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7
‘그러게 말이야···혹시 뭐가…보이나?’
{선계의 영향을 받은 흔적은 없당. 주변에 다른 연귀가 있는 것도 아니당. 그냥 감이 좋은 인간인가…}
당혹한 유명의 얼굴을 보고 카일러는 바로 사과했다.
[아,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에요. 당황했으면 미안해요.] [아…네···]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나올 것 같네요.] [……]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서 유명씨는 저와 여러 번 인터뷰를 할 거에요. 저한테 영감을 주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은 없으니까, 푹 쉬다가 연락이 가면 부담없이 나오세요.]유명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데렉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아~ 한가하다~] [??] [아직 다음 작품이 안 정해진 ‘탑’배우가 하나 있네. 어느 감독이고 그렇게 탐내는 배우라던데···]유명은 당황하여 표정이 굳었다.
조금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인 부분은 있었지만, 데렉 맥커디는 유명도 인정해 마지 않는 최고의 배우였다.
그의 클래스에 속하고, 함께 무대를 준비하면서, 유명은 굉장한 자극을 받았다. 그는 엄청난 에너지로 밀어 붙이면서도, 디테일 또한 섬세하기 그지없는 배우였으며, 연기관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확고했지만, 맞는 말은 두말없이 인정하는 쿨함도 있었다.
그런데 저…초딩은 뭐지···?
[데렉.]데렉은 카일러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유명에게 말을 건다.
[신유명씨, 혹시 알고 있나요? 내가 캐스팅보트 심사위원을 맡은 이유.] [두 분 어릴 때 친구이신 건 들었는데…관계가 있는가 보죠?] [딩동. 지금 유명씨가 거머쥔 1등상, 내가 갖고 싶었거든.]1등상이라면…카일러 언쇼의 차기작.
[사실 기성 배우도 가능하다길래 캐스팅보트에 지원해볼까도 생각했어요. 매니저가 뜯어말리지 않았으면 진짜 해 볼 생각이었는데. 그랬으면 신유명씨도 그렇게 간단히 우승하진 못했을 거야, 하하.]농담? 아니…진심.
유명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한국의 톱배우로 안전하게 자리잡는 길을 버리고 미국의 오디션 프로에 지망했을 때,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언론들이 ‘격 떨어진다’는 비난을 일삼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무려 데렉 맥커디다. 본인이 쌓아온 그 수많은 것들. ‘데렉 맥커디’라는 전설적인 이름이 우스갯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는 짓을, 정말로 하려고 했다는 거구나.
이것은 카일러 언쇼도 모르던 일이었는지, 데렉의 눈을 감별하듯 지그시 관찰했다.
그리고 청량하게 웃었다.
[와, 정말인가보네. 뭘 그렇게까지 하려고 했어.] [네가 내 작품은 안 만들어 주니까, 이렇게 얼쩡거리면서라도 어필해 보려고 그랬지. 감독님~ 여기 괜찮은 배우가 있어요~ 시간도 많습니다~]유명이 있는 것도 개의치 않고, 카일러에게 어필하는 데렉이 이제는 멋지게 느껴진다.
배우의 본질을 건드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작품을 써낸다는 카일러 언쇼.
유명이 그의 작품을 꼭 찍어보고 싶었듯이, 데렉도 같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연기에 관한 욕심만큼은 양보도 타협도 없다. 쌓아온 평판도 자존심도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다.
그 마음을, 유명만큼 이해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카일러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툭- 하고 한 가지 제안을 던진다.
[데렉, 조연이라도 할 생각 있어?]유명은 그 말에 조금 놀랐다.
지금, 연기 커리어의 최고조를 찍고 있는 데렉 맥커디. 어느 감독도 그에게 조연을 제안하지는 못할 것이다. 차라리 까메오 단역이라면 몰라도.
[차기작 말하는 거야? 그럼 무조건 오케이지.]하지만 그걸 덥석 무는 데렉.
계속 원해왔던 카일러의 영화에, 유명과 다시 작품을 한다는 어드밴티지. 그에게는 망설일 제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을 세워놓고 보니 떠오르는 그림이 있는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구도를 좀 더 발전시켜 봐야 해. 제작사와 협의도 해야 하고.]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유명은 두 사람의 묘한 관계를 바라본다.
단순히 소꿉친구이라기엔, 사연이 있을 것 같은 관계.
부드러운 말투로 데렉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카일러와, 거기에 휘둘려 주면서도 자신이 바라는 바를 철저히 쟁취하는 데렉.
저 두 사람은 자신과 어떠한 작품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인가.
‘잘 됐다.’
캐스팅보트를 끝내며 마지막까지 마음에 남았던 아쉬움 중, 일부는 해결될 것 같았다.
*
녹화를 마친 유명은 호철에게 부탁해 유석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제 퇴소한지 이틀 째였으니 유석이 빌렸다는 미국 사무실에는 처음으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작은 화원에 들러 화분을 하나 골랐다.
[이걸로 가져갈게요.]꽃집 사장님은 자꾸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혹시…당신 ‘유명’ 아닌가요?] [네, 안녕하세요.]유명의 긍정에, 그녀의 표정이 꽃처럼 화악 피어난다.
[와아…캐스팅보트 축하해요. 너무 잘 봤어요. 문자 투표 매번 하고 무척 응원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럴 게 아니고 종이가…혹시 싸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어서 주세요.]그녀는 싸인 한 장에 세상 행복을 다 얻은 표정을 했다.
그리고 화분값을 받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개업 축하 선물이라서, 꼭 제가 산 걸 드려야 하거든요. 어서 받으세요.]유명이 꼭 계산을 하겠다고 주장하자, 꽃집 사장님은 부득불 화분값을 받은 후, 따로 커다란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그럼 제 선물은 받아주실 거죠? 팬으로서 드리는 선물이에요. 좋은 영화 기대하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결국 꽃다발을 받아든 유명은 그녀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한 손에 화분,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차에 오르자, 호철이 묻는다.
“화분 사러가신다더니…그 꽃다발은 뭐에요?”
“우승 축하 선물이라고 받았어.”
“와…형 진짜 스타 되셨네요.”
유명은 화분을 다리께에 잘 내려놓고,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숨을 가득 들이쉬었다.
이상하다.
눈으로 보고도, 어마어마한 박수세례를 듣고도,
그 많은 축하와 관심세례를 받을 때도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던 기분이, 꽃향기에 취해 울컥해진다.
자신의 연기를 보았던, 브라운관 너머의 수많은 시청자 중 한 명.
그 사람이 넘치는 호의로 건네 준 작은 선물은, 차 안을 가득 향기로 메우고 있다.
‘내 연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감동을 받아 주었구나.’
그것이 이제야 정말로 실감이 나서, 유명은 어지러운 듯 살짝 눈을 감았다.
*
유석의 사무실은 헐리우드 가에서 한블럭 안쪽에 위치했다.
회사명을 보고 유명이 피식 웃었다. W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Worst…Bad의 최상급이라…실장님답네.’
경영자에게 ‘나쁜’, 즉 구성원에게는 ‘좋은’ 회사라던 배드 엔터.
거기서 더 상승하여, 이제는 ‘가장 나쁜’ 회사를 지향한다니.
하지만 유명을 지원해주려던 의도와 달리 자꾸 수익이 나고 있다는 유석의 말처럼, 그가 배우와 회사 모두에게 베스트인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딩-
3층에 내린 유명이 유석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조금 당황스런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문이 살짝 열려있는 오피스 밖으로, 어떤 남자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아, 거 참. 상황 파악 못하시네.] [상황 파악을 못 한다고요…제가요?]얼척없는 말투로 대꾸하는 것은 문 실장이다.
[아니, 프로그램 하나 잘 타고 화제가 좀 되었다고 헛바람이 펑펑 든 모양이지? 오디션 프로로 데뷔한 연예인들 오래 못 가는 거 모릅니까? 심지어 동양인이야. 지금은 신기해서 저렇게 난리지, 조금만 시들해지면 누가 거들떠나 볼 줄 알아요?] [거들떠도 안 볼 배우를 욕심내는 건 누구?] [아…아니, 누가 욕심을 냈다고! 연기력이 좀 되는 친구가 금세 묻힐 게 아까워서 우리가 뒤 좀 봐주려고 한 거지. 저런 마이너한 배우에, 이런 소형 기획사로 얼마나 버틸 줄 압니까?] [그 쪽 회사보다는 오래 버틸 것 같은데요?] [하? 와 진짜 어이가 없네. 당신 우리 기획사가 어떤 곳인지 알아?! 내가 마음먹고 여기 한 번 밟아봐? 그럼 그 여유작작한 미소가 과연 나올까, 응?]유명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충 상황을 보니, 안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남자는 어떤 기획사 소속의 인물인 모양이다.
제작사도 아니고 기획사···? 제휴나 합병 제안을 하려다 거절당한건가···?
옆에 있던 호철이 분노를 꾹꾹 누른 낮은 목소리로 유명에게 설명한다.
“FU라는 기획사인데, 얼마전에 제안서를 보내왔대요. 계약된 배우들 포함해서 저희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고. 사장님이 무슨 헛소리냐며 무시했더니 결국 찾아와서 저 지랄인가 보네요.”
같잖은 듯한 눈빛으로 상대의 약을 살살 올리는 유석은 별 내상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유명도 조금 기분이 나빠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 때,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유명과 문 사이로 끼어들며 제지했다.
[배우님은 저런 쓰레기 상대하지 말고, 우아하게 계시죠.] [누구신지···?]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금테 안경, 고급스러운 상류층 언어. 차림은 털털하지만 교양이 넘쳐 보이는 남자는
허허-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명함 한 장을 내밀었고,
거기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드라마 제작사의, 높으신 분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
[FU? 그건 뭐하는 잡호로새끼들이야?]정중하던 남자는 태세를 180도로 전환했다.
유명은 살짝 입을 벌렸다.
상대를 완전히 깔아보며 비속어를 섞어 기선제압을 하는 모습은, 자신에게 명함을 건넬 때와 너무 판이하게 달라서 조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 새끼는 또 뭐야?] [너 기획사 한다며. 그런데 나를 모른다고? 하하. 이런 사기꾼 새끼를 봤나.] [뭐? 사기꾼? 니가 누군데!]그는 명함 한 장을 꺼내의 팽글- 남자의 쪽으로 날렸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남자의 이마에 쿡- 하고 맞은 후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는 버럭 화를 내려다가, 뭔가 심상치 않은 상대의 기세를 보고 일단 명함을 주웠다. 그리고 명함을 확인한 순간,
[C…CRD…당신이 그 니콜라스 판다스라고…요?] [그래, 이 새끼야.] [어…그 저는 FU 엔터에서 온-] [기획사 이름이 FU? 이 따위로 일할 거면 아예 FUCK라고 짓지 그랬냐?]그가 시원하게 욕설을 날리자,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남자는 대꾸하지 못한다.
[지금 여기 배우들 잡으려고 업계 전부가 혈안이 되어 있거든? CRD에서도 무려 내가 직접 왔는데 너희 회사에선 고작 너 정도 급을 보내서 후려치기나 하고 있어? 말이 되는 짓을 해야지, 참나.]남자는 땀을 비적비적 흘리며 뒤로 물러선다.
니콜라스는 유석에게 또 태도를 휙 바꾸어 정중하게 물었다.
[대표님, 저 사람 명함 받아 놓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받아가도 되겠습니까?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조그만 신생 업체인 것 같은데, 그래도 저희 쪽 작품 찍고 있는 배우들이 몇 명은 있을테죠. 저 회사 사장과 얘기를 좀 나눠봐야겠군요.] [여기 있습니다.]남자는 이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더듬더듬 변명을 해댔다.
[저…그게 아니고…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흥분해서···] [그럼 그 흥분하는 습관을 이번에 고치게 되겠네. 나 이제 여기 중요한 손님들과 사업상 할 얘기가 있으니 좀 꺼져줄래? 안 꺼지면 더 심한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죄…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남자가 후닥닥 꽁무니를 뺐고,
니콜라스는 다시 몸가짐을 단정히 한 후, 유명과 유석에게 악수를 청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CRD의 치프 프로듀서, 니콜라스 판다스입니다.]200 그거, 잘 흘렸어?
유석과 유명, 니콜라스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요즘 W가 업계에서 대단한 화제입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네. 소속된 배우는 아직 셋밖에 안되는데, 그 셋이 모두 캐스팅보트에서 엄청난 성적을 냈으니 말이죠. 캐스팅보트에 출연한 걸 보고 한 번 침 발라볼까 눈독 들인 배우들이 죄다 벌써 소속이 있는데, 심지어는 같은 회사에 소속이라고 하니 놀랄만도 하지요.]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운일 리가 있겠습니까. 대표님의 엄청난 선구안에 다들 감탄중입니다.] [CRD야 말로, 매 해 미드 역사를 새로 쓰는 작품들을 제작하며, 승승장구하시는 것에 무척 감탄하고 있습니다.]처음은 가볍게.
서로를 치켜세우며 간을 본다.
[제가 운이 좋게, 첫 번째 생방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네. 신유명 배우의 연기에 무척 감탄했습니다. 그 몰입감 넘치는 좀비 연기…좀비물은 여태 거의 영화로만 다루어졌는데, 드라마로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영감도 얻었지요.] [오오…좀비물의 드라마화라…굉장히 모험적인 발상이군요. 역시 CRD인가요?]유명이 가만 생각해보니, 아직 이 시기엔 좀비물이 제대로 드라마화 된 케이스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그런 걸 활용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네.’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영화계나 드라마계의 흐름이나 좋은 시나리오같은 건 잔뜩 알고 있으니, 그걸로 이득을 보려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연기하기 바빴을 뿐.
[이런 저런 기획들을, 배우님을 모시고 함께 해 보고 싶습니다.] [그…좀비물을요?] [아뇨. 그건 그냥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를 드린 거고, 저희 제작사의 감독이나 작가들도 이쪽 배우님과 꼭 작업해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유명씨가 제 멋대로인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타입인 모양입니다.]유석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 제안을 보류했다.
[지금 당장 어떤 결정을 하기에는 곤란한 상황입니다. 일단 카일러 감독의 영화를 잘 찍는 게 중요하겠죠. 그리고 아시겠지만 여기저기서 많은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서요.]호철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유석이 미국에서 가장 큰 제작사가 내민 손을 덥석 잡지 않는 것이 믿기지 않는지, 니콜라스의 반응을 불안하게 주시한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흔쾌히 유석의 말에 호응했다.
[물론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덥석 결정하겠습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쪽에서 자주 찾아뵙고, 신뢰를 쌓겠습니다. 혹시 아까처럼 불편한 일 있으면 알려주시고요. 비단 신유명씨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에게도 관심이 많은데다, 대표님의 선구안이 이 회사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기대가 크니 말이죠.] [왜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유석의 마지막 물음에, 니콜라스는 눈꼬리에 주름이 패이도록 깊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좋은 배우는 가장 가치있는 자산이니까요.]아까의 닳고 닳은 업자가 하는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하고 순수한 대답이었다.
*
“저 분…보통 수완가가 아닌 것 같아요.”
“나는…마음에 드는데요.”
그 말에 유명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잘 보이지 않지만, 유석 또한 상대에 따라 스탠스를 휙휙 바꾸며 일하는 타입. 당근을 잘 주는만큼 채찍도 잘 휘두르겠지.
아마 니콜라스에게서 동족의 향기를 맡은 모양이다.
“사무실이 좋네요. 개업 축하드려요.”
“아직 휑하죠. 뭘 이런 걸 가져오고 그래요…고마워요.”
유명이 내민 화분을 유석은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놓고, 원두커피를 내려 가져왔다.
사무실 전화는 음성응답으로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요한 전화가 오면 어쩌시려고···”
“지금 W에 신유명씨보다 중요한 용건이 있을 리가요. 그리고 유명씨 아니라도 요즘은 전화 돌려놓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종일 울려대거든요. 빨리 비서를 구해야 하는데, 아직 눈에 차는 사람이 없네요.”
유석은 유명에게 이런 저런 상황들을 설명했다.
3층 전체를 빌렸는데, 아직 직원들을 픽스하기 전이라 이쪽 한 칸만 자신이 먼저 쓰고 있다는 말. 한국에서 영어가 되는 직원들을 불러오고, 현지 직원들을 뽑기 위해 공고를 낸 상태라는 것. 카이는 기본기를 훈련시킬 선생을 붙여 트레이닝 중이라는 소식 등등.
“현재 기획사에 가용전력이 없을텐데, 뭔가 계획이 있는지요?”
유명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운다.
현재 W의 소속 배우는 셋.
유명은 차기작이 확정되어 있고, 효준은 프랑스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으며, 카이는 재능이 출중하고 이름도 꽤 알리긴 했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즉, 당장 활용하기 어려운 전력들인 것이다.
“직원들이 세팅되고 나면, 상금과 계약을 걸고 이벤트성 오디션을 한 번 열까 합니다. 상시 오디션 공고는 당연히 내겠지만, 지금 우리는 너무 신생이니까요. 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도,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도, 화제거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생각하고 있던 방법이니, 유석은 당연히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이건 생각치 못했겠지.
“그 오디션, 저도 심사에 참여하면 어떨까요?”
“…유명씨가요?”
유석의 눈이 살짝 흔들린다.
캐스팅보트로 전미에 이름을 알린 배우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배우들을 끌어들이는데 커다란 어드밴티지가 될 것이지만, 유명이 심사위원으로 직접 나서준다면 그림이 훨씬 그럴싸해진다.
하지만…
“리스크가 큽니다. 미국에선 아직 ‘신인’이잖아요.”
아무리 유명이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한국에서는 이미 톱스타의 반열에 들었던 배우라고 하더라도, 미국에서의 인식은 아직 ‘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