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0
“수전당은 혜전당의 시그니처라 아예 촬영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 규모인 우천당에서!”
“우와···!”
“저녁엔 공연이 있어서 못 빼주지만, 오후 3시 우천당 스탠바이 전까지는 여러 날에 걸쳐서 촬영해도 된다고 합니다.”
스텝들이 모두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날, 감독과 촬영감독은 짬짬이 우천당 조감도를 놓고 어떤 컷을 잡을지를 의논하기 바빴고,
한 사람만은, 발레슈즈의 리본을 더욱 단단히 매고,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
10일 후,
드디어 혜전당 촬영일이 왔다.
배우들과 스텝들은 미리 혜전당에서 셋업을 하고 있었고,
와르르-
오로라 발레단이 드디어 도착했다. 무려 32명의 발레 무용수들이 차례로 공연장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와, 혜전당 무대에 서본다니 떨린다, 그치?”
“정식 공연도 아닌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래도 멋있잖아. 파리 오페라좌 무대 위에 올라가보는 느낌?”
“파리 오페라좌와 비교라니…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약간 불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척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발레리나다.
그녀는 옆의 동료에게 면박을 주며 들어오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윤…세련?”
“어…도희야.”
“넌 여기서 뭐해?”
“…이 영화 시나리오 내가 썼어.”
“아…작가? 그 쪽으로 전향했니?”
“전향까지는 아니고 어쩌다보니. 출연도 같이 하고 있어.”
그녀의 눈이 살짝 세모꼴로 변하며 자세한 사정을 캐내려 할 때, 뒤따라 들어온 발레리나들도 세련을 발견했다.
“어머, 너 세련이 아니야?”
“세련아–”
선배들이, 동료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세련을 둘러쌌다.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없고.”
“몸은 좀…괜찮아?”
“헤헷…네 뭐…연락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도 이래저래 마음이 좀···”
“얘는, 무슨 소리야! 에고 우리 세련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둥기둥기.
눈꼴이 시다.
윤세련은 옛날부터 그랬다. 집이 부자라는 소문이 정말인지 가진 슈즈며 레오타드며 모두 명품이었고, 얼굴도 예뻐서 남자동료들의 관심이 끊이질 않았다.
성격마저 싹싹해서 선배들도 유난히 예뻐했었다.
박도희도 처음부터 그녀를 시기한 것은 아니었다.
진화예고 윤세련. 콩쿨마다 이름을 날려 하도 유명했으니, 예쁘고 인기있는 친구와 단짝이 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같은 발레단 동기가 되면서 사사건건 비교당하기 전까지는.
-세련이 쥬떼(*도약)할 때 높이와 정확도 봐. 쥬떼의 교본이야.
-너 윤세련 동기지? 걔 남자친구 있어?
-윤세련이 이번에 솔리스트(*발레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무용수)로 승격이래.
예술을 하는 자들의 에고야 말할 것 없다.
그 에고가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는 스스로를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누가 봐도 주역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곁에 바짝 붙어 있고, 심지어 노력가이기까지 해서 내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전멸에 가깝다면?
‘고소하다.’
도희는 세련의 부상 소식을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마음이 이미 놀랍지 않을 정도로 마음 속의 어둠은 커져 있었다.
‘쟤는 왜 또···’
도희는 세련의 발을 흘깃 바라보았다.
재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대가 닳아 없어졌다고 했었는데. 설마 돌아오려는 건 아니겠지···
“와- 세련이가 주연이라고? 그럼 오늘 지젤 역 네가 하니?”
“네. 발이 이래서 푸앵트(*발끝으로 서기)는 못하고 전신을 잡을 때는 대역을 써야 하지만요.”
“그래…그래도 이런 일도 하고, 정말 장하다.”
도희는 속으로 풉- 비웃음을 지었다.
푸앵트를 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클래식 발레람.
지금은 자신도 솔리스트다. 윤세련은 발레를 하지 않더라도 잘 먹고 잘 살겠지만…최소한 발레에서는 내가 이긴다.
처음으로 느끼는 승리감에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의 무대 세팅, 화려한 군무 후 주인공 지젤의 등장.
발레슈즈를 꽈악 조인 세련이 무대 포켓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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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과 노력하는 재능
처음 촬영하는 장면은 1막의 군무.
마을 처녀들이 둥글게 반원을 그리고 서서 발랄하게 춤을 춘다.
파 드 블레(*두 발을 종종거리며 걷는 동작) 후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로 서고 다른 다리를 직각으로 올리는 포즈).
명성높은 오로라 발레단답게 다리의 높이와 모양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다.
촬영장에 모인 스탭들 중 발레 공연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탄성을 토했다.
그리고 ‘플랫 슈즈’를 신은 지젤이 등장했다.
하아-
손을 가슴에 모았다 뒤쪽으로 크게 벌린다.
주변 무용수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춰가며 인사하는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무릎까지 늘어지는 튜튜를 양 끝을 손으로 잡고 발랄한 파드샤(*가뿐히 점프해서 내려오는 동작).
귀엽다-
1막의 지젤은 사랑에 빠진 아가씨.
그 청초하고 발랄한 모습이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훈훈하다.
그리고 등장하는 알브레히트와의 3박자 왈츠.
딴- 딴- 딴-
알브레히트의 손에 몸을 맡기고 허리를 젖힐 때도,
함께 앉아 꽃잎을 하나하나 뜯는 마임을 할 때도,
애정 가득하게 연인을 바라보는 순수한 지젤의 춤.
‘쟤…2년 전에 은퇴한 것 아니야?’
‘푸앵트만 못할 뿐이지, 모션의 각이 다 살아있고, 아라베스크의 각도나 쥬떼의 높이도···!’
함께 무대에 선 오로라 단원들이 세련의 모습을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세련은 발 끝 부분이 뭉툭하게 처리되어 푸앵트를 도와주는 토슈즈를 신고 있지 않다.
지금 신고 있는 것은 연습때나 신는 플랫 슈즈.
푸앵트를 해야 하는 자세들에서, 그녀는 발가락을 바닥에 붙여 지지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저게 무슨 클래식 발레야.’
박도희 등 몇몇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저것이 2년간 쉰 무용수의 춤이 아니라는 것만은 반박할 수 없을 것이었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첫 촬영이 끝나고, 발레리나들이 세련에게 몰려왔다.
대단하다. 연습을 계속 한 거냐. 너무 잘하는데 아깝다 등등의 찬사와 위로를 내밀며.
그 말에 웃음으로 대답하면서도, 세련은 지젤의 몰입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감정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단순히 공연이 아닌 연기.
컷이 끝났어도 텐션을 흘리지 않고 다음 컷을 이을 수 있어야 ‘연기자’라는 것을 그녀는 누군가에게 배웠다.
“씬 115, 컷 3 촬영하겠습니다!”
이것은 ‘촬영’이기에 전 막 공연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 찍고 있는 것은 공연의 하이라이트 부분들.
이 다음 장면에서 지젤은, 미쳐야 한다.
*
“레디- 액션!”
음악이 흐른다. 1막의 마지막곡.
지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알브레히트가 사실 신분을 감춘 귀족이었으며, 같은 귀족 아가씨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약혼자가 참석한 마을의 축제.
알브레히트가 약혼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원래 심장이 약했던 지젤은 미쳐버린다.
1막 라스트의 지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춤을 춘다.
흔히 생각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와는 달리, 광기어린 표정으로 검끝을 잡고 뱅글뱅글 돌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