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2
“얼…벌써 혜전당 전기 팍팍 쓰네?”
“어? 그러네요. 그래도 수전당도 아니고 공연도 아니라서 무효입니다!”
“큭큭. 근데 뭘 촬영하길래 핀이 이 방향이야?”
“음…극장에 사는 유령요?”
객석 구석, 실링(*천장), 발코니 군데군데에서 팬텀이 몸을 반쯤 숨기고 극을 관망하는 인서트(*삽입) 컷들이 필요했다.
성진의 도움으로 그 촬영이 순조롭게 끝나고,
“자, 하나만 더 찍고 철수합시다.”
혜전당에서 마지막 씬은 ‘사고’ 장면이었다.
사고.
다른 발레리나가 팬텀의 레슨을 받는 것을 보고 질투와 불안에 눈이 돈 화란은, 무대 뒤에서 발을 헛디딜만한 틈새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문연정, 내 헤어밴드 좀 가져와.”
“네? 그게 어디···”
“저기 무대 뒤 조명도르래 있는 쪽에 봐봐. 아까 거기 둔 거 같아.”
“네 선배님.”
‘프리마’ 발레리나인 자신과 상대의 차이를 확인시켜 주는 한껏 고압적인 목소리.
그녀의 명령에 연정이 종종걸음으로 무대 뒤를 향한다.
도르래 앞, 썩은 판자.
그 위험함을 가리는 것은 흰 종이 한 장이면 족했다.
연정은 도르래 앞 선반에 놓인 헤어밴드를 집으려 그 종이를 밟았고,
와지끈-
발을 딛자마자 썩은 나무판자가 부서졌다.
“아아아아악—”
────────────────────────────────────
────────────────────────────────────
영화가 아니었어
씬 109.
팬텀에게 자신 다음으로 선택받은 발레리나, 연정.
그녀가 화란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속삭인다.
“그 사람…선배님도 알고 있으시죠?”
“저 그 사람의 가면 뒤를 보았는데, 몸서리치게 흉측했어요.”
“발레로서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숨어지내는 것도 수상하고…선배님은 무섭지 않으세요?”
그 속삭임의 저변에서 화란은 보았다.
‘네 다음으로 선택받은 것은 나’라는 우쭐함과, 기회의 단물만을 빼먹고 싶어하는 이기심. 그리고 이를 빌미로 그녀에게 친한 척 비벼오는 습한 의도.
‘외양으로 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너 따위가···’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레슨 때, 그는 가끔 그런 말을 흘렸다.
‘쥬떼의 높이는 도신정이 가장 높았었지.’
‘가장 아름다운 오데트는 서희원이었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란은 격한 질투에 몸부림쳤다.
발레의 신이 온전히 그녀만을 봐주기를 바랐으나, 그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역사가 있었다.
“사귀기로 했어요. 알브레히트역의 수빈씨와요.”
그 말을 꺼낸 것은 투정. 자신도 다른 데 눈을 돌릴 수 있다는 비뚤어진 반항이었다.
그런데 불과 얼마 후에 그녀는 목격하고 말았다. 팬텀이 선택한 새로운 발레리나와의 레슨을.
아악—
그녀는 밖으로 내지를 수 없는 광기어린 비명을 속으로 내뿜었다.
미쳐가는 지젤처럼.
지젤은 심장이 약해서 미쳐 죽고 말았지만, 그녀는 건강하다.
미친 그녀는 죽지 않고, 바틸드(*알브레히트의 약혼녀)를 찌를 것이다.
씬 110.
“문연정, 내 헤어밴드 좀 가져와.”
“네? 그게 어디···”
“저기 무대 뒤 조명도르래 있는 쪽에 봐봐. 아까 거기 둔 거 같아.”
“네 선배님.”
그녀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튜튜를 입은 가녀린 형체가 종종걸음으로 무대 뒤를 향한다. 뭔가 불편한 기색이 보이는 ‘프리마돈나’의 심기를 거스를까 위축된 시녀처럼.
그리고,
“아아아아악—”
쉬웠다.
코르드(*군무)의 일원은 대기하고 있던 발레리나로 쉽게 대체되었다. 그렇게 쉽게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다.
실려나가는 들것에서, 하얀 튜튜에 점점이 뿌려진 붉은 피가 클로즈업되었다.
화란의 비틀린 미소가 마지막 컷으로 잡혔다.
*
“씬 110.5 가겠습니다!”
추가된 씬.
유명이 ‘팬텀의 시선’을 넣자고 주장하긴 했지만, 대본이 바뀐 부분은 별로 없었다. 대사의 미묘한 톤이나 눈빛 등으로 달라진 캐릭터 해석을 보여줬을 뿐.
단 두 가지의 장면만이 추가되었다.
팬텀의 집착이 시작되는 벚꽃 씬의 38.5와 지금 찍고 있는 110.5
화란이 연정을 함정에 빠뜨린 후, 팬텀의 리액션.
그녀는 그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연정을 처리하지만, 저 높이, 천장이 기울어진 틈새에서 흐릿한 형체가 휙-지나간다.
카메라가 멀리 위치한 인영을 관찰하듯이 망원렌즈로 당겨잡은 후,
“와이어 기사님 준비하시고, 큐 주면 바로 내려주세요!”
몸에 와이어를 매단 유명이,
샤아아앗–
풀쩍 뛰어 극장의 다른 그림자 속으로 착지한다.
와이어를 편집으로 제거하고 나면 남을 것은, 극장의 사각을 제 집처럼 헤집고 다니는 팬텀.
그가 착지한 그늘 속을 카메라가 따라 들어간다. 불안하게 흔들리면서.
어둠에 적응된 듯, 점차 포커스가 맞추어지면서 드러나는 팬텀의 가면을 벗은 얼굴.
얼굴 반 쪽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다.
일그러진 얼굴이 슬며시 웃음을 짓는다. 화란의 악행을 응원하기라도 하듯.
마지막으로 잡힌 컷은, 올라간 입꼬리 사이에 드러난 새하얀 이였다.
“커-트! 오케이!”
몇 번의 점프 끝에 완성된 샷.
기도한이 그 샷을 모니터하며 최종 오케이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촬영 종료! 수고하셨습니다!”
“우와아아아—”
6월 말. 의 크랭크업이었다.
촬영만 3개월, 준비기간까지 약 6개월.
출연 비중이 높았던 유명과 세련은 거의 반년 동안 이 영화에만 빠져서 지냈다.
감회가 남다른 주조연 배우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 번 꽈악- 끌어안았다.
“나도나도-”
최촬감이 멋쩍어하는 기감독을 끌고와 그들을 함께 얼싸안았고,
유독 분위기가 좋았던 이번 촬영장의 스텝들 또한 하나 둘씩 합류했다.
이윽고 그들은 커다란 한 뭉치가 되었고, 한 쪽에 설치된 메이킹필름용 카메라가 그들의 모습을 담으며 돌아가고 있었다.
*
“바다보러 안갈래?”
후시녹음(*동시녹음으로 깨끗하게 녹음되지 않은 소리를 입히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따는 작업)이 마무리 된 날, 세련이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세련을 보는 것도 한동안은 이게 마지막. 유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7월 중순의 무더위에도 차 안은 안락했다. 자신과 그림같이 어울리는 새빨간 스포츠카를 끌고 온 세련은 능숙한 운전으로 뒤엉킨 도심을 빠져나갔다.
“와, 누나 운전 잘하네요.”
“면허 딴 건 오래 안 됐어. 자주 나다녀서 빨리 늘었지.”
“나도 면허나 따놓을까···”
운전경력이 10년은 되었으니, 필기만 한 번 훑어보면 금세 붙을 터였다. 가져본 건 촬영장 이동 때문에 꼭 필요해서 산 50만원짜리 폐차 직전의 중고차가 다였지만.
강릉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으로 회를 먹었다.
“회엔 소주지! 이모, 여기 소주 한 병요-”
“운전은요?”
“대리 부르면 돼.”
강릉에서 서울까지 대리라니, 역시 금수저는 클라스가 다르구나···
유명은 조용히 입을 닫고 회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바닷가에서 먹는 신선한 회는 차원이 다르게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발레리나 하이 대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