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7
‘아무렴 나라면 오디우스에서도 주연이지.’
그런 위안은 2년전의 오디우스 공연을 본 후 사정없이 흔들렸다. 무대를 압도적으로 휘젓는 의 미친 알런의 모습을 보고.
그 뒤로 그의 자기위로는 이렇게 바뀌었다.
‘내가 오디우스였다면 최소 서류신과 라이벌이지.’
그는 졸업하고 연기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창천도 전통있는 대학극단. 자신의 경력과 와꾸를 가지고 대학로 극단에 원서를 내밀면 대부분은 쉽게 입단을 받아줄 것이다.
하지만 철주가 원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번 봄축제에 제 연출로 공연을 합니다. 5/29~31 7시 베티홀입니다. 꼭 한번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 철주가 연출이야? 그럼 가봐야지. 목요일 첫 공연에 갈게.]철주가 노리고 있는 극단 의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는 선배가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다.
오디션을 보는 것보다는, 재능을 인정받고 스카웃을 당하는 것이 철주가 원하는 그림이다.
철주는 그 날 달콤한 꿈을 꾸었다.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연출에도 엄청난 재능이 있었구나!}
{졸업하고 우리 극단으로 와줘. 제발 부탁이다!}
선배가 한껏 매달리고, 본인은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허락하는 꿈이었다.
잠든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드리웠다.
*
“아- 아- 아- 아-”
“30분 후 테크니컬 리허설 시작합니다. 그 전에 음향체크 끝내요!”
“큐시트! 조명 큐시트 본사람!”
첫 공연 전.
조명이 쉴새없이 켜졌다 꺼지고, 무대 세트는 차질없이 마지막 디테일을 입고 있다.
배우들은 두꺼운 분장을 얹고 여기저기서 스탭을 돕거나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명은 무대팀을 도와주던 걸 끝내고, 객석 하나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아-
{회귀 첫 정식무대넹. 기분이 어떤컁.}
역시 오늘은 미호가 따라왔구나.
유명은 정면을 응시하며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
‘의외로 담담하네.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기분이야.’
{큭큭. 참 나 어제 서류신 공연보고왔당.}
‘어땠어? 나도 보고 싶었는데 공연 준비때문에 못 갔네.’
{애기치고 잘하더랑. 그놈 생기는 뜨거운 맛이 난당.}
그 말에 유명이 피식 웃었다.
연습할 때 분출되던 류신의 열정과 승부욕이 생각난다. 그런 맛이 날 만도 하다.
‘나는 무슨 맛이 나는지, 이따 얘기해줘.’
그 말을 남기고 유명이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연기를 가다듬기 위해.
*
공연 1시간 전. 홀 로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오프닝나잇’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에는 교수님, 졸업생 등 창천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개막을 축하해주곤 한다.
테이블마다 음료와 다과가 세팅되어 있었고 낯익은 얼굴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저기 연출 나오네-”
객석 문이 열리고 철주가 나오자 참석자들이 크게 박수를 쳐서 맞았다.
철주는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연출 고생했어-”
“한 마디 들어봅시다-”
문앞 계단 위에 서 있는 철주에게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들, 선배님들. 역사와 전통의 65회 공연에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98학번 최철주입니다. 즐겁게 봐주시고 부족한 점 있으면 가차없는 조언 부탁드립니다!”
“멋있다-”
“잘생겼다-”
다시 한번 울려퍼지는 박수소리.
철주는 매의 눈으로 좌중을 훑었다. 2시 방향에 교수님과 대화 중인 이신 선배의 모습이 보인다.
백이신. 재학 중 연출만 3번 했다는 전설적인 선배. 철주가 그토록 기다리던 의 캐스팅 디렉터.
그쪽 방향으로 티나지 않게 걸어가다, 그의 옆을 지날 무렵에 엇- 하며 말을 붙였다.
“엇! 이신 선배님. 진짜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어- 너도 보고 괜찮은놈 있나 체크도 겸사겸사. 공연 잘해라.”
이신이 철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철주는 가장 중요한 인물에게 눈도장을 찍은 후 유리문 밖을 향했다. 대기 관객이 얼마나 되는지 체크해 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통제라인 바깥 쪽 가장 앞줄에 위치한 사람을 보고 그는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서류신이다.
그가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가장 일찍 와서 맨 앞줄에 서 있다.
역시 저 서류신도 자신을 의식하는군-이란 생각에 철주는 쾌감마저 느꼈다.
무대로 돌아온 철주는 배우들을 마지막으로 집합시켰다. 백이신과 서류신, 그 둘을 만나고 나자 안 그래도 넘치던 의욕이 활활 불타오른다.
“다들 쫄지말고, 대사 까먹지 말고, 애드립치거나 밸런스 깨지 말고! 창천 화이팅!”
“화이팅–”
공연의 막이 올랐다.
*
‘나쁘진 않네.’
이신은 vip석에 앉아 팔걸이에 팔꿈치를 괴고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아까 연출에게 했던 말은 인사치레였을 뿐, 창천 공연에 별 기대는 없다.
나쁘지 않다는 결코 좋다의 동의어가 아니다.
대학공연치고 폼은 갖췄다.
하지만 여타의 대학공연에선 서툼이 뚝뚝 떨어지는 대신, 간혹 그걸 압도할만한 에너지나 개성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창천 공연엔 그런게 없다.
‘애들이 어른인 척 하는 공연을 보는 느낌이란 말야.’
그런 ‘창천스타일’이 싫어서, 재학중 이신이 연출을 할 때는 파격적인 캐스팅을 했었다.
와꾸가 안 나와서 주연감이 아니라고 했던 친구를 주연에 올리고, 예뻐서 여주감이라고 불렸지만 자기가 보기엔 4차원적인 매력이 있던 여학우는 개그캐릭터로 썼다.
선배들에게 몇 번이나 불려갔다.
‘창천의 전통’ 어쩌고는 지겹도록 들었다.
그래도 어쨌건 공연준비 중엔 연출에게 전권이 있으니까-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밀어부쳤다. 그리고 잔소리와 걱정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 찬사로 바뀌었다.
그런 경험이 이신을 캐스팅디렉터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주연이…구원영? 얘가 철주보다 연기는 낫네. 그래도 지루하긴 마찬가지···’
이신이 작게 하품을 했다. 요즘 극단 일이 바빠서 수면시간이 부족했나 보다.
잠깐 졸까 하던 찰나에, 새로운 인물 하나가 등장한다.
‘어?’
잠이 싹 달아났다.
.
.
.
한 인물이 무대 왼쪽 포켓에서 걸어나온다.
정장에 보타이, 포마드로 바짝 붙여 넘긴 머리. 팔목에는 번쩍이는 금테 시계.
포멀한 의상과는 달리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건들건들 걸어나오는 남자는 강렬하게 시선을 당긴다.
왤까?
별로 한 것 없이도 시선을 걷어가는 이유가 뭔지 이신이 고민하던 중에, 그가 무대 위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뒤로 누울 듯 늘어진 자세로 전화기를 집어든다.
따르릉-
무대 오른쪽 공간에 있던 곽기자가 달칵-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우리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지난 번에 붙여드린 우리 신인이랑은 즐겁게 노셨습니까?] [봐, 봐, 또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 첫마디부터요, 응?] [하하. 그 이번에 특종하나 따셨던데?] [아. 그거~ 스파이더맨 컨셉이 먹혀서 좀 떴지요. 좋지 않습니까. 서민 영웅 스파이더맨~] [와꾸를 기가 막히게 짜셨어. 그 분 기획사 혹시 있으신가? 없으면 저한테 소개좀.] [띄워 보시게요? 돈 냄새 좀 맡으셨나보네?]‘와, 저 배우···’
이신의 허리가 꼿꼿이 섰다. 캐스팅디렉터의 본능이 팽- 하고 당긴다.
짧은 한 장면에 이신은 세 번이나 감탄했다.
일단 목소리. 국내배우 중 저런 목소리가 있었나?
명배우 피터 오툴처럼 부드러우면서 명료한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