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2
“미쳤나?! 니 지금 피가 철철이다. 동맥나간 거 아니가? 누가 붕대 쫌 가져와봐라!!”
“여기 옷! 이거라도 묶어라!”
10분 뒤,
도착한 앰뷸런스에 배우가 실려나갔다.
*
30분 후 연출에게 ‘상당한 중상으로 며칠은 절대 안정’이라는 연락이 도착했다.
오전에 급하게 무대를 세우면서, 제대로 고정하지 못한 부분이 떨어진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누구 그르누이 대사 외고 있는 사람 없나?”
“누가 그걸 다 외워요. 주인공 대사가 반도 넘는데.”
“대충이라도! 공연은 올려야 될 거 아니가!”
“마 포기하고 협회랑 사무국에 연락합시다. 대사도 대산데 블로킹(무대 위에서 배우의 동선)이랑 조명 큐랑 다 어떻게 외울라고요. 개판 될 긴데.”
“…이대로 포기하라고? 혜전당 공연을? 내는 못한다.”
부산사투리가 날카롭게 오간다.
동료의 부상에도 병원도 따라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연출과 배우들은, 눈을 벌겋게 붉히며 꿈의 공연과 현실적 장벽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흠…재밌넹.}
나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사고의 광경을 보고 있던 유명은, 미호의 부적절한 표현에 의문을 표했다.
{재밌어? 그게 무슨···}
{전에 킵해둔 ‘그거’ 지금 쓸래.}
{응?}
유명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전에, 알림이 울렸다.
[연귀가 계약된 보상, ‘빙의(0/1)’의 사용을 원합니다.] [자아가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거부할 수 없습니다. 강제집행됩니다.]그리고,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몸의 주도권을, 뺏겼다.
{이..이게 무슨…미호야! 미호!}
유명은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가 울려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벌떡 일어선 몸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그 역, 제가 하면 어떨까요?”
멘붕에 빠진 단원들의 사이를 비집는 지나치게 산뜻한 어조. 그들은 화들짝 놀라서 낯선 남자에게 시선을 모았다.
아, 저 사람은 배우다.
걸어오는 발걸음,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 남자가 배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배우라 해도, 공연이 2시간도 안 남았을 때 주인공 역을 소화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연출, 이 사람 누군데?”
“아까 혜전당 스탭이 리허설 견학 쫌 시켜 달라고 부탁한 사람. 저…혹시 배우십니까?”
“네.”
{야, 너 뭐하는 거야! 미쳤어!!!}
자신이 하고 있는 미친 짓을 보고 유명은 펄펄 날뛰었지만, 미호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도발적인 멘트를 던진다.
“남은 시간이 1시간 30분. 차고 넘치네요. 원래 주연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연기 해드릴 수 있어요. 아, 물론 출연료도 안 받고.”
이 건방지고 수상한 남자에게 불쾌감을 느낀 단원들을 제지하고, 연출이 말했다.
“말이 아인 말에 장단을 맞추는 게 웃기긴 한데,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봅니다. 대본암기는요?”
“아. 대본. 제가 천재라서 금방 외워요.”
“예?”
“대본 잠시 줘보세요.”
연출이 후들거리는 손으로 대본을 내민다.
남자는 대본을 넘겼다. 제대로 읽는지가 의심될만큼 스윽- 보고 팔랑- 넘긴다. 다 넘겨보는 10여분 상간에 공연장에는 숨막힐 듯한 긴장이 흘렀다.
탁-
소리나게 대본을 덮은 남자가 역시 산뜻하게 말했다.
“다 외웠어요.”
*
“뭐? 이 미친새-”
“연호야 잠깐 있어봐라!! 2막 3장 그르누이 대사, 어떻게 시작합니까?”
남자의 입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열렸다.
“그라스로 가는 두 가지 길. 도시를 통하는 지름길과, 산과 들을 거쳐가는 돌아가는 길. 나는 당연하게도 두 번째 길을 골랐다. 지긋지긋한 인간의 냄새가 없는 곳. 인적이 드물어질수록 악취는 점점 엷어져 갔다. 약한 흙 냄새와 바람 냄새를 제외하면 완벽한 무취. 아아- 나는 황홀함을 느꼈다.”
“…그…그럼 3막 6장 마지막 대사는요?”
“이로서 24명의 향기가 완성되었군. 남은 것은 로르 리쉬, 가장 매혹적인 향기의 소유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향수의 완성을 위해, 그대도 죽어줘.”
“아니 어떻게···”
“이게 말이가···”
단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신음을 토했다.
“와, 직이네. 정체가 뭡니까! 아니 그런 얘기는 이따 하고, 잘 쫌 부탁드립니다!”
“큐시트랑 동선표 있나요?”
허겁지겁 한 단원이, 실려간 주연배우의 대본과 자료들을 긁어모아왔다.
유명은, 아니 연귀는 그 자료들도 스윽, 눈으로 스캔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으니 테크니컬 리허설로 가죠. 중간에 안 맞는 부분만 체크해서 얘기해 주시고.”
바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연귀는 배우들을 따라 무대 뒤로 갔다.
배우들은 경외와 호기심에 그를 훔쳐보면서도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곧 극장의 불이 꺼지고, bgm이 음산하게 흘렀다.
쿵-쿵-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음악이 뚝 하고 끊어지며 조명이 들어온다.
무대 중앙에 가죽을 두드리고 있는 무두장이가 있다. 왼쪽 포켓에서 유모가 등장한다.
“오케이, 다음-”
유모는 무두장이에게 돈을 받고 앞치마에 집어 넣는다. 조명이 꺼진다.
“오케이, 다음 장-”
연극에는 ‘큐’라는 것이 있다.
조명을 켜고 끄기 위해, 음향을 켜고 끄기 위해 정한 약속이 큐, 즉 신호가 된다.
이 장면에서는 무두장이역의 배우가 가죽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음향 off 조명 on의 큐, 유모가 앞치마에 손을 넣는 동작이 이번 장을 끝내는 조명 off의 큐였다.
테크니컬 리허설에서는 연기는 없이 음향, 조명, 무대설치의 변화들을 큐와 맞추며 빠르게 돌린다. 당연히 공연의 흐름에 대한 능숙한 파악이 필요하고, 오래 연습해온 배우들도 큐를 잊어서 낭패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
즉, 공연 직전에 난입한 배우가 큐시트만 보고 큐를 맞춘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트레이스 큐, 블로킹.}
등장할 차례가 되어, 포켓에 위치한 연귀가 속으로 주문을 읊자, 무대 위에 파랗게 빛나는 선들이 생겨났다.
어떤 선은 더 밝게, 어떤 선은 더 흐리게 빛난다.
그것은 바로, 오늘 낮 공연 후 잔존하는 생기들.
연귀는 망설임없이 하나의 선을 밟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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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연기
“연출, 내가 지금 헛거 보고 있는 거 아이지?”
“나도 내 눈이 삐었나 싶다 지금.”
“세상에 저런 종자도 있구나. 서울은 진짜로 다르네.”
한 번 동선을 삐끗하거나 큐를 실수하는 일도 없이, 30분만에 테크니컬 리허설이 끝났다.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묻고싶은 말이 태산같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공연 카운트다운
40’’00
스탭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붓을 놀린다.
피부 곳곳에 지저분한 검정을 바르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을 만들었다. 옆에선 다른 인원들이 너덜너덜한 의상을 들고 대기했다.
{미호! 미호야!! 야!!}
{야——!}
여태 한 마디도 반응이 없던 미호가 드디어 답을 했다.
{공연 중에는 부르지 마랑. 몰입 깨진당.}
{야! 너 이게 뭐하는 짓-}
{계약의 실행일 뿐이당. 공연만 끝나면 다시 돌아갈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랑.}
{아니, 설명이라도 해줘야-}
{보다시피, 30분 후면 공연이당. 잠시만 얌전히 있어랑. 너한테도 참고가 될꺼당.}
그리고 미호는 다시 입을 닫았다.
유명은 최대의 의지를 발현하여 손가락 끝을 움직이려 해보았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신체는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하아–}
그는 결국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