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17
오늘의 촬영은 아직 한 장면이 남아 있었다.
데카르도의 기억이 깨어나는 장면.
[스튜디오 바로 이동합니다. 카이 씨 스탠바이 시키고, 데렉은 수고하셨어요.] [나도 따라갈겁니다. 인사는 나중에.]이제는 촬영장의 고정 멤버가 된 데렉이 제니브에게 눈을 찡긋하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한 쪽에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피비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구 응원했어? 빨리 불어.] [둘 다요.] [뭐? 내가 아니고?] [아, 둘 다 멋있는데 어떡해!!]엉겹결에 데렉에게도 멋있다는 고백을 하게 된 피비의 얼굴이 빨게졌고, 데렉이 뿌듯하게 웃었다.
[한 번에 끝내고 칼퇴합시다! 스탠바이!] [카메라 ok!] [조명 ok!] [오디오 ok!]각 팀에서 연이어 오케이 사인이 들려오고, 유명은 지하실에 몸을 웅크리고 모로 누웠다.
감금 신이다.
[아까처럼만 가 주세요. 레디- 액션!]저택의 지하.
이런 공간이 있는지도 몰랐던 곳에, 데카르도가 갇혀 있었다.
잊고싶은 과거를 연상하게 하는 축축한 공간. 그가 머리를 싸쥐고 몸부림을 친다.
-입양을 가면 신사 분이 계실 거야.
-데카르도는 행운아로구나.
-그 분의 말을 하늘같이 믿고 따라야 한단다.
-‘또’ 버려지고 싶진 않지?
-여기를 집중해서 바라보렴, 데카르도.
-역시 똑똑한 아이네요.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점멸하는 가운데, 데카르도는 두통에 몸부림쳤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통증에 눈물과 침까지 줄줄 흘리지만, 아버지는 와 주지 않는다.
다시는 전화해 주지도 않겠지. 그는 이제 카메라로 자신을 감시하지 않으니까.
잘된 일일까, 잘못된 일일까.
[으윽…머리…머리가…] [흐으…하아…] [아…아버지, 잘못했어요…]지하실을 채우는 신음 소리 사이로, 덜컹-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온 사람은…
[릴?] [쉿- 조용히 따라와요.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요.]딱히 나눈 정이랄 것도 없는, 의붓동생이었다.
314 외전14.두 배로 하죠
마리오 브레이가 CRD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미싱차일드의 PD 제니브 스콧입니다!] [마리오 브레이입니다.]마르고 안경을 쓴 표정없는 남자는, 딱딱하고 생기없는 인상이었다. 제니브는 그를 데리고 편집실로 향하며 말을 붙였다.
[비현실적이고 웅장한 하늘들이 다양한 느낌으로 배경에 깔렸으면 해서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네?] [어차피 부수적인 걸텐데, 뭘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시려구요.]아마 그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CRD로 출근하게 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제니브가 그런 그를 살살 달랬다.
[날씨가 굉장한 비중을 차지해요. 아마 내용을 보시면 무슨 얘긴지 아실 거예요.] [모르겠으면요?] [네?] [모르겠으면 돌아가도 됩니까?]제니브는 더 대답을 하지 않고, 앞장 서서 걸었다.
조금 골치가 아팠다. 한 가지에 미친 사람들은 본인이 마음에 드는 일은 과한 열정을 쏟으면서도, 아닐 때는 대충 발로 만든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니까. 영상을 보고 마음이 바뀌는 것을 바래보는 수밖에 없었다.
제니브는 전화를 걸었다.
[조연출. 파일 가지고 시네마로 와.] [시네마요? 저 편집실에서 대기타는 중인데.] [예정이 바뀌었어. 지금 바로 튀어와.] [넵.]그녀는 가던 방향을 바꾸어 시네마로 향했다. CRD 본사 안에 있는 미니시네마는, 신작의 완성본을 내부 시사할 때 쓰이는 공간으로 평소에는 거의 비어 있었다.
[편집실로 안 갑니까?] [여기서 볼 거예요.] [번거롭게…] [보시고도 번거롭다는 생각이 드시면 가셔도 됩니다.]그녀에게도 번거로운 일이 맞았다.
시청률에 최적화된 트렌디하고 스피디한 전개를 모토로 하고 있던 그녀에게, 이런 번거로운 수고는 확실히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아까웠다.
자칫 이 정도의 시나리오와 연기가 연출력이 부족해서 명작이 되지 못했다는 평을 받을까 초조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리오 브레이를 일부러 데려온 것이지만, 의욕없이 일할 거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녀의 단언에, 마리오는 첫 열 중앙의 좌석에 심드렁하게 앉았다. 그 때 조연출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그거 돌리고 시네마 2시간 사용 리저브해줘.]오늘 마리오에게 보여줄 에피는 10화와 11화였다. 어제 막 가편집이 끝난 따끈따끈한 회차이다.
촬영은 이제 막 12화에 접어들었고, 제니브는 촬영을 마치는대로 편집실에 와서 컷을 이어붙이는 작업을 매일같이 하고 있었다.
쉴 시간이 거의 없는데도 컷들을 연결하다 보면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자신이 만들어 온 작업물 중 가장 걸작이 될 것을 예감할 수 있었으니까.
지잉-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10화.
[고마워요, 릴.]데카르도가 양부를 만나러 간 것을 알고, 릴에게 그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셀리였다.
데카르도가 다 갈라진 목소리로 묻는다.
[어째서 날 도와줬지?] [감금은 옳지 못한 거니까요.]옳고 그름.
양부에게 자신이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선 ‘그르지 않다’라고 판단했던 릴은, 데카르도의 감금에 대해선, 아버지가 그르다고 판단하고 그를 탈출시켰다.
그가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여기서도 또 한 번 부각된다.
그리고 데카르도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너도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뭐가 이상한지 들어보고요.]셀리가 끼어들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스무 명에 달하는 양자들의 리스트. 그들 모두가 각 분야에서 천재적인 학자들이라는 것. 데카르도의 방에 설치되어 있던 몰래카메라.
하지만 릴이 투명한 눈으로 표정없이 반박한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아버지가 입양을 하신 건 선한 일입니다. 그게 스무 명이라면 스무 배나 대단한 거구요. 똑똑한 아이를 골라서 입양했다고 해도 그 사실이 달라지진 않죠. 거기에 나쁜 의도가 있을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가정’ 아닌가요?] [하지만-] [그리고 몰카는 확실히 나쁜 짓이죠. 그렇지만 형의 상태를 관찰하려 했다는 것 때문에, 아버지가 수상하다는 결론을 내는 건 비약인 것 같은데요.]셀리가 끙-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데카르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아버지도 그렇게 얘기하셨고, 나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그는 살짝 주저하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쓰러져 갇혀 있는 동안, 잊고 있던 기억의 편린이 떠올랐어.] [어떤 기억이죠?] [릴, 너도 입양 전 고아원에 있었지?] [네. 끔찍한 곳이었죠.] [혹시, 그 때 이전의 기억이 있어? 어떻게 고아원에 오게 됐는지.] [아니요. 하지만 어릴 때고, 좋은 기억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묻어버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랬어. 너처럼 생각했고.]릴이 눈썹을 살짝 치켜뜬다.
자신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신체 능력이 발군이었다. 따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일반인은 불가능한 동작들을 아주 쉽게 해냈다.
그 연유에…고아원에 가기 전의 과거가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기억나지 않는 걸 굳이 기억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데카르도도 그랬다고?
쏴아아-
창 밖에는 비바람이 점점 거세게 몰아친다.
잠기지 않았던 창문이, 바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콰당- 소리를 내며 열린다.
커튼이 거세게 펄럭이고 빗방울이 창틀을 적셨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뭔가 세뇌를 당한 것 같아. 입양이 되고 나서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데카르도의 말에, 셀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고아원에 오기까지의 일은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후의 일은 너무 선명해. 내 기억력은 좋은 편이지. 그 좋은 기억력으로 특정시점 이전의 일은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이상하지 않아?] [그것만으론…] [그리고 억지로 기억해내려고 하면, 머리를 칼로 쑤시는 것 같이 아프기 시작해. 그건 예전에도 그랬지만…아까는 최악이었어. 고통스러울 때면 늘 먹던 약도 먹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생각이 더욱 깊이 파고들었고, 과거의 목소리들이 환청처럼 마구 뒤엉켜서 들려왔어. 그 중에 한 목소리…]릴의 눈빛이, 찌를듯이 날카로워진다.
데카르도가 두려움에 찬 얼굴로, 속삭였다.
[여기를 집중해서 바라보렴, 데카르도.] […!] [아버지는 아니야.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힘이 실린 목소리였어. 나는 입양되기 전부터 뭔가…뭔가를 당한 거야.]그 때, 화면을 보던 마리오 브레이의 눈빛도 예리하게 각이 살았다.
스윽- 스윽-
그는 오른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팔걸이를 초조하게 문지르고 있었다.
*
증거는 없지만 증인은 있는 상황.
릴은 데카르도의 말을 진실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세뇌를 당한 것일까? 하지만 자신은 우울증도 없고, 데카르도가 말했던 머리를 찌르는 고통도 없다. 데카르도가 예외일까, 자신이 예외일까.
[다른 검증이 필요해요.] [좋은 생각이 있어?] [마지막으로 입양된 아이를 찾아보죠. 형의 얘기대로 우리 모두가 세뇌를 당했다면, 가장 최근에 입양된 아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자료에 나와있는 마지막으로 입양된 아이는 아직 16세였다. 7년 전, 8세의 나이에 입양된 아이로, 역시 천재인 것인지 이미 대학생이다.
으읍-
행동하기로 결심한 릴은 망설임이 없다. 그는 신체 능력을 활용해 아이를 납치했다.
셀리는 릴의 태세 전환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릴에게는 이유가 있다.
[진짜 아이들을 데려다 세뇌를 시킨 거라면, 그건 범죄입니다. 여기 대적하기 위해선 행동강령을 바꿔야 해요. 전시 상황에선 살인이 용납되는 것처럼요.]데려온 아이는 그들을 거부하면서, 양부를 미친듯이 찾는다. 그러더니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데카르도와 같은 증상.
아이 역시 고아원 이전은 기억하지 못 했다. 그 아이의 출신 고아원을 조사해 보니, 시설에 온 것은 6세 때. 입양되기 까지 2년간의 간극이 있었다.
[나도 고아원에서 2년을 보냈는데.] [저도요.] [이건…뭔가 이상한데?]그들은 다른 양자들의 기록도 찾기 시작한다.
공통점이 있었다.
스무 명의 아이들은 모두 네 곳의 고아원에서 입양되었다. 겨우 네 곳에 그렇게 많은 영재들이 있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 이상한 것은 모두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폐쇄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실제로 두 곳은 폐쇄 명령을 받았네요. 왜 이렇게 모두 상태가 안 좋을까요.] [시설이 낙후된 곳일수록 아이들이 더 불행할 테니까, 낙후된 곳을 우선했을 수도 있고-] […더 조사해 보죠.]데카르도의 해킹 실력이 빛을 발했다.
입양 주관기관과 고아원의 자료를 터는 것을 넘어, 이제 입양된 아이들의 의료 기록을 털기 시작한다.
[모두…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군요.] [증상도 거의 일치하네. 우울증과 비주기적인 두통 발작.] [하지만 저는 괜찮은데요.] [릴, 네가 예외인 거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기록이 삭제 처리되어 있는 이 한 명은 누굴까.]그 때 셀리가 다른 자료를 가지고 나타난다.
[이건 내가 조사한 거예요.]그녀가 펼쳐놓는 자료는, 나머지 입양아들의 연구 실적과, 그것이 양부의 회사와 얽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의 내용.
그 가장 아랫장에는, 데카르도의 연구의 골자와 진척도가 분석되어 있었다.
바르르-
데카르도의 몸이 떨린다.
허물어지는 그의 몸을 셀리가 안았다.
그를 꼬옥 끌어안아주며 셀리가 속삭여 물었다.
[너무 힘들면…이쯤에서 멈출까? 그냥 도망가서 우리끼리 살면 어때요. 나는 모아둔 돈도 좀 있어.]비구름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
달콤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유혹. 하지만.
[지금까지 진척된 연구 결과를 아버지가 알고 있어요. 마지막 한 단계. 그걸 누군가가 풀어내면…] [당신이 아니면 풀 수 없을 거예요. 그도 그걸 아니까 당신에게 집착하는 거고.] [또다른 천재가 나타나면? 그걸 풀만한 아이를 또 키워낸다면요? 내 연구결과가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지도 몰라요.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고통을 딛고 그는 앞을 쳐다본다.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음에도, 강렬한 시선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셀리는 찌릿한 감각에 시달렸다.
그리고 셀리가 돌아간 후,
릴이 제기하는 의문.
[그런데 형. 누나가 어떻게 저 정도의 조사를 해 올 수 있었을까요.] […?] [아무리 형이 명단을 찾아냈다 해도, 그것만으로 일개 기자가 저런 사실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어지럽다.
데카르도는, 빙글빙글 도는 정신이 다시 거꾸로 뒤집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브레이크 타임즈에 전화를 건다.
[네. 브레이크 타임즈입니다. 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셨나요?] [셀리 티셔 기자님 연결 부탁드립니다. 제보자입니다.] [셀리…티셔요? 저희 회사에 그런 이름의 기자는 없습니다만. 혹시 어떤 제보를-]쿵-
데카르도의 손에서 떨어진 전화기가,
공중에 매달려 정처없이 흔들렸다.
*
불을 켜면서 제니브는 마리오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는 그 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어떠셨어요?] [10화에서 비바람 씬…역동적인 느낌이 부족하군요. 인서트로 강풍이 부는 바깥 장면 한 컷을 조금 비현실적일 정도로 과장해서 넣어도 좋을 듯 하고…] [좋은 생각이군요. 그리고요?] [11화의 빛이 새어나오는 배경 영상도 좀 작위적이에요. 좀 더 자연스러우면서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려면 빛을 좀 더 푸른 톤으로 바꾸고…내가 갖고 있는 소스 중에 쓸만한 게…]그는 제니브와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잊은 것처럼, 혼자서 뭔가를 계산하며 마구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 분야에 미친 사람들의 특징.
꽂히면, 사람이 달라진다.
마리오 브레이는, 어릴 때부터 대자연의 장엄함을 표현하는 CG에 미쳐 있었다. 다만, 그런 ‘배경’에 충분히 예산을 들이려는 제작자는 흔하지 않았다. 단발성의 일거리에만 의존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날씨 채널에서 매일 매일의 일거리를 기계적으로 쳐 내고 있었다.
심드렁해보이던 그가 눈을 빛내며 묻는다.
[예산은요?] [한 화에 두세 번 정도 하늘 영상이 들어가는 걸 기준으로, 마음껏 작업하시려면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죠?]마리오가 종이를 꺼내 머뭇거리지 않고 쭉쭉 계산하더니, 제니브에게 종이를 건네준다.
그녀가 자신있게 웃었다.
[두 배로 하죠.] [네?] [필요하면 추가 예산도 요청하셔도 좋으니까, 후회없을만큼 실력을 발휘해 주세요.]이제 마리오의 표정은, 원하던 값비싼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