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0
“…?”
“공연에는 관심없어요. 한 명의 ‘배우’만 빼고.”
류신이 유명에게 꽃다발을 툭- 건넸을 때, 철주의 표정은 형용할 수 없이 썩었다. 그는 무슨 말이라도 할 듯 씩씩거리다, 아예 공연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어어…감사합니다.”
“연기 좋았어요. 하지만 다음엔 최상의 연기를 보고 싶네요.”
“네? 그게 무슨···”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고, 최선이 최상이 되는 환경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 싶다는 뜻이에요”
류신은 묘한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그와 교차하여 경영학과 후배들이 떼로 몰려왔고, 유명은 분주히 사진을 찍어주고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이 한 번의 공연에서 받은 꽃이 전생 전체에서 받은 꽃보다도 많은 것 같았다.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쾅- 콰앙-
흑..흑..허엉-
무대가 부수어진다. 3개월간 쌓은 열정을 제 손으로 부숴내는 단원들의 눈에 눈물이 어린다.
그 애달픔을 놀리기라도 하듯, 음향팀은 꼭 저 노래를 튼다. 어린 단원들이 숫제 통곡을 한다.
그 사이에서 유명은 마른 눈으로 묵묵히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의외로 담담…그리고 약간 씁쓸…한가.’
회귀 직전의 15년 전, 23살의 유명은 무대를 부수며 누구보다도 많이 울었다.
자신에게도 분배되는 시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했던 초보배우는,
부서지는 무대가 아까워서, 역할을 떠나보내기 아쉬워서, 함께해온 동료들이 사랑스러워서,
공연이 끝난 날 밤새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다시 시작된 인생에서, 유명이 예전 그대로 창천 단역 루트를 밟은 이유.
처음에는 테스트였다.
미호가 존재감을 줬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못미더워서. 존재감을 빼면 연기 자체는 좋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아서.
하지만 중간에 프레디역을 할 기회를 얻으면서,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후 류신이 오디우스 입단을 제안했을 때는 약간 솔깃하는 마음도 있었다.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의 연기 퀄리티가 다를 것이 자명했으니.
그런데도,
창천에 남았던 것은···
콰앙-
유명이 벽의 마지막 접착 부위를 강하게 때렸고, 분리된 벽이 쓰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거대한 타격음.
이로써 빠짐없이 무대가 부수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파편들을 하나씩 주워담는다.
…창천에 남았던 것은, 전생의 자신에 대한 진혼곡.
티끌만한 시선에도 감격에 벅차던 존재감 없는 무명배우.
본인의 생일에도, 밤샘 촬영에서 14시간씩 대기하며 쫄쫄 굶은 배를 물로 채웠고,
쥐꼬리만한 출연료를 떼이고도, 다음에 불러주지 않을까봐 항의 한마디 못했으며,
뒤에 들어온 단원에게 배역을 빼앗기고도, 그 단원이 펑크낸 자리를 기쁘게 메웠던,
15년의 보상없는 세월을 연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으로 채웠던,
어떤 배우의 첫 무대에 대한 예우.
‘이걸로, 자기연민은 끝내자.’
전생에는 창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유명한 대학 극단이자, 자신을 연기로 끌어들인 첫 스승과도 같은 곳. 열정적이고 실력있는 좋은 극단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아와 바라본 창천은 무척 달랐다.
올려다보는 협경과 내려다보는 광경은 왜 이리 다를까.
같은 풍경일진대.
유명에게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철주 때문이 아니다.
열심히는 하지만 어차피 대부분은 취미활동인, 목숨거는 절실함은 없는 집단.
딱, 아마추어.
더 이상 본인이 놀 판은 아니라는 것을, 본무대 위에서야 깨달았다.
아까 류신이 남긴 말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최선이 최고가 되는 무대. 이런 아마추어의 무대 말고.
어느 정도 무대가 정리된 후 유명은 준한을 찾아갔다.
“어, 유명아 수고했다.”
“네. 감사했습니다. 형 저는 뒷풀이 빠지려구요.”
“어? 왜···”
“…”
“…실망 많이했냐. 미안하다. 내가 좀더 막아줬어야 하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지하게 연기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요.”
“그래. 어차피 뒷풀이 가도 좋은 말 듣긴 힘들거 같네. 몸 안좋은데 공연 지장 줄까봐 무리했더라고 얘기해 둘게.”
“감사합니다.”
“…창천이 좋은 배우 한 명을 잃겠구나. 자업자득이지만.”
씁쓸한 그 말에 유명이 준한을 바라봤다. 그는 전생 현생을 겸해 고마웠던 선배였다. 괜찮은 배우이기도 하고.
“형은 연기 쪽으로 안 가세요?”
“허허. 나같은 애매한 재능으론 먹고살기 힘들다. 연기는 너나 서류신 같은 놈들이 하는거지.”
“…”
“난 그냥 소시민으로 살란다. 가끔 공연보러 가서 ‘저 배우 내 지인이다!’ 하고 으스대는 걸로 만족해야지, 괜히 주제모르고 나대다가 쪽박찬다.”
유명이 그 말에 자조의 미소를 띠었다.
전생의 그가 바로 그 ‘주제모르고 나대다 쪽박찬’ 케이스였으니까.
그래도 자신은 그 때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연기를 떠나서는 행복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좋아했으니까.
“좋은 데 취업하시면 술 한잔 사주세요.”
“그래. 너도 프로가 되면 가끔 티켓이나 보내라. 첫 조연출은 영원한 엄마인 거 알지?”
이후 신유명은 새로운 작품의 초연마다 티켓을 보내고, 사준한은 평생에 걸쳐 ‘신유명의 지인이다’라는 자랑을 입에 담게 된다는 것을, 지금의 두 사람은 알 수 없었다.
*
단막극, 중간고사, 창천 공연이 몰아치듯 끝났다.
조금 숨을 돌린 유명은, 어제서야 혜전당 막내기사 김성진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혜전당]행 셔틀버스 20m→혜전당 역에서 내려 셔틀로 갈아탔다. 잠시 도심을 주행하던 셔틀은 금세 서울같지 않은 울창한 숲 속으로 접어들었다. 넓은 녹지를 한참이나 달리고서야 여기저기에 솟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혜전당의 상징인 3500석 규모 특대극장 를 위시하여, 2000석 규모의 대극장 2개, 500~1500 사이의 중극장 3개와 500석 이하의 소극장 3개, 대형 야외극장까지 갖추어진 극장복합체. 전시회장, 레스토랑 및 공연관련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오피스 건물까지.
숱하게 와봤지만 올 때마다 배우의 연기혼을 들썩이게 하는 곳.
공연장의 수는 많았지만 오페라, 콘서트, 뮤지컬, 클래식리사이틀 등 다양한 공연들이 모두 가능한데다, 수준이하의 공연을 올리느니 극장을 놀린다는 엄격한 방침 때문에, 혜전당에 공연을 올리는 것은 중소연극인들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꿈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극인의 꿈, 제 19회 전국연극제! 2003.06.03~06.12]‘어? 전국 연극제 중인가보네!’
{오옹… 맛있겠당!}
‘표가 남아있으면 견학 후에 공연이나 보고 갈까?’
{진짱?}
혜전당 견학을 간다고 했더니 미호가 따라붙었다. 유명의 눈에만 보이는 푸르스름한 빛무리는 신이 났는지 갸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윽고 마지막 정류장에서 셔틀이 사람들을 토해내었다. 유명은 내리자마자 정류장에 비치된 연극제 팜플렛을 집어들었다.
전국연극제. 지역 예선을 통과한 전국 극단들의 경합.
서울지역에 2개, 나머지 지역에 1개씩 해서 총 9개의 극단이 하루씩 공연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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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금) 네번째 날. [향수]
경상도 대표 극단
15:00 19:30 95분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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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작품인가봐. 이거 설마 ‘그’ 소설이 원작인가’
{영화로 나온 그겅? 재밌겠당!}
‘그러게. 궁금하네. 그르누이를 어떻게 연기했을지.’
보통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광기어린 살인자 그루누이를 떠올리며, 유명은 자신이라면 어떻게 연기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 해도 어렵다. 그렇지만…조금 설렌다.
그는 입구에서 티켓 한 장을 끊었다.
3시 공연은 현재 상연 중이었고 7시반 공연은 표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연극제 공연인데, 매진이 아니네?’
유명은 고개를 갸웃하곤, 약속상대에게로 향했다.
*
“어, 잘 찾아왔네.”
“그러게요. 극장이 너무 작아서 찾기 힘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