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3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연이 끝나면 돌아갈 거라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미호, 아니 연귀란 존재에 대한 경각심이 피어오른다.
20’’00
관객 입장 시작. 입장 bgm이 흘렀다.
“어떡하노…내 떨려서 대사 까묵은 거 같다.”
배우들이 우왕좌왕한다.
10’’00
거울 앞에 선 연귀가 오한이 드는 것처럼 조금씩 몸을 떨었다.
틱- 틱-
간헐적으로 떨리던 몸이 어느 순간 스윽 잦아들더니, 고개를 들어 대기실의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유명은 열린 시야를 통해, 낯선 자신의 눈과 마주했다.
지독히 무감각한 눈 한 쌍이, 무기물을 보듯이 자신을 바라본다.
그 시선이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과 같아, 유명은 알 수 없는 예감에 치를 떨었다.
5’’00
“심사위원들 착석했습니다-”
“1장 출연자 포켓 대기!”
00’’00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200석의 소극장은 절반 정도 차 있었다.
혜전당의 명성 때문이라도 연극제 작품들은 대부분 만석을 기록하기 마련인데, 연극 쪽은 코어 관객들이 많아 소문이 빠른 모양이었다.
관객들의 표정도 큰 기대보다는, 수준 이하만 아니길 바라는 정도의 가벼운 얼굴이었다.
그런데,
1막 2장에 한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 객석은 기묘한 긴장에 휩싸였다.
굽은 등, 절뚝이는 걸음걸이. 몸집이 작지 않은데도 한없이 왜소해보이는 남자.
그의 등장만으로도, 당장이라도 극장 밖으로 나가고 싶은 불쾌감을 느낀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 눈 앞에 있는 기분.
하지만 그들의 기분은 유명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이건.’
몸은 빼앗겼지만, 감각은 그대로 느껴진다.
들이쉬는 숨이 폐로 번져나가며 가슴이 부푸는 느낌, 굽어진 등이 삐걱거리며 걸을 때의 불편감. 자신의 몸에 들어와있는 이질적인 정신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마음이 끓어오르는지까지 낱낱이 와닿는다.
{감각을 열어줬당. 잘 보고 있어랑.}
그리고 첫 대사를 뱉었다.
*
관객은 생각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연기력이다.
하지만 대단해서 더 불쾌하다. 정말 인간이 맞을까?
마치 인간의 껍질을 둘러쓴 갑각류가 앞에 있는 듯한 불쾌감이 스물스물 기어올라, 너무한 게 아닌가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왤까.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이 불쾌한 인물에게 젖어들었다.
머리로는 여전히 이 인물의 내면 세계가 이해되지 않는데도, 가슴은 그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냄새를 피해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2장에서 관객은 당혹감을 느꼈다.
냄새가 없는 환경에 점점 만족해가는 그르누이를 보면서, 그들에게 떠오른 생각은···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아…얼마나 행복한 결말일까···’
원래의 그들이라면, 들 리 없는 생각이었다.
냄새가 없는 이 환경이 해피엔딩이라니.
기이한 동조감은 점점 살을 붙였다.
급기야는 향기로운 인간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그르누이의 기분조차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앞에 저 로르 리쉬가 있다면 함께 목졸라 죽인 후, 살갗에 코를 박고 냄새맡고 싶었다.
희대의 살인마가 로르 리쉬를 죽이고 탈주에 성공했을 때는, 이젠 ‘그 향수’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쾌감에 관객들 모두 눈이 벌개졌다.
보수적인 관객 일부는 공연이 끝난 후 ‘내가 미쳤나봐, 왜 그런 생각을!’이라고 자책하게 되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비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그들은 그르누이라는 인물에 동화해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도 그럴진데, 그 몸 속에서 함께 감각을 느끼고 있는 유명의 기분은 형용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 안에 괴랄한 살인마이자 인간의 감정을 알지 못하는 기묘한 생명체, 그르누이가 함께 숨쉬고 있다.
‘프레디의 경우처럼 빙의인가? 아니야…그르누이는 소설 속의 인물이잖아.’
그렇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것은 확실히 ‘연기’였다.
유명이 그것이 연기임을 확실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기쁨-
그르누이의 감각 밑바닥에, 희미하게 연귀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환희였다. 수천년의 세월을 쌓은 존재의 어린아이같은 기쁨. 연기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자신의 배역을 가지고, 관객 앞에 드디어 선 존재의 참을 수 없는 환희.
그 순수한 기쁨에는 어떤 치트키도 없었다. 함께 몸을 공유하고 있는 유명은 연귀가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연기라면, 이것이 궁극의 연기···’
단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연기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객석의 관객들은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이미 관객이 아니라 이 이야기 속의 공기가 된 것인 양.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을 멱살잡아 끌고 가는, 폭력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무대였으니까.
유명의 정신이 와들와들 떨렸다.
두려움, 시기, 질투, 경외.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섞일 때도 굴종하지 않고 ‘나도 언젠가는 이런 연기를 하겠다!’고 이를 악물 수 있었던 건,
그에게도…남다른 15년의 인고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
번쩍-
객석에 불이 켜졌다.
무대 인사도 없었다.공연이 끝나고도 박수를 칠 수 없을만큼 관객들이 진이 빠져있었기 때문.
“어? 끄…끝났나?”
한 명이 겨우 입밖으로 말을 꺼내고서야, 얼음같은 객석의 침묵이 땡- 하고 깨어졌다.
“저…저 배우 누구야!”
“연출 불러와!”
심사위원과 타 극단 관계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무대 뒤를 찾았을 땐, 역시 넋이 빠져 있는 극단 관계자들 뿐이었다.
“아…저희도 잘…낮에 사고가 나서 급조된 배운데···공연 끝나자마자 사라졌어요.”
“뭐? 그게 말이 돼요? 소개한 사람은 누구에요?”
“그…조명 기사님이···”
조명기사라는 사람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낮에 견학온 사람인데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길래 리허설 참관을 도와줬을 뿐이라는 답이었다. 초조해진 관계자들은 녹화된 영상을 찾았다.
“뭐? 녹화를 안 했다고?”
“유력한 팀들 말고는 한번만 촬영하면 된다고 해서요. 낮 공연 테이프라도 드릴까요?”
“필요없어! 아니 무슨 일을 이따위로해!”
“지시받은대로 한 건데···”
연극협회가 뒤집어졌다.
관객이 100명 남짓밖에 들지 않은, 지방 극단의 단 1회 공연이었다. 심지어 명단에 이름이 없는 대역배우가 연기했고, 지금은 종적을 찾을 수조차 없다.
그 정도 연기력이면 기성배우이리라 추측했지만, 분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본 사람들 숫자가 극히 적었고, 그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배우였다고 했다.
원래라면 없던 일로 치고 끝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직접 보았던 심사위원들이 격렬히 반대하고 있었고,
“그 공연을 무효 처리한다면 저는 심사위원직을 보이콧하겠습니다.”
“저도입니다. 후대에 ‘그 연기를 못알아본’ 눈뜬 봉사로 기록되고 싶지는 않네요.”
연극 협회 게시판에는 그 공연의 후기가 속속 올라오면서 재상연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다.
후기: 나는 그 날의 배덕감을 잊을 수가 없다
└Re: 극단 해운대의 재상연 요청합니다.
└Re: 제발 부탁드립니다. 표 샀다가 별로라는 평이라 안갔는데, 후기들 보고 미칠 것 같아요.
└Re;Re: 사 놓고 안갔다고요? 제가 다 안타깝네요. 제 인생작이었습니다.
└Re: 천상의 연기였습니다. 재상연하면 전회차 관람하겠습니다.
└Re;Re: 주연배우가 대역이었고, 지금은 행적이 묘연하다던데 사실인가요?
결국 그 해 전국연극제에 대상은 공석으로 처리되었다.
는 관객인기상에 작게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최우수연기상에 이르러, 사회자가 이례적인 발표를 했다.
“최우수 연기상, 천상연-”
천상연이라는 이름의 배우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를 말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 단상에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단 한 번의 연기로 전국연극제에 거대한 돌풍을 가져온 배우가 있습니다. 연극팬들은 그 정체불명의 배우를 천상연天上演이라고 부릅니다. 천상의 연기자라는 뜻이죠.
현재 행적이 묘연하지만, 언젠가 한국 연극계에 다시 등장할 이 배우를 기다리며, 제 19회 전극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은 미지의 배우, 천상연에게 수여합니다.”
그렇게 천상연이라는 이름의 전설이 쓰여졌다.
그 전설은 연극계를 들끓어오르게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