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1
올해 KBK 드라마 성적은 매우 부진했다. 방송국 경영진과 피디들의 갈등으로 벌어진 파업이 몇개월째 이어졌고, 파업에 동참한 피디들 중 특히 드라마국의 잘나가는 피디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S사가 으로 초대박을 쳤고, 경영진은 눈치보기식으로 내년편성 예정이었던 기대 신작을 연말에 급하게 편성했다.
그리고 당장 맡은 작품이 없는 주일호 PD를 제작감독으로 꽂았는데, 그 급박한 일정이 무리수였다.
“승효 아직 최종계약서에 싸인 안 했을 텐데요?”
“문 실장님, 그러지 마시고···”
좀 깜 되는 배우들은 이미 일정이 대부분 잡혀있다보니, 바로 제작에 들어가야 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는 괜찮은 배우가 별로 없었다. 특히 남주가 문제였다. 드라마 내에서 ‘연기력 탑배우’로 설명되는 인물이 연기력이 떨어진다면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
그 때 굿 엔터 문유석 실장이 백승효 카드를 내밀었다. 예정된 작품이 있었는데 여기 대본이 좋으니 위약금 주고 돌리겠다고.
그런 짓을 하면 안 좋은 소문이 날만도 한데, 아무 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역시 대단한 수완가이다.
문제는 그가 백승효를 데려오면서, ‘추가 TO’를 요구했다는 것.
인기 배우를 섭외시켜 주면서 배역 추가 TO를 요구하는 것 정도야, 업계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일이다. 문제는 육작가의 고집이었다.
-백승효 좋아요. 이미지도 맞고 연기력도 괜찮은 배우죠. 그렇다고 지정배역 추가 TO를 요구할 정도 급의 배우는 아니지 않아요?
-평소라면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급하고…저쪽에서도 손해를 감수하고 돌려준 거잖아.
-단역 몇 개 받고 싶다, 까지는 이해하겠는데요. 보형이는 안돼요. 극 분위기를 중간중간 살려주는 감초 역할인데 얘를 매력적으로 못살리면 드라마 망해요.
그녀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전작 3개를 연이어 히트시켜 한참 주가가 오른 작가. 다른 방송국도 군침을 흘리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서 KBK가 ‘갑’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그는 ‘한물갔다’라는 평을 듣는 피디. 미니시리즈가 맡겨진 것은 몇년 만이다. 이번에 잘해내서 다시 스타피디 반열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지글지글했다.
그러니 주PD는 작가 눈치도 안볼 수 없는 것이다.
극적으로 타협한 것이 보형의 오디션을 보되, 정말 특출난 다른 후보가 있지 않은 이상은 굿엔터 배우로 정한다는 것이었다.
-저희 배우, 제가 야심차게 밀고 있는 신예입니다. 보시면 작가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그 때 유석이 여유롭게 빙글거리며 일침을 놓았었지만,
현재 결과는 이 상황이었다.
백승효의 계약불발 얘기까지 나오자, 구석에 몰린 주PD가 약하게 반항을 했다.
“아니, 문실장님도…연기력 되는 배우 데려온다면서요. 고만고만하더만···”
하지만 유석의 표정을 보면서 말 끝이 점점 흐려진다.
그의 얼굴에 불편한 심기가 완연했기 때문.
고만고만하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유석이 원래 데려오려던 배우는, 저 ‘새로운 보물’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첫 번째 보물’.
그래서 굳이 백승효에 끼워팔지 않더라도 따낼 자신은 있었지만, 보형 역은 꼭 ‘그 놈’에게 주리라 결심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 놈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지···
할 수 없이 대충 스케줄이 빈 놈을 데려온 건 맞지만, 그렇다고 주PD가 이렇게 반항할 주제는 아니었다.
“PD님, 요즘도 ‘그거’ 하십니까? 이제 드라마 열심히 찍으셔야죠.”
“응? 아…안하지요 하하하. 역시 보형이는 문실장님네 배우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육작가 잘 설득해보겠습니다.”
문유석은 그의 약점을 쥐고 있다.
그것을 가볍게 상기시켜주자, 피디가 안절부절못하며 꼬리를 바짝 내린다.
그리고 그 때
똑똑-
노크가 울려퍼지고, 문의 손잡이가 돌아가며 열렸다.
────────────────────────────────────
────────────────────────────────────
연락 기다렸어요
“어어…육작가···”
주피디가 불청객의 입장에 안색이 변한다.
제 생각에 아니다 싶으면 피디인 자신에게도 들이받는 성격. 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작가가 문유석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면, 자신의 입장이 무척 난처…아니 위험해진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가,
“문 실장님.”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래저래 도와주셨고, 저희도 입닦을 처지가 아니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연급은 아니지만 보형이 역이 스토리를 끌고가는데 중요한 역할이라서요. 실장님네 배우가 나쁘다는 게 아니고, 보셔서 아시겠지만 워낙 잘 어울리는 배우가 들어왔습니다. 백승효씨 다른 계약도 엎고 넣어 주셨는데, 실장님도 이번 작 잘 되시길 바라시는 마음은 저희 못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정중한 태도에 유석이 피식 웃었다.
괴짜라더니 의외로 필요한 스탠스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연기’를 보고나서 자신도 고집할 생각은 아니었다. 주피디가 주제모르고 기어오르는 걸 눌러놨을 뿐이지.
“그래서요?”
“한 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주피디가 벙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나오시니까 좋네요. 그럼 육작가님이 저한테 한 번 빚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만족한 듯이 웃었다.
육미영, 3연석 유효타로 히트작가의 초입에 들어선 젊은 작가. 앞으로도 더 쓸모있어질 사람이다.
그런 인물에게 빚을 하나 뜯어냈고 ‘그 배우’는 어차피 자신이 컨택할 생각이었으니까, 도랑치고 가재잡고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세련의 일로 싱숭생숭하기도 했고, 영화작업이 끝나자마자 프로필을 만들고 오디션을 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이제야 한 숨을 돌린 유명이 집 밖으로 나왔다. 며칠 안 되는 짧은 휴식일 것이다.
때는 8월말. 아직 기세를 늦추지 않은 태양이 이글거린다.
발걸음은 대학로를 향한다.
오늘은 이제 막 대학로에 둥지를 튼 인턴 작가와 약속이 있다.
“유명아-”
“준호야.”
KFC에서 더위를 달래고 있으려니, 익숙한 형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영화 촬영 잘 끝났어?”
“응.”
“개봉은 언제래?”
“아직 배급 일정이 확실히 안나왔지만, 아마 연말쯤이 되지 않을까? 공연은 잘 끝났어?”
“어. 대본은 많이 수정되긴 했는데, ‘변신’ 장면은 그대로 쓰였어. 헤헷.”
준호가 쑥쓰러워 하면서도 자랑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빛이 난다. 전생에 함께 밥먹던 동기 우준호보다 훨씬 활력있고 신나는 모습이다.
자신도 준호에게 그렇게 보이겠지.
“이러지 말고 극단에 갈래? 선하 선배님이 너 오면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는데.”
“그래? 들어갈 수 있어?”
유명은 준호를 따라 혜성 시어터로 향했다.
전용극장을 가지고 있는 많지 않은 극단 중 하나다. 물론 그럴만한 극단이다. 현재 자타공인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극단이니까.
“어머, 유명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너는 카메라 받더니 더 멋있어졌네? 아…나도 카메라 마사지 받으려면 영화를 찍어야 하나?”
“지금도 충분히 예쁘세요.”
소소한 농담과 아부를 섞어 인사가 나누어졌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그녀는 남장을 하고 리처드 역을 소화해냈다고 하는데, 어떤 연기였을지 무척 궁금하다.
“영화끝났으면 다시 연극할 생각 없고? 너는 무대가 딱인데.”
“에이, 영화 나온 거 보면 영화가 딱이라고 하실 수도 있어요.”
“어라? 요 건방진 녀석 보게. 한성이 닮아가?”
“농담이에요. 흐…그런데 지금 오디션 하나 결과 기다리고 있어요.”
“오…장르가 뭔데?”
“드라마요.”
“드라마?”
선하의 목소리가 들뜬다.
“나 드라마 엄청 좋아하는데. 누구랑 찍는데?”
“어…아직 합격한 건 아닌데…주연이 백승효 차하린이라고 들었어요.”
“백승효? 나 싸인 좀 받아줘!”
삽시간에 소녀처럼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팬이세요? 하하.”
“응. 걔 지금도 잘나가지만 앞으론 더더 잘나갈걸. 애가 매력이 있잖아, 연기도 잘하고. 나중에 탑배우 반열에 들기 전에 받아놔야지.”
이선하의 눈은 정확했다.
백승효, 지금 20대 후반인 이 배우는 점점 성장하여 30대에는 탑배우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굿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배우가 되지.
그도···’소문의 제안’을 받았을까, 유명은 새삼 궁금해졌다.
*
[그날 그러고 돌아갔어요?]“설마요, 옷 갈아입고 갔죠.”
[큭큭. 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웃겼어.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