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8
신인배우가 소속사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나간다. 꼬아서 보려면 충분히 건방지게 볼 수 있다.
기획사가 소속 배우의 도움이 되어주진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모르고 있던 것이 아닌 듯, 유명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대표님 보시기엔, 제가 아직 다른 배우의 연기를 심사할 수준에 못 미치나요?”
“무슨 그런 말을···! 유명씨야 연기력이며 안목이며, 누구보다도 훌륭한 심사위원 감이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럼 됐어요. 그렇게 하는 걸로 해요.”
“하지만-”
“제가 떳떳하면 크게 상관있나요. 배우는 연기로 보여주면 되죠.”
그 말에 유석은, 3년 전을 떠올린다.
차분하고 겸손한데도 연기에 관해서는 겸손하지만은 않았던 배우는, 지금도 스스로의 실력을 믿는 자만 감히 내뱉을 수 있는 발언을…아주 쉽게 입에 담는다.
멋지다, 정말.
“유명씨가 그렇게까지 안 도와줘도···”
“대표님은 제가 필모 하나 없었을 때도 최고의 조건으로 계약해 주셨잖아요.”
“그거야 내 취미라고 했잖아요.”
“그럼 저도 취미 하나 만들죠, 뭐. 에이전시 W를 키우는 취미.”
당했다.
사람을 취미 취급했던 것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유석이 어이없이 웃음을 터트리자 유명도 쿡쿡 웃으며 말한다.
“장난이고, 에이전시가 빨리 자리잡으면 저도 여러가지로 편하니까요. 일정 나오면 알려주세요. 가능하면 크랭크인 전이었으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유명이 돌아간 후, 유석은 아까의 니콜라스처럼 표정을 휙 바꾸고 호철에게 물었다.
“그거, 잘 흘렸어?”
*
편집국.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이상한 리스트가 퍼졌는데 말입니다···”
발단은 엊그제, 출처 불명의 ‘리스트’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특정 방송국의 연예 뉴스, 혹은 예능 프로그램. 신문사들과, 그 곳에 소속된 여러 기자들의 이름, 그리고 대부분의 연예 가십지와 여러 명의 영화 평론가들.
이런 것들이 뒤죽박죽 섞인 리스트를 보고, 네티즌들이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이건 굿 엔터에서 나온 신유명을 폄하했던 언론 리스트이다.’는 것이었다.
-연예 뉴스가 등장할만한 매체 중 거의 1/3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많은 매체가 신유명을 공격했었다구요? 그럴 수가 있나? 미국가기 전에도 어지간히 탑이었잖아요.
-모르시는구나…그래서 신유명 팬들이 엄청 빡쳤잖아요. 신유명이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매도하고 까내리냐고.
-한국의 자존심인데, 근거도 없이 그렇게 까내려놓고 대부분은 사과 한 마디 안 한 건가요?
-진짜 너무 화가 나네요. 사과를 촉구하며, 사과 없이는 소비도 없습니다. 저는 불매운동 시작합니다.
일파만파.
현재 한국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유명이었기에, 리스트의 여파는 거셌다.
사람들이 불매 운동을 시작한 것까지는 버틸만 했지만···
[SKT만 평생 써온 충성 고객입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스피드 011 시절부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동없이 SKT만을 사용해 온 충성 고객입니다. 그런데, SKT의 광고가 에 실린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는 근거없는 가십성 기사를 일삼는 질나쁜 매체로, SKT가 광고를 싣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매체로 사료됩니다. 계속해서 이 곳에 광고를 실으신다면, 저는 눈물을 머금고 10년간 충성한 통신사를 옮길 계획이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악랄한 방법을 쓰는 거야!!”
“그…그게…언론사에서 가장 민감한 광고주를 타게팅 한 걸 보니, 아무래도 배후에서 지침을 전수하는 누가 있다고밖에···”
“굿 엔터는! 그쪽도 언론과 척 져서 좋을 게 없잖아! 자기네 소스가 아니라고 해명 안 한대?”
“그게…사실관계 확인에 있다는 얘기만 계속 하고 있어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이 말은 거의 100% ‘내 입으로 맞다고 하진 않을 거지만, 틀린 얘기는 아닐걸···?’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몇몇 언론사에서 압박이 들어가자, 굿 엔터는 이라는 침을 질질 흘릴만한 떡밥을 던지더니, 압박한 언론사들을 기자회견에서 스윽 빼버렸다.
“아니, 팀장님! 왜 저희한테는 초대가 안 온 겁니까?!”
[아…참석을 원하시는 기자님들은 워낙 많은데, 이번에 회견용으로 빌린 미디어룸이 자리가 한정되어 있다보니…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엔 꼭 초청드리겠습니다.]“저희보다 인지도 떨어지는 지방 매체들도 포함되어 있던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지방지 보시는 구독자들 중에도 신유명씨의 팬들이 많아서요.]핑계.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핑계지만…헛소리하지 말라고 버럭할 수가 없다. 이 시점에 신유명의 소식을 못 받는 것은 너무 타격이 큰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어떤 또다른 불이익을 줄 지도 모르고.
“그…저희가…사과보도를 내면 되겠습니까?”
[네? 무슨 사과보도요?]“예전에 신유명씨에게···”
[기자님, 죄송한데 걸려오는 전화가 너무 많아서요. 다음에 꼭 초대하겠습니다!]뚝-
끊긴 전화를, 의 기자는 허망하게 내려다보았다.
광고가 자꾸 취소된다. 판매 부수도 떨어지고 있다.
신유명이 여자문제나 마약 등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미국으로 도피성 ‘오디션 참석’을 한 것 같다는 소설을 쓰며, 판매부수가 급증할 때는 참 좋았는데…
그 때야 그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의심이 든다.
‘설마…그 문실장이 뒤에서 주도한 짓인가···?’
타이밍을 귀신같이 맞춰 대중들을 선동할 줄 안다. 출처는 철저히 감춰 상대가 반격할 기회를 원천봉쇄한다. 상대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 쑤셔지도록 흐름을 만든다…
그는 의심의 날을 세우다, 허망하게 고개를 젓는다.
설사 맞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현재로선 저 쪽이 완벽한 갑인데.
따닥-
그는 빈 한글을 켜고, 사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유명씨, 안녕하세요! 타세요~]오늘은 카일러 감독과의 첫 인터뷰 날.
그는 아침 7시라는 이른 시간에 미팅을 제안했고, 유명은 조금 궁금하면서도 이유가 있겠지 하며 승낙했었다.
그런데 카일러가 몰고 온 것은…거대한 캠핑카였다.
[와…이 차는 뭐에요?] [아, 지금부터 우리가 갈 곳은 사륜구동 차가 있어야 하거든요.] [어디…로 가는데요?]호리호리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차에 능숙하게 기어를 넣으며, 카일러가 대답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입니다. 여섯 시간쯤 걸릴테니 한숨 자요.]201 그 카드
미국에는 3대 국립공원이 있다.
그랜드 캐년, 옐로스톤, 그리고 요세미티.
그 중 요세미티는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국립공원이라고 불린다.
[운이 좋아요.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요세미티는 정말 아름답거든요. 4월은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서 폭포로 떨어지는 시기라 특히 아름다워요.]카일러는 산뜻한 웃음을 지으며, 요세미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왜 거기까지 가는 걸까···?’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까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결국 유명은 될대로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시트에 몸을 맡겼다.
어차피 미국에 오자마자 오디션에 참가해서, 어딘가 구경을 가는 것도 처음이다.
차 안에서 카일러와 유명은 가끔은 음악을 듣고, 가끔은 대화를 나눴다.
[쌍둥이요?] [네. 한국에선 손윗남매에 대한 호칭이 따로 있거든요. 제가 조금 빨리 태어났다고 어머니는 동생한테 저를 그 호칭으로 부르라고 하시고, 동생은 나이가 같은데 그럴 수 없다면서 늘 티격태격하죠.] [아니 쌍둥이면 몇분 간격으로 태어났을 텐데…손위와 손아래가 갈리나요?] [한국은 조금 그런 부분에 엄격한 편이라…보수적인 집안은 아직 그런 걸 따져요. 저랑 둘이 있을 때는 그걸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더 덤비는데…귀여워요.]유명은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를 술술 쏟아내었다.
그가 조용하고 나붓하게 추임새를 넣으면, 어느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고해 성사를 받는 성직자…같은 느낌인가?
아니…거울, 같다고 해야 할까.
아주 맑은 거울을 앞에 두고, 혼자 조용히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처럼, 그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네? 하고 어느날 문득 깨닫듯이.
무척 긴 드라이브를 마치고 요세미티에 도착했을 때는,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와오나 터널을 지나자,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유명이 멍하게 입을 벌린다.
약 백만 년 전, 빙하가 요세미티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지나갔고, 빙하의 침식으로 인해 단단한 화강암 바위들은 잘리고 깎여 나가, 지금의 이 풍경을 만들었다지.
툭-하고 잘라놓은 듯한 절벽의 단면이 눈부시게 희게 빛난다.
산이 저렇게 험준한데 바닥은 기이할 정도로 평탄하다.
그리고 그 바닥에 빼곡히 수놓아진 세콰이어 삼림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디 푸른 하늘과 맞물려, 엽서 속에 한 발을 밀어 넣은 듯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동화…속 같네요.] [그렇죠?]카일러는 유명의 감탄에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차를 주차한 후, 요세미티 밸리의 평평하게 펼쳐진 계곡 바닥을 걸었다.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도 곧게 뻗은 세콰이어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 보인다.
[하프 돔이에요. 요세미티의 상징같은 곳이죠..]하프 돔은 이름 그대로, 돔을 절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형상의 화강암 덩어리이였다.
[여길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명씨를 보고 이 하프 돔을 떠올렸었거든요.] [어떤 면에서요?] [깨끗하고, 아름답고, 단단하기 그지 없는데···]그가 힐끗 유명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뭔가…절반만 온전한 느낌도 있구요.]그 말에 유명이 다시 한 번 흠칫 놀랐다.
*
카일러와의 첫 대면 이후, 미호는 수일간 카일러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뭔가를 알고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본인의 기운이 맑다 보니 타인의 기운을 아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고.
그럼에도 저런 말을 할 때면…경계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어요?]본격적으로 시작된 인터뷰.
유명은 조금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을지.
하지만, 카일러 언쇼의 작품을 찍고 싶었던 이유부터가, 그가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여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바래서이다. 하나하나 얼버무리기 시작한다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선계나 미호 이야기는 감추고, ‘내 얘기’만 해야겠어.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은 있겠지만…그걸 파고 들어 온다면 나도 좀 더 경계해야겠지.’
[저는 어릴 때, 아주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어요.]그 말에 카일러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유명을 다시 한 번 훑어본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듯한 눈빛이다.
유명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릴 때 소풍을 가면, 선생님들이 제가 없다는 걸 의식 못하고 다른 아이들만 데리고 돌아온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 뒤로 엄마가 저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죠. 무조건 어른들을 따라다니라고.] [……]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에, 차가 못 보고 저를 칠 뻔 한 적도 있었어요.]카일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연극을 보게 됐어요. 이상할 정도로 끌려서 연극부에 원서를 냈죠. 처음으로 단역을 맡았던 무대에서, 무대에 혼자 등장한 장면이 한 번 있었어요. 세상이 어두운데 딱 한 곳만 밝으니까, 관객들이 어쩔 수 없이 저만 바라보는데···나의 말,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오롯이 전달된다는 느낌을 그 때 처음 알았어요.] [……] [아무리 노력해도 나라는 존재를 타인에게 각인시킬 수 없었는데, 무대 위에서만큼은 달랐어요. 내가 조금 더 잘 표현하면, 관객들은 조금 더 잘 이해해줬죠. 그건 제겐 아예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 것처럼,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어요.]
카일러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와, 유명의 얘기는 상당히 불일치한다.
대학 시절 연극부에서부터 크게 주목받고, 고난없이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카일러는 곧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폐기하고, 유명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어떤 데이터보다 지금 말하고 있는 이 남자의 눈빛이,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Mirror lake(거울 호수)에 다다랐다.
새하얀 화강암 봉우리 하나가 투명한 호수에 그대로 담겨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카일러가 물었다.
[살면서 가장 슬펐던 기억을 이야기해 주겠어요?]유명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연다.
[…정말 사람이 없어서, 제게 조연이 돌아온 적이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뽑아놓고도 연출은 ‘아직 부족하지만 조연을 맡긴 거니까, 열심히 해야한다’며 자주 생색을 냈어요.그럼에도 그래야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정말 기뻤죠.]
울림이 풍부한 목소리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금방 같은 심상을 공유하게 만든다.
[그런데 첫 공연이 끝나고, 연출에게 뺨을 맞았어요.]카일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그게 무슨···
[더 할 수 있는데 노력을 안했다구요. 자기가 믿고 맡겼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성의하게 연기하냐고 펄펄 뛰었죠.] […자존심이 많이 다쳤겠군요.] [자존심보다, 연출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 느껴서…슬펐어요. ‘못했다’는 괜찮아요. 그게 사실이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거니까.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대충 했다고 평가받는 건…나는 여기 있을 자격이 없는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구요.]카일러는 유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
[데렉 맥커디가 조연으로 합류한다고요?!] [네, 가능할까요? 예산이 좀 들텐데.] [물론이죠 감독님, 가능하다마다요!]워크브로더스 본사.
헐리우드의 거대한 공룡 제작사 중의 하나.
TBC와 합병한 후 TW라는 새 이름이 생겼지만, 이 곳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워크브로더스 소속’이라고 말한다. 영화쟁이들의 자존심이다.
그 제작기획국에서 카일러는 기획국장과 마주앉아 있었다.
[그럼 그 문제는 데렉의 소속사와 알아서 조율해 주시고요, ‘그 카드’를 이번에 같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신유명씨와 공동 주연이나, 준주연 히로인으로 캐스팅하려고 합니다.] [그 카드를…이번 작에서요? 흠…그건 좀···]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아니, 약속을 안 지키겠다는 게 아닙니다. 계약서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작은…캐스팅보트에 우승자 특혜인데 공동주연으로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 카드는 다음 작에 쓰시는 게···]카일러는 조용히 국장을 주시하다가,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툭- 질문을 던진다.
[데렉과 유명이 더블주연으로 가면…그림이 멋지겠죠?] [와…그거 정말 좋은-]기획국장이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띠다가, 유도심문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거 봐요. 공동주연이 그렇다는 건 핑계잖아요, 국장님.] [……] [걱정하시는 건 알겠지만, 시나리오 나오면 납득하실 겁니다. 그 카드가…신유명씨와 굉장히 잘 어울릴 거거든요.] […정말 그럴까요···]캐스팅보트 탄생의 비화.
얼마나 거대한 금액을 주고 데렉, 나탈리, 카일러 감독 등 초호화 출연진들을 세팅했을지를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실 그들은 돈으로만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나탈리는 데렉을 노렸고,
데렉은 카일러를 노렸으며,
카일러는 캐스팅보트에 차기작을 거는 대가로, TW에서 한 가지를 약속받았다.
한 명의 무명 배우.
카일러는 원래라면 조연으로도 캐스팅하기 힘들 배우를, 주연으로 작품을 찍고 싶어했다.
당연히 이 기획은 여기저기서 거절을 당했고, TW는 캐스팅보트에 차기작을 거는 것을 담보로, 이 영화에 투자 제작을 약속했다.
[그럼 시나리오가 나온 후에 최종결정을-] [아니요, 기획국장님. 제 계약서에 결정을 TW와 협의하겠다는 조항은 없었습니다. 신유명씨와 찍을 차기작에선 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없구요.]말투는 부드럽지만, 내용은 타협의 여지없이 견고하다.
[저는 그저, 워크브로더스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의논의 형태를 취한 겁니다.] [……] [에르히, 이번 작에 쓰겠습니다.]카일러는 자신의 결정 사항을 ‘통보’했다.
*
며칠 후, 유명은 다시 카일러와 만났다.
카일러가 지정한 장소는 한 프리 스튜디오로, 한 층 전체를 작은 연습실이나 회의실로 분할하여 대여를 해 주는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네. 요즘 뭐하고 지냈어요?] [TW에서 요청한 프로그램 하나 출연했구요, 기획사에서 잡아준 잡지 인터뷰 몇 가지…나머지 시간엔 거의 연습실에 있어요.] [뭐 연습해요?] [요즘은 데렉이 알려준, ‘해당 캐릭터가 되어서 걷는 연습’을 해보고 있어요. 예전에 맡았던 캐릭터들로도 해보고, 영화 속의 특정 캐릭터를 잡아서 해보기도 하구요.]카일러가 유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자신에게 쌓여가는 유명의 정보에 ‘성실’, ‘연기광’을 추가한다.
[저도 한 번 보고 싶네요.] [연습실 놀러오세요. 지금은 저랑 카이만 쓰고 있으니 편하게 오셔도 돼요.] [그럴게요.]근황 토크를 마친 후, 카일러는 오늘 준비한 이야기를 꺼낸다.
[제가 꼭 함께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던 배우가 있었어요.]예상치 못한 대화의 흐름에, 유명이 의아해하며 말을 받는다.
[네…저도 아는 배우인가요?] [아뇨. 이 배우는 아직 완전히 무명이에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누구 못지 않죠. 그리고 요세미티에서 유명씨와 첫 인터뷰를 하면서…저는 이 친구와 유명씨가 함께 선 그림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시키고 싶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