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2
지연이 그다지 나서거나 웃기는 성격은 아니었음에도 교실에서도,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지연의 옆에 모여들곤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자신은 신유명보다 신지연 쌍둥이오빠로 더 많이 지칭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이름모를 동급생에게 여러 번 불려나갔다. ‘안닮은 거 같은데 진짜 쌍둥인가.’라는 생각이 얼굴에 쓰여진 채로, 그들은 편지를 내밀었다. 동생에게 전해달라며.
예쁜 얼굴인가? 글쎄다.
친동생이라 객관적 평가는 힘들지만, 설수연이나 선유리같은 눈에 띄는 미인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늘 존재감이 넘치고 사랑받았던 부러운 녀석.
그 이유가 거기 있었구나.
{그래도 동생이 있어서, 살아남은 거겠당.}
‘그건 또 무슨···’
{어릴 때 붙어서 자랐겠징? 같은 종류의 생기가 옆에 있는 게 네 부족한 생기를 도와줬을 거라는 얘기당. 떨어져 산 이후에는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가지만.}
아···
엄마가 그랬다.
아주 어릴 때, 지연이와 조금이라도 떼 놓으면 자신이 그렇게 울었다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지연의 옆에서 밀려나면 곧 죽을 것처럼 울어댔는데, 어린 지연은 그걸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제 오빠의 옆으로 와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고 했다. 기특하게도.
유명은 수영복을 입고 물에 흠뻑 젖어 가족에게로 돌아오는 지연을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웬수같은 남매사이라고 하지만, 15년을 더 살고 돌아온 유명에게 여동생은 충분히 귀여운 존재였다.
“그 느끼한 시선은 뭐냐.”
“오랜만에 보니 좀 예쁜 거 같기도 하고.”
“우웩. 군대가면 그렇게 가족이 그립다더니 아직 치료 안됐어? 군대병은 제대 한 달이면 치료된다던데.”
“후후.”
평화롭다.
오늘 저녁, 분위기가 어떻게 돌변할지는 모르지만, 자신은 이 평화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유명은 오들오들 떠는 지연에게 수건을 둘러주었다.
*
“뭘 한다고?”
“배우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헐, 오빠 맞아? 역시 에일리언이 우리 오빠 몸에···”
“유명아 그건 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기에 유명은 차분히 가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사실 지난 학기에 제가 공연을 두 번 했습니다. 여름방학 때 연기 워크샵도 들었구요. 헛바람 든 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제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현역배우분도 재능이 있다고 하셨구요.”
이번 생에는 설득할 근거가 있다.
“현역배우? 누구?”
지연이 끼어들었다. 나이스 타이밍이다.
“윤한성이라고···”
“윤한성? 내가 아는 그 윤한성? 주연배우?”
“응. 워크샵에 강사로 오셨어.”
“그 사람이 오빠보고 재능있다고 했다고?”
“어. 개인 연락처도 주셨는데···”
“대박…역시 에일리언이···”
중얼거리는 지연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유명이 말을 이었다.
“취업하고 직장생활하는 것보다 불안해 보이는 일이라 걱정하실 마음은 압니다. 하지만 이 길을 가야만 제가 행복할 것 같아요.”
아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아버지는 생각에 잠겼다.
지난 학기 내내 12시가 넘어서야 귀가하고, 다음날 또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눈빛이 단단히 잡혀있기에, 뭔가 심취한 것이 있겠지 하고 내버려두었다.
여름방학에도 예전과는 달리 매일 아침에 조깅을 하고, 점심이 되면 칼같이 집을 나서서 밤에 땀범벅으로 집에 들어온다고 했다.
-여보, 유명이가 뭔가 많이 바뀐 거 같은데, 괜찮을까?
-아이들은 자라면서 한 번씩 크게 바뀔 때가 있는 법이지. 믿고 지켜보자.
무엇보다도, 오며가며 마주치는 아들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생기넘쳤다.
본인이 그토록 원하는 일이라면 반대하고 싶진 않지만…어릴 때부터 그렇게 눈에 띄지 않던 아이가 배우라니.
유명의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아들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았다.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눈빛이었다.
“올 가을에 학교에서 공연을 하나 할 겁니다. 보러와 주세요. 보시고도 반대하시면 제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엄마아빠는 연극 같은 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다만···”
유명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셔도 아시게 해보겠습니다.”
────────────────────────────────────
────────────────────────────────────
왔군요
2학기가 시작되었다.
“유명 선배!”
“어, 안녕. 네가 현욱이었지?”
“네! 이 수업 1학년 때 안들으셨나 보네요.”
“어. 수강신청 튕겨서 못들었어.”
수업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경영학과 새내기가 붙임성있게 말을 붙인다. 이제 한 학기 지났으니 새내기는 아닌가.
“그거 이번 학기 시간표에요? 헉, 경영학 과목들이 아닌데…복수전공하세요?”
“아니. 그냥 듣고 싶은 수업들.”
유명은 이번 학기 많은 수업을 연영과 전공과목으로 선택했다.
연기의 길을 본격적으로 간다면, 대학은 졸업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연기에 관련되는 수업을 듣는 게 낫다.
“아참, 상진 형 얘기 들으셨어요?”
“아니?”
“결국 집에서 머리 깎이고 군대갔대요. 아버지가 엄하신데 도망다니면서 버티고 있었거든요. 흐흐. 늦게 가시면 새파란 애들이 고참이라 더 힘들텐데.”
“그러게. 고생하겠네.”
지난 학기, 그렇게 엠티에서 망가지고 나서 상진은 자신을 볼 때마다 시비를 걸었다.
직설적인 신희가 듣다 못해 몇 번 일침을 놓았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점심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유명은 상진이 군대에서 조금이라도 철이 들어서 나오길 기도해주었다.
“선배들 다 없어져서 점심 누구랑 드세요? 저희 팀이랑 같이 드실래요, 1신데.”
여자 동기들은 이번이 마지막 학기다. 이번 학기는 취업 준비로 바빠서 같이 다니기 어렵겠다고 했다. 자꾸 따로 오던 보라의 연락을 모른척했던 이유도 있었으리라.
“고마운데, 점심시간 앞뒤로 다 연영과 수업이라 그쪽 건물에서 먹으려고.”
“아, 아쉽네요. 담에 또 인사드릴게요!”
현욱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고, 유명은 연영과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수업은 .
지난 학기, 수업에서 대본을 써 본 후, 직접 대사와 장면을 써 보는 것이 연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신청한 수업이었다.
“여어, 신유명!”
수호 선배가 앞쪽에서 손짓했다. 혜선도 옆에 앉아있다.
그 이름에 유명의 얼굴을 모르는 학생들도 힐끗힐끗 눈을 돌렸다. 지난 학기, 연영과에서 유명의 이름은 꽤나 유명해졌다.
“아예 전과를 하지 그래?”
“후훗. 두 명이 다예요? 유리는 이 수업 안듣나?”
혜선이 끼어들었다.
“유리 가을공연 연출이라서 휴학. 몰랐어?”
“헉, 진짜? 그렇게 됐구나.”
“그거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나중에 얘기해줄게.”
수호가 제 옆자리를 치워주었다. 자연스레 그 옆에 앉으려고 가방을 내려놓던 유명은, 복도 쪽에서 강의실을 기웃거리는 얼굴을 보았다. 낯이 익다.
‘누구지,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인데···’
안경을 쓴 평범한 남학생은, 머뭇머뭇 조교에게 다가가 무슨 얘기를 했다. 조교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는 조심스레 뒷문을 통과해 강의실로 들어왔다.
‘아···!’
드디어 생각이 난 유명이 반갑게 소리쳤다.
“우준호! 준호야!”
*
수업이 끝난 후 공강.
유명은 준호와 함께 Y관 식당을 찾았다.
“이번 학기에 복학했구나.”
“응. 너 진짜…신유명 맞아?”
“하하, 내가 좀 변했지? 너는 군대가기 전이랑 똑같네.”
우준호.
경영학과 오리엔테이션 ㅅ~ㅇ 성씨 조의 일원이다. 2학기가 된 후 오상진을 비롯한 동기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나갔고, 유명은 남은 준호와 주로 같이 다녔다. 소위 아싸(아웃사이더) 모임이었다.
편의상 같이 다닌 것이기는 했지만, 복학 이후까지 거의 3년을 붙어다녔으니 유명에겐 가장 가까운 대학 친구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나눈 사이는 아니라서, 졸업 이후에는 서서히 소식이 끊겼다.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이 어느 중소기업에 취업했다던가…
연영과 수업을 주로 듣다보니 이번 학기에 준호가 복학했을 거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업에서 그를 만날 줄이야.
“그런데 너도 희곡쓰기 들어?”
“어…그냥 청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