은 그가 사냥감을 포획한 맹수처럼 살아있음을 과시하며 진하게 웃는다.
-Crude you, with crude.
꿀꺽-
장대리의, 아니 장호영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아니, 6시 퇴근이라니 말이 돼? 퇴근하고 무슨 양궁에 서킷을 해? 클럽은…그래 클럽은 갈 수도 있지만.’
그가 괜히 속으로 궁시렁댄다. 저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다. 그렇지만···
저 차를 산다면 저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무의식이 비약을 이루어내고 만다.
잘 만든 광고는 언제나 비약을 성립시키는 힘이 있다.
[현성자동차 신형세단 크루드 제원, 옵션.]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검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