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52
-아참. 그러고 보니…
이 날 저녁, 피비 테일러의 SNS에 오랜만에 르포 기사가 떴다.
피비 테일러@pitbullterrior
오늘 Mimicry 다들 보셨나요?
기사를 가져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시원한 진실을 보게 되실 겁니다.
#apologize_or_out
click-> 신유명 발연기 동영상의 진실
click-> 캐스팅보트 직전 3개월, 신유명은 어디에?
click이라는 단어가 무지개색으로 빛깔을 바꾸며 깜빡, 깜빡이고 있었다.
232 Mimicry Teaser
동영상에 등장한 피비는, 마치 컨셉처럼 킬힐에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한 스튜디오(아마 크로마키로 촬영하여 배경을 합성한 스튜디오인 듯 하다.)에 서서, 진행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피비 테일러입니다. 현재 큰 화제가 떠오른, 칸 영화제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탄 배우, 신유명. 우리는 지난 수 개월간 이 배우의 많은 가십성 기사들을 접해 왔습니다. 칸 영화제가 그의 연기력에 극찬을 보낸 지금, 그 모든 기사들이 모두 루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지, 특히 이!!]그녀가 뒤편의 허공에 뜬 동영상을 교편같은 작대기로 턱- 하고 짚었다.
[-영상의 미심쩍은 연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상은, 이라는 신유명의 데뷔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캐스팅보트의 화제성이 하늘을 찌르자 TW에서 수입을 확정하기도 했는데요. 최종 금액 조율과 미국 방송시에 맞춘 회당 시간 조정, 번역 등으로 방영이 늦어졌고, 얼마 후 방영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는 TW의 협조로, 이 드라마의 일부를 이 곳에서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녀가 작대기로 반대편을 짚자, 또 하나의 영상이 뜬다.
그 속에서는, 유명과 다른 동양인 배우가 똑같은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발연기 동영상’에서의 유명보다는 훨씬 나은 연기이다.
[이 다음 장면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컷-! 은성군과 월공이 팽팽해야 하는데,,,월공 좀 더 분발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이 대사가 들어간 것은, 이 국중 인물 때문입니다.‘태그유민’ 이라는 이 인물은, 드라마 내에서 ‘연기를 썩 잘하지 않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그래서 상대역에게 연기로 밀리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배역에게 어울리는 것은 이 연기일까요, 혹은 신유명이 연기했던 식의 ‘망가지는’ 연기일까요?]
그녀가 조금 옆으로 걷자, 두 개의 화면이 나란히 재생되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의 연기가 유약하고 자신감 없는 캐릭터성을 일부러 반영한 연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덧붙여 피비는 신유명이 월공이 아닌, ‘탁규민’을 연기할 때의 영상을 함께 비교해 주었는데, 그 인물의 톤이 ‘연기를 못하는 연기’에 그대로 녹아나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저는 이 드라마의 관계자를 찾아가 인터뷰를 따 보았습니다.]전환된 화면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육미영 작가.
[아, 맞아요. 당시 이 배역을 맡았던 배우가 몸이 안 좋아 촬영장에 나오지 못 해서, 상대역의 컷이라도 따놓으려고 신유명씨에게 잠시 대역을 부탁했죠. 대역인데도 탁규민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캐릭터의 베이스 위에서 ‘연기를 못하는 연기’를 펼쳐서 대단히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떻게 이 필름이 외부로 빠져나갔지···?]육미영이 시치미를 뚝 떼고 감탄한다.
다시 화면은 피비에게로 돌아온다.
[그랬던 것입니다. 이것은 ‘연기를 못하는 배우’를 ‘연기’한 화면이었는데, 그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다들 연기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거죠. 사실 그런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서 여러번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모두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은 것이 루머를 이만큼 부풀렸습니다.이 동영상을 습득한 사람은 당연히 그 히스토리를 알고 있었을텐데, 누가 무슨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루머를 퍼뜨린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유석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의도로’ ‘피비 테일러를 활용해서’
이 자료를 그렇게 사용한 장본인 중 한 명인 피비는 시치미를 뚝 떼고,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동영상은 철저히 세탁된 루트로 팔아서 증거가 없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처음 불을 지른 것은 상대쪽이니까. 여러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는데도 믿지 않고 더욱 부풀리기만 했고.
-미쳤네. 연기를 못하는 것까지도 연기였네.
-어쩐지. 캐스팅보트 애청자로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나저나 연기 진짜 자연스럽네요. 진짜 못하는 걸로 보여서 일이 더 커진 듯.
-어떤 새끼지 진짜? 루머 퍼뜨린 놈들 다 족쳐야함.
-나는 그럴 줄 알았음.
└지나고 나서 그런 소리는 누구나 다 하고요~
그녀의 첫 번째 영상을 다 보고 돌아나온 사람들은, 그 사이에 수천 개의 댓글이 그 글에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영상을 클릭했다.
*
두 번째 영상에는, 그녀가 이탈리아에서 찍어온 취재 클립이 삽입되어 있었다.
영상 속의 뚱뚱한 남성의 이름은 안드레아 모레띠.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오페라 행사인 에서 무대 감독을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 그 배우를…알고 계십니까!!!
1년 9개월 전, 베로나에서 거리 공연을 했던 한 동양인 배우를 기억하냐는 피비의 질문에, 그가 오히려 광분해서 달려들었다.
-맙소사…그가…실존하는 인물이었다니···
그는 잠시 벅찬 듯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가, 붉어진 얼굴을 들어 말했다.
-기억하다마다요. 저는 뜨거운 이탈리아의 대낮의 신기루를 틈타, 잠시 연기의 신이 유희를 즐긴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지요. 그 때 그는 흔한 배낭여행자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고…저는 그의 거리 공연을 두 번, 두 번 목격했습니다. 평생 다시 그런 연기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감성 풍부한 이탈리아 남자답게 장황한 묘사와 손발짓을 섞어, ‘얼마나 그 연기가 아름다웠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피비가 보여준 의 트레일러를 보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그가 맞습니다. 분명합니다. 오 신이시여, 그의 연기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니···
[이 분이 입증한 바처럼, 신유명씨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활동과 캐스팅보트로 미국에 입국한 사이의 공백기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녔습니다. 연기에 미쳐있는 배우답게, 방문한 곳들도 셰익스피어 생가, 웨스트엔드, 베로나 오페라축제…죄다 연기와 관련된 스팟들이었고, 저는 여러 곳에서 그를 본 목격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피비가 마지막으로, 날카롭게 화면을 쳐다본다.
[저는 파파라치입니다. 대단히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기자’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거짓을 진실로 바꾸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발로 뛰지 않고 추측성으로 무책임한 루머를 남발하셨던 기자님들. 기자라는 직함을 버리시던가, 앞으로 기자질 계속하시려면 적어도 사과할 것을 촉구합니다. 저 피비 테일러는 앞으로 기자답지 못한 기자를 쫓는, ‘기자 파파라치’가 될 생각입니다.]
영상의 끝에는, TW에서 수주한 광고가 붙어 있었다.
피비테일러라는 이름이 이제 자생력있는 미디어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비의 르포 기사 후, #apologize_or_out는 거대한 키워드가 되었다.
를 본 사람들은, 수 개월간 멀쩡한 배우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루머가 떠돌았다는 사실에 의아해했고, 거기에 휘말린 스스로를 반성하며, 관련된 자들에 대한 원성을 드높였다.
그리고, 언론이 확정되지 않은 사실로 한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이 이번 뿐만은 아닐 거라는 이슈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많은 셀럽들이 출처불명의 찌라시에 엮여 피해를 본 사실을 토로했고, 이번 기회에 가십지들이 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루머를 끈질기게 보도했던 쓰레기언론 리스트입니다.
-아, NBC는 한참 전에 담당자 경질하고 사과보도 했으니까 빼주세요!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신유명도 이 정도로 뛰어난 배우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 아닙니까. 이번 기회에 정의 실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해당 언론들에 몰려가 #apologize_or_out을 폭풍처럼 달아댔다.
거기에 피비 테일러는 더한 불길을 끼얹었다.
대중들은 이때까지 그들이 현혹당해 온 것이 ‘단순루머’도 아닌, 상대를 짓밟기 위해 계획된 루머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다.
곧 경찰이 파블사의 압수수색을 시작했고, 이것이 불길이 되어 #apologize_or_out의 불길은 더욱 거세져 갔다.
해당되는 많은 가십지들이 사과 성명을 냈고, 일부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가 소리소문 없이 상영관에서 내린 가운데, 는 날이 갈 수록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다.
*
‘안보인다 안들린다 안보인다 안들린다···’
유명의 동생 지연은 지난 일주일,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놈의 스포, 스포의 압박!
그녀는 하필 수련회로 의 예매 개시날 예매를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오빠놈이 정말정말 대단한 걸 알면서도, 내 오빠라고 생각하면 역시 하찮았기 때문에 방심한 부분도 조금 있었다.
“응? 예매 안했니?”
“으갸아아아악!! 내 표도 같이 좀 예매하지!!”
“넌 니 친구들이랑 갈 줄 알았지. 엄마 아빠는 ‘개봉일’ 거 예매했다?”
무정한 친구년놈들은, 자신이 신유명의 친동생인 걸 알면서도 결코 티켓을 양보해주지 않았다.
“응 안됨.”
“너 두 번 예매했다며!!”
“두 번 다 봐야됨.”
“같이 좀 살자!”
“넌 친오빠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나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음. 한 번은 보고, 한 번은 핥아야 돼.”
제일 친한 친구라는 것의 정신상태가 저따위다.
그녀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최대한 가까운 날짜의 표를 예매했는데, 그게 일주일은 더 이후였다.
‘대한민국 사람들 밥 처먹고 영화만 보냐고!!’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대단한 반전’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려 했다. 그러면 그녀는 귀를 막고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샤샤샥 도망갔다.
근 일주일간 티비도 신문도 보지 않았다. 스포일러는 정말 극혐이었다.
“지연아- 사실 유명이는-”
“아빠! 하지마!!”
그녀가 반사적으로 귀를 막는 것을 보고, 아빠가 껄껄 웃었다. 요즘 매일같이 아빠가 치는 장난에 그녀는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으쁘. 느그 브그믄흐믄!!”
“그런데 유명이가-”
“으읏! 흐즈믈르그!!”
그렇게 겨우 일주일을 보내고, 그녀는 피폐해진 마음으로 당일을 맞았다.
오늘 저녁에 드디어 영화를 본다. 이 지긋지긋한 스포와의 전쟁도 오늘로 끝이다.
그녀는, 담임을 맡고 있는 똘망똘망한 2학년 아이들이 만들기를 하는 틈을 타, 일기 검사를 시작했다.
2008년 6월 5일. 날씨 맑음.
신유명은 외계인이다!!!
라고 아빠가 말했다. 나도 영화 보고 싶은데 어린이는 못 본다고 한다.
“으악—!!”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비명을 지른 그녀에게,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왜 그러세요?”
“얘들아 선생님 아픈가봐…우리가 선생님을 아프게 했나봐 히잉.”
“선생님 사랑해요.”
그녀가 파르르 눈물을 머금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슨승늠 근츤으···”
*
는 압도적으로 ‘여러 번 보는’ 관객이 많았다.
-3회차 관람입니다. tvly님이 추천하신대로, 트레일러 완전히 머리에 넣고 가서 비교하면서 본편 봤는데 미쳤네요. 이거 다 계산하면서 연기하는 거 인간의 영역인가요?
-나중에 디비디 나오면 트레일러랑 본편이랑 동시에 켜놓고 재감상 필수입니다.
-2회차입니다. 아스 여러 직업군 ‘의태’하는 부분, 진짜 다른 사람 보는 것 같아서 소름끼쳐요.
-외계인이라니…너무 어이없는데, 너무 납득가게 연기해버린 것.
-14회차입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복선을 발견하고, 새롭게 연기에 감탄하게 되네요.
-수중 장면. 그거 진짜 물 속에서 찍은 거라는 인터뷰 보셨어요? 심지어 NG 한 번 없이 찍었다고···
압도적인 화제성과, 보는 사람마다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영화퀄리티, 그리고 본 사람이 또 보고 또 보는 효과까지 더해져 박스오피스 성적은 빛의 속도로 성장했다.
다만 너무 화제가 만발하다보니, 초반 스포일링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에잉 커뮤에서 스포 너무 당했네요. 기대했는데 그냥 디비디 나오면 보려고 합니다.
└님, 후회해요. 얼른 가서 보세요. 하루라도 일찍봐야 더 보람찬 인생이에요.
└이 분 디비디 보고, 영화관 안 간 거 땅을 친다에 한 표.
└제가 땅을 왜 칩니까. SF라고 해도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꼭 큰 화면으로 볼 필요는 없잖아요.
└냅두시죠. 자기 복 자기가 차는데.
└화면 크기도 있지만 집중도가 다르잖아요. 진짜 스크린으로 봐야 해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개봉 3주 후.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이었다.
엄청난 화제성으로 스포일링이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기 때문이며, 이미 기록적인 누적매출을 달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Mimicry Teaser]사람들은 개봉이 한참 지난 후 떡하니 등장한 티저에, 눈을 비볐다.
‘웬 티저···?’
233 2008, 신유명의 해
재키 슈니첼은, 어차피 스포당한 바에 DVD 출시를 기다리겠다는 자신의 댓글에 달린 대댓글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영화를 보기 위해 꽤 노력했다.
그런데 워낙에 연일 매진 세례로 표를 구하기 어려웠고, 피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스포를 당하고 말았을 때의 이루 말하기 어려운 허망함에,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커뮤에 새로운 자료가 업로드되었다.
[Mimicry Teaser]‘개봉 한 달 후에 티저라고…?’
그는 황당함을 금치 못하며 동영상을 재생했다.
새까만 화면에 이런 경고문이 먼저 떠올랐다.
[이 영상은 에 대한 스포일링을 담고 있으므로, 영화를 관람 예정이신 분들은 보지 않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까고 있네. 이미 다 스포 당했거든요?’
잠시 후 화면이 환하게 밝아지며 드러난 것은, 강을 따라 걷고 있는 아스의 모습이었다.
‘음? 이거 트레일러의 초반에서 등장했던 장면 아닌가? 이미 썼던 장면을 다시 내보내면서 무슨 티저-’
라는 생각을 하던 그가, 잠시 눈을 두 번 껌벅였다.
그리고,
양 눈을 찢어질 듯 번쩍 떴다.
고작 세 걸음만에, 완전히 달라진 주인공의 분위기.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설명할 수 없다.
그저 걷고 있는 한 인간을 보고, 어째서 이런 공포에 가까운 오슬오슬한 긴장감이 드는지.
저 얼굴이 갑자기 찢어지면서 어떤 괴생명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극도의 위화감. 그리고 공기의 입자들이 곤두선 것이 보일 듯한 밀도.
그가 걷는 동선 위에, 한 마리의 풍뎅이가 멈추어 서 있다.
짙은 초록색이 선명한 아름다운 풍뎅이.
재키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스의 ‘무정한’ 분위기를 보고, 저 생명체의 운명을 짐작한다.
콰직.
쩌어억-
곤충을 갖고 놀다 죽이는 것 정도야, 어렸을 때 많이들 해보는 놀이이다.
그럼에도 그가 눈을 질끈 감은 것은, 지금 그는 어쩐지 저 곤충 쪽에 자신을 동화시켰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아스’쪽이 훨씬 인간에 가까웠는데도, 곤충 쪽에 이입된 기분.
재키가 꼭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땐, 아스는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가 걸어가는 점점이, 지저분한 점액질 분비물이 점점 옅게 묻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다음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몸을 달달 떨고 있는 하얀 강아지.
‘설마···’
역시나, 강아지를 한 번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발로 장애물을 제거하고 지나간다.
그 때, 캐앵- 비명을 지르며 옆에 처박힌 강아지보다, 아스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인간이 가진 감정의 스펙트럼이 전혀 보이지 않아. 감정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아예 접점 자체가 없는…’
그리고 깨닫는다.
‘아…그래서 외계인이라고···!’
그래. 외계인.
지구인보다 상위 포식자인 어떤 종이 있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그런데 이건 트레일러에도 나왔던 장면인데, 그 때는 이 정도로 충격적이지 않았는데 왜 그 때 이걸 쓰지않고, 아…!’
거기까지 떠올린 그는, 어떤 결론을 내리고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아까 이 장면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경고문이 떴었지. 설마 이 장면이 그대로 나갔으면, 개봉하기도 전에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질까봐, 일부러 ‘연기의 레벨을 낮춰서’ 담았던 것···?’
그러면서, 자신도 흥미롭게 보았던 칼럼이 떠올랐다.
-아예 ‘인간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 완벽한 아스 프리데터의 내면에 무슨 생각이 감추어져 있는 것인지에 대한, 학자로서의 기대이다.
영화 개봉 직후에, 로건의 그 칼럼에는 ‘성지순례’가 유행했었다.
트레일러만으로 영화의 본질을 파악한 것이 대단하다며, 2탄을 써달라는 요청 또한 빗발쳤었는데, 그가 말한 ‘인간성의 부재’라는 것이…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참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내용을 모두 알더라도 이 연기의 가치는 바래지 않아!’
그는 티저가 끝나자마자, 다급히 영화관으로 뛰쳐 나갔다.
그 날, 재키와 같은 수순을 밟은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
[제가 졌군요, 하하하.]룬드 밸론토는 내기에 지고서도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은근히 지기를 바라고 있던 내기일 것이다. 이미 밸론토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경영이 악화되어 있고, 그의 능력으로는 회복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이 모든 결과를 정말 예상하셨던 겁니까? 찍은 것이 아니구요?] [운만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은 없죠. 물론 가장 좋은 패를 들고 이길 환경을 다 조성해놓아도, 운이 없다면 승리할 수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