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1
“그래서, 같이 워크샵한 건 도움이 되었나요?”
짓궂은 유명의 놀림에 유리의 얼굴 전체가 새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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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같이 워크샵한 건 도움이 되었나요?”
“…”
새빨개진 얼굴.
첫 날의 발언을 그대로 상기시키는 유명의 놀림에 유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뻐끔뻐끔.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주먹을 세차게 모아 쥐었다.
‘내가 한 말은 내가 책임져야 해.’
신중하지 못했던 발언은 솔직한 사과로 감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무척요. 첫날 과제도 매우 인상 깊었고, 특히 오늘 연극은…보고 많이…배웠어요.”
더듬더듬 솔직한 속내를 고백하는 유리의 모습에 유명은 웃음이 나왔다.
사실 첫 날 유리의 날선 반응은 한참 정신연령이 높은 그에게는 별 타격이 되지 못했다. 그저 놀려본 것이었는데,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는 어린 친구의 모습이 훈훈했다.
‘이거, 놀리는 데 중독될 것 같은데···’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유명이 선선하게 웃었다.
“말 놓을까요?”
“…네?”
“우리 동갑이잖아. 친구로 지내자.”
유리는 당황스러웠다.
내내 사과할 타이밍을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유명은 선뜻 손을 내밀었다.
“나…싫지 않아?”
“아니, 좋아하는데.”
“응??”
유리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의미일까 저건···
“낙원일기, 희수 팬이었거든.”
“아아···”
잠시 두근거리던 유리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왜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한 마디가 덧대어졌다.
“연기를 참 잘하더라고. 나이가 어린데도 자세는 프로구나 싶어서 응원했었어.”
유리의 심장이 다시 거세게 뛰었다.
*
‘그 때 윤한성 배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오, 그걸 알려줬컁.}
‘미호도 알고 있었어?’
{옹.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것 같아서 냅뒀당.}
‘그랬구나. 항상 다른 배우들에게 안 눌릴려고 애쓰다보니, 최대한 기를 펼치고 있는 습관이 들었었나봐.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잘 보인다, 라는 말에 맥이 탁 풀리더라고.’
{예리한 녀석이컁…워크샵은 재밌었겠넹?}
‘응. 오디우스 분위기도 좋고 괜찮은 배우들도 많아서, 가을 공연에 한 번 참가해볼까 생각중이야.’
{바로 프로로 가려던 거 아니였냥?}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어졌어. 아직 해결못한 문제도 남아있고.’
유명이 앞좌석에 눈을 두었다. 운전석에 아버지가, 조수석에 엄마가 보인다.
워크샵이 끝나고 남은 방학, 2박 3일간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대천 해수욕장. 동생 지연은 청주에서 대천으로 바로 오겠다고 했다. 4학년 졸업반이라 방학인데도 집에 오지 못하고, 이번 휴가도 겨우 시간을 뺐다고 한다.
이번 가족여행에서 유명은 가족들에게 할 말이 있었다.
-배우가 되겠습니다.
지난 생에서 유명의 그 선포는, 평온하던 집안에 떨어진 폭탄과 같았다.
부모님은 선량하고 온건한 분들이었다. 자식의 꿈을 응원해주고 싶었겠지만, 어릴 때부터 존재감없던 아들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을 찬성할 수 없었으리라.
아버지는 네가 불행할 것이 뻔한 길을 가는 것을 두고볼 수 없다며 소리를 질렀다.
동생은 오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며 소매를 붙들었다.
어머니는 살벌한 분위기에 매일 자식의 눈치만 보았다.
그리고 어렸던 유명은,
자식이 처음 하고싶다는 일에 응원은 못할지언정 그렇게 반대를 하시냐고, 한스럽게 소리치고 집을 나와버렸다. 그들의 걱정이 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그리고 가족들의 사이는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했다. 1년에 한두 번 명절에만 어색하게 밥을 먹고 헤어질 뿐이었다.
“유명아. 뒷자리 안 불편하니? 사이다 마실래?”
“더우면 뒷좌석 에어컨 더 세게 틀어.”
다정한 어머니의 목소리와, 무뚝뚝한 듯 자상한 아버지의 목소리. 다시 돌아온 생에서 유명은 자신이 얼마나 큰 것을 잃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유명이 배우의 길을 선포하기 전만 해도, 여느 집안들 이상으로 따스했던 가정.
자신만 잃은 것이 아니다. 가족들 모두에게 그 가정을 잃게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차분히 설득하리라. 반대하신다 해도 차근차근 결과로 증명하리라.
유명은 곱씹어 다짐했다.
“와~ 바다다.”
날씨가 유난히도 맑았다.
콘도에 차를 대고 걸어나오자 새파란 하늘과 어울린 푸른 물이 가슴을 시원하게 틔워 준다. 시민탑광장에서는 버스킹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람들이 버글버글하다.
유명의 가족들은 따가운 햇살을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맞은편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지연아. 광장 건너편 커피숍 창가자리에 앉아있어.”
엄마가 전화통화를 하고, 유명은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바다좋으당!}
미호가 신이 났는지 귓가에서 갸르릉거린다. 유명도 눈이 시원해지는 푸른빛의 색채를 만끽했다. 회귀 이전에 바다를 마지막으로 본 게 몇 년 전이더라? 5년?
그런데, 갑자기 미호가 다른 것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와…저기 걸어오는 저 인간 생기가….}
‘응?’
{뭐하는 인간이징? 저렇게 눈에 띄는 생기는 드문뎅. 배우는 아닌 거 같은데, 지금부터라도 연기하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의 존재감이당.}
미호가 주목하던 사람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커피숍의 문을 연다.
어?
*
“엄마! 아빠!”
“지연아, 여기! 오느라 더웠지. 에어컨 가까이 앉으렴.”
“응. 엄마아빠도 고생했어. 그런데 이쪽은…누구?”
지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오라는 오빠새끼는 안오고 웬 훤칠한 남자가 엄마아빠와 같이 앉아있다. 스타일 좋은데…누구지? 엄마아빠가 삐끼한테라도 걸렸나?
“무슨 장난을 그렇게 패륜적으로 하냐.”
“어? 시…신유명? 헐?”
지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오빠가 2월에 제대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하지만 교원대 4학년을 이수중인 지연은 지난 학기 내내 너무너무 바빴다. 어버이날에조차 저 대신 꽃바구니를 집에 보냈을 정도로.
그래서 제대한 오빠는 처음본다. 군대에서 인간개조라도 했나, 도대체 저 인간은 누굴까. 목소리는 신유명이 맞다. 얼굴도 자세히 보니…맞는 거 같은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또 오빠 이름부르지!”
엄마가 지연의 등을 찰싹 때렸다.
신유명, 신지연.
둘은 이란성 쌍둥이다. 닮은 구석은 없지만 한날 한시에 태어나 함께 자랐다.
보수적인 편인 엄마아빠는 지연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강요했지만, 둘만 있을 때의 호칭은 이름 아니면 오빠새끼다.
유명은 그 정겨운 장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사이가 서먹해지고 나서부터, 지연은 더 이상 5분 늦게 태어난 것을 억울해하지 않고, 순순히 오빠라고 불렀다. 그렇게라도 사이를 회복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리라.
이번 생에는 그런 마음고생, 시키지 않을 것이다. 평생 오빠새끼로 불려도 좋았다.
“아니, 무슨…인생에 중차대한 격변이라도 있었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달라져?”
지연은 엄마의 등짝스매시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꿋꿋이 의문을 제기했다.
오빠란 생물은 아무리 잘생겼다해도 아메바로 보이기 마련이지만, 급변한 오빠는 타인처럼 생소해서,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뽀얀 피부, 하나하나 공들여 고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스타일. 느긋하게 띄우는 미소에 옆테이블 여대생들이 힐끔힐끔 시선을 돌리는 광경을 보라.
와, 이건 진짜 말도 안되는···
“엄마, 오빠만 용돈 엄청 줬어? 다 새 옷 같은데?”
감탄은 얼마가지 않았고, 지연의 눈에 보다 중요한 문제가 포착되었다.
*
{쌍둥이 동생?}
‘응.’
{아…이제야 조금 알겠넹. 왜 이렇게 생기가 낮게 태어났나 했는뎅.}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쌍태라서 단태의 두 배로 부여되었던 생기가, 어찌 된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한 쪽으로 쏠렸나보넹. 네 동생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엄청 관심받았지 않앙?}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