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6
유명은 잠시 정신이 어찔해져 높은 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요즘 잘 안타는 차에요. 부담가질 거 없어요. 차는 많으니까.”
“…그래도 이 차는 너무 과한데요···”
경차 정도 생각했었다. 그것도 조금 과하긴 하지만, 걸어온 내기니까 받아주겠다고.
그런데…갑자기 감당할 수 없이 스케일이 커진다.
입이 벌어진 유명의 얼빠진 반응을 보고 유석이 빙글빙글 웃었다.
“이런 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날이 금방 올거에요. 뭐, 당장 주겠다는 건 아니고, 타고 다니다가 내기에 이긴 후에 명의 이전해 드리죠.”
그 말에 유명이 이것이 ‘내기’라는 것을 상기했다.
“지면요?”
“다시 가져갈 거예요.”
“그게 다인가요? 내기인데 제가 부담하는 리스크는 없는 것 같은데요.”
“상실.”
“네?”
유석이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신유명씨, 내 거라고 생각했던 거 뺏겨본 적 없죠?”
이상한 질문.
하지만 돌이켜생각해보니 그렇다. 갖고 싶었던 것은 한 가지 뿐. 그런데 가져본 적이 없으니 뺏겨본 적도 없다. 이제야 조금씩 그 맛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원하던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눈 앞에서 상실하는 기분. 지면 그걸 느껴보세요. 그 감정 또한 배우로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인생의 재미도, 스릴도, 좌절도 많이 느껴봐요. 신유명씨는 너무 바른 사람같아. 좀 더 유치해질 필요가 있어요.”
바른 사람? 과연 그럴까···
“제가 차 욕심이 있는 편도 아닌데, 이걸 가졌다 잃는다고 상실하는 기분이 들까요?”
“하하, 조금쯤은? 타보면 알 거에요. 이 녀석은 단순한 차가 아니거든요.”
그는 유명의 손에 차키를 쥐어주고 휘적휘적 사라졌다.
삑-
유명이 홀린 듯이 차키를 눌렀고,
최고의 미녀가 두 눈을 깜빡였다.
*
부아아아앙—
강렬한 배기음과 진동하는 차체.
유명은 지금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다.
조금만 접근하려는 기세를 보여도 차들이 홍해처럼 쫙쫙 갈라진다. 과도한 속도로 펌핑하는 심장이 미친듯이 혈액을 뿜어낸다.
진짜, 완전히 20대로 돌아온 기분.
‘단순한 차가 아니다’라는 유석의 표현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이 차를 운전하는 것 자체로 맡을 수 있는 성공의 냄새.
끼이익-
수원에 당도해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댄 유명은, 집에 전화를 걸었다.
바쁠 때 거처할 숙소를 회사에서 마련해줬기에, 수원집에 오는 것은 며칠만이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나가시고, 집에는 방바닥과 일체화한 동생만이 남아있을 시간.
[여보세요-]“목소리 꼴 보아하니, 또 누워있다 일어났구나?”
[아오…누워있는 거 알면서 왜 폰으로 안 걸고! 내가 지금 방에서 거실 전화기까지 이동하느라 몇 줄(J)의 에너지를 사용했는지 알아?]선생 아니랄까봐, 기억에도 희미한 단위로 드립치는 것 보소.
“1층 내려와.”
[거절한다.]“지금 안 내려오면 너는 평생을 후회하게 된다.”
[뭐야? 설마 치킨?]목소리에 화색이 돌며 전화가 뚝-하고 끊긴다.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겠지.
유명은 지연의 표정을 기대하면서 느긋하게 차창을 열었다.
두리번두리번-
1층에 내려온 지연이 두리번거린다. 멀리서도 얼굴 표정이 선하다.
손에 든 전화기를 열더니 폭력적인 속도로 숫자버튼을 누른다. 열받았다.
RRR-
“여보세-”
[야, 신유명, 똥개훈련시키냐! 너 서울에 있으면서 나 갖고 논거지!]동생의 반응에 쿡쿡 웃던 그가 빵- 하고 작게 클랙션을 울리고,
??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은색 페라리에 지연의 눈이 화등잔만해진다. 그녀에게 잘 보이도록, 왼 손을 내밀어 전화기를 크게 흔들었다.
“신지연, 여기-!”
“이게뭐야! 너 미쳤어? 너 연기한답시고 바람들어서…어? 옴마야!”
제 오빠가 정신이 나갔나 싶어 닥달하며 달려오던 지연이 유명과 눈을 마주치고는, 턱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 엘프는…누구?
.
.
“달려 달려!!!”
“진정해. 너 그러다가 혈압 오른다.”
“으아…내가 면허를 따 놨어야 하는데! 그 동안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거지!”
“방바닥과 합체?”
“내가 왜 그랬을까!”
과도한 아드레날린 분비로 정신을 잠시 놓았던 지연은, 30여 분의 드라이브를 마치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었다.
“근데 진짜 이거 뭐야? 겉멋 들어서 빚내서 사거나 그런 건…아니지?”
즐길 걸 다 즐기고 나니 뒷감당이 걱정되는 모양인지 슬그머니 그를 떠보는 동생의 모습에 유명이 피식피식 웃는다.
“아니야. 사장님이 빌려주신 거야.”
“아아- 아직 작품도 안 찍은 신인배우에게 사장님이 빌려주셨구나. 잘도!!”
“진짜야. 나한테 기대가 크시다던데.”
그 말에 미심쩍은 표정으로 지연이 입을 다물었다.
제 오빠가 허풍을 치거나 섣부른 짓을 하는 성격이 아닌 것은 안다. 하지만 도대체 연기를 어떻게 하길래 연극을 보고왔다는 부모님도, 오빠네 사장이란 사람도 그렇게 그를 고평가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녀의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 같다.
부모님 두분 모두 퇴근하신 후, 유명이 입을 열었다.
“저 드라마 출연해요.”
“뭐? 드라마?!”
“언제? 어느 채널에?”
모녀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12월 초에 KBK에서 방영될 수목 미니시리즈에요. 이라는 작품인데, 운 좋게 조연역을 받아서···”
“우와, 엑스트라도 단역도 아니고 조연?”
지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머, 우리 아들 축하해!”
“요즘 바쁘더니 좋은 일이 있었구나. 애썼다.”
엄마는 눈물을 그렁이고, 아버지는 대견한 듯 눈가에 한껏 주름을 잡고 웃으신다.
부모님은 이미 그의 연기를 본 적이 있기에 놀라지는 않으신 듯 했다. 다만 커다란 기회가 일찍 온 것에 감격하신 것 같다. 혹시나 번복되어서 실망시킬까 하는 마음에, 바로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할 정도였다.
“네, 열심히 해 볼게요! 당분간은 바빠서 집에 자주 못올 수 있으니까 티비로라도 자주 보세요.”
“그렇게 바쁘니? 몸 상하면 어떡해···”
“사장님이 잘 챙겨주고 계세요. 너무 걱정마세요.”
“엄마, 오빠 회사 사장님 쩔지 않아? 초보 운전자한테 페라리 빌려주는 대인배···”
“너는 선생님 될 애가 어휘 선택이 그게 뭐니.”
“그러게?”
오늘도 엄마의 잔소리와 지연의 방어가 시전되었고, 아버지는 조용히 책 한 권을 펼치더니 10만원짜리 수표를 꺼냈다.
“뭐 먹고 싶냐?”
“고기요.”
“고기.”
“여보, 그 돈 뭐야?”
마지막 한 마디에,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
{드라마 촬영장 오랜만이당!}
미호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촬영장에 따라왔다.
미호의 이야기에 따르면, 연극의 에너지는 살아 펄떡이는 회같은 맛이, 영화의 에너지는 고급 요리의 스케일이 크고도 웅장한 맛이, 드라마의 에너지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인스턴트 푸드의 맛이 난다고 했다. 물론 작품과 배우에 따라 맛이 또 달라진다지만.
그 말을 증명하듯, 드라마 현장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크레인 아직 도착안했어요! 촬영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여기 전구 깨졌어요! 치울 때까지 지나가지 마세요!”
“제작팀 안계세요? 점심 배달오신 분이 식사 결제받고 가야한다는데요!”
이 급박한 환경, 이것이 드라마다.