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1
유명의 농담에 성진이 피식 웃었다.
“그건 뭐냐?”
“견학 마치고 연극제 보고가려고 티켓 샀어요.”
“아 그래? 얘기하지. 내가 표 구해줬을텐데.”
“아니에요. 견학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성진이 유명의 손에 들린 표를 들여다보았다.
“극단 라…좀 아쉽네. 올해 경상도는 연극협회 쪽 문제로 연극제 보이콧한 극단들이 많아서, 선정팀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들었어. 강원도팀 공연이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래요? 그래도 이거 유명소설이 원작이잖아요. 작가 허락을 어떻게 받았나 몰라요.”
“그게 좀 화제가 되었긴 한데, 대본이 아깝다는 평판이야.”
“그래서 매진이 아니었구나···”
“이제 가자. 다행히 수전당이 스탠바이 전이야.”
혜전당의 시그니처인 특대극장 ‘수秀’
유명은 성진의 뒤를 따라 무대 뒤로 들어갔다.
“운이 좋네.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 준비 중이면 보안 이슈로 못 들어오기도 하거든. 다른 극장 보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수전당’ 보는 것과 기분이 다르잖아?”
“오늘 수전당엔 공연이 없어요?”
“리즈 피아노 콩쿠르 2위한 신주연씨 들어봤지? 이번주 내내 귀국 콘서트가 있어. 콘서트 세팅은 첫날 끝났으니까, 오늘은 5시쯤 되야 팀이 도착할거야.”
“아하.”
세계적인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쿨의 상위 입상자. 한동안 국위선양이다 뭐다 매스컴이 난리를 쳤던 인물이다.
역시 그쯤 되야 수전당에 올라갈 자격이 있구나…유명은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대 뒤는 어마어마했다.
회의실, 간이 침대가 구비된 휴게실, 개인락커. 중요 인물들을 위한 몇 개의 개인실은 독립된 분장실과 화장실을 갖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회전 무대, 가변형 무대장치, 리프트, 사이옵티션, 회의실 가운데에 설치된 극장실물축소모형 등, 15년 후의 웬만한 극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초호화시설들이었다.
“와아…진짜….말이 안나오네요.”
“죽이지?”
성진은 유명의 놀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해외에서 조명 공부를 하며 세계 유수의 극장들에 가 본 그도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극장이자 그의 직장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면서.
“자, 이제 무대로 가 볼까.”
두근-
진짜 공연장을 볼 차례가 되자, 유명의 가슴이 쿵- 쿵- 울리기 시작했다.
수전당에 주연으로 설 만한 배우가 꿈이라는 말은 반쯤은 성진의 오해를 덮기 위한 과장이었지만,
회귀한 후 3개월, 연기에 제대로 맛을 붙이고 나자, 자신이 꺼낸 말을 다시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수전당을 자세히 들여다 본 지금은 그 마음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공연장은 화려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3500석의 객석이 무대를 감싸고 있는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금색의 돔형 천장과 붉은 벨벳으로 감싸인 아름다운 좌석들은 비엔나의 궁정 음악당이 연상되는 품격이 있었다. 무대 한 쪽에 비스듬히 서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가 격조를 더했다.
“와…진짜…말이 안나오게 멋있네요.”
그런 그를 향해, 성진이 장난스럽게 씨익 웃었다.
“올라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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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외웠어요
“올라가봐.”
“네?!”
“괜찮아. 지금 우리 밖에 없어. 올라가봐.”
기분이 이상하다.
한 걸음, 두 걸음.
허락된 죄를 짓는 느낌으로, 유명은 조심스럽게 포켓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객석이 텅텅 비어있는데도, 공연장에 배어 있는 최고의 격格이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든다.
무대 센터에 도달해서, 심호흡을 하고 몸을 정면으로 돌린다.
‘흐아앗-’
시선 아래에서 한참 위까지 펼쳐진 객석들이 자신을 주시한다.
서 본 어떤 무대보다도 드넓은 무대.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만이 거쳐갔던 무대에서, 유명은 숨을 끝까지 들이쉬었다.
그 때,
텅-
극장의 모든 조명이 나가고,
어찌된 영문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팟-
한 개의 조명이 머리위로 떨어졌다.
온 몸이 전율했다.
밝은 무대위와 암전된 객석의 간극으로, 이제 객석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렇기에 상상이 된다.
‘나는 배우.
그리고 나만을 쳐다보고 있는, 빈 자리 하나 없이 끝까지 들어찬 3500명의 관객.’
쿠웅- 쿠웅-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유명의 입이 벌어졌다. 달싹, 달싹하던 입술은 대사 한 마디를 빚어낸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커다란 진공관은 흡음한 대사를 조금의 손실도 없이 객석으로 풀어놓았다.
자신의 말이 수전당의 공기중에 울려 퍼져 ‘배우의 말’이 되어 다시 귀에 돌아왔을 때,
유명은 환희와 함께, 아직 여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한 자신을 절감했다.
‘이 곳을 가득 채울만한 배우가 되자. 이번 생에는 할 수 있다.’
눈을 감은 유명의 귀에 환청이 들린다. 끝없이 쏟아지는 귀가 멀 듯한 박수소리.
이 날부터 유명의 목표는 정말로,
혜전당 수秀전당에 주연으로 설 수 있는 배우가 되었다.
*
성진은 사무실에 돌아와 커피를 한 잔 타주었다.
“하하, 아까 놀랐어? 표정 리얼하던데.”
“엄청요. 감사해요 형.”
“뭘, 전기세 내가 내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여기 전기를 팍팍 쓰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성진은 이 맹랑한 녀석의 호언장담을 듣고 피식피식 웃었다.
시계를 보니 4시반. 자신은 곧 다른 공연의 셋업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
“나 이제 가봐야 하는데, 넌 연극제 공연 전에 시간이 애매하게 뜨겠네. 음…공연 준비하는 모습 견학이라도 할래?”
“어? 돼요?”
그 때 사무실에 있던 성진의 동료 한 명이 끼어들었다.
“연극제? 오늘 세팅하면서 난리났었는데.”
“왜?”
“연극제 기간동안 1일 1팀 공연이라 매일 밤마다 새로운 무대와 조명 셋업을 하잖아. 그런데 그 팀 조립무대가 운송에 차질이 생겨서 오늘 아침에 도착해버렸어.”
“헉…듣기만 해도 끔찍하네. 형이 맡았어?”
“어. 무대감독님이 진짜 고생하셨고, 나도 공연 30분 전까지 무대랑 맞추느라…하아.”
“고생했네. 지금 3년쯤 더 늙어 보여.”
“어, 죽겠다. 오늘 일찍 들어갈게. 견학 부탁할 거면 내 이름 대.”
성진은 쉽게 허락을 구해냈다. 사고로 인해 혜전당 스탭들에게 면구스럽던 연출은 성진의 사소한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성진은 잘 보고 가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고, 유명은 객석 뒤편에 앉아, 미호와 소소한 평론을 나누며 리허설을 보고 있었다.
‘조립무대라 어떨까 했더니, 그래도 특징을 잘 살려서 만들었네.’
{주인공 연기 쉣이당. 그르누이 역에는 한참 역량이 딸리는 배우당.}
‘좀 그렇긴 하지? 제대로 공연 들어가면 지금보단 낫지 않을까?’
그 때 였다.
무대 한 쪽이 흔들린 것 같았다.
‘어···?’
유명이 눈을 의심했을 때,
무대 가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연기중인 주연배우의 다리 쪽을 덮쳤다.
“으아악–”
사고였다.
“조명 켜라!!”
“와? 무슨 일이고!!”
“으어..아···”
순식간에 극장 내부는 혼란과 비명으로 가득찼다.
주연 배우가 발목을 잡고 나뒹굴었다. 유명도 놀라 벌떡 일어섰다. 뭔가 붉은 것이 보인 것 같았다.
“괜찮나?! 누가 앰뷸런스 불러봐라!!”
“아..안돼요…저녁 공연···아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