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1
아하하하하하-
그 표정이 섬뜩하다.
광소가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꽃을 한 잎 한 잎 따서 버리는 마임을 한다.
함께 꽃잎을 따며 사랑의 결실을 점쳤던 지난 시간을 비웃듯이.
그 눈에 아예 초점이 없다.
부드럽게 이어지던 동작이 중간에 뚝- 정지했다가 다시 리듬없이 파밧 이어진다. 무슨 짓을 할 지 예측이 안 되는 광인狂人처럼.
이것은 알브레히트에 미친 지젤의 연기이자,
팬텀에 미친 화란의 연기이며,
발레에 미친 세련 자신의 연기.
그리고 원망어린 표정으로 알브레히트를 바라보며 뒷걸음질친다.
양 손이 풀어헤친 머리를 뽑을듯이 쥐어 비튼다.
두 팔을 펼치고 허공을 바라보며 달려가던 지젤은, 알브레히트의 품에서의 마지막 리프트(*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들어 올리는 것.)를 끝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죽음.
사랑에 미쳐죽은 지젤의 끝이었다.
“……컷.”
기도한의 컷 사인이 조금 시간을 두고 떨어졌다.
두 달이 넘게 그녀의 연기를 봐왔지만, 이런 몰입감 있는 연기는 처음이다.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난 그녀가 산발이 된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내렸다.
그리고 우와아아- 하는 탄성이 터졌다.
“어떻게 된 거야-”
“더 좋아졌잖아! 다음 동작도 잊고 울 뻔 했네···!”
탄성을 내지르고 눈물을 그렁이는 동료들.
기술적인 부분이야 전성기 때의 그녀에게 미치지 못하겠지만,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적인 부분에서 그녀는 한층 깊어지고, 마음을 터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상실의 고통을 겪어보았기 때문일지도.
그 축하를 한쪽에서 지켜보던 ‘연기스승’ 겸 ‘파트너’ 또한, 그녀의 연기에 숨막히는 감동을 받고 있었다.
‘정말…멋있다.’
아직 현실 연기는 능숙하지는 못한 세련이었지만, ‘발레 연기’는 또 달랐다.
원래 잘하던 ‘발레’에 ‘감정의 깊이’와 ‘연기력’이 더해지니, 놀라운 무대가 나왔다. 지젤이란 인물에 대한 몰입감 높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 날 정도로.
유명은 그의 파트너를 보고 가슴이 시렸다.
저런 것이 ‘재능’일 것이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하는 재능이 더해진, 아름다운 사람.
가진 게 많아도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인, 그리고 그것을 잃었지만 놀라운 용기로 다시 마주보려고 하는 사람.
유명은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다른 연습’을 시작한 것을 알고 있었다.
연습장에 일찍 도착한 날이면, 먼저 와 있는 그녀가 반복하고 있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재활 연습.
그 모습을 모른 척 해주려 나가있다 제 시간에 다시 들어가면, 그녀는 티나지 않게 땀을 닦아내고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씬 118, 2막 오프닝 씬 갑니다. 다들 의상 체인지해주세요.”
하지만 놀라움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젤의 하이라이트, 2막이 남아있다.
사락-
2막의 의상은 로맨틱 튜튜.
흔히 생각하는 나비날개처럼 직선으로 펼쳐진 클래식 튜튜(*발레 스커트)가 아닌, 엎어진 튤립 모양으로 사락거리는 로맨틱 튜튜.
그 의상을 입고 공중에 떠서 돌아다니듯이 직선으로 움직이는 발레리나의 움직임이 유령을 표현한다.
밤을 상징하는 짙푸른 조명 아래,
듬성한 나무들 사이로 스스스- 미끄러지듯이 하얀 형상들이 돌아다닌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아가씨들의 원혼, ‘윌리’다.
윌리들의 군무 사이로 알브레히트가 들어온다. 자신 때문에 죽은 지젤의 무덤에 속죄의 꽃을 두려, 밤의 산 속으로 들어온 알브레히트.
윌리들이 그에게 저주를 건다. 밤새 춤을 추다 지쳐 죽게 만드는 저주를.
그리고 저주에 걸린 춤을 추는 알브레히트의 앞에 지젤이 나타난다.
머리에 하얀 면사포를 쓰고, 푸르게 빛을 내며.
스윽-
도도도 하는 소리가 아닌, 바닥이 끌리는 소리가 난다. 세련은 푸앵트로 바닥을 밀어내듯이 흘러가는 윌리의 스텝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손 끝이 버드가지처럼 떨어진다.
여타 클래식 발레와는 다른 지젤 2막의 고유한 표현 방식. 폴드브라(*발레의 팔동작)에서 손 끝이 하늘을 향하지 않고 항상 아래로 떨어지게. 그리고 동작이 끝나는 부분에서도 스틸(*멈춤)을 취하지 않고, 물흐르듯이 연결되는 동작.
그 부드럽게 처지는 동작들이 표현하는,
지젤의 슬픔.
하아-
영혼이다.
둥둥 떠다니는 그녀는 공기의 흐름에 휘청일 것 같다.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불어온다.
생기가 안으로 안으로 갈무리되는 그녀의 연기에 유명은 어깨를 감싸안았다.
‘저 정도까지···’
유명에게와는 달리, 기감독은 세련에게 지젤 2막 연기에 대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화란이 프리마돈나(*발레의 주역을 맡는 여자무용수)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인간. 팬텀만큼 스산한 연기가 필수적이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라울만큼 해내어왔다.
유명만큼은 아니라 해도, 그녀는 2막의 지젤에게서 생기를 상당히 빼앗았다.
그 결과, 카메라가 비추는 그녀는 주변의 어떤 윌리보다도 아련하고 낭창했다.
지젤이 알브레히트를 발견한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임에도, 죽어서조차 사랑하는 사람.
그 남자를 살리기 위해, 지젤은 알브레히트와 함께 춤을 춘다.
지쳐가는 그를 격려해가며, 동이 틀 때까지.
드디어 새벽이 밝아오고,
지젤은 끝까지 사람이 아닌 듯이 나풀나풀, 무덤 속으로 사라져간다.
후회로 몸부림치는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무덤 앞에 꽃을 흩트려 바치는 것으로 지젤의 엔딩이 끝나고···
“컷-트! 세련씨 최고야!”
기감독이 높은 목소리로 그녀를 격찬했다.
짝짝짝짝-
유명 또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박수로, 파트너에게 존경과 감동을 표했다.
*
“와…걔가 계속 발레했으면 뭐가 됐어도 됐을 거 같지 않냐?”
“진짜 아깝다. 역시 클래스는 영원한가봐. 걔 은퇴했을 때 예술감독님 사는 낙이 하나 없어졌다고 한숨쉬셨었는데.”
“그러니까. 연기도 잘하던데, 이제 영화계 진출했으니 여배우로 대성하는 거 아니야?”
세련의 연기 이후에도, 합성을 위한 대역의 발레로 다시 한 번.
군무를 걸고 찍는 타이트샷들과, 공연 전 무대 뒤의 모습까지 찍고 나자, 오로라 발레단의 장면은 모두 끝이 났다.
대절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발레리나들이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그리고 도희는 다시 기어올라오는 패배감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자신보다 잘 하는 발레리나는 많았다.
하지만 동갑이 아니면, 동기가 아니면 직접 비교되지 않았으니까.
혹은 그들보다는 무엇 한 가지라도 낫다는 자기위안이 가능했으니까, 견딜만 했다.
하지만 윤세련만큼은 어찌할 도리없이, 열등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상대’였었’다.
‘였어’서 다행이다…고 생각했었다.
발레를 떠나서 뭐하고 살려나-
도희는 가십을 먹어치우는 사람들처럼 그녀의 근황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저렇게 잘- 살고 있을 줄이야.
여배우라는 타이틀에, 감독이며 스탭들이 우쭈쭈 해주고, 심지어 발레 연기까지 깊이를 더했다.
차라리 별로라고 치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또 보는 눈만은 정확해서 그러지도 못한다.
“도희야, 어디 아파?”
“생각하는 거 안보여? 말 걸지마-”
만만한 영하에게 팩- 쏘아붙이고 나서야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박도희, 너 맨날 영하한테 말을 왜 그 따위로 해? 내가 전부터 두고 봤는데 너 성격 좀 더럽다?”
선배 솔리스트, 한 번 찍으면 작정하고 들들 볶기로 유명한 마녀.
잘못 걸렸다.
*
“성진 형-”
“어? 여기 너네 팀이야?”
“네. 촬영 끝난 후에 인사드리러 가려고 했는데.”
“시작 전에 왔어야지 임마.”
“그러게요…하하.”
혜전당에서의 마지막 촬영. 도와주러 온 조명기사가 하필 성진이었다. 유명은 그와 인사를 반갑게 나누었고, 성진이 농담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